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75화 (75/232)

75화

곧 카스텔이 제나엘을 데리고 갔다.

그 광경을 지켜본 랄프가 놀라 물었다.

“제나엘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걱정 마라. 너도, 제나엘도 죽이려는 건 아니니까.”

“…….”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너와 네 손님에게 많은 호의를 베풀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벌써 대신전의 법에 따라 죽거나 갇혔겠지. 만일 너희들이 허튼 짓을 한다면 우리도 그대로 갚아 줄 것이다.”

“아, 알겠소.”

“좋아. 그럼 다른 것들을 물어보지.”

사울은 일단 에셀 마을에 있는 악마 토끼풀 구매자들을 알아냈다.

정기적으로, 혹은 가끔 구입하는 자들을 합치면 총 열 명 정도 되었다.

그리고 판매자는 랄프 한 명이며, 트캇이라는 가명을 쓰는 놈에게서 악마 토끼풀을 공급받는다는 정보도 알아냈다.

모든 정보를 정리한 사울은 일단 랄프를 감금했다.

그러는 사이 카스텔도 정보를 모아 왔다.

“알아낼 것은 모두 알아냈습니다.”

“어떻던가요?”

“그는 카멜 산 출신이며, 세네카와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대족장 세네카와 만난 적 있는 사이라고요?”

“네. 그의 밑에서 일을 한 적도 있는 모양입니다.”

율렌 섬 이종족들의 정점에 선 자라고 할 수 있는 대족장 세네카와 만난 적 있고, 그의 밑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것만으로도 꽤나 거물이라 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인물이 어쩌다 이런 벽지에서 악마 토끼풀 중독자가 된 건가요?”

“카멜 산에서 악마 토끼풀을 접했다 쫓겨난 것 같습니다.”

“카멜 산에도 악마 토끼풀 문제가 있나요?”

“하얀 까마귀가 그쪽에도 손을 뻗친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새삼 사울은 킬리안 비셔스의 영향력을 실감했다.

놈의 마수는 다르센 왕국, 가멜다 왕국, 심지어 이종족들이 모인 카멜 산에까지 뻗쳐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악의 축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가.

“분명 카멜 산에서도 악마 토끼풀을 금하고 있지요?”

“네. 대족장 세네카가 직접 엄금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족장이 직접 금지시켰는데도 악마 토끼풀이 퍼졌다라. 그도 꽤 골치 아프겠어요.”

사울은 도적이나 범죄자 몇을 처리하기 위해 이 지역에 온 게 아니다.

보다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이종족 문제를 처리하고, 다르센 왕국에 도움이 되도록 하러 왔다.

그를 위해서는 작은 문제도 소홀히 할 수 없지만, 좀 더 큰 숲을 보아야 한다.

“어쩌면 카멜 산 쪽에 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카멜 산 말입니까?”

“그래요. 대족장 세네카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면, 그와 한 번쯤 만나 볼 가치가 있지 않겠어요?”

“…….”

카스텔이 입을 닫았다.

사울의 의견에 대해서, 나아가 대족장 세네카에 대해 할 말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사실 사울 본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멜 산에 가 본적도 없고, 대족장 세네카를 만나 본 적은 더더욱 없다.

책으로 보고 소문으로 들은 건 있지만 사실상 그게 전부다.

‘이제 그쪽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또 접촉할 필요가 있겠어.’

악마 토끼풀 문제.

어둠의 세력에 대한 문제.

그리고 이종족 그 자체의 문제.

어떤 문제든 대족장 세네카의 협조를 받아 낼 수 있다면 일이 훨씬 쉽게 풀릴 것이다.

문제는 세네카가 왕자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

‘감히 왕자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같은 논리가 통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세네카의 말 한마디면 중립을 지키고 있는 율렌 섬의 이종족 대부분이 다르센 왕국이나 가멜다 왕국에 붙을 수도 있다.

그만큼 세네카는 현재 두 나라의 상황은 물론, 삼백 년 전쟁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 변수가 다르센 왕국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공을 세운 셈이다.

