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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05화 (105/232)

105화

“???”

산전수전 다 겪은 카스텔도 적잖이 놀랐다.

거미들은 누구보다 위협적인 존재인 카스텔을 신경 쓰지 않았다.

카스텔을 허수아비로 본 것인지 그대로 지나치고 뒤의 병력을 덮쳤다.

“막아라!”

“한 놈도 통과시키지 마라!”

전방을 맡았던 병력들이 일제히 거미 떼와 부딪쳤다.

거미들은 구체의 몸에 붙은 낫 같은 입, 창처럼 날카로운 다리로 병력을 공격했다.

크기도 사람만 한 데다 힘과 속도도 웬만한 사람보다 빠른 거미들의 공격은 그 자체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원정대 병력도 만만치 않았다.

하나같이 정예들이라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원정대 병력은 섣불리 공격하기보다 거미의 공격을 막는 데 집중했다.

지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놀란 것도 잠시 카스텔은 곧바로 자신을 지나쳐 간 거미들에게 마법을 쏟아 부었다.

수십 가닥의 마법 촉수 대신 양손으로 두 가닥의 마법 채찍을 만들었다.

검푸른 마법 채찍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거미의 몸이 쪼개지고 박살 났다.

사울도 가만있지 않았다.

아군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정밀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마법으로 거미들을 공격했다.

마법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날아간 마법이 아군의 등을 지나쳐 거미를 맞췄다.

오래잖아 거미 떼는 전멸했다.

거미 떼의 전멸을 확인한 사울은 검을 거두고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모두 수고했다.”

전투는 끝났지만 안심할 수 없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전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원정대의 진형을 유지한 가운데 몇몇이 나서 거미 잔해를 조사했다.

사울도 아이나, 아르멜과 함께 직접 거미 잔해를 살폈다.

한참 거미 잔해를 살핀 사울은 왕국군 소속 마법사에게 물었다.

“이런 것을 본 적 있나?”

“처음입니다.”

“저 역시 처음입니다.”

이어 사울의 시선을 받은 아르멜도, 아이나에게도 낯선 물건이었다.

카스텔도 고개를 내저었다.

이런저런 공격을 당해 박살 난 거미 잔해는 시체라기보다는 ‘부품’에 가까웠다.

산산조각 난 금속 잔해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부품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것이다.

“이것들을 좀 챙기고 계속 움직이도록 하지.”

“네, 전하.”

원정대는 진형을 유지한 채 유적 중심부로 향했다.

중심부가 가까워질수록 신경 쓰이는 것들이 나타났다.

“저기 거미가 보입니다!”

“다르게 생긴 놈도 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목격담이 들려왔다.

사울 역시 마법 몬스터로 보이는 것들을 몇 번이나 보았다.

종류도 다양했다.

조금 전 싸운 거미부터 시작해서 개나 고양이처럼 생긴 녀석, 굴러다니는 구체, 심지어 날아다니는 녀석까지 있었다.

하나같이 인형이나 기계처럼 생긴 게 눈길을 끌었다.

사울은 대신전의 성기사 한 명을 불러 물었다.

“나는 저런 것을 처음 봐요. 그대들은 저런 것을 본 적 있나요?”

“저희도 처음입니다.”

“대신전의 누구도 본 적 없다는 뜻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그렇습니다. 대신관님이나 고대 문명에 대해 잘 아는 분이라면 혹시 뭔가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나타나는 적들은 성기사들에게도 낯선 존재인 모양이었다.

사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2천 년 전 고대 문명의 유적으로 추정된 곳에 나타난 고대의 마법 몬스터.

언젠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고대 문명은 다양한 마법 생물을 창조했으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마법 생물은 마법 몬스터로 불린다. 대부분 고대 문명이 남긴 유적 등에 잠들어 있지만 종종 깨어난 마법 생물이 난동을 부릴 때가 있다. 크기, 모양, 강함은 다양하며…….’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고대의 마법 몬스터.

아마 저것들이 끝은 아닐 것이다.

한두 마리 눈에 띄는 녀석들은 일종의 정찰병일 수도 있다.

거미 부대가 전멸했으니, 다음에는 정찰병의 보고에 따라 더 강한 부대가 나타날 수도 있다.

원정대 모두들 긴장감 속에 유적 중심부에 발을 들였다.

그나마 형체가 온전한 중심부의 건물은 꼭대기가 무너진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꼭대기뿐만이 아니라 건물 곳곳이 무너져 입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힘들게 입구를 찾아도 끝이 아니었다.

“이곳이 입구인 것 같습니다, 전하.”

“음…….”

유적 입구는 무너진 돌무더기에 막힌 채였다.

다행히 현재 원정대의 인력과 마법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조심해서 마법으로 돌을 치워라!”

“강한 마법을 쓰면 건물이 무너질 수 있으니 조심해라!”

병사들이 나서 힘을 쓰고 마법사들은 마법으로 도우며 돌무더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카스텔은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겼는지 그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그저 지켜보는 게 아니라 눈을 감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얼마 후.

돌무더기가 치워지고 건물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천장과 벽 곳곳에 뚫린 구멍에 비친 햇살이 건물 내부를 어렴풋이 보여 주었다.

일단 살아 움직이는 건 보이지 않았다.

탐험을 하려면 밝을수록 좋다.

병력 중 일부가 횃불을 키고, 마법사 중 몇 명이 나서 마법 빛을 만들었다.

잠깐 사이에 건물 내부가 대낮처럼 밝아졌다.

