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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52화 (152/232)

152화

일단 사울은 아르멜에게 로터스의 심문을 맡겼다.

처음에는 입을 굳게 닫은 로터스였지만, 카스텔이 아르멜에게 힘을 빌려주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항상 그렇듯 마법으로 정신을 건드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자가 이야기한 모든 것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전하.”

“쓸 만한 정보가 있었나?

“몇 가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피닉스 측에서 나름대로 공을 들인 모양입니다.”

아르멜의 보고를 받은 사울은 무언가를 결정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전하께서도 직접 심문해 보실 겁니까?”

“그래.”

“카스텔 님께 다시 부탁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어. 정보도 정보지만,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거든.”

“다른 이야기라면?”

“어쩌면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일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사울의 말에 아르멜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킬리안이 그를 죽이려다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심문 도중 안소니 백작이 언급되었습니다.”

“안소니 백작?”

아는 이름을 들은 사울은 본심을 숨기며 물었다.

“가멜다 왕국의 거물이라는 자 말인가?”

“네, 전하. 그 로터스라는 자는 안소니 백작과의 정쟁 끝에 정계에서 쫓겨났다 최근 복귀했답니다. 또 그는 자신을 죽이려 한 게 안소니 백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안소니 백작과 킬리안 비셔스가 관련이 있다는 건가?”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로터스 그자도 스스로 의심만 할 뿐 아무런 물증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함부로 꺼낼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렇군.”

“자세한 건 모두 기록해 두었습니다.”

사울은 여전히 본심을 숨긴 채 말했다.

“어쨌든 그를 불러와. 이중 첩자로 만들기는 어려워도 살려 주는 대가로 우리 왕국에 전향시킬 수 있을지 모르니.”

“알겠습니다.”

곧 꽁꽁 묶인 로터스가 사울에게 끌려왔다.

사울은 아르멜은 물론, 호위병까지 천막 밖으로 내보냈다.

그렇게 사울과 로터스, 단둘만이 남았다.

“…….”

묶인 채 꿇어앉은 로터스는 의자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울을 불안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로터스가 끌려오기 직전까지 사울은 생각을 거듭했다.

놈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끝을 낼까.

사울은 나온 결론에 따라, 일단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터스 경.”

적국 왕자의 존칭에 로터스는 적잖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절망이 넘쳐흐르던 표정에 한 줄기 희망이 비쳤다.

정말 얄팍하고, 또 천박한 남자다.

사울은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운이 없는 사람이더군요.”

“무, 무슨 말씀이신지?”

“솔직히 말하지요. 나는 당신을 쫓은 게 아니에요. 나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피닉스이고, 당신이 피닉스와 관련이 있는 탓에 이 꼴을 당한 것이지요.”

“…….”

“거기에다 당신은 안소니 백작의 이름을 언급했어요. 또 당신을 죽이려 한 건 나와도 인연이 깊은 킬리안 비셔스이지요. 아무래도 내가 당신을 용서하고 풀어 준다고 해도 당신은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로터스는 사울의 말 속에서 희망을 찾은 듯 절박하게 말했다.

“혹시… 전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입니까?”

“그것을 바라나요?”

“그, 그렇습니다!”

“그럼 당신은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르센 왕국을 위해 충성할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절 살려 주신다면, 그리고 앞으로도 살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첩자가 되라면 될 것이고, 다르센 왕국에서 자리를 만들어 주신다면 그 또한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사울은 속으로 코웃음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천박한 놈.’

살길이 열렸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지껄이는 저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싶다.

하지만 아직은 침을 뱉거나 칼을 뺄 때가 아니다.

알아내야 할 것을 모두 알아내야 했다.

이 일은 카스텔이나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수 없다.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

뭐, 지금 로터스의 꼴을 보고 있자면 어렵지 않을 듯 했다.

“당신은 정말 나에게, 나아가 가멜다 왕국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이 있나요?”

“물론입니다! 제 안위만 보장해 주신다면 당장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럼 충성의 맹세를 받아 볼까요?

사울의 말에 로터스가 말했다.

“한쪽 팔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맹세문이든 뭐든 다 쓰겠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하도록 하고, 당신이 아는 다르센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로터스는 다르센 왕국에 대한 이야기를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상식만 있으면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도 있었고, 나름대로 기밀에 속할 듯한 정보도 있었다.

사울은 들은 이야기들 중 중요한 것들을 받아 적었다.

“고마워요.”

“이제 끝입니까?”

“한 가지 더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사울은 여유로운 표정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본론을 꺼냈다.

“사실 나는 당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네?”

“로터스, 당신은 지금은 초라한 처지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지요. 특히 6년 전쟁 즈음에는 꽤 잘나갔었지요. 지금은 정적이 된 안소니 백작과도 친밀한 관계였고.”

“그, 그렇습니다.”

“당신과 만나기 전 여러 가지로 조사해 본 결과, 나는 누군가의 이름을 알게 되었어요. 롤랜드, 롤랜드 제니스타.”

로터스의 눈이 커졌다.

어째서 눈앞의 왕자가 오래 전에 죽은 적국의 하급 귀족의 이름을 대는 것인지, 상상도 못 한 게 분명했다.

“그 이름을 어떻게?”

“당신은 몰랐겠지만 그는 다르센 왕국과 꽤 연이 깊은 사람이었어요.”

“그, 그럴 리가?”

“사실이에요.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예상 밖의 말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로터스의 반응을 즐기며 사울은 말을 이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롤랜드 제니스타는 죽었어요. 또 그 가문까지 사라졌다지요.”

