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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65화 (165/232)

165화

“오크 신관 발락.”

사울은 특정된 용의자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사울도 몇 번 본 적 있었다.

오크답게 덩치도 크고, 인상도 험악했지만 신전에서 평판은 좋은 신관이었다.

성품도, 능력도 흠잡을 데 없는 인물이라던가.

하지만 조사 결과 수상한 부분이 여럿 포착되었다.

외부 활동이 잦았는데, 그 외부 활동 경로와 피닉스의 예상 경로가 겹친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수상한 신관들이 몇 더 있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이자부터 시작하지.”

“발락이라는 신관은 대신전에서 꽤 명망이 높은 자입니다. 손쓰려면 대신관의 허락이 필요할 겁니다.”

“그렇군. 허락은 내가 받아 낼 테니 준비하고 있어.”

아르멜 등과 의논을 끝낸 사울은 곧바로 에스타를 찾았다.

일단 대신관 에스타는 피닉스와 관련이 없는 게 거의 확실했다.

이에 사울은 에스타를 찾아가 용의자에 대해 밝혔다.

“발락이 피닉스의 첩자인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발락은 저도 잘 압니다. 그런 허튼 망상에 사로잡힐 신관이 아닌데…….”

“누구든 허튼 망상에 시달릴 수 있는 법이니까요.”

“만일 그가 무고하다면요?”

“제가 직접 그 신관과 대신관님께 사죄하고 또 보상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첩자가 맞다면, 왕국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본래 빛의 교단은 이단자를 다루는 전문가들이었다.

하지만 중립 지대의 대신전은 이단자를 다루기보다는 중립 지대에서 활동하고, 봉사하며 또 교세를 넓히는 데 전념해 왔다.

덕분에 중립 지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단자를 상대하는 건 서툴렀다.

사울은 그 사실을 잘 알았고, 에스타도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었다.

“…….”

에스타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사울의 요구는 무리한 것일 뿐만이 아니라, 불쾌한 것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사울은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시간도 많지 않고. 상황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래서 실패하면 머리를 숙일 각오도 했다.

사울이 크게 각오한 만큼 에스타로서도 반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결국 에스타는 허락하고 말았다.

“그는 존경받는 신관입니다. 부디 누명을 씌우거나, 지나치게 가혹한 심문을 하는 일은 삼가 주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에스타의 허락을 받은 사울은 ‘신학적인 조언을 구한다’는 명분으로 발락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발락은 자신이 용의자라는 것을 모르는지, 아니면, 정말 결백한지 순순히 부름에 응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전하.”

“반가워요.”

발락의 얼굴은 몇 번 봤지만, 제대로 만나는 건 처음이다.

확실히 발락은 겉보기에는 성실한 신관처럼 보였다.

오크 특유의 큰 덩치와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깔끔하게 신관복을 차려입고 예의 바른 표정을 하고 있어 전혀 수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 사울은 신관과 으레 나눌 법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경전을 읽고 있어요. 이래저래 마음이 복잡해서.”

“좋은 일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신을 믿고 빛을 따른다면 잘못된 길을 택하시진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사실은 경전을 읽다가 문득 궁금한 게 생겼는데, 그대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하더군요.”

“부족하지만 전하의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때 조용히 문이 열리며 카스텔이 들어왔다.

달칵.

이어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손님이 있는데도 문을 잠그는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에 발락은 의구심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이내 카스텔과 눈을 마주쳤다.

“…….”

순간 발락의 눈빛이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사울은 무언가를 깨닫고는 명령했다.

“잡아요.”

명령과 함께 사울이, 그리고 카스텔이 함께 움직였다.

두 사람은 합공에 발락은 저항은커녕 비명조차 못 지르고 쓰러졌다.

발락을 제압한 카스텔은 재빨리 그의 입을 벌렸다.

익숙한 손놀림 끝에, 카스텔의 손에 자그마한 주머니가 들려 나왔다.

“찾았습니다.”

“역시 이자를 택한 게 정답이었군요.”

카스텔이 꺼낸 건 자그마한 독주머니였다.

이 독주머니 때문에 생포할 수 있었던 피닉스 포로 여럿을 떠나보내야 했다.

하지만 이보다 확실한 ‘피닉스의 증거’는 없었다.

이런 것을 입에 넣고 다니는 건 피닉스 조직원이나 각국의 첩보원 정도일 테니까.

섣불리 검사를 하려다가는 먼저 자살해 버릴 테니 함부로 행동하기는 어려웠지만, 용의자를 확인하는 수단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모든 것을 불 게 해요.”

“네, 전하.”

카스텔은 발락을 깨운 뒤 마법으로 그의 정신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는 것을 모두 말해라.”

“크으윽!”

발락도 만만치 않았다.

대단한 실력자이기는커녕 마나를 다룰 줄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놀라운 정신력으로 카스텔의 마법에 저항했다.

하지만 의지만으로 카스텔의 강대한 힘에 저항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한계를 넘어서자 발락은 아는 것을 불기 시작했다.

사울은 그가 말한 것들을 모두 기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군.”

생각대로 발락은 피닉스의 첩자였다.

그것도 ‘연락책’이라는 상당히 중요한 위치의 첩자였다.

완전히 정신을 제압당한 발락은 속절없이 자신이 아는 것을 털어놓았다.

시간이 많다면 이 자리에서 모두 듣고 기록했겠지만, 그럴 시간은 없었다.

사울은 가장 중요한 정보부터 물었다.

“이 대신전에 피닉스의 첩자가 또 있나?”

“그렇소.”

“그들의 이름을 대라.”

“빈센트, 고리아.”

둘 다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빈센트는 인간, 고리아는 드워프 신관이다.

