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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76화 (76/232)

76화

곧 랄프는 자신이 직접 쓴 편지를 모종의 장소에 놓고 왔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카스텔이 직접 랄프를 감시했다.

“수상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아르멜. 그가 쓴 편지도 별문제 없었지?”

“제가 보기에는 그랬습니다.”

랄프가 이쪽을 배신할 생각이면 트캇이라는 놈에게 쓴 편지에 장난질을 했을 수도 있다.

그 가능성을 우려하여 그가 쓴 편지를 철저히 살펴보았다.

편지도 이상이 없고, 랄프도 수상하게 행동하지 않았다면 남은 건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섣불리 감시하다 트캇이라는 놈이 상황을 눈치채는 것을 막기 위해 감시조차 거두고 답장만을 기다렸다.

랄프가 편지를 보내고 이틀 후.

기다리던 답장이 도착했다.

랄프가 뜯지도 않고 가져온 답장을 사울이 먼저 읽어 보았다.

편지 내용은 간단했다.

그 흔한 안부 인사 한마디 없이 거래에 대한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이틀 뒤 새벽에 물건을 가지고 찾아가겠다는 것이었다.

편지를 다 읽은 사울은 랄프에게도 편지를 보여 준 뒤 물었다.

“어때. 편지 내용에 무언가 이상한 점은 없나?”

“평소와 똑같소.”

“네가 보기에 저쪽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진 않은 것 같나?”

“편지만 보면 그렇소. 하지만 자세한 건 나도 모르오.”

“알았어. 이틀 뒤 너는 우리와 함께 간다.”

“뭐요?”

“상대가 정말 트캇이라는 놈인 지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소!”

“약속은 지킬 거다.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네가 우릴 배신하지 않으면 네가 트캇이라는 놈의 손에 죽지 않도록 지켜줄 테니까.”

“…빌어먹을.”

랄프는 ‘배신’한 트캇을 다시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을에서 그를 만나본 건 랄프 한 명뿐이다.

그를 데려가 확인을 할 필요가 있었다.

* * *

이틀 후.

사울 일행은 소수의 병력과 함께 약속 장소로 향했다.

이번 작전은 데려온 병력 중에서도 소수만 참여했다.

사울, 카스텔, 아르멜, 아이나 등 항상 함께 움직이던 4인조와 함께 데려온 왕국군 몇 명이 전부였다.

나머지 왕국군과 교단군은 모두 마을에 배치했다.

만에 하나 마을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야 했고, 많은 사람이 움직이면 들킬 가능성 역시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랄프의 말에 따르면 트캇이라는 놈도 항상 소수로만 움직인다고 했다.

짐꾼 역할을 하는 녀석과 호위병으로 보이는 녀석까지 합쳐도 다섯 명 내외라 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쪽의 전력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사울 혼자서도 모든 적들을 때려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울은 방심하지 않았다.

실전은 꼭 실력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는다.

방심한 실력자가 어이없이 죽거나 패배하는 광경은 전생에도 많이 봐 왔으니까.

사울 일행은 약속 장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몸을 숨겼다.

약속 장소는 숲 안이었고 한밤중에는 달빛조차 닿지 않아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만큼 몸을 숨기기도, 몰래 움직이기도 좋았다.

‘놈들이 멍청하게 횃불이라도 들고 온다면 바로 알 수 있겠군.’

달빛조차 닿지 않는 숲속에서는 코앞도 보기 힘들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횃불을 들거나 마법으로 광원을 만들어 시야를 확보하고 움직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 몰래 움직여야 할 트캇 일당도 그렇게 움직일까.

그렇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 정도로 멍청한 놈들일 것 같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사울은 ‘나이트 비전’ 마법을 시전했다.

밤눈을 밝혀 빛 한 점 없는 곳에서도 시야를 밝히는 마법이다.

난이도가 높은 마법은 아니지만, 마법사가 아닌 사람은 쓰기 어려운 마법이라 사울과 카스텔을 제외한 사람들은 다른 대책이 필요했다.

“자. 마십시다.”

아르멜의 말에 모두들 준비해 둔 약을 마셨다.

사울과 카스텔이 마법으로 시야를 밝혔다면, 나머지는 연금술로 만들어진 특별한 약으로 시야를 밝혔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고 아르멜이 왕국 수도에서 미리 챙겨 왔다던가.

