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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07화 (107/232)

107화

카스텔이 만든 불덩어리는 폭발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거대 거미의 몸을 보호하던 방어막에 달라붙어 타올랐다.

적이 방패를 들이밀었으니 그 방패를 불태워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카스텔의 막강한 마법에 거대 거미는 결국 패했다.

불덩어리가 거미의 방어막을 태워 버린 것도 모자라 거대 거미의 몸을 불살랐으니까.

“!!!”

거대 거미의 몸과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상 결판이 났다.

곧 불길이 사라졌다.

거대 거미의 몸에 붙어 있던 다리는 모두 떨어져 나갔다.

거대한 구형의 몸뚱이도 이곳저곳이 부서지고 금이 가 톡 건드려도 산산조각이 날 것 같았다.

“…….”

거대 거미가 끝장이 난 듯 보였지만, 누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막강한 힘과 재생력을 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모두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전투태세를 갖춘 채 천천히 다가갔다.

“부서진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거대 거미의 몸뚱이가 부서지기 시작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몸뚱이가 부서지고, 그때껏 용케 몸 꼭대기에 붙어 있던 빛 덩어리와 검은 받침대도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

꽤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받침대는 조금도 부서지지 않았다.

받침대 위의 빛 덩어리도 여전히 영롱하게 빛났다.

강력한 마법의 힘이 느껴지는 빛 덩어리.

손만 뻗으면 이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먼저 접촉하는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울은 홀린 듯 자기도 모르게 빛 덩어리 쪽으로 다가갔다.

저 힘을 손에 넣으면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자신의 재능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카스텔이라는 벽을 넘을 수 있을지 모른다.

바로 그때.

빛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사울을 덮쳤다.

“전하!”

순식간이었다.

워낙 순식간이고, 예측 불허의 일이라 카스텔마저도 손을 쓰지 못했다.

사울은 놀란 표정으로 빛 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온몸으로 받았다.

“…….”

순간 사울은 시간이 느려진 느낌을 받았다.

이 빛이 사람을 죽이는 마법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간일 것이다.

바보짓을 했다.

아무리 전투가 끝난 것 같아도 좀 더 신중히 움직일 수 있었는데.

“…….”

다행히 일이 잘못되지는 않은 듯했다.

몸에 상처가 나지도, 혹은 어떤 고통이 느껴지지도 않았으니까.

특별히 부자연스러운 느낌도 없었다.

딱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몸의 마나가 좀 더 충만해진 느낌이 든다는 것?

사울을 덮친 빛도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전하.”

굳은 표정으로 사울에게 다가온 카스텔이 사울의 손을 붙잡았다.

곧 사울은 몸속 마나가 제멋대로 흐르는 감각을 느꼈다.

카스텔이 사울의 몸을 점검하는 과정이었다.

“큰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울의 몸 점검을 마친 카스텔은 곧바로 손을 뻗었다.

그녀가 친 마법 장막이 받침대 위에서 빛나던 빛 덩어리를 감쌌다.

말하자면 만에 하나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마법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봉인한 것이다.

그런 사울에게 아이나가 달려와 물었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요.”

확실히 사울의 몸은 괜찮았다.

아니 조금 전보다 더 나은 것 같았다.

여러 번 마법을 쓴 탓에 마나가 줄어들었는데, 그것이 채워진 느낌이다.

마법의 근원인 마나를 회복시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때문에 마법사는 본인의 몸에 가능한 많은 마나를 담을 수 있도록 그릇을 키우는 데 신경을 썼다.

그릇이 작다면 마나가 금방 다 소모되고, 마나가 소모된 마법사는 실전에서 거의 쓸모가 없으니까.

또 몸속의 마나를 급격히 소모시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신체에 부담이 가는 일이다.

100의 마나를 가진 마법사가 순식간에 10의 힘을 쓰는 건 신체에 큰 부담이 아니다.

