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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35화 (135/232)

135화

이 말을 들은 매버릭이 조나단에게 귓속말을 했다.

근처에 있던 사울도 매버릭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인 조나단이 입을 열었다.

매버릭이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 같았다.

“너희 부족들은 피닉스라는 놈들에게 공격을 받지 않았는가? 그런데 족장이라는 자가 날 만날 수 있다고?”

“인질로 붙잡힌 족장님도 있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족장님도 있소. 왕자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 무사한 족장님이오.”

“그렇군. 만난다면 어떻게 만날 셈이냐?”

“우리들이 정한 장소에 우두머리를 초대하고 싶소.”

사절의 말에 조나단이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협상 장소를 정하는 건 싸움에 이긴 쪽이다.

그런데 싸움에 진 쪽 그것도 일개 족장이 왕자를 부르겠다니.

카멜 산의 대족장이라면 모를까, 어디서 굴러먹은지도 모를 코볼트 족장 따위가 할 말은 아니었다.

조나단이 화가 난 것을 안 사울이 조언했다.

“형님, 좀 더 알아보시지요. 저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을지 모릅니다.”

“알았다.”

조나단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이곤 사절에게 물었다.

“전투에서 이긴 건 난데, 내가 왜 너희 족장의 말을 들어야 하지?”

“물론 이긴 건 왕자님이오. 하지만 우리 족장님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소.”

“어째서?”

“피닉스는 우리 부족과 족장님도 감시하고 있소.”

거기까지 들은 매버릭이 다시 조나단에게 조언했다.

조나단은 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설마 네놈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리의 힘을 빌리고 싶다는 말이냐?”

“…그건 족장님이 말씀하실 거요. 싸움에 진 건 우리요. 그러니 누구든 우리 족장님을 만나러 와 준다면 손님으로서 정중히 대접하며 협상을 하겠소.”

“그 장소가 어딘가?”

“핏빛 드래곤 바위요. 바위 앞에 자그마한 평원이 있소.”

핏빛 드래곤 바위.

사울도 들어 본 적 있는 곳이었다.

황폐한 땅 위에 있는 커다란 붉은 바위가 마치 드래곤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지역은 코볼트의 영역이 아니야. 또한 이번에 형님의 군대가 돌아본 지역이기도 하고. 하지만 요새에서 떨어져 있으니 흉계를 꾸미려면 못 꾸밀 곳도 없는 곳이야. 그럼 어떡한다…….’

사울은 어떻게 조언을 해야 할지 심사숙고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조나단이 말했다.

“좋다. 우리 쪽에서 사절을 보내지.”

“고맙소.”

“이왕 온 것이니 하루 정도는 쉬어 가도 좋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족장님이 하루빨리 돌아오라 하셨소. 그럼 안녕하 계시오.”

사절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나갔다.

“…….”

조언할 기회를 놓친 사울은 매버릭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가 몰래 조언이나 눈치를 보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매버릭 역시 무언가 마뜩잖은 표정이었으니까.

결국 사울도, 매버릭도 신중히 생각하는 가운데 조나단이 마음대로 결정하고 일을 마무리 지은 모양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형님 마음대로 결정해 버리다니.’

사울은 조나단의 결단이 나쁘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저쪽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손을 내밀었다면 일단은 잡아 주는 게 유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차피 시간은 이쪽의 편인데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지 않았을까.

사울은 마뜩잖은 표정을 짓고 있는 매버릭을 동정했다.

‘저런 형님의 조언자 노릇을 계속하려면 고생이 많겠군.’

어쨌든 이미 결정된 사안이다.

왕자의 입으로 말한 것을 뒤집으라 할 수는 없다.

사절이 물러가고, 사울은 조나단에게 말했다.

“그들과의 협상을 결정하셨군요.”

“그렇다. 미개한 놈들이지만 한번 이야기는 들어 볼 가치가 있겠지.”

“형님이 뜻이 그렇다면 저도 찬성이에요.”

“다행이군. 매버릭, 네 뜻은 어떠하냐?”

매버릭은 언제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냐는 듯, 충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하의 뜻이 옳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너희들이 날 도와야겠다.”

