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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46화 (46/232)

46화

곧 세 명이 함께 간부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방심하지 마라! 놈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킬리안의 목을 베거나 사로잡기 전까지 이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아르멜과 아이나가 앞장서 독려하니 순식간에 선봉 부대의 군기가 바로잡혔다.

모른 척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울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군대는 군기가 잘 잡혀야 해.’

군기를 잘 잡아 놓으면 변수가 등장해도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는다.

사울은 때때로 독려도 해 줘야겠다고 다짐하며 주변을 계속 살폈다.

어느덧 저 멀리 인공적인 구조물 같은 게 보였다.

사울은 먼 곳을 바라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며 안간힘을 쓰는 대신 마법 검을 꺼내 들었다.

곧 마법 검 손잡이 보석이 빛나며 마법이 시전되었다.

이글 아이.

일시적으로 시력을 크게 높여 주는 마법.

먼 곳을 살펴보거나 혹은 아주 작은 무언가를 관찰할 필요가 있을 때 유용한 마법이다.

이 몸으로는 써 본적 없었지만 전생 때 여러 번 써 본 마법이다.

덕분에 실패하지 않았고, 먼 곳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형체만 간신히 보일 만큼 먼 거리라 마법으로 시력을 높여도 한계가 있었다.

“아르멜.”

“네, 전하.”

“저 하얀 까마귀의 본거지 쪽에서 무언가 바삐 움직이는 것 같아.”

“어떤 움직임 말입니까?”

“그것까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활발히 움직이는 것만은 분명해.”

카스텔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저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단체로 본거지를 떠나던가, 아니면 우리의 존재를 알고 모두 함께 싸울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음… 제가 보기에는 후퇴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같아.”

사울은 자신과 카스텔이 지금 선봉 부대에 있다는 사실이 하얀 까마귀에 알려졌음을 파악했다.

지금 자신이 있는 선봉 부대의 병력만으로도 아군 전력이 더 우세하다.

뒤따라오고 있는 중군까지 합세하면 이쪽의 전력이 두 배 이상이다.

거기에다 카스텔 같은 절대적인 실력자까지 있다.

킬리안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정면 대결을 피할 것이다.

“저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조심하라고 해.”

“네, 전하.”

사울의 명령이 선봉 부대에 전달되고 오래잖아 또 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이번에는 굳이 마법을 쓰고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펑. 펑.

멀리서 아득히 들려오는 폭발음에 사울은 마법을 쓸 것도 없이 소리의 근원이 하얀 까마귀의 본부임을 알았다.

분명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다.

폭발 마법이나 아니면 기름통 같은 데 불이 붙은 것이리라.

사울의 생각을 증명하듯 하얀 까마귀의 본거지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펑펑거리는 소리와 피어오르는 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분명했다.

“자신들의 본부를 태워 버리는 건가.”

하얀 까마귀에서 자신들의 본부를 화려하게 터뜨렸다는 건 가치 있는 것을 다 챙겼으니 이제 도망가겠다는 것이다.

사울은 다시금 아르멜을 통해 명령을 내렸다.

“진군 속도를 조금 높이는 게 좋겠어. 경계는 유지하고.”

“네, 전하.”

“그리고 저들이 도망칠 것을 대비해 중군 쪽에도 알려. 병력을 산개해서 놈들을 포위하거나 최소한 빨리 뒤쫓을 수 있도록.”

사울의 말에 아르멜은 조금 놀랐다.

본인이 그렇게 움직이는 게 좋겠다고 진언하려 했는데, 어린 왕자님이 한발 앞서 말을 꺼냈다.

‘전하는 마법뿐만이 아니라 군사학도 많이 배웠나보군. 실전 경험도 없다고 들었는데 여기까지 생각하실 줄이야.’

내심 감탄하면서도 아르멜은 지체 없이 사울의 명령을 전달했다.

경계를 풀지 않은 가운데 진군 속도가 높아졌다.

본거지와 가까워질수록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역시 도망치려고 하는군.”

다시 한 번 이글 아이 마법으로 적들을 살핀 사울이 중얼거렸다.

