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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27화 (127/232)

127화

실베스터와 카리스.

1, 2왕자이자 모두가 인정하는 왕위 계승 후보자들.

아직 아바마마의 의중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둘 중 한 명이 왕위를 계승한다는 게 사실상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었다.

루시아 누님이나 또 다른 왕자, 왕녀가 갑자기 왕위 쟁탈전에 뛰어들지 않는 한은 말이다.

그 상황에서 조나단이 왕위를 노리는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왕위 쟁탈전에서 승리하려면 정통성, 세력, 인망 등이 필요했다.

사울이 그렇듯 조나단 역시 그 어느 쪽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만에 하나 왕위를 꿈꾸고 있다면 그건 망상이다.

조나단이 망상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힘을 합쳐서 실베스터 형님이나 카리스 형님을 돕자는 말인가요?”

“비슷하지만 아니다. 사실 딱히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다. 우리가 뭉치고 또 활약하면 두 형님 분들이 알아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게다. 너는 수도 소식은 잘 모르지?”

“네, 형님.”

“나는 한 달 전까지 왕궁에 있었다. 갈수록 두 형님들의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어. 형님들과 형님 어머니들 가문, 정혼자 가문까지 눈치 싸움이 치열해. 아바마마께서 직접적인 다툼을 허락지 않고 있어 아직 겉보기엔 조용하지만, 무언가 계기만 있다면 본격적인 다툼이 시작될 게다.”

조나단이 말하는 다툼은 군사적인 싸움이 아닌, 정치적인 싸움이다.

아바마마가 건재한 상황에서 왕자 간에 칼부림을 할 수는 없고, 실베스터나 카리스나 극단적인 수단을 쓸 만큼 사정이 급하지는 않았으니까.

정치 싸움에서는 무엇보다도 세력이 중요하다.

군사적인 싸움이라면 절묘한 계책으로 세력의 차이를 뒤집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 싸움은 그것도 어렵다.

그렇기에 적지 않은 공을 세운 왕자들이 실베스터나 카리스 편에 선다면 그것만으로도 저울추가 기울 수 있다.

어차피 사울이나 조나단이나 지금으로서는 직접 왕위를 노리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차기 왕위를 결정지을 열쇠가 되자.

그리고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꾸준히 영광을 누리자.

이것이 조나단의 계획이 분명했다.

‘형님 치고는 머리를 썼군. 하지만…….’

사울이라고 왕위 계승 다툼에 전혀 흥미가 없는 건 아니다.

강대한 다르센 왕국을 다스리는 자.

거기에다 적국 가멜다 왕국을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풍요로운 율렌 섬을 다스리는 자가 될 수도 있다.

전생과는 별개로 왕의 피를 이어받은 자로서 왕위에 앉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사울의 우선순위는 왕위가 아닌 개인의 복수에 있었다.

전생의 가문을 망친 그 누구에게도 복수를 하지 못한 지금, 왕위는 너무 먼 목표였다.

그렇다고 조나단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어쨌든 형님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가.

게다가 단순한 형님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실제로 왕위 다툼이 꽤 치열하게 돌아가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아바마마도 슬슬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니까.

‘왕위 다툼이라.’

아직 본격적으로 뛰어들 각오는 없다.

그렇다 해도 조나단의 제안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적극적인 행보를 취하기보다는 웅거하면서 자신들의 힘을 키우고, 상황에 따라 움직이자는 것이니까.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말씀이 옳아요.”

“그렇지?”

“네, 형님. 하지만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해 보거라.”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면 루시아 누님과 아바마마도 우리들의 행동을 꿰뚫고 계실 거예요.”

사울의 말에 순간 조나단의 안색이 변했다.

그 모습에 사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한 건가.’

아바마마는 몰라도 루시아는 사울과 조나단의 행보를 꿰뚫어 보고 있으리라 단언할 수 있/었/다.

물론 누님이 사울과 조나단을 반역자로 몰아붙여 제거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왕 왕위 다툼에 참여하려면 그 변수를 꼭 기억해야 한다.

