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화
사울은 영주의 도움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피닉스 조사에 나섰다.
중립 지대에서나, 홉킨스 가문 영지에서나 미궁 속을 헤매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장소를 바꾸니 새로운 것이 보이고, 또 들려오기도 했다.
“최근 영지에서 포착된 피닉스와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정보를 모아 왔습니다.”
“좋아. 빨리 검토하고 움직이자.”
피닉스는 신출귀몰한 자들이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정보를 검토하면 적의 꼬리만 쫓게 될 뿐이다.
사울은 다소의 위험 부담을 각오하고 서두르기로 했다.
정보를 하나하나 꼼꼼히 파악하기보다는 큰 맥락에서 파악하며 예측했다.
일행들도 큰 힘이 되었다.
아르멜은 물론 카스텔과 아이나도 말이다.
카스텔은 서류를 살펴보고 검토하는 일에는 적성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판단하는 데 능통했다.
아이나는 홉킨스 가문의 영지를 잘 알았고,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을 더해 가치 있는 말을 남겼다.
아르멜은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들의 분석과 추리까지 해냈다.
그리고 사울은 그 모든 것을 종합하여 하나의 결론을 냈다.
“이곳을 목표로 삼도록 해요.”
사울이 가리킨 곳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아시르 폐광이군요.”
“맞아.”
홉킨스 가문의 영지에 대해 잘 아는 아이나가 설명했다.
“아시르 폐광은 위험한 장소입니다. 과거에는 구리가 채광되던 대형 광산이었지만, 폐광된 지 백 년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몬스터 소굴로 알려져 있지요.”
“네, 전하.”
“선대의 영주들이 몇 차례 몬스터 토벌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 결과 완전히 버려진 곳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그렇습니다. 지금도 폐광을 관리하는 병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감시만 하고 있을 뿐, 절대로 건드리지는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지 오래인 아시르 폐광.
본래는 규모가 큰 광산이었고, 인근에 광부와 가족들이 거주하는 제법 큰 마을까지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폐광 후 지역 전체가 버려졌고, 몬스터가 꼬이는 바람에 모든 게 꼬였다.
영주군의 전력으로는 몬스터 토벌조차 여의치 않아 몬스터가 날뛰지 않는지 감시만 할 뿐이었으니까.
“본래는 폐광에 몬스터가 드나들었지만 어느새 몬스터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다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이건 확실히 부자연스러운 일이에요. 활발히 움직이던 몬스터 무리가 이유 없이 조용해지는 경우는 없으니까.”
사울은 이런 일에 가장 경험이 많은 카스텔을 바라보았다.
무언의 질문을 받은 카스텔이 대답했다.
“몬스터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몬스터가 둥지를 버리고 이동했을 때, 또 하나는 몬스터가 전멸했을 때.”
“어느 쪽이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지요.”
“네. 백 년 동안 폐광에서 잘 살던 몬스터가 떠났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전멸했다면 말할 것도 없을 테고요.”
세상의 모든 부자연스러운 일이 피닉스의 소행일 리는 없다.
하지만 지금 홉킨스 가문 영지 내에서 이렇게까지 부자연스러운 일이 발생한 건 확실히 신경 쓰였다.
“역시 폐광을 한 번 자세히 조사할 필요가 있겠어요, 아이나.”
사울에게 질문을 받은 아이나가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전하와 저희들만 움직이는 건 위험합니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많이 살고 있나요?”
“여러 종류의 몬스터가 최소 수백 마리는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확실히 만만히 볼 수 없는 전력이다.
폐광 같은 공간에 최소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살고 있다면 카스텔이 나서도 토벌이 쉽지 않다.
“그럼 영주의 협조가 필요하겠군요.”
“아버님께서도 협조하실 겁니다.”
아이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곧 사울은 던칸을 만났고, 던칸은 사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폐광을 조사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폐광에 피닉스가 있다면 그들을 치고, 피닉스가 없다면 몬스터를 칠 생각이에요.”
