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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08화 (108/232)

108화

사울의 생각을 읽은 카스텔이 말했다.

“마나를 공급할 수는 있어도 전하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알아요, 힘을 계속 공급받는 것과 힘을 키우는 건 다르니까요. 하지만…….”

힘을 키우지는 못하더라도 힘을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의의가 작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이 보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하지만 무작정 가지고 입을 씻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혼자 움직여서 보석을 손에 넣었다면 모를까, 원정대가 함께 움직였으니까.

눈앞의 네 사람 중 데이빗을 제외한 세 명은 각각 공이 있다.

“모두들 고생 많았어, 어떻게든 꼭 보답하도록 하지.”

사울의 말에 아르멜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뿐만이 아니라 대신전 쪽에도 성의가 있어야 할 겁니다.”

“맞는 말이야.”

이번 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전과 함께 했다.

그 결과 손에 넣은 건 유적에 대한 약간의 정보, 그리고 이 마법 보석이다.

마법 보석을 둘로 나눌 수는 없다.

보석을 부수면 그 속에 깃든 힘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보석을 나눌 수 없고 그것을 사울이 가진다면 대신전에는 그만한 성의가 필요하다.

물론 함께 고생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이다.

“대신전에는 기부를 하고 이번 원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따로 감사 표시를 하면 되겠지?”

“대신관님이 뭐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신관님은 내가 설득하지.”

“그럼 큰 문제없을 겁니다.”

“좋아, 모두들 정말 고마웠어. 생각 같아서는 이 보석도 나누고 싶지만 알다시피 마법 보석은 나눌 수가 없는 물건이라서. 어떻게든 갚을 게, 그리고…….”

사울은 특히 아이나 쪽에 눈길을 주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가씨.

어린 나이에 비해 실력이 뛰어나지만, 아직 미숙한 구석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마법 보석이 있다면 강해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말은 안 해도 아이나 역시 보석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나.”

“네, 전하.”

“약속하지요. 이번에 날 도운 만큼, 언젠가 확실히 보답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아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나쁘지 않았지만, 내심 섭섭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울도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빨리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다음에 보상을 할 기회가 있다면 보상하더라도, 이 보석만은 자신의 것이 되어야 했다.

* * *

그날 밤.

사울은 잠들기 전 카스텔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네, 궁금한 게 있어서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금 전 전투 말이에요.”

카스텔은 사울이 무엇을 묻고 싶어 하는 지 알아들었다.

“그들이 왜 절 상대하지 않았는지 궁금하신 겁니까?”

“그래요. 나름대로 생각한 건 있지만, 확실히 알고 싶어요. 물론 선생님이 대답하고 싶지 않다면 굳이 대답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괜찮습니다.”

오늘 맞닥뜨린 마법 몬스터들은 카스텔을 말 그대로 무시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아무리 멍청한 몬스터라도 원정대 중 카스텔이 가장 강한 존재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그 가장 강한 존재와 먼저 싸우거나, 혹은 꼬리를 말고 도망쳐야 했음에도 모든 마법 몬스터가 카스텔을 무시했다.

우연일 리는 없다.

사울도 나름대로 이유를 짐작해 보았다.

정답을 알고 싶었지만, 카스텔에게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에 둘만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전하께서도 짐작하고 계신 모양입니다.”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았어요.”

“전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될까요?”

“네, 전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괜찮으니 솔직히 말씀해 보십시오.”

사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그 마법 몬스터는 인간이나 이종족 같은 존재만 감지할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럼 저는?”

“선생님은 그러니까… 보통 인간과는 조금 다른 존재라 저들이 감지하지 못한 것 같아요.”

사울의 대답에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입니다.”

그러면서 카스텔은 정답을 설명해 주었다.

“유적의 마법 몬스터는 일반적인 생명체를 탐지하고 공격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드문 일은 아닙니다. 고대의 마법 몬스터는 쓸데없이 움직이는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이나 이종족 같은 특별한 몇몇 생명체를 감지하고 움직이는 능력을 갖추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와는 다른 존재이고, 그들은 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좀 더 일찍 깨달으셨다면 전황을 좀 더 유리하게 풀어낼 수도 있었겠지요.”

“…….”

사울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카스텔이 보통 인간과는 다른 존재다.

그 말의 의미를 사울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카스텔은 공짜로 혹은 타고난 재능으로 힘을 얻지 않았다.

말로 꺼내기조차 끔찍한 일을 겪고 그 대가로 힘을 얻었다.

막강한 힘을 얻기 위해 카스텔이 치른 대가는 지금도 그녀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육체 자체가 보통 인간과는 다른 무언가가 되어 버렸다는 말도 들은 적 있다.

그것이 이번 전투에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만든 것이다.

카스텔을 바라보던 사울이 무심결에 말했다.

“내가 그런 일을 당했더라면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말을 꺼낸 뒤에야 사울은 자신이 너무 약한 소리를 한 것 같다고 후회했다.

하지만 카스텔은 신경 쓰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괜찮다고요?”

“이미 익숙해졌으니까요.”

“…….”

“전하.”

“네, 선생님.”

“저는 원치 않았지만 이 힘을 얻었습니다. 절 이렇게 만들어 제 손에 찢겨 죽은 자들은 지금까지도 증오합니다. 하지만 제게 힘을 쓸 방법을 가르쳐 준 분들이 있습니다.”

사울은 카스텔이 말하는 게 누구인지 알았다.

“아바마마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제게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피에 굶주린 짐승이 아닌 나라를 위해 싸우는 전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

참으로 기묘한 인연이다.

