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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80화 (80/232)

80화

하지만 카스텔의 정체를 밝힌다 해도 쉽게 물러날 상대 같지는 않았다

특히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망설임 없이 목숨을 끊은 자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면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싸울 결심을 굳힌 사울은 방어 진형을 갖출 것을 명령했다.

방어 진영을 갖추며 이동하니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적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마침내 사울에게도 다가오는 적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적들의 움직임은 이상할 만큼 빨랐다.

걷거나 뛰어서 이렇게 빨리 움직이기는 어렵다.

마법으로 일정 시간 빠르게 움직일 수는 있지만, 오랜 시간 마법으로 빨리 움직이는 건 웬만한 마법사에게도 어렵다.

‘말을 타고 움직이는 건가.’

그렇다면 좀 더 긴장할 필요가 있다.

적들을 후방에서 막지 못하면 피난민들이 학살당할 테니까.

썩 마음에 드는 자들은 아니지만, 학살당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저 피난민 중에는 마을에서 만났던 오크 꼬마처럼 어린이들도 여럿 있지 않은가.

가능하면 피난민들은 피를 보지 않고 일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다.

“옵니다.”

카스텔의 말과 함께 멀리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한 무리가 말을 타고 오는 것일 테다.

사울은 ‘이글 아이’ 마법으로 먼 곳을 살펴보았다.

“말을 탄 게 아니군.”

다가오는 자들을 본 사울의 첫 마디였다.

그들이 탄 것은 말이 아닌 커다란 늑대였다.

말만큼 크지는 않지만 당나귀만큼은 되어 보이는 키에 굵직한 몸통이 돋보이는 거대한 늑대.

“잿빛 늑대인가.”

사울의 말에 아이나가 놀라 물었다.

“잿빛 늑대라고 하셨습니까?”

“맞아요. 아, 그대라면 잘 알겠군요.”

사울은 순간적으로 아이나와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그 때 아이나는 자신들의 풍습에 따라 최고의 예우를 갖춰 사울을 맞이했다.

생전 처음 잡은 짐승의 생가죽을 뒤집어쓴 채로 말이다.

그때 아이나가 뒤집어쓴 건 어마어마하게 큰 늑대 가죽이었다.

보통 늑대가 아닌 몬스터로 분류되는 괴물, ‘잿빛 늑대’.

잿빛 늑대는 크고 튼튼하여 능히 사람이나 이종족을 태울 수 있지만 크고 강한 만큼 흉폭한 놈들이다.

웬만한 말보다 빠르고 강하다는 데 주목하여 ‘늑대 기병’을 양성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다르센 왕국도, 가멜다 왕국도 성공하지 못했다.

크고 흉폭한 잿빛 늑대를 수십, 수백 마리에 탄 기병을 양성해 정규군에 편입시키는 건 국가의 역량으로도 힘들었다.

결국 잿빛 늑대에 탄 ‘늑대 기병’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 극소수에 불과한 늑대 기병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중립 지대에서는 종종 늑대 기병이 나타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사울은 현생은 물론 전생 때도 늑대 기병을 본 기억이 없다.

변방 지역에서 구르며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늑대 기병만큼은 보지 못했다.

그 희귀한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적의 숫자는 대략 삼십 명 정도로 보인다.

삼십 명의 늑대 기병이라면 어중이떠중이가 만들 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상당한 인력과 재력이 없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일개 마을을 불태우고 피난민들을 추격하는 데 이 정도 전력을 투입할 정도라면, 저들을 보낸 조직의 실제 전력은 그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대체 누구지? 하얀 까마귀인가? 그도 아니면 또 다른 적들인가.’

사울은 최후방에 있던 카스텔 곁에 섰다.

적들에 대한 파악이 끝난 카스텔이 말했다.

“위험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사울을 지켜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울도 잘 알았고, 카스텔에게만 의존할 생각도 없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저들에게 알아내야 할 게 많을 것 같으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런 사울 곁에 일단의 병력이 섰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지만, 이들과 함께라면 이겨 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는 사이 늑대 기병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일단 늑대 기병 무리가 멈춘 가운데,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섰다.

“대신전인가.”

앞서 나온 건 오크였다.

