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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45화 (145/232)

145화

“헉… 헉…….”

도망치는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뒤쫓는 사울의 귀에도 어렴풋이 들렸다.

조만간 도망자는 한계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한계에 달해 붙잡힐 위기에 놓이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테고.

그렇게 놔둘 수는 없다.

사울은 마법 검을 뻗었다.

“파이어 볼!”

시동어와 함께 마법 검을 휘두른 궤적에 따라 사람 머리통만 한 불덩어리가 날아갔다.

불덩어리는 도망자를 직격하는 대신, 그의 발끝에 떨어졌다.

쾅!

폭발의 힘이 담긴 불덩어리가 지면에 부딪치는 순간, 요란한 굉음과 함께 불꽃이 주변을 뒤덮었다.

불길에 휩싸인 도망자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사울은 쓰러진 도망자에게 재빨리 다가가 다시 한번 마법을 썼다.

도망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전하.”

사울과 흩어졌던 아이나가 달려와 보고했다.

“어떻게 되었나요?”

“두 명 중 한 명은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사로잡았습니다.”

“음.”

중립 지대에서의 피닉스 사냥.

그동안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피닉스의 꼬리를 잡고, 꼬리를 더듬어 가며 머리나 몸통을 잡는다는 계획.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지금 사울 일행이 잡은 포로들이 이를 증명했다.

이번 원정에서 붙잡은 포로는 총 다섯 명이었다.

포로들을 돌아본 사울이 카스텔에게 말했다.

“선생님.”

“알겠습니다.”

마법으로 포로를 제압하여 정보를 모으고, 이후 포로는 루시아 누님에게 보내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이런 일에 익숙해질 만큼 많은 포로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이번에 모은 정보를 종합해 본 뒤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대단한 건 없군.”

중립 지대로 돌아온 지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지난 원정들에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몇 번에 걸쳐 포로를 잡았고, 정보를 모았다.

하지만 새로 얻은 정보도, 또 잡은 녀석들도 하나같이 꼬리에 불과했다.

피닉스의 머리나 몸통은 고사하고 팔다리조차 잡히지 않았다.

아이나가 그런 사울을 위로했다.

“새로운 정보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요.”

꼬리가 끊어져 그마저 잡지 못하는 것보다는, 꼬리라도 계속 더듬어 나가는 게 낫다.

실제로 지금 상황이 그러했다.

머리나 몸통은 못 잡아도 꼬리에 해당하는 것들은 계속 잡고 있다.

하지만 피닉스의 꼬리만 잡는 것도 한계가 있다.

피닉스란 조직의 수뇌부도 생각이 있다면 사울의 행동을 파악했을 것이고, 대응 전략 또한 세울 것이다.

어쩌면 이미 그렇게 움직이고 있을지 모른다.

“가능한 빨리 무언가 성과를 올려야 해요.”

“잘 알고 있습니다.”

“네. 모두들 힘들겠지만, 조금 더 노력해 줘요.”

사울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또 다른 피닉스 조직원을 노렸다.

이번에 목표가 된 것은 일종의 연락책 역할을 한다는 녀석이었다.

그는 신관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신관을 함부로 건드리면 곤란하지 않느냐는 아르멜의 질문에 사울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정보가 확실하다면 빨리 움직일수록 좋겠지.”

율렌 섬에서 빛의 교단이 정치적인 실권을 잃은 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럼에도 빛의 교단은 여전히 섬 주민들의 중심과도 같은 곳이다.

그렇기에 중립 지대가 아니라 왕국령에서도 교단을 함부로 건드리기는 어려웠다.

중립 지대는 더했다.

중립 지대를 다스리는 두 축이 카멜 산과 대신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중립 지대에서 신관을 함부로 건드리는 건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사울은 목표인 신관을 건드려 보기로 했다.

만에 하나 잘못된 정보라면 자신이 직접 대신전에 사죄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아르멜도 사울의 뜻에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전하.”

결정을 내린 사울은 곧바로 목표로 삼은 신관의 납치를 명령했다.

목표인 신관은 한 마을에서 다른 신관들과 봉사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과 다른 신관들의 눈을 속이고, 정체까지 숨긴 채 납치를 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임무였다.