“네, 전하.”

“네, 형님.”

조나단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겠어.”

사울이 물었다.

“형님, 설마… 직접 코볼트를 만나러 가실 겁니까?”

“그럴 생각이다.”

왕자의 몸으로 코볼트 족장이 지정한 장소에서 코볼트 족장을 만난다.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며칠 전 그 코볼트와 전쟁을 벌였음을 고려하면 더더욱.

변방의 코볼트 부족이 왕자에게 해코지를 하려 들면 그것만으로도 ‘코볼트 부족 멸족령’이 내려질 일이다.

코볼트 부족장이 제정신이라면 왕자를 직접 손대려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피닉스의 명령을 받고 왕자가 지키는 요새를 공격하지 않았는가.

사실 사울은 협상 자리에 자신이 나갈 생각이었다.

경험도 있으니 단단히 대비하고 간다면 저쪽에서 무슨 흉계를 꾸며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조나단이 함께 간다면?

그만큼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변수 역시 커질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조나단은 자신만만했다.

스스로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이리라.

어차피 조나단을 도와주기로 했다.

동시에 그를 도움으로써 사울도 얻을 만한 게 많았다.

그렇게 열심히 쫓았음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피닉스’의 꼬리를 이번에야말로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사울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 *

코볼트 족장과 만나기로 한 핏빛 드래곤 바위는 평상시에는 크게 위험한 곳은 아니었다.

인간도, 이종족도, 몬스터도 멀리하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기 때문이었다.

조나단과 사울, 그리고 그들의 부하들이 핏빛 드래곤 바위로 출발했다.

“전하, 늦어도 이틀 안에는 돌아가셔야 합니다.”

매버릭의 말에 조나단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시간을 길게 끌 것도 없다. 상대는 고작 코볼트 족장이니까.”

진심인지, 허세인지 조나단은 아주 자신만만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사울은 차라리 허세인 쪽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허세를 부리면서도 실제로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게 없었으니까.

그것이 아닌 것 같다는 게 불안할 뿐.

조나단의 신변에, 그리고 자신의 신변에 문제가 없다면 무슨 일이든 수습할 수 있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수습하기 어렵다.

사울은 카스텔에게 당부했다.

“선생님, 요새로 돌아갈 때까지 형님의 신변 안전에 특별히 신경을 써 주세요.”

“네, 전하.”

그렇게 조나단 일행은 자신감과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목적지로 움직였다.

떠나기 전 사전 조사는 마쳤다.

며칠 사이 요새에 쳐들어올 만한 세력은 없었고, 핏빛 드래곤 바위 근처에 매복 병력 같은 것도 없다고 했다.

코볼트 족장이 제때에 나타난다면, 그리고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별문제 없을 것이다.

“저기가 핏빛 드래곤 바위로군.”

조나단의 손가락이 가리킨 끝에 검붉은 바위가 보였다.

붉은색보다는 검은색에 가까운 바위는 멀리서 보니 정말 검붉은 드래곤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은 것처럼 보였다.

약속 장소는 핏빛 드래곤 바위 근처의 자그마한 평원이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약속 시간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도착한 것 같았다.

사울은 카스텔에게 물었다.

“무언가 느껴지는 게 있나요?”

“네, 전하. 희미한 마나가 느껴집니다.”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약속 장소에 있는 누군가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약속 장소와는 꽤 먼 거리다.

이 거리에서 카스텔이 무언가를 느꼈다면, 꽤 강한 마나를 가진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사울은 조나단에게 카스텔이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냐? 별일은 없겠지만, 주의하도록 하지.”

다행히 조나단은 말귀를 알아들었다.

최소한 자기 죽을 줄 모르고 날뛰는 형님을 말리기 위해 애쓰는 동생이 될 필요는 없을 듯했다.

약속 장소가 점점 가까워졌다.

이미 몇몇 무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사울은 마법으로 시력을 높였다.

크고 작은 덩치의 코볼트 무리가 모인 게 보였다.

개중 유독 덩치가 크고, 또 잘 차려입은 코볼트가 보였다.

