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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55화 (155/232)

155화

킬리안과 어둠의 세력이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건 안소니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해 묻는다고 킬리안은 절대로 속내를 털어놓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로터스가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았을지 모른다.

그래서 어둠의 세력을 쫓던 사울 왕자가 그를 쫓았고, 킬리안까지 얽히며 일이 복잡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다.’

안소니는 과거 자신의 부하이기도 한 로터스에 대해 잘 알았다.

욕심이 많은 놈이고, 자신에게 빼앗긴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소 위험한 짓도 할 놈이다.

하지만 어둠의 세력과 깊게 관련되는 건 ‘다소 위험한 일’이 아니다.

효과는 장담하기 어렵고, 위험 부담은 한없이 높은 일이다.

‘그렇다면 피닉스인가.’

피닉스라면 안소니도 조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관련된 적이 없어 정보가 부족했다.

“피닉스에 대해서 뭘 알고 있지?”

“요즘 중립 지대를 근거지로 활동한다는 사이비 집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다른 것은?”

“알려진 것보다 세력이 클 겁니다. 저는 그들과 직접 관련되진 않았지만, 조직원 중에서는 그들과 관련된 자들도 있을 테고요.”

“뭐라고? 네 조직원 중에서?”

“저는 종족 차별주의자가 아니라서 말입니다. 우리 조직에 이종족이 여럿 있고, 중립 지대에서 활동하는 녀석들도 적지 않으니 이종족의 진정한 평화 운운하는 사이비 집단에 귀가 솔깃한 녀석도 있겠지요.”

킬리안의 말을 들은 안소니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로터스가 피닉스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말은 되는 이야기군요. 로터스는 피닉스와 한패고, 그 사실을 알아챈 사울 왕자가 피닉스를 쫓고, 제가 로터스를 쫓는 과정에서 부딪쳤다. 우연이 아니라면 일이 그렇게 된 것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그런가.”

어차피 모두 가능성이다.

로터스나 사울 왕자를 잡아 족치거나, 확실한 증거를 얻기 전까지는 이번 실패의 자세한 내막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건 실패를 수습하는 것이다.

“사울 왕자가 널 알아보았나?”

“네. 이미 여러 번 부딪쳐 본 사이니까요.”

“그렇다면 사울 왕자가 나에 대한 것도 냄새를 맡았을 가능성이 있군.”

“사울 왕자가 백작님을요?”

“나는 로터스를 잘 안다. 놈이 머리가 있다면 널 시켜서 자길 죽이려 한 게 나의 짓이라고 생각할 게다. 사울 왕자가 로터스를 거둘지, 죽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생각이 있다면 로터스 놈의 입을 열게 했겠지.”

“그렇군요.”

킬리안도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생각하다 말했다.

“백작님이 힘을 써 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가르시안 남매가 있지 않습니까.”

“…….”

가르시안 남매와 킬리안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는 안소니도 잘 알고 있었다.

안소니도 가르시안 남매는 함부로 대하기 어려웠다.

권력이라면 안소니 쪽이 우위지만, 가르시안 남매는 구국 영웅이자 왕국 최강의 실력자니까.

하지만 가르시안 남매 쪽에서도 안소니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6년 전쟁의 일로 수많은 귀족에게 원한을 산 그들이 굳이 적을 늘리려 할 리는 없을 테니까.

문제는 일방적인 명령이 통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명령이 아닌 거래가 필요했다.

생각 끝에 안소니는 결단을 내렸다.

“킬리안.”

“네, 백작님.”

“네 신변은 내가 책임질 테니 당분간 가르시안 남매와 함께 움직여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 말대로 이번 일은 나와 너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니 나는 네 신변을 책임지겠다. 너는 가르시안 남매와 함께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전념해라. 일단 로터스의 생사와 행방을 알아보고, 그 피닉스라는 놈들에 대해서도 알아봐라.”

“…….”

안소니의 얼굴을 바라보던 킬리안이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미소다.

그래도 안소니는 저 미소에 수긍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아보았다.