이에 사울은 일행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모두들 이런 일에 경험이 적지 않았기에, 계획을 짜는 데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성공했다.

치밀한 계획 끝에 카스텔이 직접 목표를 납치해 왔다.

“읍읍읍!”

꽁꽁 묶이고 재갈이 물려진 가운데 사울 앞에 끌려 온 신관은 무척 당혹스러워했다.

지금 당혹스러워하는 모습만 보면, 이자가 피닉스와 관련이 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먼저 신관의 재갈을 벗겨 주었다.

언어의 자유를 되찾은 신관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울의 존재를 뒤늦게 알아챘다.

“사울 왕자……!”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신관의 모습에 사울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중립 지대의 신관이 자신을 알아보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대신전에서 꽤 오래 머무르기도 했고, 이런저런 활약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신관은 고귀한 왕자가 자길 납치한 것 때문에 놀란 게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후환을 각오하고 납치를 해 온 보람이 있군.’

사울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빠르겠군.”

“무, 무슨 말입니까, 전하?”

“내가 왜 널 잡아 왔는지 아직도 모르겠나?”

“…….”

신관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눈을 꼭 감고는 뭔가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입안의 독주머니를 찾는 것이라면 소용없다. 네 친구들에게 여러 번 당해 보았지. 그래서 포로를 잡을 땐 입안부터 조사한다.”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잠시, 신관은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대신관님이 돌아가셨다고 함부로 행동하셔도 되는 겁니까?”

“대신관의 이름을 팔지 마라. 그분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넌 그분의 이름을 더럽혔으니까.”

“대체 무슨…….”

“시간 낭비 하고 싶지는 않다, 선생님.”

카스텔이 나서 신관의 정신을 제압했다.

이번에는 저항이 다소 거셌지만, 그래도 카스텔의 힘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결국 저항에 실패하고 넋 나간 표정이 된 신관에게 사울은 지금까지와 비슷한 질문들을 던졌다.

“넌 피닉스의 조직원인가?

“그렇습니다.”

“피닉스에 대해 아는 것을 모두 말하라.”

“그것이…….”

지금까지와 대동소이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종족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 운운하는 고결한 개소리들.

혹시나 개소리 속에 지금까지 알아낸 것과 다른 정보가 나올까 봐 처음부터 꼼꼼히 들었지만, 크게 다른 건 없었다.

‘또 실패인가.’

한참 장황설을 들은 사울은 한숨을 내쉬며 질문을 바꿨다.

“너는 무슨 임무를 맡았지?”

“연락책입니다.”

“다른 조직원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 다른 조직원 중에서 대단한 녀석이 있을까.

사울은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어쨌든 물었다.

“너와 연락을 주고받는 자들은 누구누구지?”

“케이타, 마고스, 유리엘…….”

하나같이 처음 듣는 이름들.

인간 기준으로 낯설게 들리는 것을 보니 거의 다 이종족인 모양이었다.

열 명 남짓한 이름이 불리고, 마지막으로 신관은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로터스.”

그 이름을 들은 사울의 눈이 커졌다.

“로터스… 라고?”

“그렇습니다.”

“로터스 베르카스?”

“그렇습니다.”

듣고 있던 아르멜이 물었다.

“전하, 아시는 자입니까?”

“그래.”

사울은 자신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간신히 냉정을 되찾았다.

설마 이 자리에서 그 이름을 들을 줄이야.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지만, 아르멜도, 다른 사람들도 사울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일단 사울은 상황을 수습하기로 했다.

“예전에 우연히 알게 된 이름이야.”

“저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만… 대체 그자가 누구입니까?”

“가멜다 왕국의 귀족이지.”

그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 되었다.

“가멜다 왕국 귀족이 피닉스와 한패라는 말씀이십니까?”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렇겠지.”

생각 같아서는 당장 ‘로터스 베르카스’에 대한 모든 것을 캐묻고 싶다.

하지만 사울은 일단 침착하기로 했다.

항상 냉철한 모습을 보여 준 자신이 아닌가.

아무리 그 이름을 들었다 해도, 감정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진짜 목적’이 드러나서는 더더욱 안 되고 말이다.