사울 본인도 느끼기 시작한 희미한 마나의 기운도 저 코볼트에게서 나오는 듯했다.

책에 따르면 코볼트 사회는 철저히 힘에 따라 지위 고하가 가려진다고 했다.

약자라고 마냥 짓밟히는 건 아니지만, 전투에 강할수록 높은 지위에 오른다고 했다.

저들 중 가장 강해 보이는 저 코볼트가 아마 족장일 것이다.

“족장이 온 것 같군요.”

“나도 느꼈다. 가장 강한 놈이 족장이겠지.”

조나단 일행을 본 코볼트 한 마리가 뛰어왔다.

가볍게 무장을 했지만, 별다른 적의는 없어 보였다.

가까이서 보니 요새에 사절로 왔던 그 코볼트였다.

“어서 오십시오.”

코볼트는 조나단의 정체를 알고 있을 것임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멍청한 것인지, 대범한 것인지 모를 행동에 조나단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코볼트 족장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

“그렇소.”

“이야기는 어떻게 하지? 그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

“저와 족장님은 인간의 말을 할 줄 아오.”

“그럼 문제는 없겠군.”

곧 조나단 일행과 코볼트 족장 무리가 만났다.

조나단 일행도, 코볼트 무리도 모두 무장을 한 상태였지만, 당장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그렇지만 긴장 어린 분위기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마중 나갔던 코볼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코볼트 족장이 다가왔다.

코볼트 족장은 조나단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반갑소, 인간 왕자.”

족장의 말투는 어눌했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말투보다 행동이었다.

족장 쪽에서 먼저 고개를 숙였지만, 왕자 기준에서 보면 제대로 예절을 갖추었다 하기 어려웠으니까.

조나단 곁에 있던 사울은 형이 불편해하는 기색을 느꼈다.

“반갑다. 그럼 이야기를 해 볼까.”

“먼저 저희의 초대에 응한 것에 감사를 표하오.”

“나도 그쪽에서 약속을 지킨 것에 감사를 표하지.”

조나단도 명색이 왕자라 이런 자리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이 자리는 타 종족과 협상을 진행하는 자리다.

사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막무가내로 행동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너희들은 내가 직접 올 줄은 몰랐겠지.”

“그렇소.”

“나 조나단 다리우스, 그리고 내 동생 사울도 너희를 만나러 왔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나?”

“이 만남을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오?”

“그렇다. 그러니 우리를 만족시킬 수 있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할 거다.”

“최선을 다하겠소.”

코볼트 족장의 말투는 어눌하고, 또 딱딱했다.

하지만 인간보다 멍청하다는 코볼트에 대한 편견을 부술 만큼 지성도 느껴졌다.

“지금 우리 동족들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소. 일곱 개의 부족이 놈들의 공격을 받았고, 다섯 명의 족장이 놈들에게 인질로 붙잡혔소. 또한 내 동생도 인질이 된 상태요.”

“그래서 그 피닉스라는 놈들의 명령을 받고 내가 지키고 있는 요새를 공격했나?”

“어쩔 수 없었소.”

“그 공격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해 봐라. 너희들의 뜻이 아니라면 그 피닉스라는 놈들은 대체 왜 우리 요새를 공격한 것이지?”

코볼트 족장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없소. 단지 짐작하는 게 있을 뿐.”

“짐작이라도 말해 봐라.”

“나는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 세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소. 당신들이 속한 왕국이 있고, 당신들이 적대하는 왕국도 하나 있지. 그리고 우리가 성을 공격하는 건 당신들의 적국을 이롭게 하는 일이었을 테고.”

“그 피닉스라는 놈들이 우리 적국인 가멜다 왕국을 이롭게 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는 말인가?”

“나로서는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소.”

조나단 곁에서 이야기를 들고 있던 사울이 말했다.

“피닉스에 대해서는 제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라.”

“네, 형님. 여봐라, 코볼트 족장.”

“말씀하시오.”

“피닉스에 속한 자들의 이름을 듣거나, 얼굴을 보거나 아니면 그들이 어떤 종족이었는지 아는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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