“그, 그렇구나. 확실히 네가 여기 온 것도 루시아 누님 귀에 들어갈 테니 우리가 무엇을 하려는지 짐작하겠지.”

“네, 형님. 오해를 살 필요는 없을 거예요. 우리가 함부로 움직이면 누님이 의심하겠지만, 우리가 함부로 움직이지 않으면 누님도 의심하지 않으실 거예요.”

“이제 어떻게 할까?”

“시시콜콜한 것까지 루시아 누님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만나서 함께 활동하려 한다는 것 정도는 미리 누님께 알리는 게 좋겠어요.”

“알겠다. 그럼 누님께는 내게 이야기하마.”

“네, 형님.”

이야기를 나누는 사울의 눈에 조나단 뒤에 서 있던 매버릭이 작게 고개를 내젓는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아닌, 조나단을 향해 하는 행동이다.

이유야 짐작이 갔지만 사울은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함께하는 게 좋을까요?”

“그야… 네 곁에는 카스텔이 있고 내게는 기사단이 있다. 우리가 힘을 합치면 따로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

“옳은 말씀이에요.”

조나단과 대련을 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실력은 사울보다, 하다못해 아이나보다 위인 것 같지않았다.

또 카스텔급의 실력자는 조나단 곁에 없다.

인재의 질로 따지면 사울 쪽이 위다.

양으로는 조나단의 우위다.

사울이 직접 다룰 수 있는 병력은 소수이지만, 조나단은 기사단장이다.

머릿수는 물론 병력의 질로 따져도 사울이 다루는 병력보다 아래가 아니었다.

병력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조나단의 도움을 받을 만했다.

조나단 역시 실력자의 도움이 필요하면 사울의 도움을 받을 만했고.

‘언제까지 상부상조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니 분명해졌다.

조나단은 사울을 이용하려 하고 있다.

쓰다 버리는 소모품으로 여기는 건 아니겠지만, 사울을 이용하려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사울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다르지만 형제가 아닌가.

형제간에 다투고 칼부림을 할 수도 있다지만, 이쪽에서 그 상황을 미리 만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사울이 말했다.

“지금 당장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나요?”

“지금은 괜찮다. 나도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래저래 알아볼 것도 있고.”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지요.”

“그리고 말이다.”

“네?”

“네가 얻었다는 그 마법 보석 말이다.”

“네, 형님.”

“아바마마께서 절반은 네가 쓰고, 절반은 내가 쓰라고 하셨다.”

이건 사울도 예상 못 한 말이었다.

힘들게 얻은 마법 보석의 절반을 조나단이 꿀꺽했다는 건가?

아바마마도 그 마법 보석에 대해 분명 알고 계신다.

그런 상황에서 절반을 조나단이 가진다는 건, 아바마마가 그 일을 허락했다는 뜻이다.

혹은 허락을 넘어 아바마마 쪽에서 먼저 명령을 하였거나.

사울은 싫은 표정을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그렇겠지. 내가 오기 직전에 일이 그렇게 되었다.”

“아바마마께서 형님께 주셨나요?”

“뭐 그렇게 되었다고 해 두지. 아무튼 네가 고생해서 얻었다는데 미리 말해 두는 게 도리일 것 같아서. 아무튼 고맙게 받으마. 그리고 이 신세는 꼭 갚겠다.”

해명을 들어도 불쾌함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울은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형님. 얼마든지 쓰세요.”

* * *

요새에 마련된 숙소로 돌아온 사울은 따라 들어온 일행들에게 말했다.

“형님이 날 이용하려는 모양인데.”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

셋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로 조나단 왕자님은 아직 큰 공을 세운 바가 없습니다. 기사단장이 되셨을 때도 작게나마 반발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크게 공을 세운 바 없는 왕자가 하얀 독수리 기사단장이 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잖아.”

“그렇지만 역시 반발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그 반발이 표면화되지는 않았고, 또 왕자님도 반발을 키울 만큼 실수를 하지는 않으셨기에 유야무야 넘어갔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형님 나름대로 가진 것도 있고, 또 가진 것을 늘리고 싶지만 불안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군.”

