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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60화 (160/232)

160화

얼마나 움직였을까.

사울도 폐광 깊숙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들의 존재를 느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자들이 몇 명 정도 있는 것 같다.

머릿수가 많지 않고, 그렇게 강해 보이지도 않는다.

폐광에 쌓인 몬스터의 시체를 만든 정체불명의 강자는 이 자리에 없는 것 같다.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 모두들 철저히 대비하라.”

명령을 내린 사울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다르센 왕국의 왕자, 사울 다리우스다!”

폐광 속에서 사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사울이 언성을 높였다.

“정체를 밝혀라! 그렇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잠시 후.

상대는 정체를 밝히는 대신, 응전해 왔다.

마법 공격이 퍼부어져 왔으나, 이럴 때를 대비해 방어 마법을 준비한 덕분에 피해는 없었다.

갑작스런 적의 공격에 사울과 함께 싸워 본 일행들은 놀라는 대신 경계 태세를 취했다.

반면에 사울과 함께 싸워 본 경험이 적은 기사나 병사들은 크게 놀랐다.

왕자가 자신의 정체를 밝혔음에도 적이 공격해 오는 상황에 익숙지 않은 탓이었다.

“저놈들이? 전하,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 그보다 전투를 준비하라.”

“알겠습니다!”

지금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치명적인 함정이나 계략이 있을 수 있다.

어차피 폐광은 끝이 막힌 구조일 테니 적들은 독안의 든 쥐다.

사울은 신중하게 병력과 함께 진군했다.

“당장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여전히 저쪽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카스텔이 사울에게 물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구석에 몰린 적들이 자결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럼 선생님이 먼저 적들을 살펴 주세요. 무리하지는 말고.”

“네. 제가 따로 신호를 보낼 때까지 진군 속도를 유지해 주십시오.”

카스텔이 몸을 날렸고, 사울은 그녀가 시킨 대로 진군 속도를 그대로 유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죽여라!”

“으아악!”

멀리서 전투를 독려하는 고함 소리와 비명이 어우러지며 검과 마법이 교차하는 광경이 보였다.

전투가 벌어졌지만, 사울은 진군 속도를 높이지 않았다.

자신들이 필요했다면 카스텔이 이미 신호를 줬을 테니까.

다행히 매복도, 함정도 없었다.

사울 일행이 적들에게 다가갔을 땐 이미 전투가 끝난 뒤였다.

“수고했어요.”

“대단찮은 적들이었습니다.”

“역시 이들이 몬스터를 몰살시킨 자들은 아닌 것 같지요?”

“네. 몬스터를 몰살시킨 건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개인의 소행입니다. 이들 중 그 정도의 실력자는 없었습니다.”

굉장한 실력을 가진 ‘개인’.

그 정도의 실력자를 만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이 모든 사태의 열쇠를 쥐었을지 모를 자를 놓쳤으니 불행이라 해야 할까.

아무튼 사울은 포로가 된 자들을 살펴보았다.

다르센 왕국 영토에서 다르센 왕국 왕자의 정체를 알고도 공격한 자들이다.

적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체도 짐작이 갔다.

살아서 포로가 된 자도 있지만, 이미 피를 흘리며 숨이 끊어진 자들도 있었다.

카스텔이 죽인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포로가 되느니 숨겨 둔 독을 먹고 자결한다.

피닉스가 자주 쓰던 수법 아닌가.

“역시 피닉스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결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해 두었습니다.”

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내렸다.

“병력 일부는 포로들을 지켜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폐광을 끝까지 수색한다!”

사울은 병력을 이끌고 수색을 재개했다.

적들은 더 나타나지 않았고, 몬스터 시체만 끝없이 이어졌다.

“막다른 길인가.”

“네, 전하. 이 이상은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폐광의 끝에 다다른 사울은 지금껏 본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자신들을 공격한 적들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물건들.

그리고 수많은 몬스터의 시체들.

어느 쪽이든 소홀히 볼 수 없는 것들이다.

“병력을 더 투입하여 폐광을 철저히 수색하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건 모조리 수거하라.”

“네, 전하!”

사울은 폐광 수색 마지막 과정까지 직접 감독했다.

혹여나 놓치는 게 있을까 봐 취한 조치였지만, 크게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폐광 수색 작전은 끝났다.

* * *

소득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수께끼가 많이 남은 원정이었다.

일단 영주의 저택으로 돌아온 사울은 포로들부터 심문했다.

예상대로 포로들은 순순히 입을 열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카스텔이 나섰다.

약간의 소란 끝에 대화 분위기를 만든 사울은 포로들에게 직접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은 피닉스인가?”

“그렇다.”

역시 피닉스였다.

사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물었다.

“너희들은 무슨 이유로 폐광에 들어갔는가?”

“그곳을 기지로 만들라는 명령을 받았다.”

“너희들이 폐광에 살고 있던 몬스터를 토벌했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소행이지?”

“모른다. 우리가 폐광에 들어갈 때부터 그런 상태였다.”

“…….”

이번에도 허탕인가.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는 일렀다.

“피닉스의 향후 계획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새로운 질문에 포로 중 가장 지위가 높은 것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장래 계획에 대해 들은 건 있다.”

“무슨 계획이지?”

“우리의 계획은…….”

포로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강한 마법으로 정신이 무너졌음에도, 너무나도 중요한 비밀이라 여전히 입을 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울은 카스텔에게 눈짓을 했다.

카스텔은 좀 더 강력한 마법으로 포로의 정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정신을 건드리는 건 때로는 신체를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다 줄 수도 있다.

눈앞의 포로도 굉장한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울로서는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

마침내 굴복한 포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의 계획은…….”

“계획은?”

“전쟁을 막는 것이다.”

“뭐라고?”