덕분에 모두들 어둠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기척이 느껴졌다.

동시에 카스텔이 말했다.

“마나를 가진 자가 다가옵니다.”

마나에 가장 민감한 카스텔에 이어 사울도 느낄 수 있었다.

마나를 가진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분명했다.

횃불이나 마법으로 만든 불빛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적들 또한 다른 방법으로 시야를 밝힌 채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우리처럼 대책을 마련해 온 모양이군.’

마법이든 연금술이든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슨 방법으로 시야를 밝혔든, 적들 역시 만만한 녀석들은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적 중에는 마나를 다루는 자도 있지 않은가.

사울은 언제든 마법 검과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오래잖아 적들의 기척이 뚜렷이 드러났다.

아직 저쪽에서는 이쪽의 존재를 모르는 것 같았다.

보통 실력자일수록 상대의 마나를 보다 빨리 느낄 수 있다.

실력은 이쪽의 우위인 모양이었다.

일단 사울은 움직이지 않았다.

싸우는 건 적들이 최대한 다가온 뒤 해도 늦지 않다.

“준비해.”

사울의 말에 모두들 전투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이건 뭐야?”

저쪽에서 볼멘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적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저들도 이상한 낌새를 챈 모양이었다.

“제가 먼저 움직이겠습니다.”

카스텔의 말에 사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카스텔이 먼저 튀어나갔다.

“적이다!”

“젠장! 도망쳐!”

어둠 속에서 적들이 몸을 돌려 도망치려 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카스텔에 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온 몇 갈래의 빛이 화살처럼 튀어 나가 적들을 꿰뚫었다.

“으악!”

고요한 숲을 뒤흔드는 비명 소리가 신호가 된 것처럼 사울 일행도 일제히 움직였다.

먼저 사울이 하나의 마법을 시전했다.

마법으로 불을 밝히는 ‘라이트’.

기초 중의 기초 마법이지만 강하게 시전하면 어둠에 잠긴 마을 하나를 대낮처럼 밝게 만들 수도 있다.

사울은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싸움터가 될 숲 주변을 밝힐 정도는 되었다.

주변이 대낮처럼 밝아진 가운데, 적들의 모습이 보였다.

적들의 머릿수는 다섯 명.

머릿수도 이쪽이 더 많고, 이미 카스텔의 손에 두 명이 쓰러졌다.

나머지 세 명만 처리하면 된다.

누가 어떤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니 가급적 모두 살려서 붙잡을 필요가 있다.

“젠장! 죽어라!”

적들 중 한 명이 사울에게 달려들었다.

마나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자가 분명했다.

“파이어 볼트!”

사울을 노리는 적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후방에서 아군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하게 마법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 전방에서 직접 부딪치면서도 마법을 쓰는 데 능숙한 전투 마법사인 듯 했다.

사울과 흡사한 전투 스타일이었다.

사울은 거꾸로 쥔 마법 검을 휘둘러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덩어리를 쳐냈다.

검과 적이 날린 불덩어리가 부딪친 순간 약간의 충격이 느껴졌다.

적의 마법이 강했다면 검을 쥐기조차 어려울 만큼 강한 충격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충격이라면 적이 봐줬거나,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봐줬을 리는 없으니, 사울에 비하면 실력이 떨어지는 게 분명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사울은 마법 검을 뻗었다.

마법 검의 손잡이에 박힌 보석이 빛을 발했다.

사울의 공격에 적 마법사도 황급히 방어에 나섰다.

그가 낀 반지가 빛을 발하며 반투명한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그 직후 마법 검의 손잡이를 중심으로 강력한 전격이 뻗어 나왔다.

넓은 각도와 범위에 뿌려진 전격을 피하는 건 어려웠다.

막거나, 막지 못하거나 둘 뿐이다.

사울이 만들어 낸 전격과 적 마법사가 친 방어막이 충돌했다.

전격은 방어막을 파괴하지는 못했지만, 적잖은 충격을 준 것 같았다.

방어막 곳곳에 금이 간 게 보였으니까.

마법 검이 다시 빛나며 또 한 번 전격이 뿜어졌다.

조금 전과 같은 위력의 전격이 다시 한번 방어막을 강타했다.