반대로 변수가 부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사울이 져야 할 책임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바로 세네카를 만난다는 건 아니에요. 그는 나로서도, 심지어 아바마마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물이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세네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나요?”

“그와 만나 본 적도, 얽힌 적도 없습니다. 다만…….”

“다만?”

“어쩌면 그는 저보다 강할 지도 모릅니다.”

“…….”

카스텔은 율렌 섬에서도 손꼽히는 강자다.

물론 카스텔 외에도 최강이라 불리는 강자가 몇 있지만, 그들 누구도 카스텔보다 강하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카스텔에게 패배를 안겨 준 가르시아 남매라 해도 말이다.

그런 카스텔이 직접 만나 보지도 않은 세네카를 자신보다 강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세네카를 만나는 일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아군이 된다면 정말 든든하겠지만, 혹여나 일이 잘못되면 감당할 수 없는 강적을 만드는 셈이니.

“알겠어요. 지금은 세네카보다는 당면한 일에 집중하도록 해요.”

결정한 사울은 재빨리 움직였다.

일단 랄프가 말한 구매자들에 대해 알아보았다.

조사 결과 모두들 악마 토끼풀 구매자가 틀림없었다.

“일단 이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그 다음 마을 촌장과 신관을 찾아 이야기를 해요.”

사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카스텔과 아르멜이 전처럼 악마 토끼풀 관련자들을 잡아다 감금시켰다.

오래 끌 일은 아니다.

작은 마을이니 어차피 머잖아 주민 모두가 알게 될 것이다.

사울은 악마 토끼풀 구매자들을 모두 잡아들인 직후 신전에서 신관 사라, 그리고 마을의 우두머리인 촌장과 만났다.

더 이상 정체를 숨길 필요는 없어 슬슬 투구도 벗기로 했다.

“아니, 무슨 일이오?”

마을 주민 중 사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아는 건 신관 사라뿐이다.

따라서 촌장은 사울은 그저 대신전에서 온 견습 신관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런 사울이 무서운 기세로 자신을 찾아오자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사울은 촌장에게 말했다.

“이 마을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심각한 일?”

여전히 사울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촌장으로서는 갑자기 견습 신관이 자기를 불러내 딱딱거리는 꼴이었다.

사울은 촌장이 상황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반항적으로 나오면 좀 더 강하게 나설 생각이었다.

다행히 촌장은 무언가 눈치를 챈 모양이었다.

겉으로는 ‘어린 견습 신관’으로만 보이는 사울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했으니까.

필요 이상으로 촌장을 위협할 필요가 없어진 사울은 조금 태도를 누그러뜨렸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어요. 먼저 나 자신은, 나아가 대신전에서는 이번 일에 촌장이 관여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촌장이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는다면 촌장 역시 이 일에 관여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 마을에서 악마 토끼풀을 사고파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촌장은 악마 토끼풀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 마을에 악마 토끼풀이라니!”

“촌장은 정말 모르는 일인가요?”

“모르다마다! 병이 나거나 다친 주민이 쓸 것도 없는데…….”

“촌장이 몰랐다는 사실은 믿도록 하지요. 하지만 악마 토끼풀이 거래된 건 사실이에요.”

“아무래도 믿기 힘들군. 근거가 있는 말이요?”

“네. 랄프라는 마을 주민에 대해 아시지요?”

“랄프? 그야 알고 있지. 좀 게을러도 일을 할 때는 잘하는 녀석이니.”

“그 일을 잘하는 주민이 악마 토끼풀을 팔았어요. 외부 세력과 접촉해서 들여오고, 십여 명의 마을 주민이 그것을 구입했지요. 지금껏 당신이 모를 정도면 꽤 치밀하게 거래를 해 온 모양이에요.”

놀란 촌장의 시선이 사라 쪽을 향했다.

이미 언질을 들은 사라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촌장은 더욱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나, 난 정말 모르오.”

“촌장을 믿지 않았다면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대신전에서 촌장의 말을 믿을지 모르겠군요.”

“대, 대신전에서?”

