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82화 (82/232)

82화

사울은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을 따로 불렀다.

대신전에 도착하기 전에 정리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르멜. 피닉스라고 들어 본 적 있어?”

“피닉스라면… 불사조 아닙니까?”

“전설속의 동물이 아니라 그 이름을 쓰는 개인이나 조직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냐는 말이야.”

“들어 본 적 없습니다.”

“그렇군. 조금 전 우릴 습격한 놈들의 우두머리가 피닉스라는 이름을 댔어. 전설 속의 불사조가 직접 놈들을 부리는 게 아니라면 분명 개인이나 조직의 이름일 텐데, 왕국 정보부 소속인 너도 들어 본 적 없다는 말이지.”

“네, 어떤 형태로든 왕국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면 이름 정도는 들어 보았을 것인데…….”

우두머리 오크가 허튼소리를 한 건 아닌 것 같다.

더군다나 하얀 까마귀의 이름도 대지 않았는가.

“놈들은 하얀 까마귀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았어. 하지만 피닉스는 하얀 까마귀와는 또 다른 존재인 듯 해.”

“피닉스라는 개인이나 조직이 이번 일의 배후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두머리 오크는 그렇게 말했어. 죽기 전 지옥을 보았을 테니 거짓말을 한 건 아닐 거야.”

“지옥을 보았다면…….”

아르멜은 카스텔을 힐끔거리곤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신전에 돌아가는 대로 피닉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해. 전투 도중 주민들에게는 별 문제 없었어?”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특히 그 랄프라는 놈은 이번에야 말로 죽었다고 지껄이며 오줌까지 싸더군요. 제가 보기에 놈은 욕심 많은 겁쟁이지, 이런 일을 꾸미거나 관여할 놈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일과 상관이 없다…….”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일이 더욱 복잡해진 느낌이다.

풀린 의문보다 새로운 의문이 더욱 많아진 셈이니까.

“알았어. 일단 대신전에 도착하면 이야기를 하지. 따로 할 말은 없어?”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이 대답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 알았어요.”

곧 사울과 카스텔 단 둘만이 남았다.

“무슨 일이에요?”

“전하의 선생으로서 조금 전 전투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지 전하라고 부르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일단 카스텔은 말실수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를 마친 카스텔의 눈이 번득였다.

사울은 카스텔이 좋은 의도로 자신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챘다.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렇습니다. 조금 전 전투에서 전하, 아니 당신의 의도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사울은 카스텔이 자신을 도운 것을 책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야… 위험했겠지요.”

“네. 당신의 목숨이 위험했을 겁니다.”

“하지만 잘 풀렸잖아요?”

“그렇게 되지 못할 수도 있었지요.”

“선생님이 위험해 보여서 움직인 것이었어요.”

“저는 위험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적들의 빈틈을 찾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무리해서 마법을 시전하였지요.”

카스텔이 자신을 도운 사울을 책망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확실히 조금 전 사울은 다소 무리한 행동을 했다.

아직 익숙치도 않은 고위 마법 파이어 스톰까지 시전하며 카스텔을 돕지 않았던가.

그 때 마나를 극심하게 소비한 탓에 이후 위기에 빠진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왕자로서는 부적절한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한 사울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요, 선생님. 내가 좀 당황했어요. 선생님이 위기에 빠진 줄 알았으니까.”

“나는 그 정도의 적을 상대로 위기를 겪지 않습니다.”

“그렇지요. 선생님은 검은 마녀니까.”

이번에는 사울이 말실수를 했다.

‘검은 흉성’ 호칭은 물론 ‘검은 마녀’ 호칭도 좋아하지 않는 카스텔이다.

또 한 번 책망을 들을 각오를 한 사울이었지만, 카스텔은 책망하지 않았다.

대신 흔들리는 눈빛으로 말했다.

“부디 당신의 신분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좀 더 아끼십시오. 당신의 신변에 문제라도 생기면 나 또한 존재 가치가 사라질 것이니.”

