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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51화 (51/232)

51화

“전하, 괜찮으십니까?”

원군을 끌고 온 기사가 사울의 안위를 물었다.

사울은 지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다치지는 않았다.”

“정말 다행입니다. 전하.”

“그대들 덕분에 위험을 넘겼다. 이 공은 잊지 않겠다.”

먼저 사울은 자기 몸 상태부터 점검해 보았다.

몸을 신경 쓰지 않고 싸웠지만,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주변에서도 다쳤다고 걱정하는 말이 없는 것을 보아 마나를 크게 소모해 부작용이 온 것 외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이리라.

자신의 상태를 살핀 사울은 이어 측근들의 상태도 살폈다.

“아이나. 다친 곳은 없나요?”

“네, 전하. 괜찮습니다.”

“다행이군요. 아르멜?”

“저도 괜찮습니다.”

아이나는 본인 말처럼 괜찮아 보였지만 아르멜은 그렇지 않았다.

한쪽 다리의 갑옷 일부가 잘려 나가고 피가 흘러 굳은 자국이 보였다.

사울은 아르멜에게 명령했다.

“적들이 더 이상 공격해 오지는 않을 거야. 치료부터 받도록 해.”

“네. 전하.”

두 측근의 상태까지 확인한 사울은 전장을 돌아보았다.

곳곳에 쓰러진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군 피해는?”

한 기사가 보고했다.

“사상자가 50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적들 피해는?”

“죽거나 부상을 입은 자들이 5명 정도입니다.”

“5명이라.”

전장에서 아무도 죽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군이 50명 죽거나 다칠 때, 적은 5명만 죽거나 다쳤다는 건 듣기 좋은 소식이 아니다.

더군다나 왕자인 자신까지 목숨을 위협 당하지 않았는가.

그야말로 깡패 놈들에게 한 방 단단히 먹은 셈이다.

“전하. 지금까지 싸운 병력들은 쉬게 하고 후방 병력을 동원해 놈들을 쫓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도망친 놈들은 소수입니다. 병력을 몰아 놈들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이 토벌전을 끝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사들이 사울에게 권했다.

사울도 나쁜 생각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친 킬리안과 부하들의 숫자를 합쳐야 대여섯 명에 불과한 것이다.

그들도 한바탕 날뛰느라 지쳤을 테니 아직 쌩쌩한 병력을 몰고 가 포위하면 끝장을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언뜻 생각하면 적들이 사울을 해치지 못하고 도망간 지금이야 말로 반격의 기회 같았다.

하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만일 놈들이 거기까지 생각했다면…….’

킬리안 일행은 빠르고 치밀하게 도망쳤다.

그것은 분명 준비된 자들의 후퇴 방식이었다.

이 후퇴가 준비되었다면, 추격에 대한 예상도 하지 않았겠는가.

‘서둘러 움직이는 건 오히려 놈들의 함정에 빠질 수도 있어.’

사울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부하가 있는지 살폈다.

나이 어리고 경험도 적은 것으로 되어 있는 자신이 기사들의 의견을 직접 반박하기 보다는, 자기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반박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기다리던 사람이 나타났다.

“저는 반대입니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돌아온 아르멜이었다.

“반대라니? 지금이야 말로 추적의 적기가 아니오?”

“놈들은 철저히 준비하고 이번 공격을 했습니다. 그 정도로 준비가 철저한 놈들이라면 아마 실패하고 도망칠 때의 대비 역시 철저히 했을 겁니다.

아르멜의 말에 몇몇 기사들이 동의했다.

대부분 조금 전 직접 싸워 본 기사들이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놈들의 공격은 날카로웠고 후퇴할 때도 질서가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피해가 적지 않은데 또 한 번 함정에라도 빠진다면 큰일입니다.”

아이나 역시 아르멜의 말에 찬동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섣불리 추격하다 함정에 빠지면 아군을 잃는 것은 물론 전하의 신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신중하게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듣고 있던 사울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럼 추격은 하되 그들을 직접 잡는 게 아니라 그들의 행선지를 쫓는 데 집중하는 정도로 하면 되겠군. 다른 의견 있나?”

