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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28화 (28/232)

28화

“그래. 정정당당히 싸우고 싶지만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모르겠지만…….”

사울의 눈짓에 다크 엘프의 말이 멈췄다.

지금껏 움직이지도 않고 말 한마디 없던 카스텔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투구 대신 후드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카스텔이 힘을 숨겼을 때는 존재감이 전무했다.

어쨌든 얼굴을 가렸다는 점을 제외하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힘을 드러낸 카스텔은 달랐다.

힘을 일부만 드러냈음에도 다크 엘프의 표정이 굳었다.

“뭐야, 이건.”

당황한 가운데서도 다크 엘프는 빠르게 행동했다.

“저 계집 보통이 아니다. 저 계집부터 죽여.”

다크 엘프의 부하들은 충성스럽게 명령을 이행했다.

저마다 무기를 빼 들고 일제히 카스텔을 덮쳤다.

다크 엘프의 부하들은 마나를 조금 다룰 줄 아는 싸움꾼들이었다.

마나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일당백의 강자가 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너무 나빴다.

카스텔은 귀찮다는 듯 한 번 손짓을 했다.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적들을 직격했다.

“으아악!”

비명 소리가 밤공기를 뒤흔들며 검은빛에 적중당한 다크 엘프의 부하들이 피를 흘리며 나뒹굴었다.

모두들 검은빛이 지나간 대로 신체 일부에 구멍이 뚫리거나, 심지어 잘리기까지 한 끔찍한 몰골이었다.

이런 광경이 펼쳐지리라 예상한 사울도 조금 놀랄 정도였다.

‘역시 카스텔의 실력은…….’

카스텔이 다시 적이 되어 맞붙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기는 건 고사하고 사지 멀쩡한 채로 도망치는 것도 기적일 것이다.

지금은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배우지만, 언젠가는 적이 될 것임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반면에 ‘지금 카스텔의 적’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하. 장난 아니잖아.”

순식간에 자기 부하들이 모조리 쓰러지는 광경에 다크 엘프는 미소 지으며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여섯 자루의 단검이었다.

여러 자루의 단검을 양손에 낀 다크 엘프가 손을 휘둘렀다.

다크 엘프의 손에서 떠난 단검은 물리적인 힘만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였다.

네 자루는 카스텔에게, 나머지 두 자루는 각각 하나씩 사울과 아이나에게 날아갔다.

마법 검을 휘둘러 단검을 쳐내려던 사울은 단검에서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에 달리 행동했다.

마법 검을 땅에 꽂아 마나의 힘으로 방패를 만들어 전방을 막은 것이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다크 엘프가 던진 단검은 사울 코앞에서 뚝 떨어지듯 하강하다 튀어 오르듯 상승하며 덮쳤다.

이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검만 휘둘렀다면 막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단검은 사울이 친 마법 방패를 뚫지는 못했다.

아이나 역시 방패를 이용해 단검을 막아 냈지만, 사울처럼 다크 엘프의 단검 솜씨에 놀란 눈빛이었다.

아마도 마나의 힘을 이용해 단검을 조정한 것이리라.

반면에 네 개의 단검을 맞이한 카스텔은 태연했다.

굳이 몸을 움직이거나 손을 휘두를 필요도 없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푸른빛이 휘날리며 날아오는 단검을 모조리 토막 냈다.

“망할.”

다크 엘프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술을 핥았다.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다크 엘프는 도망치려 하지 않았다.

반대로 더욱 격렬하게 맞섰다.

“죽어라!”

다크 엘프가 미친 듯이 단검을 던지기 시작했다.

줄잡아 수십 자루는 되어 보이는 단검이 폭우처럼 카스텔에게 쏟아졌다.

카스텔은 단검 세례에 맞서 천천히 다크 엘프에게 걸어갔다.

푸른빛이 정신없이 휘날리며 그녀를 덮치려는 단검들을 모조리 막아냈다.

조금도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카스텔의 모습에 다크 엘프도 질린 모양이었다.

“젠장! 두고 보자!”

다크 엘프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

그걸 본 카스텔이 손을 휘둘렀다.

