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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31화 (131/232)

131화

시간이 흘렀다.

조나단이 떠난 당일, 그리고 그 다음 날까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틀째 되던 날.

“전하!”

잠자리에 들었던 사울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직 해가 뜨기는커녕, 먼동이 터오르지도 않았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울을 깨울 이유가 없다.

무언가 일이 생긴 것을 안 사울은 옷을 고쳐 입을 새도 없이 보고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적입니다!”

“코볼트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

보고를 들으니 벌써 공격해 오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사울은 전투 준비를 한 뒤 나갔다.

이미 요새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카스텔과 아이나, 아르멜은 물론 기존 요새를 지키던 장교도 여럿 몰려왔다.

“전하, 멀지 않은 곳에서 코볼트 무리가 관찰되었습니다.”

“놈들이 요새를 공격할 것으로 보이나?”

“그런 것 같습니다.”

“놈들 병력은?”

“천 마리도 넘어 보입니다.”

현재 이 요새에 머무는 병력은 500명도 안 된다.

물론 요새를 끼고 있으니 전력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예상 밖으로 적의 머릿수가 많다는 점이었다.

중립 지대라면 모를까, 엄연히 왕국령에 속하는 이 지역에 천 마리의 코볼트 무리가 요새를 공격할 동안 왕국군은 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왕국군이 눈뜬장님이 아니라면 적 누군가 뛰어난 전략과 통솔력을 발휘하여 이 상황을 만들었다는 뜻이다.

‘쉽지 않은 전투가 될 수도 있겠어.’

사울은 명령을 내렸다.

“어쨌든 요새를 사수한다! 전투를 준비하라!”

“네, 전하!”

* * *

사울의 명령에 제리넬 요새 전체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조나단이 있을 때부터 열심히 관리한 덕분에 요새 전체가 순식간에 전투태세를 갖추고 방위전을 준비할 수 있었다.

요새 전체가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사울은 전망대로 올라가 적들이 몰려오는 쪽을 살폈다.

멀리 한 무리의 병력이 요새로 짓쳐들어오는 광경이 보였다.

사울은 마법으로 시력을 높여 적들의 상황을 세세히 살폈다.

‘확실히 천 마리도 넘어 보이는군. 병력의 질도 어느 정도 갖춰진 것 같고.’

병력 숫자는 저쪽이 두 배 많으며 질로도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코볼트 측에서 요새가 허술해지기를 기다려 전력을 다해 짓쳐들어온 게 분명했다.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는 코볼트 주제에 그 정도로 머리를 쓸 수 있는 녀석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혹은 코볼트가 직접 머리를 쓴 게 아니라, 머리를 잘 쓰는 누군가가 도와주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적들은 단단히 준비하고 쳐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그에 맞춰 대응해야 했다.

“전하, 전투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았다.”

보고를 받은 사울은 적들을 관찰하며 생각을 정리한 것을 말했다.

“적들의 머릿수는 우리의 두 배에 달한다. 그리고 지금 살펴보니 병력의 질도 낮지 않은 것 같고, 수준이 높지는 않지만 공성 병기까지 갖춘 것으로 보인다.”

사울의 말에 요새 장교가 놀라 물었다.

“공성 병기까지 말입니까?”

“그렇다. 놈들이 단단히 준비를 한 모양이다.”

“하지만… 코볼트 따위가 어떻게?”

“나도 그것이 궁금하지만 의문을 푸는 건 적들을 물리친 뒤에 해도 늦지 않지.”

“옳으신 말씀입니다.”

사울은 요새 측의 장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적들이 미개하다고 우습게 봐서는 안 된다. 일단은 방비를 철저히 하며 놈들의 전력을 파악하고, 그다음 놈들을 박살 낸다.”

“요새 안에서 농성을 하는 겁니까?”

“아직 놈들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그러니 적들의 전력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농성을 통해 아군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제르넬 요새는 결코 작거나 허술한 곳이 아니다.

천 명 정도의 병력이 오래 머무를 수 있을 만큼 규모도 상당했고, 성벽도 높고 튼튼했다.

평지에 위치해 있어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서 장기전을 벌이면 꼼짝없이 굶어 죽을 수 있다는 단점도 있지만, 지금 전황이 거기까지 갈 가능성은 없다.

기사단을 이끌고 떠난 조나단이 오래잖아 돌아올 테니까.

