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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했더니 무능한 적국 왕자였다-7화 (7/232)

7화

사울 왕자의 첫 번째 마법 수업을 마친 카스텔은 조용히 ‘황금 궁’으로 향했다.

다르센 왕국의 국왕 마렌의 처소였다.

카스텔 정도의 거물이라도 국왕의 처소에 허락 없이 드나들 수는 없다.

하지만 카스텔이 모습을 본 경비병들은 그녀를 경계하거나 질문을 하는 대신 곧바로 예를 갖추었다.

“폐하께서 기다리십니다.”

말없이 경비병들의 안내를 따라간 카스텔은 곧 마렌 앞에 설 수 있었다.

간단한 업무를 보던 마렌은 카스텔의 기척에 손에 쥔 깃털 펜을 내려놓았다.

“폐하를 뵙습니다.”

자신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카스텔의 모습에 마렌이 피식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네, 폐하.”

“몇 년 동안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지? 그렇게 오래 쉴 것이었다면 예의범절이라도 제대로 배우지 그랬느냐.”

“…….”

“그래도 가면과 망토는 벗었구나. 가면과 망토를 쓰고 내 방에 들어오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왕자님께서 벗으라고 하셨습니다.”

“사울이?”

“네.”

마렌은 다시 웃었다.

세간에서 ‘검은 마녀’ 혹은 ‘검은 흉성’이라 불리는 차림 그대로 아들을 만나러 갔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내 아들 말을 잘도 들었구나.”

“왕자 전하께서 부탁을 하시는데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내려다보다

“부탁? 명령이 아니라?”

“네. 명령이 아닌 부탁을 하셨습니다. 폐하.”

카스텔의 말에 마렌의 미소가 짙어졌다.

“많이 부족한 아들이지만, 그래도 너 같은 사람을 다루는 법은 아는 모양이로구나.”

“…….”

“그래 내 아들은 어땠나? 널 만족시킬 정도의 소질이 있더냐?”

“곧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하루 만에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을 테니까.”

카스텔을 내려다보던 마렌이 당부했다.

“그러면 당분간 내 아들을 계속 가르쳐라. 한동안 네가 전장에 나갈 일은 없을 것 같으니.”

“…….”

“전장에 다시 나가고 싶은가?”

“전 폐하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괜찮다. 네 본심을 말해 보거라. 전장에 다시 나가고 싶은가?”

“…굴욕을 씻고 싶습니다.”

카스텔의 굴욕.

난생 처음 패배를 안겨 준 가멜다 왕국의 영웅, ‘가르시아 자매’에게 당한 패배.

지금 카스텔의 유일한 소원은 그 굴욕을 씻는 것이리라.

하지만 마렌은 카스텔의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지금은 내 아들을 가르치며 몸을 추스르고, 기다리거라.”

“네. 폐하.”

카스텔이 물러나고, 홀로 남은 마렌이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정말 마법에 자질이 있을지.”

* * *

다음 날.

카스텔과의 두 번째 수업은 상아 궁에 따로 만든 수련장에서 시작되었다.

장정 여러 명이 간단한 운동을 해도 충분한 넓고 큰 방.

그 넓은 방 한가운데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만 덜렁 놓인 가운데, 사울과 가면을 벗은 카스텔이 마주앉았다.

“전하. 어제 명상은 잘 하셨습니까?”

“어느 정도는요.”

마법 명상은 몸속의 마나의 흐름을 스스로 깨닫고 천천히 쌓아 나가는 과정이다.

타고난 자질보다는 경험이 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다행히 전생에 뛰어난 마법사였던 사울에게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제 하루 명상을 한 것만으로도 제법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잠시 실례합니다.”

카스텔이 손을 뻗어 사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사울의 마나를 확인해 본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과가 있으셨군요.”

“네, 덕분에요.”

사울의 말에 카스텔은 책을 던져 준 것 말고는 명상에 대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은 주제에 뻔뻔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전하의 재능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으니.”

“그럼 오늘은 무슨 수업을 할 건가요?”

“마법을 써 보십시오.”

“.....”

이건 말도 안 될 만큼 빠른 진도다.