“폐광의 몬스터는 쉽게 토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만.”
“그래서 영주의 협조가 필요해요. 피닉스가 없더라도 영지를 위해 폐광의 몬스터를 깨끗하게 토벌할 테니 힘을 보태 주세요.
던칸으로서는 나쁜 제안이 아니었다.
이미 폐광도, 마을도 버려진 지 오래라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하지만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폐광에서 둥지를 틀고 있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영지의 안위에 큰 위협이다.
토벌에 필요한 전력이 부족하여 놔두었을 뿐, 토벌이 가능하다면 하는 게 낫다.
결국 던칸은 사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피닉스를 잡든 몬스터를 잡든 확실히 책임지겠어요.”
* * *
던칸의 협력 덕분에 빠르게 토벌대를 구성할 수 있었다.
사울 일행과 왕국군, 그리고 영주군에 신전을 지키는 교단군까지 포함된 대규모 부대였다.
“출발한다!”
토벌대는 목적지인 아시르 폐광까지 순조롭게 나아갔다.
폐광 인근에 도착할 때까지 토벌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폐광 인근에 주둔한 토벌대에 병사 몇 명이 찾아왔다.
폐광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자들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그대들이 이 지역을 감시하고 있던 병사들인가?”
“그렇습니다.”
“최근 이 지역의 폐광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던데.”
“네. 본래 폐광은 몬스터의 둥지이며, 그만큼 많은 몬스터들이 드나들었습니다. 멀리서 폐광을 지켜볼 때마다 몬스터 무리가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몬스터의 움직임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사라졌다는 건 말 그대로 한 마리의 몬스터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네, 전하.”
역시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몬스터가 사라진 것 외의 다른 움직임은 없나?”
“다른 움직임은 아무것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폐광에 직접 들어가는 건 엄격히 금지된 터라…….”
“그렇군,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라.”
병사들을 돌려보낸 사울은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역시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폐광 토벌은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설령 피닉스 가 없다고 해도 몬스터가 우글대는 폐광에 들어가는 일이다.
최소한 몬스터 무리를 토벌하거나, 그보다 어려운 일을 해야 할 것이었다.
사울은 자신의 일행은 물론, 왕국군과 영주군, 그리고 교단군 기사들까지 불러 모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몬스터들이 폐광을 벗어나 날뛰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토벌대 중 정예들이 나와 함께 폐광을 조사한다. 우리가 찾는 게 없으면 몬스터 무리를 폐광 밖으로 끌어낸 뒤 섬멸하고, 우리가 찾는 것이 있다면 상황에 맞게 움직인다.”
위험한 임무라 정예 병력을 뽑아 왔다.
거기에다 사울과 카스텔 등 실력자들도 많이 있다.
최소한 전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준비가 끝나는 대로 폐광으로 들어간다.”
“네, 전하.”
* * *
사울은 자신의 일행과 일단의 정예 병력을 이끌고 폐광에 진입했다.
사울이 직접 폐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이번에도 그의 뜻을 꺾지 못했다.
물론 위험하다는 건 사울도 잘 알았다.
밝고 탁 트인 야외에서도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하는데.
하물며 어두컴컴한 폐광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울은 철저히 준비하고 폐광에 들어섰다.
먼저 마법으로 폐광 내부를 환히 비추었다.
어차피 병력과 함께 폐광에 들어가는 이상 적 몰래 움직이기는 어렵다.
이에 사울은 어둠 속의 습격을 막기 위해 마법으로 폐광 내부를 대낮같이 밝혔다.
“모두들 길을 잘 살피며 신중히 이동한다.”
“네, 전하!”
다행히 내부가 복잡하지는 않았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구조로 파 내려가기보다는 크고 넓게 파는 데 집중한 폐광이었다.
덕분에 내부 구조는 하나의 거대한 지하 동굴과 흡사했다.
