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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44화 (144/232)

144화

조직을 배신한 대가가 죽음이라면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울은 누구든 순순히 입을 연다면, 그의 목숨을 지켜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사울의 호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가 싶더니, 한 엘프가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인간 놈.”

“내가 멍청하다고?”

“그렇다!”

“어째서 내가 멍청하다는 거지? 나는 승리했는데 말이야.”

“한때의 승리에 취해 있거라. 멍청한 인간 왕자 놈아. 결국엔 피닉스가 모든 것을 가져갈 테니!”

사울은 엘프의 욕설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포로들의 태도가 신경 쓰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포로들은 피닉스라는 조직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다.

그만큼 피닉스가 막강한 힘을 가졌거나,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있다는 뜻이다.

사로잡힌 포로 누구도 그 믿음을 배신할 기미가 없다.

그렇다면…….

“과격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군.”

사울이 카스텔에게 눈짓을 했다.

사울의 무언의 명령에 카스텔은 곧장 마법으로 포로들의 정신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강제로 정신을 제압당하는 고통에 포로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모두들 순순히 제압당하지 않고 저항했지만, 카스텔의 힘은 그보다 더 강했다.

포로들이 하나둘 굴복했고, 마침내 모든 포로들이 정신을 제압당한 사람 특유의 멍한 표정이 되었다.

“끝났습니다.”

사울은 다시 한번 포로들과 대화를 시작했다.

“너희들은 피닉스인가?”

“…그렇다.”

존대하지는 않을지언정, 모두들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된 모양이었다.

사울은 본격적으로 심문을 시작했다.

“너희들은 왜 코볼트를 공격했나?”

“그들을 꼭두각시로 삼기 위함이었다.”

“코볼트 부족을 장악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려 했지?”

“처음에는 코볼트 부족을 이용하여 중립 지대나 그 주변에서 영역을 늘릴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왜 다르센 왕국의 요새를 공격했지?”

“우리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왕국에서 우리들의 낌새를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 왕국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전에 코볼트의 전력을 이용해 요새를 쓸어버린 뒤 성공하면 우리가 확보한 코볼트 병력을 데리고 중립 지대에서 새로운 부족을 만들 계획이었다.”

이렇게 코볼트의 수상한 움직임부터 제르넬 요새 공격까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그렇게 된 것이었군. 쿠루굴 족장에게도 들려줘야겠어. 그럼 지금부터 너희들의 조직에 대해 묻겠다.”

“…….”

“피닉스는 무엇을 위한 조직이지?”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평화라고?”

사울은 터져 나오려는 코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너희들이 한 짓들은 평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만?”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좋아. 그럼 너희들이 말하는 평화라는 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이종족과 인간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

사울은 또 한 번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정신이 완전히 제압당한 이들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다.

이것들은 진심으로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이종족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

고결한 이상이다.

이들이 정상적인 놈들이었다면, 사울도 그 이상을 마냥 부정하거나 비웃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종족과 인간이 공존하는 평화’ 운운하는 놈들이 킬리안이나 어둠의 세력과 손을 잡고 온갖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뜻은 높고, 하는 짓은 엉망진창인 녀석들이군.”

사울의 비꼼에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인간과 이종족의 공존’에 관심이 많을 아이나마저 말이다.

“그럼 너희들의 수장은 누구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건가?”

“그렇다. 그저 ‘사도님’ 이라 불린다는 것 외엔.”

“사도라…….”

조직 우두머리의 호칭 따윈 큰 의미가 없다.

사울은 계속 질문을 던졌지만, 끝내 ‘사도’라 불리는 조직 우두머리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했다.

나아가 조직의 고위 간부에 대한 정보도 전혀 알아내지 못했다.

실제로 아는 게 없기 때문이었다.

한참 조직원들에게 질문을 한 사울은 고개를 저었다.

“기껏 포로를 잡았는데 소득이 적군.”

아르멜이 말했다.

“이들은 정말 아는 게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아. 일단 누님께 보내 볼까 해.”

“그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왕녀 전하라도 모르는 걸 알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렇겠지. 결국 알아낸 건 두 가지뿐인가.”

한 가지는 피닉스라는 조직이 이종족과 인간의 평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

또 하나는…….

“역시 중립 지대인가.”