하지만 10의 마나가 있는 마법사가 순식간에 5의 힘을 쓰는 건 신체에 굉장한 부담을 주는 행위였다.

이것이 마법사라면 누구나 몸속의 마나의 그릇을 키우는 데 신경을 쓰는 이유다.

하지만 마나 그릇을 키우는 것도 타고난 재능의 영향이 크다.

다행히 이를 보완할 방법도 있었다.

마법을 쓰면서 소모되는 마나를 곧바로 보충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하는 것.

다른 마법사가 자신의 마나를 넘겨주거나 혹은 마나 포션이라 불리는 회복 약을 마시거나.

하지만 마나 회복용으로 항상 다른 마법사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다.

또 마나 포션은 왕실에서도 함부로 못 쓸 만큼 희귀한 물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대안으로 꼽히는 게 마법 아이템이었다.

마법의 힘이 담긴 아이템을 이용하여 마나를 저장하고, 필요할 때 빼내 쓰는 것이다.

문제는 마나를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는 마법 아이템도 희귀하다는 점이었다.

마법으로 무기나 방어구의 강도를 높이거나, 무게를 줄이는 건 차라리 쉽다.

마나 그 자체를 담아 두거나 혹은 주인의 마나 그릇을 키우는 역할을 하는 마법 아이템을 만드는 건 훨씬 어려웠다.

왕자도 쉽사리 손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저 빛이 내게 꼭 필요한 것일지 몰라.’

전투는 마무리되었다.

거대 거미는 박살 났고 다른 마법 몬스터도 모두 쓰러졌다.

사울은 빛 덩어리를 살피던 카스텔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 물건을 조사해 볼까요?”

“……네.”

카스텔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카스텔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나도, 아르멜도 사울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사울이 왕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언성을 높이고도 남았을 듯한 책망 섞인 눈빛이었다.

‘내가 실수를 했군.’

사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바보짓을 했다고 욕을 먹어도 할 말 없을 짓을 했다.

실력이 모자랐던 게 아니다.

싸우던 중 물욕에 눈이 멀어 순간 방심했고 그 때문에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 했다.

별일 없이 넘어간 것은 순전히 운이 좋은 덕분이었다.

‘모두에게 사과라도 해야겠어.’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사과를 할 수는 없다.

왕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함부로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

특히 자국이 아닌 타 세력에 속한 자들이 보는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건 나라의 위신을 깎아 먹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미 실수를 저질렀는데, 또 실수를 저지를 수는 없다.

사울은 모른 척 말했다.

“선생님, 일단 이 보석을 확실히 봉인해요.”

“알겠습니다.”

카스텔은 빛 덩어리를 둘러싸고 있던 임시 봉인을 풀었다.

그리고는 제대로 된 ‘봉인’ 과정을 시작했다.

강력한 마법의 힘으로 빛 덩어리에 흐르는 마법의 기운을 꽁꽁 묶어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과정이었다.

잠시 후.

빛 덩어리가 점점 사그라들며 속 내용물의 정체가 드러났다.

“보석…인가?”

옅은 노란색이 돋보이는 보석.

왕자의 신분 덕분에 보석을 많이 봐 온 사울은 내용물의 정체를 어렵잖게 추리해 낼 수 있었다.

“토파즈인가.”

희귀한 파란 토파즈가 아닌 비교적 흔한 황색 토파즈.

보석 자체로만 따지면 그렇게까지 비싼 건 아니다.

내다 팔면 일반 국민들이 거주하는 집 한 채 정도는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보석 그 자체보다 가치가 있는 건, 보석에 담긴 힘이었다.

보석은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가치가 높다.

또한 마법이나 연금술에서도 가치가 높다.

마나와 친밀한 성질이 있고, 또 많은 마나를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사울의 마법 검 뒤에 보석이 박힌 것도 그 이유였다.

사울이 보기에 지금 보이는 토파즈는 아름다움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토파즈 속에서 은은히 흘러나오는 빛이 그것을 증명했다.

마나의 빛이다.