마나의 칼날이 다크 엘프를 향해 날아갔다.

다크 엘프 역시 자신을 향한 공격을 포착한 듯 몸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푸른 마나의 칼날이 그녀보다 빨랐다.

“으윽……!”

다크 엘프가 입고 있던 드레스가 찢겨 나가며 피가 튀었다.

마나의 칼날은 등판에 깊은 상처를 입고 고꾸라진 다크 엘프를 용서 없이 덮쳤다.

칼날을 몇 차례나 몸으로 받은 다크 엘프의 비명과 신음이 메아리쳤다.

“그만, 됐어요.”

보고 있던 사울이 말렸다.

그러자 카스텔도 손을 거두었다.

“이제 도망가지 못 할 겁니다.”

확실히 피투성이가 된 다크 엘프를 보고 있으면 절대로 도망은 못 칠 것 같았다.

도망이 가능한가의 여부보다 살 수 있느냐의 여부를 따지는 게 먼저였다.

그렇게 다크 엘프까지 쓰러진 뒤에야 영지의 병사들이 나타났다.

병사들은 쓰러진 적들을 발견하고는 놀라 아이나에게 다가왔다.

“이건 대체…….”

아이나가 재빨리 말했다.

“괜찮아요. 다 끝났어요.”

“아, 알겠습니다.”

“저기 쓰러진 자들은 모두 묶어 호송하세요. 따로 심문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네.”

영지 병사들이 다크 엘프를 비롯한 적들을 모조리 묶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묶인 다크 엘프가 문득 사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

사울은 자신과 아이나, 카스텔을 바라보는 다크 엘프의 시선에서 강렬한 살기를 느꼈다.

남에게 살기를 내뿜기보다 자기 안위를 걱정해야 할 판인데 이렇게까지 강렬한 살기를 내뿜을 수 있다니.

‘보통 녀석이 아니야. 저 정도면 하얀 까마귀에서도 제법 높은 녀석이 아닐까.’

카스텔 역시 사울과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사울에게 물었다.

“제가 심문하겠습니다.”

“그럼 나도 참석하지요.”

“그러시겠습니까?”

“분명 저 다크 엘프는 무언가 알고 있을 거예요. 필요한 정보는 빨리 얻는 게 낫지요.”

* * *

다크 엘프를 비롯한 하얀 까마귀의 포로들은 모두 근처 요새로 호송되었다.

모두들 지하 감옥에 갇힌 가운데, 다크 엘프만이 끌려 나왔다.

끌려나와 내팽개쳐진 다크 엘프가 시선을 올리자 세 명의 모습이 보였다.

일명 ‘투구 전사’ 로 불리는 사울과 아이나.

그리고 복면과 후드를 쓴 카스텔이었다.

다크 엘프는 당장이라도 세 사람에게 달려들 듯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무기를 다 빼앗기고 부상을 입은 데다 팔다리를 묶이기까지 해 꼼짝도 못 했다.

다크 엘프는 세 명에게 덤비는 대신 히죽 웃었다.

“충고 하나 할까? 지금 날 죽이는 게 너희들에게는 최선일 거야. 어차피 머잖아 다들 뒈질 목숨인데, 나라도 죽이고 끝내는 게 나을 걸?”

사울이 그런 다크 엘프에게 물었다.

“너는 하얀 까마귀 소속인가?”

“퉷.”

대답 대신 다크 엘프가 침을 뱉었다.

상종조차 하기 싫다는 뜻이겠지만, 동시에 맞다는 뜻이기도 했다.

“좋아. 일단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 주지. 넌 현재 영주군에 붙잡힌 상태다. 무장이 해제 되고 다친 몸으로는 절대로 탈출할 수 없을 거다. 네가 누구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만 영주군에게 칼을 들이댔으니 그것만으로도 살긴 어렵다.”

“그래서?”

“이대로 가면 네 운명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교수대 아니면 참수대.”

무서운 협박에도 다크 엘프는 굴하지 않았다.

“망할 애송이 녀석.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는군. 두고 봐. 조만간 큰코다칠 테니.”