재빨리 생각을 정리한 사울이 말했다.

“로터스라는 자가 피닉스와 관련이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에요. 그는 가멜다 왕국의 귀족이니까.”

사울의 말에 카스텔이 물었다.

“전하께서는 가멜다 왕국이 피닉스와 관련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왕국 전체는 몰라도, 왕국 일부가 피닉스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니까요. 혹시나 그것을 밝혀낸다면 피닉스의 뿌리를 뽑는 건 물론,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카스텔도, 다른 일행도 수긍했다.

피닉스는 어둠의 세력과 관련이 있는 조직이다.

그런 피닉스가 가멜다 왕국과 관련이 있다면, 언제 터질지 모를 전쟁에서 다르센 왕국이 큰 명분을 쥘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삼백 년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

모두들 수긍하는 가운데 사울은 생각했다.

‘설마 로터스, 그 개자식과 이렇게 연이 닿을 줄이야…….’

* * *

다르센 왕국의 왕자 사울이 아닌, 가멜다 왕국의 몰락 귀족 출신 장교 롤랜드로 살았던 전생.

어느덧 20년 가까이 흘렀지만, 사울에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롤랜드는 한미한 가문 탓에 능력만큼 출세하지 못했다.

가문이고 뭐고 다 부숴 버릴 만큼 뛰어난 능력자였다면 모를까,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롤랜드처럼 적당히 유능하지만 가문의 영향력은 전무한 몰락 귀족이 출세하려면 후견인의 존재는 꼭 필요했다.

이에 롤랜드도 후견인을 찾았다.

바로 로터스 베르카스 남작이었다.

남작이라는 신분에서 알 수 있듯, 로터스도 대단한 고위 귀족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작, 백작, 심지어 그 이상의 신분을 가진 고위 귀족들과도 인맥이 있었다.

롤랜드의 능력을 알고 먼저 접근한 것도 로터스였다.

로터스는 롤랜드에게 당장 후견인이 되어 주는 것은 물론, 자신의 뒤를 봐주는 더 높은 귀족들에게도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롤랜드는 로터스를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이용당할지언정, 자신 역시 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를 후견인으로 받아들였다.

문제는 롤랜드 쪽이 로터스에게 거의 일방적으로 이용당했다는 점이었다.

로터스는 롤랜드가 세운 공은 가로챘다.

뿐만 아니라 롤랜드가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기자 그 책임을 물어 그를 험한 전장으로 내몰았다.

그곳이 바로 롤랜드의 무덤이 된 볼페르트 요새였다.

따지고 보면 로터스는 롤랜드를 죽인 데 누구보다 큰 책임이 있었다.

롤랜드의 죽음으로 그의 가문까지 완전히 멸망한 것을 생각하면, 로터스는 가문의 원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롤랜드…….”

모처럼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 사울은 자신의 전생 이름을 읊조렸다.

그리고 자신의 전생을 망친 그놈의 이름도 읊었다.

“로터스…….”

로터스 놈이 살아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가멜다 왕국의 거물 귀족, 안소니 맥캘런 백작의 술수에 넘어가 세력을 잃은 이후 사실상 은둔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분명 로터스 그놈은 안소니 맥캘런 백작과 친했어. 과거의 나에게도 백작과의 친분을 자랑하기도 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백작과 다투다 패했고, 사실상 정계에서 추방되다시피 했다지. 그리고 과거 내 영지와 재산은 모두 안소니 맥캘런 백작에게 넘어갔고…….’

사울은 로터스와 안소니 백작과의 관계도 의심했다.

어쩌면 전생의 자신을 장기짝으로 이용한 것도, 그리고 냉혹하게 버린 것도 로터스가 아닌 한때 그의 뒤를 봐주던 안소니의 짓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건, 로터스가 사울의 전생인 롤랜드의 삶을 망치고 나아가 그의 가문까지 망친 것에 큰 책임이 있다는 것.

그렇게 롤랜드가 허망하게 죽은 뒤 어머니는 병들어 죽고, 여동생은 비탄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들었다.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

그래서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한 로터스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놈을 죽여 버려야… 아니, 그냥 죽일 수는 없지. 고통을 맛보여 줘야지.”

사울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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