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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21화 (121/232)

121화

사울 개인적으로도, 또 왕국 입장에서도 킬리안은 절대 살려 둬선 안 될 인물이다.

세상을 위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제거해야 했다.

사울이 마법을 시전 했다.

숲에서 화염 마법을 시전 하는 건 자칫 숲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수 있기에 화염 마법이나 전격 마법은 제외했다.

그렇게 사울이 날린 얼음 세례가 킬리안을 덮쳤다.

킬리안도, 옆에 있던 칼립소도 가만있지 않았다.

각각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 내며 사울이나 카스텔의 빈틈을 노렸다.

“놈들을 잡아라!”

“생포가 어려우면 베어라!”

곳곳에서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와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꽤 피가 흐를 것 같지만, 전력은 이쪽의 우위다.

이대로 가면 정말 킬리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킬리안은 여유로웠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는 것처럼.

마치 사울이나 카스텔을 죽일 수 있거나, 그렇지 않아도 이 위기를 벗어날 방책이 있는 것처럼.

“……?”

문득 킬리안이 손가락을 퉁겼다.

동시에 사울은 마나의 흐름을 느꼈다.

킬리안이 신호를 보낸 것과 동시에 주변 곳곳에 마나가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사울은 이 느낌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마법 함정인가?’

생각대로 마법 함정이었다.

그것도 상상 이상의.

마나의 흐름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아내 곳곳에서 불길이 피어올랐다.

단순한 불길이 아니었다.

펑펑거리는 소리와 함께 폭발하듯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으아악!”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폭발하듯 피어오른 불길에 휩싸인 아군 병력이었다.

함정에 빠져도 단단히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울은 어떻게든 함정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손쓰기는 늦었다.

몇몇 곳이 불타오르는 것을 넘어 숲 곳곳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 불바다를 만든 장본인인 킬리안은 조금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모든 게 그의 의도임에 분명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측하고 간단한 마법으로 숲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릴 준비를 한 것이리라.

“네 놈……!”

투구 사이로 사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킬리안은 눈웃음으로 답했다.

“날 쫓으려면 쫓아 보십시오. 데려온 병력을 모조리 불바다에 밀어 넣을 각오가 되어 있다면.”

“!!!”

“그럼 이만. 또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하.”

킬리안은 조롱과 함께 사울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그리곤 칼립소와 함께 그대로 몸을 돌려 사라졌다.

언뜻 보면 불바다가 된 숲 쪽으로 움직이는 듯 했지만, 분명 도주로를 알고 있는 자의 행동이었다.

사울은 그런 킬리안을 쫓고 싶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숲 전체가 불바다가 되고, 자신과 데려온 병력까지 불바다 속에 갇혀 몰살당할 판이었다.

차마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속으로 욕을 퍼부은 사울은 명령을 내렸다.

“아군을 구해요!”

“알겠습니다.”

일행 누구도 사울의 말에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아군을 구하지 않는 행동 자체가 용납되기 어렵거니와, 피해가 커지면 대족장을 볼 면목도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아군 구조에 나선 사울은 먼저 모데아를 찾았다.

오래잖아 당황한 모데아를 만날 수 있었다.

“전하!”

모데아는 사울이 정체를 감추려 투구를 썼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하’라 불렀다.

사울 역시 그런 모데아를 타박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는 숲 전체가 불바다가 될 거예요!”

“마법으로 불을 꺼야 합니다!”

“불가능해요. 불이 너무 많이 번졌고, 더 번질지 몰라요.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서 숲에서 벗어나야 해요!”

“큭……!”

엘프는 ‘숲의 종족’이라 불릴 만큼 숲을 소중히 여긴다.

모데아는 엘프가 아닌 드워프였지만, 엘프 대족장을 오랫동안 모신 탓인지 엘프 못지않게 숲을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숲이 소중해도 자신이나 다른 아군의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결국 모데아는 사울의 뜻을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전하. 명령을.”

모데아는 전사지 마법사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불을 끄거나 제어할 수 있는 마법사 쪽이 훨씬 믿음직스럽다.

사울은 마법사의 입장에서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전생의 기억이 답을 알려 주었다.

