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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40화 (40/232)

40화

사울이 정체를 숨기지 않고 참여한다.

왕자의 이름을 걸고 토벌전을 치른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성공했을 때도, 실패했을 때도 대가를 가장 크게 치르는 건 사울 본인일 테니까.

“그러시군요. 전하. 그럼 저는…….”

“그대도 함께 참전해 줬으면 해요.”

“제가 말입니까? 하지만…….”

아이나는 말끝을 흐렸다.

아르멜 때문임을 안 사울은 아이나를 달래 주기로 했다.

“지금 우리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상황에 놓인 건 알아요. 내 부하 중 그대를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대의 아버님이나 다른 사람들 중 나를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도 있지요.”

“전하. 저희 영지에는…….”

“괜찮아요. 그대의 영지에서 날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왕실과 그대 가문의 복잡한 관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요.”

“…….”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와 잘 지내고 싶어요. 그리고 그대와 함께 이번 일을 처리하고 싶고요.”

“전하.”

“부탁이에요. 나와 함께 토벌전에 참여해 주세요.”

왕자의 입에서 나온 ‘부탁’이라는 표현.

비록 사울의 표정이나 눈빛에서 강압적인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무게감은 컸다.

아이나도 바보는 아니었다.

요즘 사울과 자신의 가문을 둘러싼 미묘한 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슬슬 사울과 멀어져야 할 때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사울이 그러길 원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아이나는 아버지나 오라버니의 조언에 따라 대답을 결정했다.

이번에도 그러려고 했지만, 사울이 말을 막았다.

“이 토벌전은 나는 물론 그대에게도 큰 기회가 될 거예요. 약속하지요. 토벌전에 성공하면 그대와 영광을 나누고, 실패하면 가능한 그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겠어요. 영주나 소영주의 뜻이 아닌, 그대의 뜻은 어떤가요?”

“그게…….”

아이나 자신의 뜻.

스스로의 마음에 물어 본 아이나의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알겠습니다.”

“참여해 주는 건가요?”

“네, 전하.”

아이나는 이 대답으로 아버님이나 오라버니의 뜻을 거스를 수도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뒤늦게 말을 주워 담으려 하지는 않았다.

아버님이 진노하더라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나도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좀 더 나아가고 싶어. 이런 토벌전에서 큰 공을 세운다면…….’

율렌 섬 최악의 범죄자인 킬리안 비셔스 토벌전.

그가 이끄는 하얀 까마귀의 규모를 생각하면 작은 전쟁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결코 흔치 않을 터.

게다가 사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으니 더욱 거절하기 힘들었다.

상대가 왕자라 강압적인 분위기를 느낀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울 왕자와 좀 더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 아이나의 대답에 사울은 진심어린 미소로 답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렇게 소신껏 자기의 길을 결정한 아이나가 방을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르멜이 들어와 말했다.

“저 아가씨 표정을 보니 기대했던 답을 들으신 모양입니다.”

“그래. 저 아가씨도 참전할 거야.”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저 아가씨 실력이 상당하지만, 영주의 금지옥엽과 함께 싸우다 잘못되기라도 하면…….”

“잘못되지 않도록 해야지. 그렇지요, 선생님?”

침묵을 지키고 있던 카스텔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스텔이 함께 한다고 토벌전이 꼭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카스텔이 함께 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안위는 보장되지 않겠는가.

아르멜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아르멜은 사울의 시선이 벗어난 순간 카스텔의 표정이 흐려지는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지금 상황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보였다.

‘카스텔 씨는 전하를 걱정하는 건가? 아니면 아이나가 참전하는 걸 걱정하는 건가? 그도 아니면…….’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일에 익숙한 아르멜도 카스텔의 속내만큼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 * *

킬리안 비셔스.

율렌 섬 최대의 범죄 조직인 하얀 까마귀의 우두머리이자 나라를 좀먹는 악마 토끼풀의 주 생산자.

그것만으로도 그와 그가 이끄는 조직을 ‘토벌’할 명분은 충분했다.

명분이 갖춰지고 사람들이 모이면서 하얀 까마귀 토벌군은 빠르게 모였다.

영주군과 왕국군이 주축이 되고, 신전에서도 소수 인력이 참여하기로 했다.

병력은 영주군과 왕국군이 각각 500명.

합쳐 천여 명의 병력이 토벌전에 나서기로 했다.

영지 안팎의 경비와 적국을 향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확보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이었다.

토벌군이 결성된 가운데 우두머리는 사울이 맡기로 했다.

왕자의 이름 아래 결성된 토벌군이니 만큼 성공한다면 사울 개인과 왕실 모두의 명예가 높아질 것이다.

실패한다면 반대의 결과가 찾아올 테고 말이다.

사울은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였다.

이번 일에 성공한다면 자신의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번째 단추를 성공적으로 꿰게 될 것이다.

킬리안 비셔스의 목을 베어 장대에 꽂으면 그것만으로도 사울의 명성이 크게 올라간다.

왕위 계승권에 뛰어들 정도는 아니지만, 보다 큰 힘을 가지기 위한 밑바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진 일정이 가까워지면서 사울은 일과의 대부분을 토벌군에 대한 검토와 수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대련도 많이 했다.

카스텔, 아이나, 아르멜.

누구와 대련을 해도 얻는 게 있었다.

순식간에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토벌군의 구성도 모두 갖추어졌다.

이제 내일이면 영주의 저택이 있는 사제타를 떠나 본격적인 토벌전이 시작될 것이다.

“음…….”

사울은 마법 갑옷 차림의 자신 모습을 돌아보았다.

멀리서 눈에 확 띌 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나 화려하고 위엄 있는 복장이다.