사람보다 더 큰 오크도 능히 탈 만큼 유독 거대한 잿빛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똑똑히 들려왔다.

이들이 피난민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어마어마한 혼란이 일어날 것이다.

‘싸워야 한다면 어떻게든 이 자리에서 막아야겠군.’

싸우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저 늑대 기병이 일부라도 피난민들을 덮친다면 끔찍한 학살극이 벌어질 것이다.

일단 사울은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정중히 말했다.

“반갑습니다. 우리는 대신전에서 왔습니다.”

사울의 말에 오크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상하군.”

“이상하다고요?”

“견습 신관이 대표로 나서서 이야기하다니.”

“……!”

보통 오크는 머리 나쁘고 힘만 세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눈앞의 오크는 힘만 강한 녀석이 아닌 모양이었다.

견습 신관 복장을 한 사울이 모두를 대표해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사울 일행이 평범한 신관이 아님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안 오크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네놈들, 정체가 뭐냐?”

“보는 그대로입니다. 우린 대신전에서 나왔고, 모종의 이유로 에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는 중이지요.”

“보호라고?”

“네. 이젠 우리 쪽에서 질문을 할 차례인 것 같군요. 보아하니 에셀 마을에서 불이 난 것 같은데 당신들과 상관이 있습니까?”

“있다고 하면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에셀 마을은 대신전의 보호 아래에 있습니다. 그런 마을에 불을 질렀다면 이유를 불문하고 교단의 법에 의해 처벌받아야 하겠지요.”

“우릴 체포하겠다는 말인가?”

“물론입니다. 체포에 응하지 않는다면 신의 자비를 빌어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물론 사울은 저들이 체포에 응하리라 믿지 않았고, 그 생각이 옳았다.

“하나도 남기지 마라!”

더 이상 말은 필요 없다는 듯 오크가 말과 함께 손을 치켜들었다.

동시에 모든 늑대 기병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카스텔이 앞서나가며 한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눈부신 빛이 사울 일행과 늑대 기병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펑.

어마어마한 폭음이 주변을 뒤흔들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측했던 사울마저도 순간적으로나마 크게 놀랄 정도였다.

하물며 예상치 못한 자들, 특히 이성과 지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 몬스터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크아아악!”

놀란 잿빛 늑대들이 날뛰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카스텔이 다른 손을 휘둘렀다.

다시금 빛이 사울과 늑대 기병 한가운데에 꽂혔다.

이번에는 폭음 대신 어마어마한 빛이 폭발했다.

순간적이지만 해의 몇 배, 아니 몇 십 배는 되는 듯한 빛이 전방에 뿌려진 것이다.

예측하고 눈을 감거나 마법에 저항하지 못한 존재는 시력을 잃을 만큼 강렬한 빛이었다.

“으악!”

“이게 뭐야!”

“크아악!”

잿빛 늑대와 그 위에 탄 기병들이 일순간에 혼란에 빠졌다.

대부분 마나를 다를 줄 아는 자들이며, 마법에 대해 알고 저항할 수 있는 자들임에도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질 만큼 카스텔의 마법은 강렬했다.

반면에 사울 일행은 큰 피해가 없었다.

폭음에 놀라고, 빛에 눈이 부셨지만 그게 전부였다.

카스텔이 마법을 섬세하게 조절하여 영향력을 적들에게 집중시킨 결과였다.

“좋아! 모두 공격하라!”

사울의 명령에 모두들 늑대 기병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적들을 ‘체포’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전투를 끝내고 살아남은 녀석이 없을지언정 지금은 눈앞의 전투에 최선을 다해야 했다.

카스텔은 마치 자살을 각오한 사람처럼 홀로 적진 한가운데에 뛰어들었다.

물론 정말 자살을 각오한 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취한 것이었다.

적들이 혼란에 빠진 덕분에 문제없이 한가운데 뛰어든 카스텔이 양손을 펼쳤다.

카스텔을 중심으로 수십 가닥의 검푸른 빛이 뻗어 나왔다.

강력한 살기가 담긴 빛이 용서 없이 적들을 덮쳤다.

“으아악!”

순식간에 몇 명의 적과 잿빛 늑대가 쓰러졌다.