건물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과거에는 화려하고 또 정교하게 만들어졌겠지만 지금 보이는 건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돌무더기로만 보였다.

그래도 벽이나 바닥 곳곳에 문자나 문양이 새겨져 있고 또 곳곳에 이런저런 유물들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오랜 세월에 걸쳐 부서지고 흐려져 본래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겉보기에는 유적에 흐르는 마나의 근원이 어디인지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지하입니다.”

입구를 뚫을 때부터 유적 안을 살피던 카스텔이 말했다.

“선생님, 지하라고요?”

“네. 지금 느껴지는 마나의 근원으로 향하는 길이 완전히 파묻힌 게 아니라면, 분명 지하로 통하는 길이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모두들 들었지? 주변을 경계하며 지하로 가는 길을 찾는다!”

마법 몬스터나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들 안심하고 흩어져 지하로 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습니다!”

건물 구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계단은 온전했다.

“잠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카스텔은 홀로 지하에 내려가 주변을 잠시 살핀 뒤 돌아와 보고했다.

“지하에 마나의 근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위험한 건 없을까요?”

“위험한 건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에 마나가 흐르는 근원이 있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도 있다.

정체를 몰라 얼마나 위험한 지 예상이 어렵다는 게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다 같이 내려가지요.”

“네, 전하.”

명령을 내린 사울은 곁에 있던 데이빗에게 말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해.”

“…네.”

고개를 끄덕였지만, 데이빗은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사울 역시 데이빗에게는 큰 기대를 품지 않았다.

원정대는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거대한 지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라 햇살 한 점 들어오지 않았지만, 횃불과 마법 빛 덕분에 내부를 살피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지하는 지상에 비해 훨씬 보존이 잘 되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 곳곳이 부서지고 무너졌지만 그래도 어떤 곳인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넓은 공간에 널브러진 정체불명의 도구와 알 수 없는 조각들.

누군가 작정하고 어지럽히거나 파괴한 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점점 부서지고 무너져 폐허로 변한 결과다.

이곳이 멀쩡하게 돌아갔을 때는 아마도…….

“실험실인가.”

사울은 이 공간이 멀쩡했을 때 어떻게 사용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근원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

곳곳에 널린 도구나 파편들.

아마 이 유적은 마법이나 연금술의 실험실로 썼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에는 지금보다 각종 마법이나 연금술 실험이 더 성행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2천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의 실험실이 발견되는 예도 드물지 않았다.

이곳이 고대의 실험실이라는 건 좋은 징조다.

누군가 털어가지 않았다면, 고대의 실험실에는 쓸 만한 무언가가 나오기 마련이었으니까.

그것이 돈이 되는 물건이든, 마법이나 학문적으로 가치가 큰 물건이든 말이다.

“헛걸음은 아닌 것 같군. 그렇지만 뭐가 있을지 모르니 조심해서 이동하자.”

“네, 전하.”

지하로 더 내려갈수록 마나의 기운이 더욱 뚜렷하게 느껴졌다.

또 지하 중심부 쪽에 푸르스름한 빛이 흐르는 게 보였다.

자연 현상이 아니라면 저 빛이 마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대충 생각을 정한 사울은 아르멜에게 의견을 구했다.

“병력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저 중심부로 향하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곳을 살피면서 쓸 만한 것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

“그게 좋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곧 원정대 병력이 둘로 나뉘었다.

사울과 카스텔 등 일부는 중심부로 향했고, 나머지 병력은 다른 곳을 살피며 조사하기로 했다.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눈으로 보이는 빛도, 몸으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도 점점 뚜렷해졌다.

특별히 겁을 먹은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반응하여 털이 곤두설 정도였다.

가까이 갈수록 유적 주변에 흐르는 마나의 기운의 중심이 저 빛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마침내 빛의 근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요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받침대 위에 하얀 빛 덩어리가 떠 있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사울의 질문에 한 마법사가 대답했다.

“마법의 힘이 흐르는 도구나 아티팩트 같은 게 아닐까요?”

“그렇군. 역시 헛걸음을 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때 카스텔이 말했다.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카스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면이 흔들렸다.

지진이라도 난 듯 벽, 지면, 천장까지 한꺼번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울은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모두 지하에서 탈출하라!”

야외라면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유적, 그것도 지하가 아닌가.

지하가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이 유적은 그대로 원정대 모두의 무덤이 될 것이다.

“후퇴하라!”

“빨리 움직여!”

원정대는 최소한의 질서만 유지한 채 지상으로 탈출했다.

정예들이 아니었다면 최소한의 질서조차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상에서 탈출한 원정대는 건물 밖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정체불명의 흔들림은 계속되었고, 나아가 땅울림과는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땅 속 깊은 곳에서 울부짖고 있는 듯한 소리.

듣기만 해도 몸서리가 쳐질 만큼 불길한 소리였다.

일단 사울은 원정대의 상황을 확인했다.

“모두 무사한가?”

“전원 빠져나왔습니다!”

“일단 유적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네, 전하!”

언제 머리 위로 무언가 떨어질지 모를 유적에서 한시바삐 벗어나는 게 급했다.

진형을 유지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유적에서 빠져나왔다.

유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형체가 온전하던 건물도 끝내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이미 무너진 유적은 더욱 붕괴가 가속화되며 완전한 폐허로 변해 버렸다.

“…….”

이렇게 허망하게 원정이 끝난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사울, 하다못해 마나를 느낄 줄 모르는 자들도 깨달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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