“네?”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물론 왕자의 스승 겸 호위로서 왕자가 죽는다면 카스텔이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카스텔의 말은 그러한 뜻으로 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말처럼 들렸다.

놀란 사울이 카스텔을 다시 바라보았다.

카스텔의 눈빛은 안정을 되찾았고, 표정도 건조했다.

평소의 카스텔이었다.

‘내가 잘못 보았나.’

그런 사울에게 카스텔이 다시 말했다.

“잘한 일에는 칭찬도 해 드리겠습니다.”

“칭찬이라고요?”

“파이어 스톰 말입니다. 지금 당신의 실력과 마나로는 시전조차 어려운 마법인데 그것을 용케 실전에서 쓰셨습니다. 결과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야…….”

카스텔의 지적처럼 파이어 스톰은 아직 사울이 쓰기에는 어려운 마법이었다.

사울이 그 마법을 익힌 것도, 실전에서 쓴 것도 전생의 기억과 경험 덕분이었다.

전생에 ‘롤랜드’라는 이름을 썼을 때 필살기와 같은 마법이었으니까.

그 때의 기억과 경험이 남아 있었고, 또 최고급 마법 검을 가진 덕분에 미숙한 몸으로 무리하게나마 그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의 나는 카스텔에게 파이어 스톰을 날렸었지. 전혀 통하지 않았지만.’

전생에는 카스텔을 죽이기 위해 시전한 마법으로 이번에는 카스텔을 구하려 했다.

이보다 아이러니한 일이 또 있을까.

사울은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카스텔은 전생의 자신, 롤랜드를 기억하고 있을까.

몇 번이나 물어보려다 포기한 질문이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생님. 제 마법 때문에 다치진 않았지요?”

“미리 경고를 해 주신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경고를 하지 않았다면요?”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당신의 마법은 미숙했습니다. 경고가 없었어도 절 다치게 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군요. 혹시 선생님은 예전에 파이어 스톰을 맞아 본 적 있나요?”

곧바로 ‘롤랜드’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기에 돌려 물었다.

카스텔은 사울의 말뜻을 곧이곧대로 해석했다.

“여러 번 있습니다. 6년 전쟁 당시 적들 중 그 마법을 쓰는 자들이 몇 있었지요.”

그 ‘몇 명의 마법사’ 중에는 사울의 전생, 롤랜드도 있었다.

“혹시 그 중 기억에 남은 사람이 있나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내저었다.

“없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건 절 공격한 적은 가르시아 자매를 제외하면 모두 제게 죽었다는 것뿐.”

“…그렇군요.”

역시 카스텔은 ‘롤랜드’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전장에서 비참하게 죽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환생한 뒤에도 자신은 카스텔을 잊지 않았다.

카스텔이 자신을 죽였으니까.

하지만 카스텔에게 롤랜드는 많고 많은 적 중 한 명에 불과하지 않은가.

수많은 적들 중 한 명을 굳이 기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사울은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한 마음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래에 복수를 하려면 카스텔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쪽이 낫다.

그럼에도 사울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상할 만큼 카스텔에게도, 스스로에게도 화가 났다.

* * *

무사히 대신전에 도착한 사울은 먼저 대신관 콜리타를 만나러 갔다.

“전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고마워요.”

큰일을 겪은 사울이 예상보다 침착한 탓인지 콜리타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에셀 마을에서 악마 토끼풀이 유통되는 것을 알아냈어요. 그래서 관련자들을 잡으려 했는데 일이 커졌지요.”

사울은 마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다 들은 콜리타는 굳은 표정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큰일을 당하실 뻔 했군요. 제 불찰입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다 각오했던 일이니. 그리고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는 것 보다 이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인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끔찍한 일이 있었다.

누군가 사울 일행과 에셀 마을 주민들을 공격했고, 실패하자 자의든 타의든 모두 목숨을 끊었다.