사울의 의견에 반대는 없었다.

곧 요새 전체가 사울의 명령에 따라 농성 태세에 돌입했다.

상황을 확인한 사울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말했다.

“다른 곳보다 남쪽 요새가 신경 쓰여요.”

아이나가 물었다.

“남쪽이라면… 방비가 가장 허술한 곳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사울이 보기에 제르넬 요새의 동, 서, 북쪽의 방비는 꽤 견고했다.

병력은 부족하지만 며칠 농성하는 데는 크게 부족한 게 없었다.

하지만 남쪽은 구조상으로도 다소 취약해 보였고 성벽이 불안한 곳도 있었다.

그렇잖아도 적은 병력이다.

요새 한쪽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한쪽에 편중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 사울은 한 명만 보내기로 했다.

“선생님, 남쪽을 부탁해요.”

사울의 말에 카스텔이 물었다.

“전하께서는 다른 곳에 계실 겁니까?”

“나는 두 번째로 취약해 보이는 서쪽을 맡을 생각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날 돕도록 할 테니 선생님은 남쪽에서 마음껏 날뛰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사울이 자신과 떨어진다는 게 걱정이 된 모양이었지만, 어쨌든 카스텔은 수긍했다.

그렇게 현재 제르넬 요새의 최강자가 취약 지점인 남쪽 요새에 있게 되었다.

사울은 다른 사람들과 서쪽으로 향했다.

요새 서쪽은 코볼트 무리가 몰려온 쪽이기도 했다.

사울이 도착하니 코볼트 무리 역시 점점 다가오는 게 보였다.

다시금 마법으로 적들을 관찰한 사울이 중얼거렸다.

“진형도 그럴듯하게 갖추었고, 병기들도 제법 갖추었어. 마구잡이로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공성전을 해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군.”

아르멜이 그런 사울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 전투에 무언가 음모가 있다고 보십니까?”

“어쩌면.”

코볼트나 고블린 같은 종족은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지능과 이성, 사회성이 있다.

뛰어난 지휘자가 있다면 단순히 약탈 따위를 하는 것을 넘어 공성전을 걸어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예도 여럿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적들이 이 제르넬 요새를 공격해 온 건 정말 수상했다.

제르넬 요새에 거대한 보물 창고나 코볼트들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무언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이 지역은 어디까지나 군사적 요충지일 뿐, 식량이나 자원이 풍부한 곳도 아니었다.

기존에 터를 잡고 살아오던 코볼트 무리가 제르넬 요새로 인하여 쫓겨났으니 그 원한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수 있을까.

‘가멜다 왕국의 술책이거나 다른 음모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충분해.’

사울의 생각은 결코 지나친 게 아니었다.

아르멜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했으니까.

이 전투가 끝난 뒤 그쪽 역시 제대로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지금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사울은 이번 생에 얻은 지식과 경험은 물론, 전생의 기억까지 총동원하여 준비를 했다.

그 결과는 곧 드러날 것이다.

“전하, 놈들이 몰려옵니다!”

“모두들 자기 위치에서 책임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사울은 코볼트 무리의 공성 병기에 주목했다.

지능이 낮은 놈들이라 인간이나 드워프처럼 크고 정교한 무기를 만들지는 못했다.

커다란 수레 몇 대와 그 위에 실린 거대한 통나무.

조잡하게 만들어진 충차이지만, 무시할 수는 없다.

아마 적들은 충차로 요새의 문을 때려 부수는 전략을 택한 듯했다.

또 사다리도 많이 들고 온 것을 보니 사다리로 성벽을 넘기도 할 모양이다.

기본적으로 공성전은 수비 측에 크게 유리한 전투다.

성문을 부수거나, 성벽을 넘지 않는 한 단기간에 승부를 볼 수는 없었으니까.

따라서 공격 측에서는 공성 병기나 마법을 동원하여 성문 파괴, 혹은 성벽 돌파를 목표로 삼는 게 일반적이었다.

코볼트 군단 입장에서는 저 공성 병기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코볼트 군단이 끌고 온 충차는 열 개도 넘었다.

저것들을 모두 때려 부술 수 있다면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내가 나서서 마법을 쓸 때 잘 부탁해요.”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은 아이나와 아르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그러는 사이 적들도 진형을 갖추었다.

아군의 두 배가 넘는 병력을 이용해 요새를 포위했고, 나름대로 공격 진형도 갖추었다.