“저, 저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우리 왕국 입장에서 그의 죽음은 적국의 하급 귀족 한 명이 죽은 것에 불과해요. 하지만 말했듯 그는 다르센 왕국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인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사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로터스 경.”

“…….”

“충성을 맹세하겠다고 했지요. 나는 맹세문 따위에는 흥미 없어요. 그보다는 당신이 아는 것을 솔직히 털어놓기를 원해요. 롤랜드에 대해서 말이에요.”

말과 함께 사울은 검을 빼 들었다.

적을 베기보다는 마법을 보조하는 데 쓰이는 마법 검이지만, 칼날은 충분히 날카롭다.

사울은 날카로운 칼끝을 로터스의 눈앞에 가져갔다.

“애꾸나 장님이 되어도 입을 여는 데는 상관이 없고, 목숨에도 지장이 없지요. 장님이 된 다음 우리 왕국의 일원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저, 전하!”

“말하지 않겠다면 왼쪽 눈부터 시작하지요.”

“알겠습니다! 다 말하겠습니다!”

사울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사울이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안 로터스는 벌벌 떨며 자백할 준비를 갖추었다.

“좋아요. 내가 알기로 롤랜드는 볼페르트 요새에서 내 선생님이기도 한 카스텔과의 전투 중 사망했어요. 맞나요?”

“그,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전쟁 전부터 롤랜드는 꽤나 몰려 있었다고 들었어요. 자신의 뒤를 봐준 후원자에게 배신당했고, 하지 않은 일의 책임을 지고 최전방으로 향했다고. 그곳에서 싸워 이겼다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렇게 롤랜드는 죽었어요.”

“…….”

“당신의 책임이 크다는 건 알지만, 롤랜드의 원수를 갚자는 게 아니니 그 일은 넘어가지요. 내가 궁금한 건 일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당신이냐는 것이에요.”

“아닙니다!”

로터스는 벌벌 떨면서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일에 저도 개입했습니다만, 롤랜드를 쫓아 낸 장본인은 제가 아니라 안소니 백작입니다.”

“안소니 백작이? 어째서요?”

“당시 백작은 전쟁을 틈타 정계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할 생각을 하였습니다. 확실히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은 받아들이고, 위험하다 싶은 자들은 전장으로 내몰아 제거하거나, 스스로 제거하려 했습니다. 롤랜드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로터스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이제야 진실이 드러난 것 같다.

사울이 의심한 대로 롤랜드의 죽음과 가문의 멸망의 주동자는 안소니 백작이었다.

놈이 자신의 권세를 튼튼히 하기 위해 롤랜드를 사지로 내몰아 죽이고, 가족들도 죽음으로 몰아넣고, 가문의 재산까지 빼앗아 버렸다.

“…그렇군요.”

사울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사울은 이제부터 할 일을 결정했다.

순간 그의 눈이 살기로 번득이는 것을 본 로터스가 덜덜 떨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로터스.”

“네, 네!”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줄까?”

로터스는 사울의 말투가 바뀐 것도 깨닫지 못한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자신의 신변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사울은 사람들 앞에서 자주 보여 주는 사람 좋은 미소와는 너무나도 다른 싸늘한 미소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멜다 왕국에 어떤 하급 장교가 있었어. 그 하급 장교는 몰락한 자신의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해 목숨을 다해 싸웠지. 비슷한 이유로 아버지도, 형도 죽었지만 그 하급 장교는 멈추지 않았어. 그것이 가문을 위한 길이고, 살아남은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지.”

“네.”

“그래서 그는 목숨 걸고 싸웠고, 적지 않은 공을 세웠어. 하지만 가문이 워낙 한미했기에 세운 공만큼 인정받지 못했지. 그런 장교에게 누군가 손을 내밀어 주었어. 고위 귀족과의 연줄을 만들어 주고, 세운 공만큼 인정받게 해 주겠다고 말이야.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하급 장교는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어. 그것이 파멸로 향하는 길인 줄도 모르고.”

“…….”

“파멸은 오래잖아 찾아왔어. 하급 장교가 세운 공은 자신을 도와준다는 자들에게 빼앗겼고, 책임은 몇 배로 져야 했거든. 결국 그 하급 장교는 다르센 왕국과의 최전방인 볼페르트 요새로 가게 되었지. 그는 그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으려 했지만 무리였어. 검은 흉성을 선봉으로 앞세운 다르센 왕국 군대가 쳐들어왔고… 그는 전사했지. 자신 하나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던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 둔 채로.”

로터스도 사울이 누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알아들었다.

롤랜드.

방금 전 언급된 그의 이야기를 다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왜냐고?”

“네. 롤랜드에 대한 건 이미 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전하께서는 오래 전 죽은 롤랜드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으실 것인데…….”

사울의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을 본 로터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롤랜드와 아무 관련 없는 사람이 롤랜드 이야기를 하며 저렇게 분노에 찬 눈빛을 보일 수는 없었다.

“대, 대체…….”

“다시 말하지만 그렇게 롤랜드는 죽었어. 그리고 다시 태어났지. 다시 태어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전생의 기억도 되찾았지. 그리고 깨달았어. 자신의 전생이 얼마나 불행하고 비참했으며, 꼭두각시 같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확실히 알게 되었지. 어머니는 비탄에 빠져 돌아가시고, 여동생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가문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

“어때, 로터스. 롤랜드가 전생의 원한을 잊어야 할까, 아니면 이제라도 갚아야 할까?”

롤랜드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서, 설마…….”

“맞아. 바보같이 이용만 당하다 비참하게 죽고 가족과 가문까지 모조리 잃어버린 하급 장교 롤랜드 제니스타가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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