“감옥에 갇힌 주제에 허세를 부려봐야 소용없다. 그보다는 우리에게 협조하고 목숨이라도 건지는 게 낫지 않을까?”

“꺼져.”

말이 통하지 않자 사울은 카스텔에게 눈짓을 했다.

카스텔이 손을 뻗었다.

“크으윽!”

다크 엘프의 고통스런 신음 소리가 지하 감옥에 메아리쳤다.

다크 엘프는 평범한 도적이나 깡패들과는 달랐다.

카스텔의 마법에 격렬히 저항하며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분 간 마법을 시도한 끝에 실패한 카스텔이 말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이라면?”

“마법적으로, 아니면 물리적으로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리면 자백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카스텔의 말뜻을 알아들은 사울은 투구 속에서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마법으로 적당히 입을 열게 하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마법으로 적당히 입을 열게 하는 것’도 충분히 잔인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건 좀 지나치군요.”

아이나도 사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하루 이틀 머리를 식힐 시간을 주죠. 자기 처지를 알고 나면 자백을 할지 모르니.”

카스텔은 다크 엘프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확실히 지금 다크 엘프 태도를 보면 제정신으로 입을 열 것 같지는 않았다.

무너지지 않는 한 결코 입을 열지는 않을 유형이랄까.

그렇다면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려야 할까.

하지만 정신을 무너뜨린다는 건 말 그대로 미친다는 뜻이다.

그렇게 미친 자는 거짓말은 잘 하지 못하지만, 반면에 두서없는 이야기로 혼선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

‘감시도 엄중하고, 저렇게 큰 부상을 입었으니 도망치지는 못 할 거야. 저 자의 처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

마음을 정한 사울이 말했다.

“일단 나가죠. 어떻게 할지 조금 더 생각해 봐요.”

카스텔도 별수 없이 사울의 말을 따랐다.

요새를 나온 세 사람은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은 아직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아이나가 지나가던 병사에게 보고를 받았다.

“상황은 어떤가?”

“수습하고 있습니다.”

“마을에는 피해가 없나?”

“그런 것 같습니다.”

“아군 피해는?”

“부상자가 여섯이고 그 중 부상이 큰 두 명은 따로 후송했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울은 사망자가 없다는 것에 안도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덧 하늘에 먼동이 트고 있었다.

“일단 잠시 눈을 붙이고 다시 생각해 봐요. 그 다크 엘프를 어떻게 처리할지.”

“그게 좋겠어요.”

* * *

요새에 갇힌 다크 엘프, 칼립소는 사울 일행이 물러간 것을 알고 길고 뾰족한 귀를 쫑긋거렸다.

인간보다 예민한 청각을 비롯해 몸으로 느껴지는 오감.

그리고 마나로 느낄 수 있는 기운.

모든 것을 감지해 본 결과 하나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이 요새에 특별히 강한 놈은 없다는 것을.

창문 하나 없는 지하 감옥이라 지금은 하늘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끌려오기 전 시간을 감안하면 아마 머잖아 해가 뜰 것이다.

해가 뜨고 요새에 드나드는 병력이 많아지면 그만큼 불리하다.

“슬슬… 시작해 볼까?”

칼립소는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다시 점검했다.

찢겨진 드레스에 누더기 한 장을 걸쳤고 몸 곳곳의 상처는 아직도 욱신거렸다.

게다가 팔다리를 묶고 있는 사슬은 보통 사슬이 아니다.

마나를 다루는 실력자들을 포박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 사슬이다.

보통 쇠사슬보다 더 튼튼하고 마나의 힘을 대부분 차단하는 효과까지 있다.

이 사슬에 묶이면 정말 강력한 마법사가 아니고서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칼립소처럼 다친 몸으로는 더더욱.

어떻게 봐도 절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칼립소는 미소를 지었다.

먼저 몸을 흔들며 자신의 상처를 회복시켰다.

“……!”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피투성이에 몸 곳곳에 깊은 상처를 입은 칼립소의 몸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깊은 상처가 눈에 띄는 속도로 순식간에 치유되는 광경은 ‘재생’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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