창칼을 든 녀석들은 물론 활을 든 코볼트 궁병에 마법사로 보이는 녀석들도 있었다.

“활을 쏠 준비를 해라!”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쏘지 마라!”

각 성벽에 배치된 궁병들이 장교들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활을 겨누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적들이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다.

“전하,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럼 공격하라!”

“네, 공격하라!”

사울의 명령에 요새의 네 방향 에서 일제히 화살이 날아갔다.

날아오는 화살을 본 코볼트 무리도 움직였다.

“@#$%@#%”

자기들의 언어로 지껄이며 몇몇 코볼트가 나섰다.

마법 지팡이를 든 마법사들이었다.

코볼트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 지팡이를 치켜들자 코볼트 부대의 머리 위에 반투명한 방어막이 쳐졌다.

요새에서 날린 화살 중 단 한 발도 마법으로 만들어진 방어막을 뚫지 못했다.

서쪽에 자리를 잡고 그 광경을 본 사울이 중얼거렸다.

“제법이군.”

지금 보건대 마법사 한 마리 한 마리가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여러 코볼트 마법사가 힘을 합쳐 넓은 범위에 걸쳐 방어막을 쳤고, 화살을 효과적으로 막아 냈다.

마구잡이로 끌어모은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훈련이 잘 된 것들이라는 뜻이었다.

‘요새에 있던 마법사는 거의 다 형님이 데려가서 지금 요새 안에 제대로 된 마법사는 나와 카스텔뿐이지. 우리 역할이 막중하겠군.’

사울은 스스로 마법을 준비했다.

마법은 마법으로 상대하는 게 좋다.

한참 주문을 왼 사울이 마법 검을 치켜들며 시동어를 외었다.

“파이어 블래스트!”

파이어 블래스트.

강력한 폭발의 힘이 담긴 불덩어리를 날리는 주문이자, 지금 사울이 쓸 수 있는 마법 중 상위권의 파괴력을 가진 주문이다.

마법 검 끝에서 날아간 거대한 불덩어리가 코볼트 마법사가 친 방어막에 직격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덩어리가 폭발한 가운데, 방어막이 깨져 나갔다.

비록 방어막을 뚫고 아래 적들을 휩쓸어 버리진 못했지만 적들의 방어를 깨는 데는 성공했다.

“다시 쏴라!”

사울이 있던 서쪽의 장교들이 외쳤다.

다시 화살 세례가 쏟아졌고,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꽤액!”

생긴 것은 개를 닮은 것들이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한번 화살 비를 허용한 뒤에야 마법사들이 다시 나서 방어막을 새롭게 쳤다.

그것을 본 사울 역시 다시 마법을 준비했다.

지금 자신이 지속적으로 마법 공격을 퍼붓는 것만으로도, 적 마법사들을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

좀 더 욕심을 부리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이었다.

“…….”

가장 취약 지점인 남쪽에 있던 카스텔도 사울과 비슷한 상황에 봉착했다.

병사들이 화살을 쏘았지만, 적 마법사들이 막았다.

그것을 본 카스텔은 양손을 펼치며 시동어를 외었다.

“마나 스피어.”

마나 스피어.

순수한 마나의 힘으로 창을 소환해 적에게 투척하는 주문.

일반적으로 크게 강한 주문으로 취급받지는 않지만, 시전자가 카스텔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보통 창보다도 훨씬 크고 굵은 마나의 창 여러 개가 허공에 떠올랐다.

카스텔의 손짓에 마나의 창이 적진으로 날아갔다.

창의 절반은 공성 병기를, 나머지 절반은 마법사들을 노렸다.

코볼트들은 날아오는 마나의 창을 막거나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안간힘을 쓰는 것만으로는 막거나 피할 수가 없었다.

“꽤액!”

비명 소리와 함께 공성 병기, 공성 병기를 지키던 병력, 코볼트 마법사까지 죽거나 부서졌다.

한 번의 마법으로 큰 성과를 거둔 카스텔은 곧장 다음 마법을 시전했다.

카스텔의 양손에 검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불이니 물이니 하는 것 대신 마나 그 자체의 힘으로 적을 공격하는 기술.

이것이야 말로 카스텔을 ‘검은 마녀’ 혹은 ‘검은 흉성’으로 악명 떨치게 만든 주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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