피닉스 조직원들은 자신들의 접선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중립 지대에 위치한 ‘은빛 들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접선 지역이 어디이며, 어떻게 상대를 불러내는지에 대해서도 밝혔다.

지금 얻은 가장 큰 정보였다.

“누님에게 넘기기 전에 한두 번 더 심문해 볼 테니 잘 감시하도록.”

“네, 전하.”

* * *

심문을 마친 사울은 조나단을 찾았다.

때마침 조나단은 승전보를 작성하고 있었다.

“오, 사울. 잘 왔다. 한번 읽어 보거라.”

조나단은 거의 작성이 끝난 승전보를 보여 주었다.

읽어 보니 내용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조나단이 세운 전공이 다소 과장되고 더 돋보이게 작성했지만 사울의 전공을 폄하하거나 생략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승전보만 보고 이번 일을 평가하면 조나단 쪽의 공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각오한 일이다.

한 번은 양보를 할 생각이었으니까.

“네, 이대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알겠다. 이제 아바마마나 형님들도 우릴 좀 달리 볼 게다.”

“그러시겠지요. 그리고 형님, 그 피닉스 조직원들을 심문해 보았습니다.”

“뭐 쓸 만한 정보라도 있더냐?”

사울은 피닉스 조직원들에게 들은 정보를 대충 들려주었다.

다 들은 조나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과 이종족의 평화로운 공존?”

“네. 그들의 목표가 그것이랍니다.”

“웃기는 놈들이군. 악마 토끼풀 파는 놈이랑 손잡은 주제에.”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래, 앞으로는 어쩔 생각이냐?”

“누님께서는 제가 적극적으로 피닉스를 쫓길 원하시더군요.”

사실은 본인의 뜻이 더 강했지만, 사울은 일부러 누님을 앞세웠고, 효과는 확실했다.

조나단은 누님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꼬리를 내렸다.

“누님이? 으음, 그럼 할 수 없군.”

“형님께서는 제가 요새에 좀 더 남아 있길 바라시나요?”

“아직 이래저래 할 일이 남았으니 말이다.”

“저도 형님을 좀 더 돕고 싶습니다. 하지만 요새 일이 거의 끝난 건 사실이고, 또 누님 명령을 거부하기는 좀…….”

사울은 말끝을 흐렸고, 조나단도 굳이 말을 더 하지 않았다.

“알았다. 누님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 * *

적절하게 누님 이름을 판 덕분에 사울은 조나단과의 관계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후 사울은 몇 차례 더 피닉스 조직원을 심문했다.

대단한 정보는 없었지만, 그래도 세세한 정보도 빠짐없이 수집한 뒤 포로들은 루시아에게 보냈다.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루시아가 알아서 할 것이다.

할 일을 마친 사울, 그리고 조나단은 제르넬 요새로 돌아갔다.

쿠루굴 역시 요새로 함께 돌아왔고, 사울 및 조나단과 회담을 가졌다.

“다시 한번 두 분께 감사하오.”

쿠루굴의 인사에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래. 약속한 땅으로는 언제 갈 건가?”

“부족민들이 수습되는 대로 움직이겠소.”

“한 달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늦어도 한 달 뒤에는 모두 떠나야 할 거다.”

“명심하겠소. 그리고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소.”

“무엇이지?”

“일부 전사들이 죽은 자신들의 족장이나 가족들의 원수를 갚고 싶다고 하오.”

코볼트가 말하는 원수는 피닉스다.

요새를 지켜야 할 조나단이 아닌, 피닉스를 쫓을 사울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말이기도 했다.

“형님이 허락하신다면 나는 상관없어요.”

사울의 말에 조나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떠나고 싶지 않아 하는 녀석들이 얼마나 되지?”

“스무 명 정도요.”

“그 정도면 상관없겠지. 그렇지 않느냐, 사울?”

“네. 형님. 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건 쉽지 않을 거예요. 중립 지대에서 많이 움직여야 하고, 또 싸워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생명이나 안위는 보장할 수 없어요.”

“물론이오. 남은 자들의 목숨은 두 왕자님께 맡기겠소.”

복수심에 불타는 코볼트 전사들이라면 꽤 유용한 전력이 될 수도 있다.

코볼트는 지능이 다소 낮지만, 민첩하고 강인한 종족이다.

