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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102화 (102/232)

102화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건 그저 제 의견일 뿐입니다.”

“알아요, 확실한 건 가 봐야 알 수 있을 테니. 그럼 선생님의 의견은?”

“이 마법 유적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위험합니다.”

마법 유적은 크게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유적은 어떤 형태로든 마법의 힘이 활동하며 영향을 미친다.

죽은 유적, 혹은 잠든 유적은 마법의 힘 자체가 남아 있지 않거나 남아 있어도 활동을 멈춰 외부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조금 전 아이나가 말한 유적은 죽은 유적이었다.

마법의 힘 자체도 거의 없었고, 유적의 영향으로 자연 환경이 바뀌거나 몬스터가 흉포해지는 일 같은 것은 없었으니까.

반면에 슬랙트라는 유적은 살아 있다.

카스텔의 생각이 그러했고, 사울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는 유적 곳곳에서 마법의 기운을 느꼈고, 마법의 영향을 받은 각종 재난에 대해 증언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거나, 몬스터나 짐승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흉포해지는 현상 등은 모두 살아 있는 마법 유적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선생님의 말대로 이곳은 위험해 보여요. 하지만 선생님의 힘이라면 이곳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 혼자서는 어렵습니다.”

“개척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탐험이라면?”

“그 정도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탐험은 가능하다.”

사울의 말에 아르멜이 물었다.

“이 유적에 가 보실 생각입니까?”

“개척이 아니라 탐험이라면 해 볼 만 하지 않겠어?”

“위험합니다.”

“우리가 한 일 중 위험하지 않은 게 있었나?”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다릅니다. 도적을 처리하고, 카멜 산에 가 대족장을 만나는 건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마법 유적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지.”

사울의 생각이 굳었음을 안 아르멜은 잠시 고민하다 다른 말을 꺼냈다.

“전하, 조급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급해한다고? 내가?”

“네, 이미 전하는 이곳에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습니다. 대신전과 왕국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진전시켰고, 이는 카멜 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의 누구도 전하께서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은 하지 못 할 겁니다.”

“…….”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무시할 만한 조언도 아닌 듯했다.

지금 자신이 조급해하는가?

최소한 아르멜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모양이다.

사울은 자신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왕국 수도를 떠나 홉킨스 가문 영지로 온 뒤 쉴 틈 없이 달려왔다.

덕분에 적잖은 공을 세웠다.

1년이 좀 넘는 시간 만에 하얀 까마귀를 몰락시켰으니까.

또 대신전, 카멜 산과 친교를 쌓았다.

오늘부터 몇 달 정도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해도 사울이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고 비난할 사람은 없다.

아르멜도 한가한 사람은 아니다.

누구보다 바쁘고 시간을 알차게 쓰는 사람이다.

그런 아르멜이 보기에도 사울이 지나치게 서두르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이 녀석이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카스텔이나 아이나가 이런 조언을 한 기억은 없다.

하지만 둘 다 아르멜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이나는 방금 전 아르멜과 감정 다툼을 벌였음에도 말이다.

모두들 사울이 지나치게 서두르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거나, 최소한 걱정은 하는 눈치였다.

일을 서두른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몸과 마음을 망친다면 모를까 아직 사울에게는 그러한 기색은 없었다.

문제는 다른 자들의 눈이다.

왕자는 지위만큼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신분이다.

예전의 존재감 없던 왕자라면 모를까, 지금의 사울은 충분히 주목받는 존재다.

의도적으로 중앙 정계와 거리를 두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라면 벌써 골치 아픈 일을 여럿 겪었을 것이다.

지금은 아르멜이 사울이 서두르는 걸 걱정한다.

하지만 중앙 정계의 어떤 거물이 사울의 이런 모습을 보고 경계한다면?

예상치 못한 복잡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생각을 정리한 사울이 말했다.

“일리가 있군.”

“전하, 그럼…….”

“하지만 이 일은 이왕 결심한 것이야. 이번 일이 끝나면 좀 더 신중히 움직이도록 하지.”

아르멜은 다시 말하려다가 입을 닫았다.

사울의 결심이 굳은 이상 마음을 바꿀 방법은 없었다.

사울은 다시 카스텔에게 물었다.

“이 슬랙트라는 곳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요?”

“무언가가 있기는 할 것입니다. 마법 유적이 살아 있다는 건, 작동하고 있는 마법의 힘이 존재한다는 뜻이니까요. 무언가가 있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겠지요. 탐험 도중 죽거나 크게 다치지만 않는다면 분명 의미 있는 탐험이 될 것입니다.”

“그럼 선생님은 찬성이지요?”

“…전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알았어요. 이번 일이 끝나면 좀 쉬어갈 테니,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네, 전하.”

사울은 결심을 굳혔지만, 사울 혼자서 결정할 일은 못 되었다.

이 슬랙트라는 이름의 유적의 위치는 꽤 미묘했다.

대신전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지는 않지만, 지도상으로는 대신전의 영역에 포함되었다.

동시에 다르센 왕국과도 가까웠다.

원한다면 사울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울은 좀 더 신중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잖아도 지나치게 서두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지 않았는가.

가능한 절차를 준수하며 적을 만들지 않는 게 바람직했다.

마음을 정한 사울은 콜리타를 찾았다.

“대신관. 여기 슬랙트라는 이름의 마법 유적을 한번 탐사해 보고 싶습니다만.”

사울의 말에 콜리타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슬랙트라면… 그래, 기억납니다. 몇 년 전 발견된 곳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유적 탐사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적을 탐사해 필요한 것을 얻고 가능하면 우리 왕국에서 그 지역을 개척하거나 대대적으로 탐사하여 쓸 만한 걸 얻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함이지요.’