“실베스터 왕자님이나 카리스 왕자님을 언급한 것도 진심이라기보다는 명분일 수 있습니다.”

사울도 동의했다.

왕위 쟁탈전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위치를 높이자.

그대로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그 이야기는 그저 명분일 수도 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왕위 쟁탈전에 끼어드는 것보다는, 그저 사울을 한편으로 끌어들여 공을 세우고 자신의 위치를 높이려는 것일 수도 있다.

맨입으로는 사울이 협조하지 않을 수 있으니 왕위 계승전을 언급한 것일 테고.

“뭐 형님은 형님 나름대로 머리를 굴린 것 같아요. 지금 내가 형님의 부탁을 거부할 상황도 아니니.”

“그럼 조나단 왕자님의 뜻에 따르시겠습니까?”

“일단 따르는 척은 해야지. 어디까지 따를지는 생각을 해 봐야 할 일이고.”

아이나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조나단 왕자님을 제대로 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렇지요. 지난 번 수도에서는 언뜻 지나쳤을 뿐이니.”

“생각보다 경박한 분이시더군요.”

아이나는 홉킨스 가문의 영애라 왕실 인물에게는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다.

그런 아이나 입에서 이런 직설적인 말이 나올 줄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전하께서 얻은 마법 보석 말입니다.”

“아, 그 이야기 말이군요.”

“그 보석을 얻는데 한 일도 없이 절반을 가져가다니. 지나친 처사입니다.”

그러자 사울은 쓰게 웃었다.

“나라고 형님을 비난할 처지는 아니에요. 모두 함께 싸워 얻은 보석을 나 혼자 독차지했으니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놀란 아이나에게 사울은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말했다.

“농담이에요.”

“그, 그렇습니까.”

“하지만 마법 보석 대신 보상을 하겠다는 약속은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형님이 내가 힘들게 얻은 마법 보석을 절반 가져간 건 예상치 못했어요. 어떻게 아바마마를 잘 구워삶았는지.”

카스텔이 반론했다.

“폐하께서는 철없는 아들의 아부 따위에 넘어갈 분이 아니십니다.”

“…그건 그래요. 하지만 그런 말은 형님 앞에서는 하지 말아요, 절대로.”

“알고 있습니다.”

확실히 아바마마, 마렌 국왕은 아들이 구워삶는다고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들의 그러한 시도를 바로 잡으려 할 사람이다.

조나단이 어떻게 마법 보석의 존재를 알고 욕심을 냈다 해도, 절반을 조나단에게 준 것은 철저히 아바마마 본인의 의지일 것이다.

누군가를 원망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아바마마가 되어야 한다.

‘아바마마의 생각을 짐작하긴 어렵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섭섭하지만 내색하면 안 돼.’

분명 아바마마는 능력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람의 그릇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릇이 작다고 무조건 배척하진 않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 봤으니까.

어쩌면 이 일이 아바마마의 시험일 수도 있다.

“마법 보석 건은 대범하게 넘어갈 생각이에요. 모두들 그렇게 알아요.”

“네, 전하.”

“마지막으로… 형님 곁에 눈에 띄는 기사가 있더군요.”

아르멜이 말했다.

“매버릭 스타우트 말씀이십니까.”

“그래, 다른 사람들이야 그렇다 쳐도, 매버릭은 분명 왕국에서도 주목받는 인재가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스타우트 가문의 계승자는 아니지만 적자고, 또 본인의 능력도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몇 번 실전에서 공을 세우기도 했지요.”

“어떻게 그 정도의 인물이 형님 곁에 있게 된 거지?”

“저도 궁금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듣기로 조나단 왕자님이 아닌, 매버릭 쪽에서 자청하여 부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모를 일이군.”

매버릭 스타우트.

명성도 상당하거니와 직접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인물로 보였다.

동시에 조나단을 마냥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울이 루시아 이야기를 꺼내자 당황한 조나단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내젓는 걸 보았다.

‘매버릭 스타우트라… 기억해 둘 만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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