둘 모두 대신전에서 지명도도 있고, 평가도 좋은 자들이었다.

또 다른 연락책들까지 찾아낸 사울은 재빨리 움직였다.

“지금 바로 두 신관을 잡아야겠어요. 한쪽은 선생님이, 다른 쪽은 내가 직접 가지요.”

“네, 전하.”

눈에 띄게 움직이는 건 곤란하다.

궁지에 몰리면 생포 전에 자살해 버릴 수도 있다.

사울은 많은 병사들을 데려가는 대신, 실력자 한 명만 데리고 가기로 했다.

“나와 함께 가요.”

“네, 전하.”

사울은 아이나와 함께 고리아를 만나러 갔다.

마침 고리아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신관들이 공용으로 이용하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사울을 맞이했다.

사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리아에게 다가갔다.

“고리아 신관?”

사울의 부름에 고리아는 덥수룩한 수염을 휘날리며 대답했다.

“아니, 왕자 전하 아니십니까.”

“그래요. 사실은 그대에게 할 말이…….”

난데없는 사울의 방문에 고리아가 무언가 수상함을 느끼기 전에 아이나가 먼저 움직였다.

미리 준비해 간 짧은 둔기로 고리아의 뒤통수를 내려쳤고, 예상치 못한 기습에 고리아는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전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사울은 경악한 신관들에게 해명하기에 앞서 기절한 고리아의 입속을 살폈다.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럽게 입속을 헤집은 끝에 작은 독주머니를 터뜨리지 않고 꺼낼 수 있었다.

증거를 찾은 사울은 모두에게 말했다.

“이자는 피닉스의 첩자예요.”

사울의 해명에도 주변 분위기는 쉽사리 정리되지 않았다.

“아니… 고리아 신관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아르멜이 병력과 함께 사울 주변을 둘러쌌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그래. 보다시피 아무 일도 없었어.”

사울은 아르멜에게 독주머니를 보여 주며 명령했다.

“이자를 데려가. 나는 대신관을 찾아갈 테니.”

“네, 전하.”

사울은 꽁꽁 묶인 채 끌려가는 고리아를 뒤로하고 다시 에스타를 찾았다.

에스타도 일이 어찌 되나 궁금했는지 별다른 일정을 잡지 않고 사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은 고리아, 그리고 발락의 입에서 나온 독주머니를 보여 주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건 독주머니입니다. 콩알만큼 작지만 깨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목숨을 끊을 수 있을 만큼의 맹독이 들어 있지요. 지금껏 제가 잡은 피닉스의 첩자 거의 모두가 이 주머니를 입 안에 넣고 있었습니다.”

사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에스타의 눈이 커졌다.

“그렇다면……!”

“네. 고리아와 발락은 첩자입니다. 그리고 발락이 신관 빈센트 역시 첩자라고 자백을 했습니다.”

“빈센트 신관까지 첩자라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자도 곧 붙잡혀 올 겁니다.”

사울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카스텔이 찾아왔다.

“전하, 빈센트를 잡았습니다.”

“증거는요?”

“여기 있습니다.”

카스텔은 독주머니를 꺼내 보여 주었다.

사울은 다시 에스타에게 말했다.

“모든 게 확실해졌습니다. 발락, 고리아, 그리고 빈센트 셋 모두 피닉스의 첩자입니다.”

“…….”

에스타는 황망한 나머지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죽은 콜리타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곧바로 냉정을 되찾고 할 말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스타는 아직 그 정도의 냉철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사울은 에스타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잡을 자들을 다 잡았으니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마침내 에스타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사울은 먼저 사과의 말을 건넸다.

“대신전에서 소란을 피운 건 사과하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사울은 어디까지나 예의상 사과를 한 것뿐이다.

생사람을 잡았다면 모를까, 피닉스의 첩자가 세 명이나 나온 이상 에스타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저는 조만간 이 대신전을 떠나야 합니다. 이번에 붙잡은 첩자들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셔야겠습니까?”

“지금 대신전에서 피닉스 첩자들을 다루는 건 어렵지 않겠습니까?”

사울은 기껏 붙잡은 첩자들을 넘길 마음이 없었다.

결국 에스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대체 그들이 어쩌다가 그런 잘못된 생각을 품었을까요.”

“그들을 가엾게 여기시는 건 이해합니다. 약속하지요. 비록 그들이 피닉스의 첩자이지만, 공정하게 대우하고 저지른 잘못만큼의 처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하.”

에스타와 이야기를 마친 사울은 잡은 첩자들의 심문에 나섰다.

확실히 이번에는 성과가 있었다.

이번에 붙잡힌 자들은 카멜 산과 연계되어 중립 지대에서 각종 정보를 다루고, 또 연락책 역할을 하던 자들이었다.

사울은 신전을 떠나는 날까지 첩자들에게서 정보를 얻고, 분석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 * *

사울이 대신전을 떠나는 날.

사울은 에스타 등과 인사를 주고받은 뒤 대신전을 떠났다.

“…….”

떠나는 사울을 바라보는 신관들의 눈빛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왕자를 경애하기보다는, 두려워하는 모습이 강했다.

그토록 대신전의 인심을 얻기 위해 공을 들였건만, 한 번의 과격한 움직임으로 모든 게 날아간 것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지금은 다른 곳에 눈길을 돌릴 여유가 없다.

사울은 그 모든 일들을 제쳐두고 중립 지대의 다르센 왕국 외교 공관으로 향했다.

“전하를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 모른다! 경계를 늦추지 마라!”

언제 사울을 노리고 가멜다 왕국이나 피닉스가 보낸 자객이 덮칠지 모른다.

사울도, 일행도, 휘하 병력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서둘러 외교 공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공관에 도착할 때까지 별다른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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