대마법사인 카스텔마저 잘 알지 못하는 마법까지 쓰면서 말이다.

“적이 생각보다 강해서 생포하기도 어렵고, 간신히 생포해도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두들 숨을 거두는 탓에 알아낸 건 많지 않아요. 하지만 한 가지 정보는 얻어냈어요. 피닉스.”

“피닉스… 라고 하셨습니까?”

“그래요. 우릴 공격한 놈들이 죽기 전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겠지요. 혹시 피닉스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다르센 왕국과 중립 지대에 위치한 대신전의 미묘한 관계를 고려하면, 콜리타가 아는 것을 숨기거나 속일 수도 있다.

사울은 콜리타의 표정을 주시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콜리타는 한참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사울이 보기에 콜리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산 넘어 산이로군.’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울은 다시 물었다.

“그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군요.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고.”

“물론입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네. 부탁할 게 있어요. 에셀 마을 주민 중 오고스라는 자가 있더군요.”

“오고스?”

“카멜 산에서 보낸 드워프 장인이라고 하던데.”

“아. 기억납니다. 분명 카멜 산에서 친선의 의미로 그를 마을에 보내 주민들을 돕게 했지요. 이 신전에도, 다른 마을에도 그런 이종족이 여럿 있습니다.”

“그는 믿을 수 있나요?”

사울의 날카로운 질문에 콜리타의 표정에 순간 불쾌한 빛이 스쳤다.

아마도 콜리타는 오고스, 나아가 카멜 산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모양이었다.

“전하,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대신전과 카멜 산은 교단의 허락 하에 따로 협정을 맺었습니다. 서로 친선을 위해 주민들을 파견하고 중립 지대의 주민들을 돕는다는 협정이지요.”

“그 협정에 대해서는 들어 보았어요.”

“그럼 지나친 의심을 거두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나친 의심이 아니에요. 랄프라는 자에 대해 이야기 했지요? 악마 토끼풀을 팔았다는 자. 그에게 악마 토끼풀을 산 손님 중에는 카멜 산에서 온 엘프도 있었어요.”

이럴 때를 위해 사울이 숨겨 둔 이야기를 들은 콜리타는 다시 놀랐다.

“카멜 산에서 온 엘프가 악마 토끼풀을……?”

“맞아요. 물론 그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이겠지요. 하지만 카멜 산 출신 엘프가 악마 토끼풀을 사서 즐겼다면 카멜 산 출신의 누군가가 이 문제에 더욱 깊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어요. 이런 내 생각이 지나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전하 말씀대로입니다.”

사울은 미리 준비해 온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니 그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라도 나를 도와주세요.”

“어떤 도움을 원하십니까?”

“일단 오고스가 믿을 수 있는 자인지 확실히 알고 싶고, 그를 믿을 수 있다면 그를 통해 카멜 산과 접촉을 하고 싶어요.”

“카멜 산과… 대족장과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오고스에 대해서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는 믿을 수 있는 자이며, 곧 그와 만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대족장에 대한 일은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사울도 알고 있었다.

대족장 세네카의 위치는 대신관 콜리타는 물론, 왕자 사울과 비교해도 결코 아래가 아니다.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으로만 따지면 자신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지금 율렌 섬에서 세네카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단언할 수 있는 존재는 양국의 국왕뿐일 것이다.

특히나 이종족이 거주하는 중립 지대에서 세네카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세네카의 명령 하나면 대부분의 이종족들은 대신전과 관계를 끊는 건 물론, 기꺼이 적대하려 들 것이다.

때문에 세네카는 대신관인 콜리타로서도 조심스럽게 대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이해해요. 그러니 부탁하는 것이에요. 나와 대족장 사이에 다리를 놓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친서를 작성할 테니 그 친서를 전달해 주세요. 이왕이면 세네카 본인이 직접 받을 수 있도록.”

“네, 전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