“로터스 놈이 사울 왕자에게 무슨 소리를 지껄였든 당장은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정계에서 쫓겨났던 놈이니 나에 대한 치명적인 정보를 알 리 없지.”

“확실합니까?”

킬리안의 질문에 안소니가 눈살을 찌푸렸다.

“날 의심하는 건가?”

“지금은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할 때가 아닙니까. 백작님이 저를 의심하듯 말입니다.”

“…로터스 놈이 뭐라 지껄이든 당장 사울 왕자가 날 적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난 사울 왕자와 어떤 형태로도 얽힌 적이 없으니.”

킬리안도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입니다. 저는 가르시안 남매가 많이 불편합니다만… 백작님이 나서 주신다면 일단 그들과 협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그나저나 사울 왕자라… 골치 아프게 되었군.”

“맞습니다. 놈을 겪어 본 제가 보장합니다. 아주 골치 아플 겁니다.”

태평한 킬리안의 말에 안소니는 그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킬리안 같은 녀석의 불경스러운 언동을 일일이 꼬투리 잡다가는 그에게 아무것도 시킬 수 없다.

“혹시 네 힘으로 사울 왕자를 없앨 수는 없겠나?”

“암살 말입니까?”

“그래. 이제 사울 왕자는 이 왕국에서도 위협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휴전 조약이 깨지지 않아 대놓고 죽일 순 없지만, 암살을 할 수만 있다면 이후의 일은 수습할 수 있을 거다.”

킬리안이 잘라 말했다.

“왕자 곁에는 검은 흉성이 있습니다.”

“…암살은 무리인가.”

가르시안 남매에게 패한 검은 흉성의 명성이 크게 쇠락했다지만, 그녀가 죽은 건 아니다.

그것만으로도 ‘사울 암살’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인지 충분히 설명되었다.

“알았다. 일단 로터스와 피닉스의 관계부터 알아보아야겠다. 가르시안 남매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이니, 너도 그들과 협조하여 움직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얼굴은 보지 않더라도, 협조하도록 하지요.”

‘교활한 놈.’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전을 생각하는 킬리안의 모습에 안소니는 욕을 할 뻔했다.

하지만 아직은 킬리안을 버릴 수 없다.

최소한 로터스와 사울, 그리고 피닉스의 관계에 대해 알아낼 때까지는 말이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알았다.”

그렇게 킬리안은 조용히 안소니의 저택을 나섰다.

그리고 얼마 후.

킬리안은 곁을 따르던 칼립소에게 물었다.

“너는 피닉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두목이 아는 것 이상으로는 알지 못해요.”

“그런가. 그럼 너는 피닉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칼립소의 입꼬리가 비뚤어졌다.

“멍청한 이상주의자들이지요.”

“그래? 네가 이종족인데도?”

“제가 이종족이라고 멍청한 이상주의자들에게 찬성한다는 건 아니에요. 종족간의 평화? 그런 건 꿈에서나 나올 소리이지요. 차별받거나 박해받지 않으려면 강해져서 차별하거나 박해하려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야지. 피닉스라는 자들은 멍청할 만큼 이상적인 녀석들이에요.”

킬리안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두목. 정말 피닉스를 적대할 거예요?”

“문제 있나?”

“제온 녀석은 위험하다고 할 걸요. 제 생각도 그렇고요.”

킬리안은 칼립소, 나아가 제온이 이 화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피닉스는 말 그대로 수수께끼투성이의 조직이다.

이종족의 평화라는 이상을 내걸고는 있지만 조직 규모부터 진정한 목적까지 모든 게 불명이다.

조직 규모나 행동력 등을 고려하면 만만찮은 녀석들임에 분명하지만 그 이상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킬리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은 정체를 알아낸 뒤 죽이면 그만이지.”

“후훗.”

예상대로의 답변에 칼립소는 작게 웃었다.

* * *

중립 지대의 외교 공관으로 돌아온 사울은 다시 피닉스 추적에 전념하기로 했다.

전생의 자신을 망치고, 가문까지 망친 장본인이 안소니 백작이라는 건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안소니 백작은 지금 노리기에는 너무나도 거물이었다.