사울의 아버지, 마렌 국왕은 카스텔에게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 주었다.

그 힘으로 카스텔은 다르센 왕국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그 힘 때문에 가멜다 왕국의 하급 장교 롤랜드는 죽었다.

그렇게 죽은 롤랜드는 마렌 국왕의 아들인 사울로 다시 태어나 카스텔의 제자가 되었다.

사울은 아바마마를 증오하지 않았다.

카스텔을 나라의 영웅으로 만들어 전쟁으로 보냈다는 사실까지 증오한다면 세상 모든 것을 증오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 때문에 사울은 전생의 자신을 죽인 장본인 그리고 전생의 가족과 가문을 망친 당사자들로 복수의 범위를 좁혔다.

그렇게 좁힌 범위를 기준으로 봐도 카스텔은 여전히 복수 대상이다.

없애 버리든 다른 방법으로든 복수를 할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 복수심이 희미해질 때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때 말이다.

“사람들은 저를 검은 흉성이나 검은 마녀라고 부르지요. 전하께서도 저를 그렇게 부르셨고요.”

“그 일은 미안하게 생각해요. 모두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하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저도 세상이 저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괴물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지요.”

“…….”

“인간이 아니든 괴물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카스텔이고 전하의 아버님께 구원을 받았으며 이제 전하를 따르고 있습니다. 전하는 제 제자이자 주군이시고 언제까지나 따를 것입니다.”

여기까지 말한 카스텔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카스텔의 말이 진심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울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상대가 의심하지 않는다면 뒤통수를 치기에도 쉬울 테니까.

‘하지만…….’

마음이 복잡해진 사울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고마워요, 선생님.”

“별말씀을.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그렇게 카스텔은 물러갔다.

한참 고민하던 사울은 자신의 천막에 놓인 보석을 바라보았다.

막대한 힘이 잠재된 보석.

저것을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원정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저 보석 때문에 오히려 고민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 * *

다음 날 아침.

원정대는 유적에서 떠났다.

사울이 공언한 대로 부상자들을 버리지 않고 함께 움직인 탓에 이동 속도는 느렸다.

다행히 유적에 올 때처럼 돌아가는 길에도 전투는 없었다.

덕분에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무사히 대신전에 돌아올 수 있었다.

대신전에 돌아온 사울은 원정대를 해산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온 사울을 맞이한 건 화가 난 그레이였다.

“전하! 또 위험한 일을 하셨다고요?”

사울이 말하지 않았음에도 또 사울이 그레이에게 일러 주라 명령한 적 없음에도 그레이는 사울이 유적에서 겪은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카스텔 아니면 아르멜, 아이나 셋 중 한 명이 그레이에게 넌지시 일러 준 것이리라.

스스로도 잘못을 인정한 사울은 별 수 없이 그레이의 잔소리를 들었다.

그레이가 지칠 때까지 한 잔소리를 들은 사울은 옷을 갈아입었다.

대신관 콜리타가 사울을 찾는다고 했다.

자신의 방에서 나와 콜리타의 방으로 향한 사울은 무언가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다.

지나가는 신관에게도 하다못해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들에게도 평소보다 긴장된 분위기가 느껴졌다.

궁금했지만 사울은 일단 콜리타를 만나기로 했다.

대신전을 이만큼 긴장시킬 일이라면 콜리타 역시 알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이유에선지 콜리타는 사울뿐만이 아니라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 모두를 불렀다.

개인적인 일이라기보다는 공적인 일이며, 꽤나 중대한 일인 게 분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콜리타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울을 맞이했다.

평소보다 콜리타의 책상에 서류가 많이 쌓인 게 눈에 띄었다.

“많이 바쁘신 모양입니다.”

“네, 전하.”

콜리타는 딱딱한 표정으로 사울의 인사를 받았다.

사울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면서 보니 대신전 분위기가 이상하더군요.”

“전하께서도 보셨습니까.”

“네, 날 부른 것도 그 일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전하.”

그레이가 무겁게 말했다.

“가멜다 왕국의 가르시아 남매가 이 중립 지대로 온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사울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혹은 자신이 모르는 ‘가멜다 왕국의 가르시아 남매’라는 인간이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아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콜리타의 목소리와 진지한 표정은 사울의 귀가 잘못되지 않았음을, 또 사울이 잘 아는 ‘가멜다 왕국의 가르시아 남매’를 말하는 것임을 보여 주었다.

“말씀하신 가르시아 남매가 제가 생각하는 그 자들이 맞습니까?”

“네, 전하.”

“신뢰할 수 있는 정보입니까?”

“어제 가멜다 왕국에서 보낸 서찰이 도착했습니다. 가르시아 남매가 가멜다 왕국의 국경 및 중립 지대를 오가며 활동할 계획이라고요.”

“그 서찰을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 있습니다.”

콜리타는 순순히 가멜다 왕국에서 온 서찰을 넘겨주었다.

서찰을 받아 든 사울은 봉투 겉면부터 살폈다.

뜯긴 봉투를 원래대로 접으니 가멜다 왕국의 문양이 새겨진 봉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편지 형식이나 내용, 그리고 봉인까지 왕국에서 직접 보낸 ‘외교 문서’가 틀림없었다.

사울은 편지를 읽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왕국 결정에 따라 가르시아 남매가 중립 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으니 서로 불필요한 충돌은 하지 말자.

또 가르시아 남매는 사울 왕자와 부딪칠 마음이 없으니 서로 조심해서 행동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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