이번에는 버티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깨졌다.

“으악!”

방어막이 깨진 충격 탓인지, 전격을 맞은 탓인지 마법사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사울은 세 번째로 전격을 날렸다.

맨몸으로 전격을 받은 마법사는 비명도 못 지르고 어둠 속에서 고개를 떨구었다.

손쉽게 마법사를 쓰러뜨린 사울의 시선에 철퇴를 들고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의 모습이 보였다.

충분히 대응할 만한 여유가 있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이나가 사울의 앞을 가로막고는 도끼를 휘둘렀다.

몇 차례 무기가 부딪친 끝에 적이 쥔 철퇴가 튕겨 나갔다.

그리고 아이나가 휘두른 도끼가 적을 강타했다.

생포가 목적이라 도끼날이 아닌 뒷면으로 가격했지만, 한 방에 적을 기절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도 제 몫을 다 했다.

무엇보다 이쪽에는 카스텔이 있었기에 전력으로는 훨씬 우위였다.

잠깐 사이에 다섯 명의 적들은 모두 쓰러져 꽁꽁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다른 자들은 없나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이 마법의 힘을 빌려 주변을 살폈다.

굉장한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이 근방에서 카스텔의 눈과 감각을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두 처리했습니다.”

“좋아요.”

사울은 쓰러진 채 묶인 다섯 명의 면면을 살폈다.

조금 전 우두머리처럼 보였던 남자가 있었다.

험악한 인상에 얼굴 곳곳에 흉터가 있는 중년의 인간.

트캇이라는 놈이 분명 이렇게 생겼다고 했다.

“이 자가 트캇인가?”

싸울 때는 숨어 있다 뒤늦게 불려 나온 랄프는 쓰러진 트캇을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대답을 한 랄프는 사울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대체 당신들은 누구요?”

처음 랄프와 만날 때와는 달리 얼굴은 드러냈지만, 신관 복장을 한 사울이 험악한 도적을 쓰러뜨렸다.

사울과 함께 있는 다른 자들 역시 놀라운 실력을 선보였다.

랄프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아직 정체를 밝힐 마음이 없던 사울은 짧게 말했다.

“신관이라고 해 두지.”

“…….”

랄프는 더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궁금증 해소보다 자신의 신변 안전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적 신원을 확인한 사울은 다시 랄프를 내보냈다.

필요하다면 랄프와 트캇을 대면시킬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일단 트캇이라는 놈과 대화를 하는 게 먼저다.

“깨워요.”

“네.”

사울의 명령에 카스텔이 마법으로 트캇을 깨웠다.

가벼운 충격에 번쩍 눈을 뜬 트캇은 묶인 채 널브러진 자신과 그런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울 일행을 발견하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빌어먹을.”

“네가 트캇인가?”

“…….”

“네가 트캇이냐고 물었다.”

트캇은 사울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침을 뱉었다.

“신관 놈들인가? 네놈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짓을 한 대가를 치를 거다.”

트캇은 신관이 자신을 공격한 것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빛의 교단, 특히 대신전에서 마을의 치안을 위해 악마 토끼풀 판매상을 공격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울도 일단 대신전을 팔기로 했다.

“대신전에서는 너희들의 행태를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대신전 나으리들이 날 붙잡았다?”

“그런 거지.”

“망할. 랄프! 랄프, 이 개자식!”

사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트캇은 랄프의 배신을 눈치챘다.

마을에서 그와 유일하게 거래를 하는 사람이었으니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네 생각대로 랄프는 이미 우리 휘하에 있고, 모두 불었다. 또한 마을에서 네 물건을 구입한 사람들도 모두 확보되었지.”

“그래서?”

“네 장사는 끝났다. 선처받고 싶다면 우리에게 협조해라.”

랄프가 그렇듯 이 트캇이라는 자도 악의 근원은 아니다.

이런 조무래기를 잡으러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니 가능한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다소 과격하게라도 협조를 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트캇은 사울에게 협조할 마음이 전혀 없는 듯 했다.

“멍청한 놈들.”

“뭐라고?”

“대신전 놈들이라고? 너희는 지금 엄청난 실수를 한 거다.”

“무슨 소리지?”

“우릴 잡아서 무언가를 캐내려 해 보았자…….”

그 때 카스텔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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