‘신중한 추격론’에 반대하는 기사는 없었다.

사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했다.

“그럼 철저히 준비하고 병력을 편성하여 출동하도록 해.”

“네, 전하.”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다.

사울은 늦게나마 잠을 청하기 위해 자신의 천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얼른 잠이 오진 않았다.

‘킬리안 비셔스…….’

말로만 듣던 킬리안의 실력은 정말 대단했다.

물론 카스텔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의 실력자는 왕국 수도에서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실력자가 고작 도적 두목 노릇이나 하고 있다니.

“정말 실력이 아깝군.”

유능한 부하들을 찾고 있는 사울이라 더더욱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킬리안을 자신의 편으로 맞아들일 생각은 없다.

킬리안의 죄는 한도를 넘었다.

놈이 지은 죄는 오직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으니까.

오늘은 어떻게 강적과 싸워 살아남았다.

자신이 잘해서 살아남았는가?

그렇다고 할 수도 있다.

최선을 다했고 그 결과로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동시에 아직 스스로가 미숙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킬리안 비셔스… 내가 보다 강해지기 위한 산제물이 되어 줘야겠어.’

이번 토벌전에서 반드시 제거한다.

사울은 새삼 결심을 굳혔다.

* * *

토벌군에서 백 명 정도의 기병이 차출되어 킬리안 추격에 나섰다.

토벌군의 기병 병력을 모두 합쳐도 삼백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기에 백 명의 기병은 상당한 전력이었다.

“전하의 명령이다. 적들을 추적하되 그들을 붙잡기보다는 그들의 행로를 알아내는 데 집중하라.”

“그들의 움직임을 찾아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이다. 킬리안은 위험한 놈이니 지나치게 욕심내지 마라!”

사울이 내린 명령은 기사들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명령은 틀림없이 전달되었고, 잘 따르는 자들이 대다수였지만 사울과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 * *

“놈들의 흔적입니다!”

킬리안을 추격하던 한 병사가 적의 흔적을 찾아냈다.

도중에 말을 버리고 빠르고 은밀하게 사라진 탓에 흔적을 찾기 어려웠지만, 용케 찾아낸 것이다.

“돌아가 보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추격군을 이끌고 있던 기사는 생각이 달랐다.

“이대로 쫓는다.”

“네?”

“놈들을 잡을 수 있으면 잡고, 잡지 못할 것 같으면 그 때 후퇴해도 늦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받은 명령은…….”

“어린 왕자께서 전장에 대해 뭘 얼마나 알겠나! 적의 수괴가 약해졌을 때 목을 치는 게 낫다. 계속 추격한다!”

기사의 우격다짐에 휘하 병력들도 별수 없이 킬리안을 쫓았다.

얼마나 쫓았을까.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는 하늘 아래 무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기사는 본능적으로 적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킬리안이다!”

후퇴하는 킬리안을 본 기사의 눈이 번득였다.

킬리안에게 걸린 현상금은 어마어마하다.

현상금도 현상금이거니와 그를 잡기만 하면 지위 또한 단숨에 상승할 터.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기회였다.

“쫓아라!”

기사는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휘하 병력도 별수 없이 기사를 따라 킬리안을 쫓았다.

킬리안 일행은 뛰어서 도주하고, 추격군은 말을 타고 쫓으니 둘 사이의 거리는 금방 좁혀졌다.

문득 킬리안이 고개를 돌렸다.

먼 거리였지만, 킬리안과 추격군 기사의 눈이 마주쳤다.

씨익.

킬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추격하던 기사는 그 미소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상대가 킬리안이라는 사실 에 정신 팔려 말에 더욱 박차를 가할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멀리서 아련히 휘파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는 그 소리의 정체가 활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살면서 마지막으로 들은 소리였다.

“끅!”

단말마와 함께 기사가 말에서 떨어졌다.

다른 추격군이 놀라는 찰나, 다시금 바람 소리가 울렸다.

