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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64화 (164/232)

164화

사울은 세네카의 협조를 받으며 조사를 계속했다.

그렇게 카멜 산의 간부들을 하나하나 심문했고, 몇 명의 끄나풀을 더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의미 있는 정보도 알아냈다.

“대신전에 우리의 연락책이 있소.”

“대신전에 피닉스 조직원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소. 연락책은 그곳에서 신관으로 있으면서 우리와 조직 수뇌부를 연결하고 있다고 들었소.”

피닉스의 조직원 중 한 명이 중요한 정보를 밝혔다.

대신전에 ‘연락책’, 즉 중요한 위치의 조직원이 있다는 정보였다.

다른 조직원과는 달리 이자는 개중 지위가 높은 편이라 연락책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중요한 정보를 얻은 사울은 마음을 정했다.

“대신전으로 돌아갈까요?”

먼저 카스텔이 찬성했다.

“전쟁이 다시 시작된 이상, 이곳보다는 대신전이 조금 더 안전할 겁니다. 또 왕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좀 더 빨리 대처할 수 있겠지요.”

“그렇겠지요. 역시 대신전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에 사울은 떠날 것을 결정한 뒤 세네카를 찾았다.

“내일 아침에 떠나신다고요?”

“네. 전쟁이 코앞이라 저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울은 세네카에게 은근히 물어보았다.

“대족장님, 혹시 이번 전쟁에 참여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귀국을 도와 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결코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대족장님이 전쟁에 개입하실 생각이 있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꺼낸 사울 본인도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카멜 산의 안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세네카가 적극적으로 전쟁에 개입하는 위험을 감수할 것으로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 생각이 옳았다.

“저도, 카멜 산도 중립을 지킬 겁니다. 과거 6년 전쟁이 그러했고, 그 이전에도 그러했듯이.”

“알겠습니다. 제 말이 무례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전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세네카와의 대화를 끝으로 사울은 카멜 산을 떠났다.

* * *

대신전으로 향하는 내내 사울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 사이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왕국 영토 안에 있는 왕족이라도 적국 자객의 먹잇감이 될 수 있는데, 하물며 영토 밖에 있는 왕족이라면 얼마나 잘 노려지겠는가.

경계를 늦추지 않은 덕분인지 대신전에 도착할 때까지 별일은 없었지만, 대신전에서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전하, 가르시아 남매가 찾아왔습니다.”

대신전에서 머무르고 있던 기사의 보고에 사울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필 그자들인가.”

대신전에 칼부림을 벌이러 온 것은 아닐 것이다.

사울은 그들이 사절 역할을 맡고 대신전을 찾은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전을 한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다르센 왕국 편을 들지 말 것을 단단히 주문하러 온 것이리라.

지금 같은 시기에 가르시안 남매와 맞닥뜨리는 건 여러모로 편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겁쟁이처럼 숨어 있을 수는 없다.

대신전에도 눈과 귀는 많다.

왕자인 사울이 겁쟁이처럼 숨어 있는다는 건 왕국의 위신에 해를 끼칠 수 있다.

‘아무리 전시 태세라지만, 대신전에서 그자들이 미친 짓을 하지는 않겠지.’

사울은 마음을 정했다.

“아무튼 대신관을 만나야겠다. 가서 알리도록.”

“네, 전하.”

명령을 받은 기사는 곧 대신관이 사울을 만나겠다는 소식을 가져왔다.

소식을 들은 사울이 곧바로 대신관을 만나러 가고 있을 때였다.

“사울 왕자님 아니신가.”

무례하게 지껄이며 다가오는 건 다름 아닌 가르시안 남매였다.

마음을 굳게 먹은 사울은 가르시안 남매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인사했다.

“이렇게 다시 만나는군.”

“후훗.”

가르시안 남매의 남동생, 베일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러자 사울 주변에 있던 호위 병력이 일제히 앞을 가로막았다.

“뭘 그렇게 두려워하십니까? 겁먹지 않아도 됩니다. 잡아먹지 않을 테니까.”

베일은 존댓말을 쓰면서도 예의는 조금도 차리지 않았다.

이미 전쟁이 다시 터진 것과 다름없으니 적국 왕자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사울은 베일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이곳은 전장이 아니고, 그쪽도 이런 곳에서 검을 뽑을 만큼 무지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걸 잘 알고 있다면, 겁쟁이처럼 호위 병력 뒤에 숨는 건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킬 건 지켜야 하는 법. 그대의 나라와 나의 나라는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다. 나는 왕자로서 내 신변을 철저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후훗.”

베일은 사울을 더 도발하지는 않았다.

이 자리에서 칼부림을 내거나 사울을 도발하기 위해 찾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게 베일은, 그리고 베일의 누나인 마리안은 사울을 지나쳤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평화롭게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몸조심하십시오, 전하.”

마리안의 은근한 협박에 사울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건 내가 할 말이다.”

“후훗.”

그렇게 가르시안 남매은 대신전을 떠났고, 사울은 대신관을 만날 수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대신관 에스타는 복잡한 표정으로 사울을 맞았다.

그가 무어라 묻기에 앞서 사울이 말했다.

“오면서 가르시안 남매와 마주쳤습니다.”

“세상에. 별일 없으셨습니까?”

“네. 별일 없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자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던가요?”

“전쟁 이야기였습니다.”

전쟁 이야기라면 뻔하다.

전쟁이 다시 시작될 테니 가멜다 왕국 편을 들거나, 하다못해 중립을 잘 지키라고 이야기한 것 아니겠는가.

“대신전은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겠지요?”

“물론입니다. 전하. 가르시안 남매에게도 똑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저희는 피해자들을 도울 뿐,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물론 저는 대신전의 뜻을 존중합니다.”