보통은 마법 명상만 일주일 이상 배운 뒤에야 마법을 쓰는 방법을 배우는 데 말이다.

“내가 읽은 책에 따르면 마법 입문 후 일주일은 명상에 집중하라고 되어 있던데요? 오늘 바로 마법 주문을 배우는 건 너무 과한 거 아닐까요?

사울의 질문에 카스텔이 고개를 저었다.

“배우는 게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전하의 재능이 부족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

사울에게 그 잘난 ‘재능’이 없다고 판명나면 카스텔은 어떻게 나올까.

스스로 먼저 선생 노릇 그만둔다고 할 기세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좋아요. 무슨 마법을 써 볼까요?”

카스텔은 대답 대신 손짓을 했다.

그와 함께 방 한쪽 벽에 반투명한 막이 쳐졌다.

일종의 ‘마법 방어막’이다.

마나로 단단한 막을 쳐 물리적인 힘이나 마법적인 힘, 혹은 둘 다를 막아 내는 마법.

마법사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기본적인 마법에 속하지만 마법사의 힘과 기술에 따라 결과물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사울이 보기에 지금 카스텔이 친 마법 방어막은 굉장한 수준이었다.

아마 공성 병기로 두들기거나 어지간한 마법사가 사람 몸뚱이만 한 불덩어리를 만들어 날려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다.

손쉽게 강력한 마법 방어막을 친 카스텔은 다시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끝에서 푸른 기운이 뻗어 나가 자신이 만든 방어막을 때렸다.

사울은 카스텔이 시전한 마법이 기초 중의 기초 공격 마법, 마나 그 자체를 물리적인 힘으로 분사시켜 상대에게 충격을 주는 ‘마나 블래스트’임을 알아보았다.

쾅!

공성 병기가 성문을 두들긴 듯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와 진동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충격이 가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

사울은 감탄했다.

보통 마나 블래스트는 실전에서는 쓰기 어려운 입문자용 마법으로 평가된다.

마법 시전은 쉽지만 마나를 연기 같은 형태의 물리적인 힘으로 전환시켜 내뿜는 것은 효율과 위력 모두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스텔은 그런 입문자용 마법으로 성문도 때려 부술 위력을 냈다.

아무런 조치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면 벽이 박살나고도 남았다.

벽이 무사할 수 있었던 건 카스텔 본인이 친 마법 방어막 덕분이었다.

실용성 없는 입문자용 마법으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 것.

또한, 그 막강한 위력의 마법을 방어막으로 막는 것.

둘 다 쉬운 일이 아니지만 카스텔은 너무나도 쉽게 해 냈다.

“대단하군요.”

순간 과거의 원한도 잊고 사울은 순수하게 칭찬의 말을 건넸다.

그런 사울에게 카스텔이 물었다.

“제가 쓴 마법을 알아보시겠습니까?”

“그야……. 마법으로 방어막을 친 뒤 기초 마법인 마나 블래스트를 시전한 거죠?”

대답을 들은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께서는 마법을 배운 적 없다고 들었는데, 잘 알고 계시는군요.”

“배운 적은 없어도 책에서 본 적은 있으니까요.”

“네. 그럼 전하께서 이 마법을 한 번 써 보십시오.”

어제 명상을 시작한 입문자에게 오늘 마법을 써 보라니.

천재가 아니고서야 성공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사울은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해 보는 거야.’

전생 때 10년 넘게 이론과 실전에서 단련된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사울이 마법 천재가 아닐지라도, 남들보다 10년 이상의 시간은 앞서 나간 셈이다.

그 실력과 지식을 발휘할 때다.

먼저 사울은 자신 몸속의 마나를 점검했다.

이제 막 명상에 성공한 육체 속의 마나는 보잘 것 없었다.

그러는 사이 카스텔이 마법 주문을 알려 주었다.

주문 자체는 사울도 알고 있었기에 특별할 건 없었다.

“그럼…….”

사울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리고 카스텔이 읊은 마법 주문을 그대로 외웠다.

마법 주문은 입으로 마나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그저 말만 중얼거리는 게 아니라, 마나를 느끼며 목소리로 조율을 해야 한다.