이번에는 두 명이 한꺼번에 말에서 떨어졌다.

세 번째 바람 소리가 울리고, 또 다시 두 명이 말에서 떨어졌다.

방향만 가늠할 수 있을 뿐 누가 어디서 활을 쐈는지 자세히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예상치 못한 저격에 기사를 잃은 병사들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후, 후퇴하라!”

누군가의 외침에 병사들은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추격군 모두가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한 명의 추가 희생자를 제외하고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 * *

여유롭게 자신을 쫓던 추격군이 죽어 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킬리안이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솜씨는 여전하군.”

옆에 있던 칼립소도 고개를 끄덕였다.

“활질 하나는 잘하는 녀석이니까요.”

킬리안 일행은 다시 이동했다.

점점 밝아지는 하늘 아래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예상대로의 광경이 보였다.

하얀 까마귀의 2인자이자 책사 제온이 자신의 키보다도 더 큰 활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제온 곁에는 최정예 부하들이 몇 따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두목.”

“수고했다. 네 활 솜씨는 여전하군.”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제온은 하얀 까마귀의 2인자이자 책사인 동시에, 자기의 키보다도 더 큰 장궁을 능숙히 다루는 저격수이기도 했다.

잘 만들어진데다 마법으로 단련된 장궁에 마나의 힘을 더해 쏘는 제온의 활 솜씨는 500m 이상 떨어진 상대의 머리를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을 만큼 엄청났다.

지금 죽어 나자빠진 추격자들은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른 채 목숨을 내주었으리라.

“야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자의 얼굴은 보았다.”

“그러셨군요. 다행입니다.”

킬리안의 말뜻을 알아듣고도 다행이라 하는 제온에게 칼립소가 한마디 했다.

“왕자 놈을 죽이거나 병신으로 만들지도 못했는데 뭐가 다행이야?”

“왕자를 그렇게 해코지 했다면 우리 모두가 죽을 때까지 추격당했을 테니까. 이대로 그 왕자가 겁을 먹고 후퇴하거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토벌군 역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할 거야.”

제온의 말에 킬리안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어째서입니까?”

“그 왕자 놈. 꼬맹이 주제에 만만찮아 보이더군. 날 상대로 조금이나마 버틸 정도의 실력도 가지고 있고.”

“두목을 상대로… 그렇다면 얕볼 수 없겠군요.”

“그래. 그놈은 포기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오늘 밤 같은 야습은 하기 어렵겠지. 아마도 이번 싸움은 꽤나 길어질 것 같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예정대로 움직이겠습니다.”

“음.”

제온까지 합류한 킬리안 일행은 아직 완전히 밝아지지 않은 하늘 아래 몸을 숨긴 채 움직였다.

* * *

하늘이 밝아진 뒤에야 잠든 사울은 세 시간도 자지 못하고 다시 눈을 떴다.

다급한 보고가 왔기에 불평할 수도 없었다.

“추격군들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네, 전하.”

“적의 반격을 받을 수 있으니 가까이 추격하지는 말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래도 기사가 공을 세우려는 마음에 행동이 앞선 모양입니다.”

아르멜의 짧은 보고만으로도 사울은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공을 세우려다 자신과 부하들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장교나 기사, 장군이 얼마나 흔한지 전생에 질리도록 겪어 보았으니까.

“그 장교에게 군법을 시행해야겠군.”

“아쉽게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자리에서 전사했나?”

“네, 전하. 명령을 내린 기사 본인은 전사했고 병사들도 몇 전사했습니다.”

“책임자가 이미 죽었다면 할 수 없지. 병사들까지 굳이 벌줄 것은 없어. 그들은 명령에 따른 것일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전하.”

보고를 마친 아르멜이 천막을 나섰다.

수면이 부족했지만, 더 이상 자기 틀렸다.

사울은 아침 준비를 하면서 생각했다.

‘역시 전쟁이라는 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군.’

왕자가 내린 명령을 일개 기사가 거부해서 피해가 생길 줄이야.

하지만 이런 일도 종종 발생하는 곳이 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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