좀 더 뚜렷이 보이는 적들의 움직임은 분명 맞서 싸우려는 자들이 아닌 도망치려는 자들의 행동이었다.

도망친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무작정 쫓았다가는 무슨 함정에 걸려들지 모른다.

이럴 때 상대방의 의도를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급하게 움직이면 실수할 수 있다.

중군에 지원 요청도 해 놓았으니 서두르지 않고 면밀하게 움직여 실수 없이 토벌을 끝내자는 게 사울의 생각이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었다.

“전하, 좀 더 서두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조언을 한 것은 영주군 소속 기사였다.

선봉 부대에서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리 자기 지위가 높아도 부하들을 마구잡이로 대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니다.

특히 전장에서는 중간 간부와 병사 양쪽 사이에서 저울질을 잘 해야 좋은 리더라 할 수 있다.

대장이 중간 간부, 혹은 병사들 중 한쪽 편만 들어 분열이 일어나면 싸우기도 전에 무너지는 끔찍한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전생에 ‘중간 간부’ 입장에서 그러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어 본 사울은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서둘러서 빨리 추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그렇습니다. 전하. 허락하신다면 지금이라도…….”

“하지만 킬리안은 영악한 놈이야. 휘하에 실력 있는 악당들도 적지 않고. 물론 그대나 아군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가능한 피해를 줄이는 게 좋지 않겠어?”

“저희들의 안위를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역시 서두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저들이 함정을 팠다면?”

“책임지고 그 함정을 피하거나 메워 버리고 놈들을 쫓겠습니다.”

지금 사울과 말하는 기사는 말하자면 대표로 나선 입장이다.

눈치를 보니 이 기사처럼 좀 더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여럿 있는 듯 했다.

빨리 공을 세우고 싶다는 뜻이리라.

군대는 체스 말처럼 감정도 없고 언제나 명령을 잘 따르는 존재가 아니다.

병사부터 장교까지 모두들 살아 있고 각각 욕망도 있는 존재들이다.

그 욕망을 무시하면 뜻밖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공을 세울 기회를 원한다면 줘 볼까.’

생각을 정리한 사울이 말했다.

“좋아. 대신 적들이 함정을 팠을 경우를 대비하여 최정예를 이끌고 가도록.”

“네, 전하!”

사울은 실력 있는 병력과 기사들을 뽑아 먼저 보냈다.

그리고는 따로 아르멜에게 명령했다.

“언제든지 전군이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준비해.”

“네, 전하.”

선봉 부대가 둘로 나누어진 가운데, 선발대가 먼저 본거지로 접근했다.

후발대에 있던 사울은 휘하의 무리와 함께 후발대 앞에 나섰다.

무언가가 벌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실력자들이 가까이 있어야 빠르게 수습할 수 있다.

예측하고 있는 위험은 감수할 만하다.

긴장하며 주변을 둘러보던 사울의 눈에 불타는 본거지가 보였다.

언뜻 보기에는 불이 피어오르는 텅 빈 폐허로만 보였다.

선발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잘 보이지도 않잖아!”

“불을 끄고 놈들의 흔적을 찾아라! 서둘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거지에 남아 싸우는 건 싸우다 죽겠다는 뜻이다.

보통 나쁜 놈일수록 자기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법이기에 의아한 일이었다.

해답은 곧 나왔다.

불길과 연기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 것이다.

“뭐냐?”

“적이다!”

곳곳에서 불길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누군가 튀어 나왔다.

혼자서, 혹은 몇 명이 무리 지어 튀어나온 적들이 기습적으로 토벌군을 덮쳤다.

급습을 받은 토벌군 선두에서는 즉각 방어에 나섰다.

가려 뽑은 정예들답게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거나 전열을 붕괴시키지 않고 진형을 유지한 채로 움직였다.

단단한 갑옷과 방패를 입은 전사와 기사들이 앞을 가로막고, 그 뒤에 마법사들이 지원하는 전형적인 진형이었다.

“크아아악!”

적들은 사람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왔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 무리를 이뤄 망치나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오는 모습은 사람이라기보다는 굶주린 들짐승 같았다.

“저 놈들은 뭐야?”