폐광 입구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심상찮은 광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몬스터의 시체였다.
“대단한 실력이군.”
시체를 본 사울은 실력자의 소행임을 직감했다.
언뜻 보기에는 어떤 몬스터의 시체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대부분 불타고 타다 남은 뼈만 잿더미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강력한 불길로 시체조차 남지 않게 불살라 버리는 건 사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폐광 같은 밀폐된 공간에서 이렇게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밀폐된 곳에서 함부로 불을 지르다가는 시전자까지 불길에 휩싸이거나 질식해 죽을 수 있다.
오죽하면 ‘실내에서는 화염 마법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가 기본 상식에 속하겠는가.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몬스터의 시체는 깔끔하게 타올라 형체조차 거의 남지 않았다.
아마 공격을 당한 몬스터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죽었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몬스터의 시체가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 마리, 수십 마리, 아니, 주변에 보이는 것만 백 마리가 넘어 보였다.
사울도, 다른 자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 갔다.
“대체 이게 무슨……?”
“마법사 군단이 저지른 짓일까요?”
한참 몬스터 시체를 살핀 사울은 결론을 내렸다.
“한 명의 소행이다.”
좀처럼 놀란 표정을 비치지 않는 아르멜도 놀랐다.
“네?”
“한 명의 소행이라고.”
“아니, 고작 한 명이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전멸시켰다는 말입니까?”
“그래, 실로 괴물 같은 실력이다.”
카스텔도 사울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렇습니다. 이건 대단한 실력자 한 명의 소행입니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요?”
“베일 가르시아라면 가능할 겁니다.”
“베일…….”
베일 가르시아.
현 율렌 섬의 최강자로 불리는 괴물 같은 실력자.
분명 마검사 베일은 불, 물, 바람, 땅의 네 가지 마법 속성 모두를 능통하게 다루는 마검사라고 했다.
그중에서도 불과 얼음을 이용한 공격에 능하다던가.
베일이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베일이 가멜다 왕국까지 와서 그것도 버려진 폐광에서 한바탕 날뛰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강자들도 사정은 비슷했다.
베일의 누나인 마리안.
카멜 산의 지배자인 대족장 세네카.
그리고 검은 마녀 카스텔.
이들이라면 혼자서 눈앞의 광경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든 가멜다 왕국 변경의 폐광에서 날뛰고 사라질 이유가 없었다.
‘피닉스에 알려지지 않은 실력자가 있는 건가?’
사울도, 다른 자들도 걸음을 멈추었다.
어쩌면 이 정체불명의 실력자는 폐광의 모든 몬스터들을 혼자서 쓸어버렸을지 모른다.
그런 실력자가 지금 폐광에 머무르고 있다면?
함부로 움직였다간 이쪽이 전멸할 수 있다.
모두들 걸음을 멈춘 가운데, 카스텔이 나섰다.
“전하,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해요.”
“네.”
카스텔을 혼자 보내기에는 불안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저 카스텔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랄 뿐.
그렇게 카스텔은 조용히 폐광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무사히 돌아온 카스텔이 모두에게 알렸다.
“누군가 안에 있습니다.”
“몬스터들을 이렇게 만든 자인가요?”
“그자는 지금 이곳에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다른 자들입니다.”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자들인가요?”
“네. 머릿수로도, 또 실력으로도 크게 위험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카스텔은 항상 사울의 안전을 우선시한다.
그런 그녀가 눈앞의 전공에 눈이 멀어 상황을 오판했을 리는 없다.
결정한 사울은 목소리를 가다듬어 명령했다.
“다시 움직인다. 모두들 주의하도록!”
사울과 일단의 병력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울은 폐광으로 들어갈수록 몬스터가 말 그대로 ‘전멸’했음을 깨달았다.
그 정체불명의 실력자가 지금 이곳에 없다는 건 다행이었지만, 동시에 의문도 들었다.
‘역시 피닉스인가? 그렇지 않다면 대체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