아군이 화공으로 적을 공격한 적도 있고, 적이 화공으로 아군이 공격당한 적도 있으니까.

숲의 불을 모두 끄기는 어렵다.

사울 스스로 말했듯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 숲을 빠져나가야 한다.

마침 사울과 모데아가 있는 곳은 잠시나마 병력이 모일 만한 곳이었다.

숲이 그나마 덜 우거졌고, 바람 방향을 볼 때 연기가 많이 덮쳐올 것 같지도 않았다.

마법의 힘을 빌리면 잠시 피난처로 쓸 수 있는 곳이다.

“일단 이곳에 병력을 집결시켜요, 빨리!”

“네, 전하. 모두들 이곳으로 집결하라!”

모데아의 명령을 담은 외침과 피리 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곳곳에서 싸우거나 불길을 피할 곳을 찾아 헤매던 병력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시에 사울과 카스텔 등 마법사들도 바삐 움직였다.

물과 얼음 마법으로 불길을 가라앉히고, 불이 번지지 않도록 미리 탈 만한 것들을 치워 버리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아군 병력이 속속 집결했다.

소수 정예로 뽑아 온 덕분에 병력 집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더 이상 병력이 모이지 않는 것 같자 사울이 모데아에게 권했다.

“이제 탈출해야겠어요.”

“…….”

모데아는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건 데려온 병사들 중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어쩌면 불바다가 된 숲 어딘가에서 신음하거나 빠져나오지 못하는 생존자가 있을지 모른다.

사울은 모데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렇기에 모데아가 단호하게 나서지 못하면, 자신이 단호하게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뒤늦게 여기 올 자들이 따라 올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겠어요. 하지만 우린 가야 합니다.”

“…네.”

힘겹게 대답한 모데아가 명령했다.

“철수한다!”

사울을 비롯하여 마법을 쓸 줄 아는 자들은 마법으로 불을 끄거나 길을 열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카스텔이 앞장섰다.

뜨거운 불길도, 때때로 덮쳐 오는 불똥과 타다 남은 나무토막들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

“콜록! 콜록!”

말소리보다 기침 소리가 더 많이 들려왔다.

어딜 가나 연기가 뿌옇게 피어올랐고, 점점 숨쉬기도 힘들어졌다.

조금만 늦게 탈출했어도 모두들 불바다 속에서 죽었을지 모를 판이었다.

그 와중에도 사울은 곳곳에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 뿌렸다.

불길이 너무 거세 흔적을 보고 찾아올 수 있을 자가 있을 지는 의문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야말로 일 초가 한 시간 같은 불지옥 속을 헤매던 모두의 귀에 심상찮은 소리가 들려왔다.

펑! 펑!

무언가 불붙어 터지는 소리는 이제 익숙했다.

그런데 익숙지 않은 게 있었다.

“몬스터다!”

불바다 속에서 몬스터가 나타났다.

사람보다도 큰 거대한 도마뱀이 시뻘건 혀를 날름거리며 아군을 노렸다.

사울은 몬스터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샐러맨더인가.”

일명 불도마뱀이라고도 불리는 대형 몬스터.

불을 좋아하고, 불에 면역을 가지고 있으며 스스로 불을 뿜을 줄 아는 괴물이다.

이 또한 킬리안이 준비한 함정 중 하나이리라.

사울은 일행에게 말했다.

“나는 불길을 계속 잡아야 해요.”

“알겠습니다!”

사울의 말뜻을 알아들은 아이나와 아르멜이 나섰다.

카스텔이라면 싸우는 동시에 불길을 잡을 수 있겠지만, 사울에게는 아직 그 정도의 능력이 없었다.

즉, 나머지 일행이 불을 끄는 사울을 지키며 샐러맨더를 상대할 필요가 있었다.

“……!”

불길에 아랑곳하지 않고 혀를 날름거리던 샐러맨더가 모두를 덮쳐 왔다.

열 마리도 넘는 샐러맨더 무리가 사울 일행을 먹잇감으로 인식한 게 분명했다.

샐러맨더 무리 일부가 입을 쩍 벌렸다.