그것도 하나같이 몸에 구멍이 뚫리거나 분리된 처참한 몰골로 쓰러졌다.

하지만 카스텔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 낸 자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한 번에 여러 명을 공격하느라 위력이나 정확도가 낮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카스텔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았다는 건 그만큼 적들의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울과 병사들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적 우두머리인 오크도 외쳤다.

“저 계집은 나와 형제들이 맡는다! 나머지는 다른 적들을 공격해라!”

강적이 등장했을 때의 전략도 미리 세워둔 듯 적들의 움직임은 체계적이었다.

유독 거대한 잿빛 늑대에 탄 오크가 무기를 치켜들었다.

날카로운 추가 달린 긴 쇠사슬이었다.

오크가 머리 위로 쇠사슬을 휘둘렀다.

꽤나 두꺼운 쇠사슬에 커다란 추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 광경을 본 카스텔은 우두머리를 향해 주의를 집중했다.

우두머리 오크,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을 노리는 다른 적 몇 명.

마냥 얕볼 수는 없다.

그러는 사이 사울도 적을 맞이했다.

왕국군 한 명이 사울의 앞을 막아섰지만, 적이 탄 늑대가 풀쩍 뛰어올라 왕국군을 뛰어넘고는 그 뒤에 있던 사울을 덮쳤다.

사울도 가만있지 않았다.

재빨리 몸을 뒤로 빼며 늑대의 공격을 막은 뒤 마법 검을 휘둘렀다.

마법 검이 휘둘러진 궤적 모양대로 반투명한 바람의 칼날이 생성되어 늑대를 덮쳤다.

바람으로 적을 베는 에어 블레이드.

기본 마법이지만 빠르고 정확하게 시전할 수 있어 급박한 상황에 쓰기 좋았다.

“캬악!”

바람의 칼날에 베인 잿빛 늑대가 비명을 내질렀다.

비명을 지른 잿빛 늑대의 몸 한쪽에서 날카로운 칼자국 같은 상처를 볼 수 있었다.

사람이라면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처.

하지만 잿빛 늑대는 큰 상처를 버티고 다시 사울을 공격해 왔다.

사울 역시 다시 몸을 피했다.

두 번째 공격도 무사히 피해낸 사울은 다시금 마법 검을 치켜들었다.

무작정 강력한 마법을 쓸 여유도 없고, 쓸 수 있다고 해도 위험하다.

이미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서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사울은 자신을 노려보는 잿빛 늑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며 마법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 잿빛 늑대는 사울의 예상대로 움직였고, 어김없이 바람의 칼날에 맞았다.

“꽤액!”

조금 전보다 훨씬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바람의 칼날이 늑대의 눈 하나를 벤 것이었다.

원래는 양쪽 눈을 다 베어 버릴 생각이지만 조금 빗나갔다.

다행히 한쪽 눈을 없앤 것만으로도 원하던 결과가 나왔다.

끔찍한 고통은 물론 순식간에 시야의 절반이 사라진 충격에 잿빛 늑대는 정신줄을 놓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런 잿빛 늑대 위에 타고 있던 녀석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사울은 마법 검을 빼들어 늑대에서 떨어진 적을 찔렀다.

적은 인간이었고, 급소가 찔리고도 살아남을 재주는 없었다.

한 명의 적이 쓰러진 가운데, 미쳐 날뛰는 잿빛 늑대는 다른 사람이 맡아 주었다.

뒤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싶더니 도끼가 날아왔다.

날아온 도끼는 잿빛 늑대의 양미간에 박혔다.

도끼가 양미간에 박히자 잿빛 늑대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임무를 마친 도끼는 그대로 주인의 손에 돌아갔다.

자신을 도와준 아이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한 명을 쓰러뜨리니 곧바로 또 다른 적이 사울을 덮쳐 왔고, 맞서 싸워야 했다.

다행히 적들은 정예였지만, 대부분 비슷한 전투 스타일을 가졌다.

막강한 신체 능력을 지닌 잿빛 늑대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적을 공격하는 스타일.

그런 스타일은 잿빛 늑대의 움직임만 봉쇄할 수 있다면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사울은 이럴 때 유용한 마법을 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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