사울은 이런 솔직한 대답 대신 그럴듯한 명분을 댔다.

“이 마법 유적은 아직 살아 있는 곳이라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마법 유적을 방치하는 건 위험한 일이에요. 마법 유적의 위치상 대신전은 물론, 우리 왕국에 해를 끼칠지 모르니까요. 우리 왕국과 대신전 모두의 안녕을 위해 그 위험을 제거하고 싶습니다.”

사울도 콜리타가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명분일 뿐 진짜 목적은 바보가 아닌 한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마법 유적을 발굴하여 사울 본인과 왕국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목적 말이다.

하지만 사울의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명백히 대신전의 영역에 속하는 지역이라면 거부할 수 있지만, 슬랙트는 그렇지 않았다.

사울이 내세운 명분이 잘못된 건 아니었다.

고대의 마법 유적이 문제를 일으켜 크고 작은 사태를 일으킨 예가 적지 않았으니까.

슬랙트라는 마법 유적 또한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잠시 생각하던 콜리타가 입을 열었다.

“전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위험한 일입니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저희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물론 선생님과 다른 실력자들도 함께 갈 겁니다.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으음…….”

다시 고민하던 콜리타가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성기사들, 그리고 데이빗과 함께 가신다면 협조하겠습니다.”

“데이빗이요?”

성기사와 함께 가라는 건 납득할 수 있다.

실력이 뛰어난 성기사라면 사울을 보호하는 동시에 감시하면서 상황을 조율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니까.

나아가 마법 유적에서 정말 쓸 만한 게 나온다면, 그것을 사울과 왕국이 독점하지 않고 대신전과 나누도록 할 수도 있다.

이 제안은 사울도 예상했고, 또 승낙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데이빗은 달랐다.

사실 데이빗도 책만 파던 약골은 아니다.

여행을 할 때 한 사람 몫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데이빗이 싸우는 모습은 본 적 없지만 대단한 실력자는 분명 아니었다.

나이도 어리고 몸도 눈에 띄게 강건하지 못하며, 마나의 기운 역시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마나 없이 마법사 못지않은 강한 힘을 발휘하는 돌연변이 같은 전사도 종종 나오지만, 데이빗이 그런 부류일 가능성은 없었다.

“성기사들은 데리고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빗은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괜찮습니다. 그 아이도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을 테고, 성기사들도 도울 테니까요.”

“…….”

콜리타의 생각이 대충 짐작이 갔다.

데이빗을 데리고 가면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일종이 짐덩어리가 되는 셈이다.

데이빗이라는 짐덩어리를 맡김으로서, 자신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게 아닐까.

‘정말 영악하군.’

사울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누구보다 순결하게 신을 따라야 할 대신관이 이렇게 영악하게 행동하다니.

사울은 속내를 감추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데이빗을 데리고 가지요. 그의 안전 또한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락을 받은 사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소 심기가 불편했지만, 마지막까지 예의를 갖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사울이 나가고 콜리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욕심 많은 분이로군. 짧은 시간 동안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도 아직 만족을 못 하다니. 그 욕심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다만.”

* * *

슬랙트라는 이름의 마법 유적을 탐험하는 계획은 차근차근 세워졌다.

탐사대는 사울 일행과 최정예 병력 십여 명. 그리고 성기사 십여 명과 데이빗이 함께 하기로 했다.

다 합쳐서 서른 명이 되지 않는 소규모의 탐사대.

인원은 많지 않지만 철저히 준비를 하느라 적잖은 준비 기간이 걸렸다.

그 기간 동안 사울은 마법 유적은 물론 그 주변 지역까지 꼼꼼히 조사했다.

하지만 지도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한정된 정보에 따르면 유적 주변은 크게 위험하지 않은 듯했다.

주변 환경이 다소 험하고 척박하여 물과 식량을 추가로 구하기 어렵지만 물품을 충분히 준비해 가면 된다.

또 유적으로 향하는 길에는 몬스터나 야수도 거의 없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유적 주변 그리고 안이다.

솔랙트를 발견한 성기사들은 유적 주변을 떠돌다 마법의 영향으로 흉포해진 몬스터의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몇 년 사이 유적의 마법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사울도 똑같은 일을 겪을 것이다.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울은 대신전에 마련된 훈련장으로 향했다.

본래는 대신전에 소속된 성기사와 병사들이 쓰는 곳이지만 양해를 받았다.

“후우.”

사울은 간단히 몸을 푼 뒤 마법 검을 집었다.

먼저 마법 검을 뽑아 몸에 익힌 검술을 되새겼다.

왕국에서도 유명한 교관들에게 훈련받은 사울의 검술은 그 자체로 뛰어났다.

마법을 쓰지 않고 검술만으로도 어지간한 적들은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일류 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

한동안 검을 휘두른 사울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거꾸로 쥐었다.

마법 검의 손잡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마법사의 마법 시전을 도와주는 마법 지팡이 역할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사울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가장 고난이도의 마법을 시전했다.

대신전을 부수면 곤란하기에 위력은 조절하면서도, 가장 세심하면서 복잡한 마법 위주로 구사해 나갔다.

때로는 순수한 마나의 폭풍이 몰아졌다.

때로는 불, 물, 바람, 땅의 4대 속성을 빌린 마법이 휘날렸다.

어느 쪽이든 상당한 경지였다.

검술이라면 일류 소리를 듣지 못하겠지만, 마법은 일류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전생부터 이어진 마법 지식과 카스텔이라는 최고 실력자의 가르침이 더해진 결과다.

“휴.”

한바탕 마음껏 날뛴 사울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마법 검을 내려놓았다.

조금 전부터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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