곧 샐러맨더가 벌린 입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불바다와 연기 속에서도 확연히 눈에 띌 만큼 강력한 불길이었다.

하지만 샐러맨더 무리에게는 안타깝게도, 선두에 카스텔이 있었다.

카스텔은 불을 끌 때 쓰던 마법을 그대로 샐러맨더 무리에게 쏟아부었다.

불에 탄 것을 베어 내고 식힐 때 쓴 얼음의 칼날이 샐러맨더 무리의 몸을 베어 나갔다.

“키이익!”

사울 일행을 덮칠 때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샐러맨더 무리는 상처를 입고 나서야 비명을 내질렀다.

카스텔이 나서서 기세를 꺾자 불을 끄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되던 전사들도 나섰다.

“가능한 멀리서 상대해라!”

샐러맨더의 불길은 접근한 상대를 일순간에 태워 죽일 수 있을 만큼 위력적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모두들 가능한 멀리서 상대했다.

다행히 병력 대부분은 엘프였고, 활의 명수들이었다.

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쏜 화살이 샐러맨더를 덮쳤다.

그중에는 모데아도 있었다.

“괴물 놈들!”

이번에도 모데아의 석궁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저절로 시위가 당겨져 발사 속도가 빠른데도 화살 한 발 한 발에 담긴 힘이 막강했다.

화살 한 발에 사람보다 큰 샐러맨더가 쓰러지거나, 아예 즉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샐러맨더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았다.

정면에서 덮쳐 온 놈들도 있었지만, 영악하게도 불길과 연기 속에 몸을 숨기며 달려들기도 했다.

“으악!”

“뒤쪽이다!”

곳곳에서 튀어나온 샐러맨더가 아군을 물어뜯거나 불로 태워 버렸다.

결국 몇몇 병사들이 샐러맨더의 공격에 당해 쓰러졌다.

개중에는 마법으로 불을 끄고 시야를 밝히는 데 전념하던 사울을 덮친 녀석도 있었다.

“전하!”

아이나가 방패를 치켜들며 사울 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튀어나온 샐러맨더가 내뿜은 불길은 방패에 가로막혔다.

이어 아이나의 도끼가 샐러맨더의 머리에 꽂혔다.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사울은 고맙다고 하는 것도 잊고 할 일을 계속했다.

불을 끄고, 길을 치우고, 시야를 밝히고, 싸우기까지.

불바다 속에서 그 모든 일들을 하면서 움직이는 지옥 같은 강행군이었다.

다행히 지옥에도 끝은 있었다.

“다 왔습니다!”

카스텔이 목소리를 높였다.

멀지 않은 곳에 벌판이 펼쳐진 게 보였다.

아무리 지옥 같은 불길이라도 탈 것 하나 없는 황야에서는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모두들 죽을힘을 다해 벌판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숲에서 벗어난 사울 일행은 몸부터 추슬렀다.

불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오는 길이라 멀쩡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기를 들이마시고 기침하는 자부터, 뒤늦게 화상이나 다른 상처를 발견한 자도 있었다.

사울 역시 숲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몸 곳곳에 쑤셔 오는 것을 느꼈다.

몸을 살펴보니 언제 생긴 지 모를 상처와 화상이 보였다.

연기를 들이마신 탓에 머리가 아프고 기침도 계속 나왔다.

당장 몸을 움직이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

일단 사울은 마지막으로 하늘에 불빛을 쏘았다.

숲을 헤메는 누군가가 불빛을 보고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말이다.

마지막 신호를 보낸 사울은 자기도 모르게 뇌까렸다.

“빌어먹을.”

왕자의 몸으로 상소리를 내뱉는 건 좋지 않다.

하지만 누구도 사울의 예의 없음을 지적하지 않았다.

막 불구덩이 속에서 빠져나온 참이 아닌가.

모두들 일단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했고, 한동안 다른 어떤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멍하니 불바다가 된 숲을 바라보는 사울의 눈에 낯선 그림자가 나타났다.

마나의 기운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볼 때 강자는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사울은 물론, 어느새 곁에 다가온 카스텔이나 다른 일행들도 긴장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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