“미친놈들 같은데, 방심하지 마라!”

본능적인 위기감을 느낀 병력들은 방어 태세를 단단히 하며 적들을 맞이했다.

아군의 보호를 받으며 마법사들이 공격에 나섰다.

“파이어 볼트!”

“아이스 스피어!”

마법사들이 외치는 시동어와 함께 여러 마법이 적들에게 날아갔다.

제대로 맞추기만 하면 하나같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공격들이었다.

정예 마법사들이 시전하는 마법 공격은 상당히 정확했다.

더러 빗나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적들에게 명중했다.

그런데 적의 반응이 예상외였다.

머리에 마법을 맞고 즉사한 자들은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다른 곳에 마법을 맞은 자들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다.

뜨거운 불이나 날카로운 얼음이 팔다리를 관통하면 끔찍한 고통 속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게 보통인데 말이다.

“뭐, 뭐야. 이놈들?”

“으아악!”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모습에 몇몇이 위축되어 밀리거나 공격에 당해 쓰러졌다.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사울도 이글 아이로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심상치 않군.”

이글 아이를 쓸 줄 모르는 아이나가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적들이 정상이 아니에요.”

“네?”

“우리가 도와야겠어요. 모두들, 선발대를 돕도록!”

사울의 명령에 사울과 주변 병력이 선발대를 지원하려 나섰다.

다행히 선발대의 피해는 크지 않았다.

뜻밖의 상황에 사상자가 몇 나왔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진형을 유지했다.

진형이 유지되는 한 적들을 제압하지는 못해도 물러서지 않고 막을 수 있다.

그런 가운데 사울이 이끄는 부대가 도착했다.

무언가에 취한 듯 정신없이 공격하던 적들은 사울의 존재를 감지하고는 약속이나 한 듯 몸을 돌렸다.

“……!”

멀지 않은 곳에서 적들의 눈빛을 본 사울은 깨달았다.

광견병에 걸린 개를 보는 듯 광기 어린 눈빛.

저 수십 명의 인간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전장에서는 구할 방법도 없다.

적들을 구하느라 아군의 피해를 키울 수는 없으니까.

사울은 냉정하지만 최선책을 택했다.

“모두 베어라. 벤 뒤 조사한다.”

합리적인 사울의 명령에 아무도 토를 달지 않고 움직였다.

정예 병력과 미친개처럼 움직이는 적들이 충돌했다.

“모조리 베어라!”

“크아악!”

적들의 기세가 무서웠지만 이쪽의 기세도 꺾이지 않았고, 병력도 더 많다.

지금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전하. 무언가 옵니다.”

카스텔의 말이 떨어지고, 사울 역시 그녀가 느낀 것을 감지했다.

폐허 속에서 또 한 무리의 적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허름한 차림에 광기 어린 눈빛.

무기라기보다는 연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망치나 도끼를 집어 든 자들.

이번에 나타난 자들도 줄잡아 수십은 되어 보였다.

그들이 일제히 사울 쪽으로 덮쳐왔다.

“전하!”

놀란 기사들이 사울 앞을 막아섰다.

오히려 기사들보다 적에게 노려진 사울이 더 침착했다.

사울은 말 위에서 마법 검을 거꾸로 치켜들었다.

아직 접근하기 전이니 검보다는 마법이 유효하다.

아군도 근처에 있으니 지나치게 범위가 넓은 마법도 쓸 수 없다.

그렇게 사울이 택한 마법은 날카로운 얼음 창을 날리는 ‘아이스 스피어’였다.

비교적 간단하고 익숙한 마법이라 시동어도 없이 바로 마법을 시전 할 수 있었다.

사울이 뻗은 마법 검 끝에서 날아간 얼음 창이 빠른 속도로 날아가 적의 머리를 꿰뚫었다.

“…….”

얼음 창에 맞은 적은 비명조차 못 지르고 그대로 쓰러졌다.

적들 상태는 정상이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자비를 베풀 수는 없다.

전장에서 무엇보다 소중한 건 자신과 아군의 안위다.

그를 위해서는 냉혹해져야 한다.

“모조리 베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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