다행인 건 당장 그가 자멸하거나 남의 손에 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안소니 백작의 권력은 그만큼 튼튼했다.

일단 사울은 인내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힘을 더 키우면서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회는 분명히 올 거야. 언제 전쟁이 다시 시작될지 모르니.’

지금은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 사이 위태로운 휴전이 유지되고 있다.

근 20년에 가까운 평화.

두 나라가 눈에 띄는 다툼 없이 20년 가까이 불안한 평화를 유지한 건 극히 드문 일이다.

그리고 그 평화가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징후는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불안한 외교 관계.

국경 지대에서의 소규모 분쟁.

많은 사람들이 조만간 전쟁이 다시 시작될 것으로 예상했다.

과거 참혹했던 ‘6년 전쟁’만큼, 어쩌면 그 이상의 거대한 전쟁이.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까지는 해 본 적 없다.

하지만 어차피 터질 전쟁이라면 최대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머잖아 전쟁은 다시 벌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사울도 그렇게 생각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다르센 왕국과 가멜다 왕국은 지난 삼백 년 간 그러했듯, 서로를 멸망시키기 위한 전쟁을 시작할 것이다.

그때야 말로 사울에게 큰 기회가 될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당장의 일에 충실하고 힘을 키운다.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다시 피닉스를 쫓았다.

“사로잡은 킬리안의 부하들은 피닉스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습니다.”

“킬리안과 피닉스 사이에는 관련이 없다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전하.”

아르멜의 보고에 사울도 수긍했다.

지난번 전투에서 사로잡힌 킬리안의 부하들은 모두 엄중한 심문을 거쳤다.

포로 중 누구도 카스텔의 마법에는 저항하지 못했고, 아는 것을 모두 토해 내었다.

아쉽게도 크게 쓸 만한 정보는 없었다.

킬리안이 부하가 포로로 잡힐 것을 대비해 정보를 통제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알아낼 수 있었다.

킬리안이 ‘누군가’의 뜻에 따라 로터스를 죽이려 했다는 사실이라던가.

‘그 누군가는 안소니 백작일 가능성이 있어. 로터스도 안소니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생각했지. 안소니, 킬리안, 로터스… 그렇게 퍼즐이 맞춰지는가.’

분명 기억해 둘 만한 정보지만, 지금 피닉스 사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결국 인내하면서 계속 피닉스를 쫓는 방법 밖에는 딱히 수가 없는 듯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전하, 대신전의 소식입니다.”

“대신전에서?”

병사가 가져온 대신전의 소식은 꽤나 중요한 것이었다.

“새로운 대신관이 결정되었다고?”

“네, 전하. 자세한 사항은 여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사가 내민 문서에는 에스타라는 신관이 새로운 대신관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어 있었다.

새로운 대신관 에스타.

사울도 아는 이름이었다.

‘두어 번 본 적 있는 그 중년의 신관인가.’

평판도 좋고 능력도 기본 이상은 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 정도로 중립 지대의 대신전을 책임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대륙에 위치한 빛의 교단 총본산에서도 나름대로 지원에 나섰다고 했다.

‘교단에서 명망이 높은 아미스 신관이 새로운 대신관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다…….’

신관 아미스.

들은 적 있는 이름이다.

한때 사울과 가까이 지냈던 신관 데이빗의 스승이자 은인이라던 그 신관 아닌가.

데이빗은 콜리타의 제자인 아미스에게 스승의 죽음을 직접 알리기 위해 율렌 섬을 떠났다.

그리고 아미스가 대신전으로 온다면, 데이빗도 함께 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편지를 본 사울은 일행을 불러 말했다.

“새로운 대신관이 결정되었다고 해요. 새로운 대신관에게 인사라도 할 겸 대신전에 한 번 가볼 생각이에요.”

사울의 말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시지요, 전하.”

찬동하는 아이나의 말투와 표정은 여전히 어색해 보였다.

침묵으로 찬성하는 카스텔도 마찬가지였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아르멜과는 달리 두 사람은 여전히 사울을 불편해하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분위기는 어색하지만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이렇게 사울은 오랜만에 대신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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