봉인되기 전에는 보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찬란하게 빛나던 마나의 근원.

그것이 봉인된 뒤에도 여전히 빛을 잃지 않고 은은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보석에는 막대한 힘이 저장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울의 말에 아이나가 물었다.

“그럼 몬스터와 유적도 이 보석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보석은 보석대로, 유적은 유적대로 따로 존재했을 수도 있고. 분명한 건 이 소중한 보석을 지키기 위해 그 마법 몬스터가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사울은 유적 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건물이 남아 있던 유적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이제 저 유적에 더 이상 발을 들이기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지요.”

사울은 유적에서 눈을 돌렸다.

아르멜이 그런 사울에게 보고했다.

“부상자가 여섯, 그 중 두 명은 상태가 심각합니다.”

“목숨이 위험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아도 완전히 회복하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사울은 부상자들이 있는 곳에 시선을 돌렸다.

여섯 명의 부상자 중 네 명은 왕국군, 두 명은 성기사였다.

하필 두 성기사 쪽이 큰 부상을 입었다.

조금 전 거대 거미에게 받힌 자, 그리고 마법 몬스터와 싸우다 당한 자였다.

사울은 부상자에게 다가가 말했다.

“모두들 수고 많았다. 더 이상 전투는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쉬도록. 그대들 모두 한 명도 빠짐없이 안전하게 대신전까지 데리고 가겠다.”

“감사합니다. 전하.”

부상자들을 위로한 사울은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 데이빗이 그런 사울을 뒤따라 들어왔다.

“…….”

사울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먼저 카스텔이 입을 열었다.

“네, 전하께서 잘못하셨으니까요.”

직설적인 카스텔의 말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리라.

확실히 사울 스스로도 인정했다.

처음부터 힘이 부족하거나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해 위기에 빠졌다면 모를까.

이번에는 마법의 힘이 깃든 보석에 눈이 돌아가 그만 실수를 저질렀으니까.

반론을 포기한 사울은 한참동안 모두의 잔소리를 들었다.

카스텔은 단호하게, 아이나는 걱정스럽게, 아르멜은 논리적으로 잔소리를 했다.

심지어 데이빗도 이 일을 대신관님이 알면 크게 걱정하신다는 둥 잔소리를 했다.

오랜 잔소리가 끝나고 사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멍청한 짓을 한 것을 인정해. 모두에게 사과하지.”

사울이 아무 반론 없이 사과를 한 덕분에 이 일은 그럭저럭 마무리 되었다.

사울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에 손에 넣은 보석 말이야.”

사울의 말에 카스텔이 보관하고 있던 보석을 꺼냈다.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어떻던가요?”

“예상대로 막대한 마법의 힘이 담긴 보석이었습니다.”

“그렇겠지요. 봉인된 지금도 마법의 힘을 보고 느낄 수 있을 정도니.”

사울은 천막에 켜 둔 불을 껐다.

이미 해가 졌기에 불을 끈 천막 안은 어두컴컴해졌다.

하지만 유적에서 찾은 노란 토파즈는 스스로 영롱하게 빛났다.

힘이 봉인된 탓에 눈부신 빛을 발하지는 못했지만, 노란 보석 안에서 은은하게 빛이 흘러나오는 광경은 신비롭기까지 했다.

“이 보석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사울의 질문을 예상한 듯 카스텔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봉인을 풀고 적절히 가공하면 주인에게 마나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마법 아이템으로 개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상대로 이 보석은 사울에게 크게 유용한 마법 아이템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사울은 강력한 마법을 여러 번 쓰면 마나가 부족해지는 일을 몇 번이나 겪었다.

그 때문에 실전 상황에서 고생하고, 위기를 겪기도 했다.

몸에 마나가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면 그런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지금 사울의 마법 실력과 전투 시 소모되는 마나를 생각하면, 이 보석을 통해 거의 무제한에 가까운 마나를 공급받을 수 있지 않을까.

굉장히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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