비로소 촌장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일단 사울은 하얀 까마귀나 어둠의 세력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나도 대신전도 아직 촌장에 대한 신뢰를 거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당신이 계속 실망스럽게 행동한다면 신뢰를 거둘 수밖에 없겠지요.”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오!”

“나는 촌장을 믿어요. 하지만 당신의 결백은 스스로 증명해야 해요.”

“어떻게 말이오?”

“지금부터 마을을 봉쇄하고 아무도 나가지 못하도록 할 거예요. 악마 토끼풀을 사고판 자들은 모두 잡아 가뒀지만, 좀 더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니까.”

단호한 사울의 표정에 촌장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나나 우리 마을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일을…….”

“촌장이나 죄 없는 주민들은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저 이 마을에 잘못한 자들이 여럿 있고, 촌장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

“…알겠소. 돕도록 하리다.”

“고마워요. 지금 이 시간부터 마을 안팎으로 누구도 드나들지 못하도록 하세요. 머잖아 마을 밖이 시끄러워질지도 모르니.”

“마을이 시끄러워진다니?”

“마을 주민들에게 악마 토끼풀을 판 악의 근원을 잡아야 하니까요.”

사울은 자신이 구상한 작전을 조금 일러 주었다.

만에 하나 촌장이 배신할 가능성을 생각하여 다 알려 주지는 않았지만, 피난민 출신인 촌장은 사울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알겠소. 그럼 우리들은 쥐 죽은 듯 숨어 있기만 하면 되는 거요?”

“네. 하지만 만에 하나 작전 중 마을 안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니 그 부분에 주의해 주세요.”

“알겠소.”

촌장에게 잘 일러둔 사울은 사라에게도 말했다.

“조심하세요. 언제 어디서 어둠의 세력이 나타날지 몰라요.”

“네. 촌장님과 함께 마을을 철저히 관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후 일에 대한 준비도 해야겠군요.”

“부탁해요.”

마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대충 다했다.

이제 남은 건 외부의 적을 처리하는 일이다.

* * *

악마 토끼풀 판매자인 랄프는 ‘트캇’이라는 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직접 작성한 편지를 마을 밖에 숨겨 두면, 이후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저쪽에서 답장을 보내고 이후 거래를 하는 방식이었다.

문제의 편지 교환 순간을 철저히 감시하고, 나아가 현장을 덮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사울의 의견에 아르멜이 반대했다.

“좋지 못한 방법입니다.”

“어째서?”

“트캇이라는 자는 아마도 편지 교환 같은 사소한 일은 직접 하지 않고 하수인을 보낼 겁니다. 일이 잘못되면 하수인만 잡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하수인을 먼저 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놈을 잡아서 정보를 얻을 수 있잖아.”

사울의 시선이 카스텔 쪽을 향했다.

그게 누구든 일단 붙잡기만 하면 정보는 거의 확실히 얻어 낼 수 있다.

상대가 악마 토끼풀을 파는 도적이라면 다소 가혹한 일을 해도 양심에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그런데 사울의 시선을 받은 카스텔도 아르멜 편을 들었다.

“작은 물고기를 잡기 위해 큰 물고기를 잡을 기회를 놓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선생님도 아르멜 생각에 찬성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흐음…….”

정보 전문가인 아르멜과 이 자리에서 누구보다 실전 경험이 풍부한 카스텔의 의견이 모아졌다.

이 정도면 자신의 의견을 꺾을 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알았어요. 그럼 놈들의 편지를 확보하기로 해요.”

“편지 교환 역시 랄프를 직접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가능한 저쪽에서 상황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곧 랄프가 사울에게 불려 왔고, 사울은 그에게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이미 너는 우리 편을 들기로 했고, 트캇이라는 놈을 배신했지.”

“그, 그렇소.”

“내가 트캇이라면 한 번 배신한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을 거야. 오히려 기회가 되는 대로 배신자를 죽여 버리겠지. 가능한 고통스럽게. 내 말뜻 알아듣겠지?”

“무, 물론이오.”

“그럼 다녀와. 네가 살 길은 우리에게 협조하는 것뿐임을 잊지 말고. 네가 약속을 지키면 나 또한 약속을 꼭 지킬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