사울은 진심으로 놀랐다.

몇 가지 답변을 예측해 보았지만, 이 답변은 예상 범위 밖이었다.

“무슨 전쟁을 막겠다는 것인가?”

“두 나라의 전쟁…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의 전쟁.”

“그 전쟁을 막겠다고? 너희가 왜? 무슨 이유로?”

“전쟁을 막는 게 우리의 이상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여러 종족들의 평화 말이다.”

사울은 함께 참석하고 있던 자들을 둘러보았다.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

그리고 사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영주 던칸도 직접 심문 자리에 참석했다.

모두들 적잖이 놀란 모습이었다.

예전에도 피닉스는 인간과 이종족의 평화를 운운했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는 말인가.

거기에다 다가올 전쟁을 막겠다니.

일단 사울은 심문을 계속했다.

“전쟁을 어떻게 막을 생각이지?”

“몇 가지 계획을 세워 두었다.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사전에 전쟁 요인을 차단하겠다고…….”

“자세히 말해라.”

“양국의 군수 물자나 군량을 공격해 태우거나, 병사들의 주둔지를 공격하여 병력을 없애거나, 전쟁에 관여하는 요인들을 암살하는 등의 계획이 있다고 들었다.”

“그 계획 중 너희들이 실행 중이거나, 이미 실행한 게 있나?”

“모른다.”

뽑아낼 수 있는 정보를 모두 뽑아낸 사울은 지하 감옥을 나섰다.

* * *

사울 일행, 그리고 던칸과 부하들이 여럿 참석한 가운데 회의가 열렸다.

회의장 상석에 앉은 사울이 먼저 운을 뗐다.

“모두들 지금 상황은 잘 알고 있겠지요. 마침내 피닉스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가 손에 들어왔어요.”

던칸이 질문했다.

“전하께서는 이번 정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단 거짓 정보는 아니에요. 피닉스에 속하고, 또 피닉스의 명령을 받은 자들에게서 직접 얻은 정보이니까.”

“그럼 그 피닉스라는 자들이 정말 두 나라의 전쟁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최소한 우리가 붙잡은 포로들은 그렇게 생각했고, 또 자신들이 그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고 믿고 있었어요.”

소영주 칼랜드도 질문했다.

“전하께서는 피닉스의 진의가 다른 데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정말 포로들이 말한 게 피닉스의 궁극적인 목적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래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피닉스가 정말 노리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의미 있는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울은 화제를 바꾸었다.

“피닉스가 진정 노리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건 다음에 다시 의논하지요. 중요한 건 당면한 문제에요. 피닉스는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자신들의 명분으로 두 나라의 전쟁을 막겠다는 것을 내걸었어요. 소영주.”

“네, 전하.”

“전쟁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지요?”

칼랜드가 대답했다.

“네, 전하. 방위전은 물론, 적을 공격할 때를 대비하여 병력과 물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모두들 알다시피 머잖아 전쟁은 다시 시작될 거예요.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일/ 테지요. 이런 상황에서 피닉스 같은 불순분자들이 방해를 하면, 왕국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길지 몰라요. 그들이 무엇을 노리고 이런 짓을 하든, 우리는 피닉스를 뿌리 뽑아야 해요.”

회의장의 모두가 수긍했다.

어차피 전쟁은 기정사실이고, 전쟁에 대해 어찌 생각하든 피할 수 없다면 이겨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불순분자들을 하루빨리 쳐 내야 했다.

* * *

회의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사울은 그레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전하, 대신전에서 보내 온 편지입니다.”

“대신전이?”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데이빗이 돌아온 모양이군.”

“데이빗이라면… 그 견습 신관 말입니까?”

“그래, 신관 아미스와 함께 대륙에서 돌아 왔다나 봐.”

“아미스라면… 그 유능하다는 신관 말입니까?”

“그래, 데이빗도 데이빗이지만, 아미스라는 신관도 나를 한번 만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물론 아미스라는 신관이 사울을 직접 부르지는 않았다.

대신관도 아닌 일개 신전 간부가 왕자를 오라 가라 할 수는 없으니까.

그저 기회가 된다면 한번 뵙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의향을 물어 왔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사울은 흥미가 생겼다.

‘어차피 피닉스 문제로 카멜 산에 가 볼 생각이었으니… 도중에 대신전에 들러 볼까?’

사울은 얼굴조차 모르는 아미스라는 신관이 점점 궁금해졌다.

그래서 직접 만나 보리라 마음먹었다.

영지 내부의 조사는 영주와 소영주 등에게 맡겨도 충분할 테니까.

결심한 사울은 카멜 산에 향하는 길에 대신전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 * *

영지의 피닉스 조사를 영주에게 맡긴 사울은 일행과 함께 대신전으로 향했다.

별문제 없이 대신전에 도착한 사울은 먼저 새로운 대신관, 에스타부터 찾았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오늘은 무슨 일이십니까?”

사울은 에스타가 내심 불편해하는 ‘아미스’ 이야기는 꺼내지 않기로 했다.

“피닉스 문제로 카멜 산으로 향하는 길에 잠시 들렀어요.”

피닉스 이야기에 에스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근 대신전 주변에서도 피닉스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실은 피닉스에 대한 정보가 몇 가지 있는데…….”

사울은 피닉스가 두 나라의 전쟁을 방해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는 정보를 들려주었다.

“뜻밖이군요. 전쟁을 방해하는 게 목적이라니…….”

“대신관님은 달리 생각했나요?”

“네. 저는 그자들이 전쟁을 방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키우는 게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전쟁을 키운다?”

“그렇습니다. 물론 저도 그자들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자들이 무엇을 추구하든, 두 나라가 평화로울 땐 목적을 이루기 어려울 겁니다.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평화롭고 강성하다면, 지금의 질서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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