어차피 대신전이 이번 전쟁에서 다르센 왕국 편을 들어줄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았다.

사울이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실은 의논할 게 있습니다. 피닉스에 대한 것인데…….”

사울은 카멜 산에서 얻은 정보를 들려주었고, 에스타는 적잖이 놀랐다.

“대신전의 신관 중 피닉스에 소속된 자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여기 대족장의 편지도 받아 왔습니다.”

사울은 이럴 때를 위해 미리 받아 온 세네카의 편지를 꺼냈다.

세네카가 직접 쓴 편지를 받아 든 에스타는 더욱 놀랐다.

아무리 믿기 어려운 이야기라도 왕자와 대족장이 입을 모아 똑같이 말한다면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신전까지 마수를 뻗칠 줄이야.”

“그만큼 그들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도 이 문제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전쟁 통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정보에 따르면 이 신전에 있는 첩자는 두세 명, 모두 신관이며 인간과 이종족이 섞여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색출하기 위한 도움이 필요합니다.”

‘색출’이라는 표현에 에스타가 눈살을 찌푸렸다.

“과격한 방법을 쓰시려는 겁니까?”

“가능한 온건한 방법을 쓰겠습니다. 색출도, 그리고 붙잡은 상대에게도.”

‘가능한 온건한 방법을 쓰겠다’.

어쩌면 온건한 방법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에스타는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시국에 피닉스 같은 자들을 가만히 놔둘 수는 없지요.”

“그렇습니다. 이 신전에서 무슨 짓을 하기 전에 미리 손을 쓸 필요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전하의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색출 및 심문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물론 대신관님과 의논도 하고, 알려 드릴 것은 알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해 주십시오. 그 누구에게도 제게 들은 이야기를 발설하면 안 됩니다.”

에스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당분간 이곳에서 머무르며 색출을 시작하겠습니다.”

* * *

대신전에 머무르기로 한 사울은 최대한 서둘렀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다급한 소식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전하, 또다시 국지전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어디가 이겼지?”

“이번에는 우리 왕국이 이겼답니다.”

“다행이군.”

며칠 전에 이어 다시금 국지전이 벌어졌다는 소식이었는데 며칠 전에는 패했지만, 이번에는 이겼다고 한다.

이미 전쟁은 다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다행인 건 아직 전쟁이 본격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국경 지대 주변으로 대규모의 병력을 이동시키며 다가올 대전쟁을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국경 주변이나 혹은 중립 지대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일어나고는 했다.

지금 중립 지대에서 사울에게 그나마 안전한 곳은 대신전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른 곳의 동향은?”

“몇몇 요충지를 중심으로 병력들이 집결하고 있습니다.”

“제르넬 요새 쪽은?”

“그쪽에도 적지 않은 병력이 집결하였습니다. 또 쿠루굴 족장 휘하의 병력도 아군과 연락을 취하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루시아 누님은 전쟁을 앞두고 좀 더 큰일에 전념하기 위해 왕국 수도로 돌아갔다고 했다.

반면에 조나단 왕자는 제르넬 요새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명령을 받은 조나단 본인도 왕자로서 기꺼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했고.

물론 큰 공을 세우겠다는 공명심 또한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제르넬 요새도 전쟁 준비가 한창이다.

언제 적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지 사정에 밝은 쿠루굴 족장의 군대가 합류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왕국의 땅까지 주면서 그들을 받아들인 것도 이럴 때 쓰기 위함이었으니까.

“나에게는 별다른 명령이 내려온 게 없나?”

“여기 있습니다.”

사울이 받은 봉투는 국왕의 문양이 찍힌 채 봉인되어 있었다.

즉, 아바마마의 편지였다.

“알았다. 이만 물러가거라.”

“네, 전하.”

아바마마가 직접 보낸 편지를 받는 건 오랜만이다.

사울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었다.

편지 내용은 절반은 안부 인사, 나머지 절반은 공적인 내용이었다.

‘아마 너라면 그곳에서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조만간 전쟁이 시작된다면 전장에서 네 능력을 발휘해야 할 게다. 다른 연락이 없다면 지정된 기일까지 중립 지대의 공관으로 이동해라. 그곳에서 네가 할 일이 있을 게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바마마의 명령이라면 거역할 수 없다.

기일이 그렇게 촉박하지도 않았다.

일주일 정도 머무른 뒤 출발해도 충분히 기일에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을 일주일 안에 마무리 짓는 건 쉽지 않다.

사울은 모두를 불러 통보했다.

“아바마마께서 외교 공관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하셨어요.”

“언제 떠나실 생각입니까?”

“일주일 뒤에 떠나면 될 것 같아.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최대한 서둘러야겠어. 아르멜, 용의자들은 가려냈나?”

“네, 전하. 일단 스무 명 정도를 가려냈습니다.”

대신전은 카멜 산과는 또 다르다.

카멜 산에는 율렌 섬 최고의 실력자 중 한 명인 세네카가 있었고, 그의 도움도 받았다.

덕분에 수월하게 많은 자들을 심문하고, 피닉스의 끄나풀을 찾았다.

대신전에서는 그러한 방법을 쓰기 어려웠다.

상대의 정신을 제압하여 정보를 빼내는 건 카스텔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심문을 당한 자의 기억을 지우려면 세네카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용의자를 확실히 특정한 다음 심문해야 한다.

잘못 조사했다가는 뒷일을 감당하기 어려울 거다.

사울은 모든 끄나풀을 한 번에 붙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한 명의 끄나풀이라도 붙잡은 뒤, 그를 통해 다른 자들을 붙잡기로 했다.

이 대신전의 끄나풀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기한은 일주일.

사울과 일행은 자는 시간도 아끼며 정보를 모으고, 분석했다.

그리고 5일째 되던 날.

한 명의 용의자를 특정 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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