전장에서는 인간보다 약할지 모르나 야생 환경에서는 인간보다도 강할 수 있다.

미개척지가 널린 중립 지대에서 코볼트 아군이 있다면, 나아가 그들과 기민하게 연결되어 움직일 수 있다면…….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쿠루굴에게 제안했다.

“그대는 피닉스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나요?”

사울의 질문에 쿠루굴의 눈이 번득였다.

“왜 없겠소. 하지만 난 족장으로서 부족의 안위를 지켜야 하오. 본래 우리 부족이었던 자들은 물론, 다른 부족의 안위까지 말이오.”

“그렇겠지요. 하지만 복수는 고귀한 것. 족장의 복수와 정의를 함께 실현할 방법이 있다면요?”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이오?”

“그대도 알다시피 이제 다르센 왕국과 피닉스는 완벽한 적대 관계가 되었어요. 그리고 난 지금부터 피닉스를 상대할 거예요. 그대가 날 도우면 피닉스를 보다 빨리 무너뜨릴 수 있을 테고, 코볼트 부족을 농락한 그들에게 정의를 보여 줄 수 있을 거예요.”

사울의 말뜻을 깨달은 쿠루굴은 생각에 잠겼다.

부족의 안위만 생각한다면 이번 일은 잊고 얌전히 피난지로 떠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대로 머나먼 피난지로 떠나는 건 복수는 포기한다는 뜻이다.

사울은 쿠루굴이 무어라 대답할지 예상했다.

자신만큼은 아니겠지만 쿠루굴 역시 복수심을 품고 있다.

복수를 할 기회가 있다면, 잡지 않을 이유가 없다.

누군가 이종족의 복수심을 이용하려 하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아니, 이용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사울은 쿠루굴이 생각대로 움직여 준다면 복수의 기회는 줄 생각이었다.

어차피 피닉스는 자신에게도 적이니까.

“알겠소.”

예상대로의 대답에 사울은 미소를 지었다.

“현명한 결정이에요.”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지금은 족장이 직접 이곳에 머무르긴 어렵지요.”

“그렇소.”

“그럼 일단은 족장이 말한 대로 전사들을 남겨 두세요. 그들과 족장, 그리고 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이어 나간다면 언젠가 족장이 직접 복수를 할 날이 올 테니.”

쿠루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소.”

사울은 그런 쿠루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우린 이제부터 동지로군요.”

쿠루굴은 ‘동지’의 손을 외면하지 않았다.

* * *

쿠루굴을 끌어들인 사울은 다음 날 제르넬 요새를 떠났다.

목적지는 중립 지대.

그동안 머무르던 대신전이 아닌, 중립 지대에 위치한 다르센 왕국의 외교 공관으로 향했다.

사울이 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외교관들이 사울을 맞이했다.

“어서오십시오, 전하.”

중립 지대의 외교 공관을 본 사울의 첫 감상은 이랬다.

‘말은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허름하군.’

말이 외교 공관이지, 오두막을 간신히 벗어난 수준의 건물 몇 개가 놓인 것이 전부였다.

가멜다 왕국의 외교 공관도 이 수준이라던가.

그나마 사울은 제대로 된 집에서 머무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천막을 치고 지내야 할 판이었다.

외교관도 황송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보시다시피 워낙 척박한 환경이라…….”

“괜찮아요. 이 척박한 중립 지대에서 나라를 위해 힘쓰느라 모두들 고생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이제는 왕자가 머무를 법한 호화로운 숙소보다 검소한 숙소 쪽이 더 익숙한 느낌이었다.

사울은 불만 없이 자신의 숙소에 짐을 푼 뒤 곧바로 일을 시작했다.

“전하, 말씀하셨던 자료들입니다.”

외교관이 서류 한 무더기를 놓고 갔다.

최근 중립 지대의 정세에 대한 정보들을 담은 서류였다.

서류를 슥 훑어본 사울은 생각했다.

‘다들 놀고 있지는 않군.’

중립 지대에 대한 정보들이 양으로나, 질로나 꽤나 풍부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울은 정보들을 꼼꼼히 검토한 뒤 자신이 아는 정보와 비교해 보았다.

중립 지대에서 피닉스를 쫓는 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결과를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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