정체를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비쳐야 할 필요가 있을 때를 위해 준비한 마법 갑옷이다.

움직임에 거의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 가볍지만 마법으로 강화되어 화살이나 창칼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건 물론, 마법을 막아 내는 항마력도 갖추고 있다.

실력자가 전력을 다해 휘두르는 무기나 카스텔이 시전하는 마법을 막기는 어렵겠지만.

화려한 마법 갑옷을 걸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울은 생각에 잠겼다.

‘전장에 나서는 건 오랜만이야.’

전생은 전장이 곧 삶이었다.

특히 죽기 몇 년 전부터는 전장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전생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전생에는 장교 신분으로서 현장에서 구르는 쪽이었다.

하급 장교로 시작해서 현장에서 구르며 차츰차츰 높은 지위에 올랐지만 어떤 부대에서도 완전한 대장 노릇을 한 적은 없다.

젊은 나이와 빈약한 가문, 최고라고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마법 자질 때문이었다.

가끔 부대의 지휘를 맡아도 반드시 위에 누군가 있었다.

그 때문에 공을 세우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실수가 있으면 책임은 온전히 졌다.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제법 출세한 것도 온전히 능력과 처세술 덕분이었다.

그 출세도 결국 아무 의미 없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왕자의 신분으로 나서는 전쟁이다.

공을 세우면 그 공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될 것이다.

실패한다고 해도 필요하다면 아랫것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도 있다.

물론 사울은 실패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만에 하나 실패한다고 해도 아랫것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싶진 않았다.

전생 때 가장 혐오하던 존재가 ‘무능하고 무책임한 상사’였다.

지금은 고귀한 혈통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희생양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혐오하던 존재가 되고 싶진 않았다.

“반드시 성공해야지. 반드시.”

스스로에게 다짐하던 사울의 귀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하.”

“들어와.”

문이 열리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은 그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답니다.”

“그래? 그럼 나가야지.”

그런 사울을 바라보던 그레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사울을 말리는 건 포기한 모양이다.

사울은 그런 그레이에게 맑게 웃어 보였다.

“걱정 마. 잘 될 테니까.”

그렇게 사울은 화려한 차림으로 나갔다.

곧 카스텔과 아르멜, 그리고 아이나까지 그런 사울 곁에 따라붙었다.

* * *

천 명의 토벌군.

국가 차원에서 보면 천 명이 많은 병력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변방의 작은 영지에서 천 명의 토벌군이 결성된 건 특별한 일이다.

이런 대규모의 부대가 하얀 까마귀 토벌을 위해 결성되었고 이제 출정을 앞두고 있다.

사울은 그런 토벌군 앞에 섰다.

사울 왕자를 마주한 토벌군 모두가 예의를 갖추었다.

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고 군기도 제대로 잡힌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병사들의 눈빛에 서린 의심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성인식을 치른 지 1년도 안 된 애송이 왕자가 토벌군의 우두머리 역할을 맡는 데 의문을 품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울은 자신을 의심하는 병사들을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답이 나오는 일이니까.

‘투구 전사’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병사들의 눈에 사울은 그저 철없는 왕자로 보일 것이다.

사울은 병사들의 의심 어린 눈길을 받으며 간단히 만들어진 연설대 위에 섰다.

출정식에서 사기 진작을 위한 연설은 흔한 일이다.

어린 사울이 꼭 연설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본인의 강력한 희망으로 연설을 하게 되었다.

자신을 향한 의구심을 조금이나마 풀어 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사울은 자신을 바라보는 천 명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만나서 반갑다. 이 자리의 대부분은 내가 누군지 알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소개하겠다. 나는 사울 다리우스. 다르센 왕국의 5왕자다.”

확실히 이 자리의 병사들은 대부분 사울이 누구인 줄 알고 있었다.

이제 와 사울의 정체를 알고 놀라는 자는 거의 없었고, 대신 의문과 혼란이 커져 가는 게 보였다.

몇 년 동안 하급 장교 생활을 한 사울은 병사들의 심리를 잘 알았다.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병사는 매우 드물었다.

하물며 이런 자리에서 장황하고 현실감 없는 소리를 길게 하는 상급자를 좋아하는 병사는 더 적을 것이다.

사울은 할 말을 빨리 끝내고 본론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이 자리를 빌려 귀관들에게 긴 연설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귀관들 중 길고 지루한 연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사울의 농담에 병사 몇몇이 웃음을 참는 모습이 보였다.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가운데 연설은 계속되었다.

“모두들 이번 임무가 어떤 것인지, 또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테니 그에 대한 연설도 줄이겠다. 딱 한마디만 하지. 킬리안 비셔스와 하얀 까마귀는 이 영지는 물론 왕국 전체를 좀먹는 해충이며, 이번 원정을 통해 그 해충을 모조리 박멸해야 할 것이다. 알겠나?”

어린 왕자의 첫 번째 연설 치고는 조리 있고 또렷한 말에 병사들도 나쁘지 않게 호응했다.

“알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사울은 마침내 본론을 꺼냈다.

“그대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이 자리의 누구도 죽지 않았으면 한다.”

“…….”

“두 번째, 이번 원정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약속하겠다. 이번 원정이 성공하면 그 영광은 나 혼자가 아니라 그대들 모두와 함께 누릴 것이다. 그리고 약속하지. 이 원정에 참여한 모두에게 앞으로 반년간 두 배의 급료를 약속할 것이며, 킬리안 비셔스의 목을 베면 세 배의 급료를 약속하겠다!”

급료 이야기에 병사들이 열렬이 환호했다.

“우와아아!”

사울은 병사들의 환호를 받으며 간단히 손을 올려 답례하고는 연설대에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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