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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66화 (166/232)

166화

무사히 공관에 도착한 사울을 마중 나온 건 전에도 몇 번 본 외교관들이었다.

전쟁 탓인지 모두들 갑옷 차림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무사히 도착하셔서 다행입니다.”

“이곳에는 별일 없나요?”

“네, 공관 주변에서는 아직 적들의 공격이나 도발이 보고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금 전 급보가 왔습니다.”

“급보요?”

“네, 우리 왕국과 가멜다 왕국이 거의 동시에 선전 포고를 했답니다.”

중요한 소식이지만,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전쟁이 다시 시작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니까.

양국이 서로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놀랄 건 없는 것이다.

“어차피 선전 포고는 큰 의미가 없어요. 중요한 건 어차피 시작된 전쟁이니 반드시 조국에 승전보가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야 말로 저 무도한 가멜다 왕국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전생의 조국을 멸망시킨다.

하지만 사울에게는 불편한 말이 아니었다.

“그래야지요.”

두 나라의 증오는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또 사울은 다르센 왕국의 왕자로 다시 태어나 가멜다 왕국의 원수들에게 복수하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전생의 조국이라고 편들 이유는 없었다.

“나는 아바마마의 명령을 받고 왔어요. 혹시 내게 맡겨진 임무가 있나요?”

“네, 전하.”

외교관이 봉인된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는 루시아 누님이 보낸 것이었다.

‘역시 정보부를 통해서 일을 진행하라는 건가.’

꽤 다방면에서 활약을 해 온 사울이다.

하지만 대군을 이끌고 전장에서 싸우는 것 보다는, 좀 더 은밀하고 복잡한 일들을 많이 해 왔다.

아바마마나 루시아 누님도 그 사실을 알고 정보부를 통해 그 분야의 임무를 맡긴 것이리라.

일단 사울은 편지를 뜯어 보았다.

루시아가 직접 쓴 편지 내용을 요약하면 이랬다.

‘중립 지대의 가멜다 왕국 세력을 견제하고,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일소하라.’

편지를 다 읽은 사울은 외교관에게 물었다.

“가르시아 남매는 중립 지대를 떠났다고 했지요?”

“네, 전하. 다른 지역 전장으로 투입될 것이라 들었습니다.”

“그렇군요. 아바마마와 누님은 내게 중립 지대의 다르센 왕국의 견제, 나아가 일소를 명령하셨어요.”

외교관들은 이런 말이 나올 줄 예상한 모양이었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그러지요. 먼저 가멜다 왕국이 지금 중립 지대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가져다줘요.”

“네, 전하.”

오래잖아 사울이 요구한 정보가 전달되었다.

책으로 치면 10권이 넘는 분량이었다.

이 많은 정보를 모두 다 검토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럴 시간이 없다.

정보를 다뤄 본 경험이 많은 사울이라 필요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사울은 외교 공관에 도착한 후 정보 분석으로 꼬박 이틀을 보냈다.

덕분에 지금 중립 지대에서 가멜다 왕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공격보다는 방어에 전념할 생각인가.’

현재 중립 지대의 두 나라 전력을 비교하면 다르센 왕국 쪽이 우위다.

가르시아 남매가 있었다면 가멜다 왕국이 우위였겠지만, 그들은 중립 지대를 떠냈다.

가멜다 왕국에서는 가르시아 남매가 없어도 중립 지대에서의 세력은 유지할 수 있거나, 혹은 세력을 포기해도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반대로 다르센 왕국에서는 사울과 카스텔이라는 인재를 투입해서라도 중립 지대를 지키고, 나아가 공격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시간이 많지는 않겠지.’

이미 두 나라는 선전 포고를 주고 받았다.

당장 내일 두 나라 간 전면전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다.

가르시아 남매가 중립 지대를 떠났다는 건, 전장 어디에서 그들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뜻이다.

다르센 왕국의 누가 율렌 섬의 최강자로 불리는 가르시아 남매를 막을 수 있을까.

개인의 무력으로만 따지면 그들을 막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장군으로서의 능력을 따지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드레이크 러셀 백작.

현재 다르센 왕국 최고의 전사이자 장군으로 꼽히는 남자.

사실 러셀 백작도 개인적인 무용으로는 가르시아 남매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전성기의 카스텔도 가르시아 남매에게 졌는데, 그 전성기의 카스텔보다 무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러셀 백작은 카스텔에 버금가는 뛰어난 전사이자 전략가이며, 강하고 유능한 부하를 여럿 두고 있다.

그래서 그가 나선다면 가르시아 남매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멜다 왕국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 어떻게든 러셀 백작을 막으려 할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카스텔, 나아가 사울의 힘이 필요해지겠지.

그렇다면 사울과 카스텔도 중립 지대를 떠나 전장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가능하면 그 전에 이 중립 지대에서 확실한 성과를 올려야 한다.

아바마마도 그것을 기대하고 있고, 사울도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수많은 정보를 검토하며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일행을 불러 모았다.

“지금 중립 지대에 가르시아 남매는 없어요. 그리고 남은 가멜다 왕국 녀석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지키는 데 전념하고 있고요. 그것을 부수는 게 우리 임무예요.”

“네, 전하.”

“우리가 저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듯, 저들도 우리의 움직임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거예요. 어차피 몰래 움직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차라리 당당하게 저들을 공격하여 격파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른 의견 있나요?”

먼저 아이나가 입을 열었다.