“#^%^#$%^#$%^#^%”

어느 나라 언어로도 말이 되지 않는 중얼거림.

인간이나 다른 지성을 가진 종족이 아닌, 마나와의 소통을 위한 언어.

마법 주문.

과거 ‘롤랜드’가 처음 마법을 배웠을 때 이 주문을 외느라 무던히도 노력했다.

덕분에 지금도 주문을 바로 떠올리고 읊을 수 있었다.

주문은 성공적이었다.

사울 주변의 공기가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사울 몸속의 마나와 대자연의 마나가 반응한다는 신호였다.

이제 몸속의 마나를 이용하든, 대자연의 마나를 함께 이용하든 마법을 쓰면 된다.

시동어는 마법 주문의 이름이다.

“마나 블래스트.”

시동어와 함께 사울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에서 한 줄기 바람이 흘러 나갔다.

“…….”

성공인가, 실패인가.

완전한 실패까지는 아니다.

완전히 실패를 했다면 바람을 한 줄기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성공이라 하기도 민망했다.

마법을 쓴 결과물이 고작 힘껏 입김을 분 것보다 위력이 약한 바람 한 줄기를 만들어 내는 데 그쳤으니까.

‘역시나.’

사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변명거리는 많았다.

이 몸으로는 첫 번째 마법 시전.

제대로 마법을 쓰기에는 부족한 마나.

아직 마나에 제대로 익숙해지지 못한 육체.

변명거리는 많고 많았지만, 사울은 굳이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군에 있을 때 가장 싫어했던 게 실패 앞에서 변명을 하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실패… 한 거죠?”

조심스러운 사울의 말에 카스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좀 더 열심히 하셔야겠습니다. 전하.”

여전히 아부가 뭔지도 모르는 듯 직설적인 카스텔의 말에 사울은 씩 웃었다.

지금은 최대한 카스텔에게 호감을 살 필요가 있었다.

“그래요. 열심히 해야지요.”

그러자 카스텔도 작게 웃었다.

“앞으로 계속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줄곧 멍하거나 표정이 없던 검은 마녀의 첫 번째 미소.

그 미소를 본 사울은 깨달았다.

카스텔이 자신에게 ‘합격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사울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것도 인연이지. 지금은 네 앞에서 착한 왕자 노릇을 해 주겠지만……. 언젠가는 네 년도 없애 버리겠어. 다른 놈은 몰라도 네 년은 용서할 수 없으니.’

* * *

카스텔의 수업 방법은 간단했다.

굉장한 속도로 진도를 빼며 사울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방법이었다.

이론이라면 전생의 지식 덕분에 따라가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실전이 문제였다.

새로운 육체에 맞춰 마나를 운용하고, 그 마나 운용법에 따라 마법을 하나하나 시전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사울이 실패할 때마다 카스텔은 가차 없이 벌을 내렸다.

“마법에 실패하셨군요. 다시 시도해 보십시오.”

가장 흔한 벌은 성공할 때까지 다시 시키는 것이었다.

체력이 부족하면 마법으로 체력을 보충해 주었다.

마나가 부족해져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사울은 체력도, 마나도 거의 무한하게 공급받으며 끝없이 마법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전생의 자신을 죽인 장본인에게 고된 수업과 훈련을 받는 건 상당한 고통이었다.

하지만 사울은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이겨 내야 할 시련이다.

어머니도 돌아가셨고 배경이 될 만한 친척 한 명 없는 후궁 소생의 왕자가 힘을 가지려면 능력으로 두각을 보여야 한다.

그를 바탕으로 큰 힘을 가져 모든 원수들에게 복수할 것이다.

카스텔을 포함해서 말이다.

속으로 칼을 갈며 사울은 고된 수업을 버텼고, 덕분에 사울의 마법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전생의 실력을 되찾으려면 갈 길이 멀었지만, 또래의 꼬마 마법사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우위였다.

카스텔은 사울의 빠른 성장세에 만족하는 대신 더욱 채찍질을 했다.

덕분에 매일같이 체력과 마나의 한계를 느끼고 쓰러졌다가 회복하고 다시 수업을 하는 게 사울의 일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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