“저는 전하의 말씀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이종족의 움직임 또한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종족의 움직임?”

“네. 우리 왕국에서도, 가멜다 왕국에서도 중립 지대의 이종족을 끌어모으기 위해 애쓰고 있으니까요. 섣불리 적을 공격했다가 이종족 부족이 피해를 본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사울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다.

그동안 다르센 왕국의 외교 공관에서도 이종족 세력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은 계속해 왔다.

다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을 뿐이다.

가멜다 왕국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성과가 없으리라는 법은 없다.

사울이 쿠루굴 족장을 한편으로 끌어들였듯, 저쪽에서도 어떤 수완가가 이종족 부족장을 한편으로 끌어들였을 수도 있다.

카멜 산이나 그에 속한 부족이라면 이번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립 지대에는 카멜 산에 속하지 않은 부족도 몇 있다.

“아르멜, 아이나가 이야기 한 부분을 철저히 조사해 보도록.”

“네, 전하.”

“혹시나 이종족 문제가 있다면 그 부분을 고려하면서 움직여야 할 테고, 이종족 문제가 없거나, 해결한 다음에는… 이곳부터 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울은 지도의 한 곳을 짚었다.

가멜다 왕국의 외교 공관이 있는 곳이었다.

지금 사울이 있는 공관이 다르센 왕국 세력의 중심이듯, 가멜다 왕국의 외교 공관은 가멜다 왕국 세력의 중심이다.

처음부터 중심을 부숴 버린다는 게 사울의 의견이었다.

일행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단숨에 기선을 제압할 수 있지만, 실패한다면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큰 계획이었으니까.

얼마 후, 카스텔이 입을 열었다.

“좋은 계획입니다.”

솔직히 사울은 카스텔의 반응이 의외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네, 전하. 어차피 전하는 위험을 각오하셨기에 위험하다 조언해도 들으실 마음이 없으실 테니까요.”

“말에 뼈가 있군요.”

“알아서 생각하십시오. 아무튼 성공할 수만 있다면 좋은 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빠르고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할 수 있고,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제가 막을 테니.”

사울의 신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카스텔이 앞장서 찬성했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회의는 사실상 결정 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 아이나 아가씨가 말한 것, 그리고 전하의 계획을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아르멜과 다른 일행이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동안 사울은 외교관들을 불렀다.

“찾으셨습니까, 전하.”

“그래요.”

사울은 회의 자리에서 결정된 사항을 들려주었다.

그러자 외교관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전하께서 직접 병력을 이끌고 적의 외교 공관을 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너무 위험합니다.”

“다소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러니 전략을 낸 내가 직접 앞장서고, 또 책임지겠다는 것이에요.”

왕자가 직접 앞장서고 책임진다는 건 외교관들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 아니다.

만에 하나 왕자가 다치거나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책임을 면할 도리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사울은 외교관들이 계획을 반대할 것을 알았기에 계획을 세울 때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계획에 외교관들의 도움은 꼭 필요했다.

중립 지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이었으니까.

“약속하지요. 내가 공을 세우면 그대들의 도움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아바마마께 그대들이 세운 공을 말씀드리겠어요.”

“…….”

외교관들은 사울이 채찍과 당근을 모두 사용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사울에게 협조하면 공로를 인정받겠지만, 협조하지 않을 경우 나쁜 이야기를 왕에게 고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일개 외교관들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왕자에게 밉보이면 무슨 꼴을 당할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할 말을 잃은 외교관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울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일이 복잡할 땐 권력을 앞세우는 게 가장 빠르고 편리한 방법이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을 생각하면 결코 유쾌한 방법은 아니다.

전생의 자신도 많이 당해 보았으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권력을 앞세웠지만, 당하는 자들의 마음 또한 보듬어 주고 싶었다.

그것은 눈앞의 외교관들을 위한 길이자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했다.

쓸데없이 내부의 적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다시 한번 약속하지요.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그대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도록 하겠어요.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꼭 그대들과 나누도록 하겠어요. 그러니 날 도와주세요.”

왕자의 예의를 갖춘 간곡한 부탁에 외교관들도 더 말리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고마워요.”

외교관을 구워삶은 사울은 그들의 협조까지 얻으며 차근차근 작전을 준비해 나갔다.

오래잖아 필요한 정보들이 속속 들어왔다.

“전하, 가멜다 왕국 쪽의 동향을 알아왔습니다.”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던가?”

“아이나 아가씨가 걱정한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종족 부족이나 집단 중 가멜다 왕국과 손을 잡은 쪽은 없었습니다. 다만… 이종족 용병을 여럿 고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종족 용병이라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용병이 활동하다가 죽거나 다치는 건 개개인의 책임이니까.

하지만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있었다.

“역시 그들도 카멜 산이나 이종족 부족 전체를 끌어들이지는 못했나 보군.”

“네. 이종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 용병의 실력이 어느 정도이냐는 것인데.”

이종족 용병은 율렌 섬에서 그렇게 드문 존재는 아니다.

돈이 필요하거나, 중립 지대 밖에서 활동하고 싶어 용병이 되는 이종족이 드물지 않았으니.

문제는 이종족 용병은 대부분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이었다.

‘실력 없는 이종족 용병’을 인간이 쓸 이유는 없었으니까.

“얕볼 수는 없겠어. 하지만 이종족 용병까지 동원하여 전력을 집중한 곳을 한 번에 부순다면, 단숨에 가멜다 왕국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겠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좋아.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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