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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294화 (294/303)

294화

22부 : 대폭주-전뇌성의 침공 (4)

약속 장소인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유주연을 보자마자, 남성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특성상 연인이나 가족끼리 많이 찾는다. 그럼에도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유주연의 첫인상은 매우 똑똑해 보이고 공부 잘할 것 같다는 식이다. 거기에 귀여움이 조금 추가됐다.

친구라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렇게 이성의 시선을 잡아끌 타입은 아니었다.

게다가 저 차림새.

‘고스룩…… 스타일이라고 하나? 저런걸?’

기이한 눈화장에 검은 레이스가 달린 치마를 입었고, 상의는 망사였다.

유주연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카하핫! 살아서 돌아왔구나, 이정우!”

카하핫?

지난 한 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유주연이 내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그 던전은? 놀 만했나?”

“음……. 그게.”

나는 그녀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기운을 감지했다.

기사의 마력은 아니다. 분명히 처음 보는 종류인데 어쩐지 익숙했다.

‘이건, 설마 아이템?’

그랬다. 강한 아이템을 소환했을 때 받는 느낌과 비슷했다.

“뭐 시킬까?”

나는 묻는 유주연을 향해 진실의 눈을 발동했다.

순간, 유주연이 한 손을 뻗어 내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뭘 훔쳐보느냐. 무엄하게.”

그러나 나는 이미 내용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일단 뜬 메시지창은 눈을 가린다고 안 보이는 게 아니다.

“……로키라고? 진짜 로키 신……이십니까?”

내가 본 유주연의 정보는, 그녀가 로키의 강림체라고 알리고 있었다.

유주연이 나직이 혀를 찼다.

“쳇, 신기한 재주를 가진 인간이로군. 오랜만에 인간계에 왔더니, 마치 라그나로크 이전처럼 돌아가 있구나. 다 사라진 줄 알았던 전사들이 있질 않나.”

로키는 북구 신화의 장난꾸러기 신이다. 변덕스럽고 사악하나, 때로는 오딘과 토르를 돕기도 해서 미워할 수만은 없는 그런 존재다.

요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모 회사의 영화로 인지도를 높였다. 생각난 김에 거기에 관해 물어봤다.

“영화에서 본 그 로키인 겁니까?”

“그건 외계인이잖아! 나는 진짜 말 그대로의 신이고.”

알고 있네. 유주연의 기억을 통해서 안 건가.

예전이라면 신이 아니라 뭔가 다른 존재이거나, 유주연의 망상이라고 여기며 불신했을 것이다.

심지어 회귀 후에라도 믿기 어려운 얘기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런 일이 흔하진 않아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로키의 단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로키의 단도 아이템이었다.

타워형 던전에 들어가기 전, 그걸 유주연에게 호신용으로 주었다.

스터디 카페에서 예고 없이 갑작스러운 인베이더 강습을 겪고, 그녀가 걱정되는 마음에 준 것이다.

원래 역사에서도 유주연은 인베이더에게 죽었다. 회귀해 본 결과, 역사는 되풀이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냥 두면 유주연도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로키의 단도는 레벨 제한이 낮으면서도 강력해서, 사용자보다 훨씬 강한 적에게도 맞설 만하다. 작고 가벼워 여성이 다루기에도 쉽고. 그래서 줬던 건데…… 아이템을 잘못 골랐나?’

그러다 문득 모순되는 부분을 깨달았다.

로키의 단도는 내 인벤토리에만 수천 개가 있다.

그걸 보유하면 모두 로키의 강림체가 된다는 건가?

“단도 때문에 강림하신 겁니까?”

“뭐, 그렇지?”

“그 단도만 있으면 되나요?”

“그건 아니다. 사용자와 나의 코드가 맞아야지.”

“코드요?”

“그런 게 있어. 나는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다. 발키리의 후예이기도 하고.”

“발키리는 북유럽 쪽이고, 걔는 동아시안인데요?”

“혈통 얘기가 아니다! 기질의 문제이지.”

“아하.”

유주연에게 그런 전사적 특성이 잠재되어 있었다니 뜻밖이네.

그러고 보면, 아이템에는 몇 가지 계통이 있다.

우선, ‘로키의 단도’나 ‘신의 잘린 오른손’ 같은 북구 신화 계통.

아테나의 손목 보호대, 헤르메스 세트 같은 그리스 신화 계통.

그리고 성 미카엘의 창과 같은 기독교 계통이다. 기독교는 야훼의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까지는 그런 아이템을 별다른 의문 없이 사용해왔다.

처음에는 게임 속이라고 생각해서였고, 나중에 게이트의 출현과 함께 아이템도 현실화했을 때는 세파시 게임을 만든 자가 현실을 참고했다고 여겼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세파시는 게임이 아니라, 나와 아서가 함께 만든 새로운 차원 - ‘어스’였고.

지금 나와 유주연이 있는 이 현실도 어스의 연장선이다.

그렇다면 아이템도 아서나 내가, 혹은 둘이 같이 만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이템 또한 어스의 일부이니까.

“저, 그럼 유주는…… 아니, 주연이는 계속 그 상태로 살아야 하나요?”

“음? 그럴 리가. 내가 드러나는 것은 하루에 네 시간 정도다. 그나마도 자는 시간이 포함될 때도 있어서, 이 아이의 삶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거다.”

그렇군, 그건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중요한 문제가 남았다.

바로, 저 로키와 같은 존재가 적인가 아군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적이라면 앞으로 아이템을 쓰기는 어려워진다.

가뜩이나 전뇌성의 주민들 - 그러니까 인베이더를 상대하기에도 버거운데, 로키뿐만 아니라 아테나, 헤르메스, 불카누스 같은 존재들까지 적이 되면 감당하기 어려워질 테니.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어쩌실 생각입니까……?”

로키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뭘 어째?”

“인간계에 오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특별히 뭘 하려는 생각은 없어. 그냥 따분해서지.”

“음…….”

“나의 신력을 나눠 받은 물건 - 너희는 아이템이라고 부르나 본데, 원래는 신물이라고 한다.”

아이템은 신물이었나.

하긴, 아무리 아서라도 그런 힘을 아이템에 부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템 중에는 인베이더보다 훨씬 위력이 강한 것도 많고, 그들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이 대다수이니까.

“신물이 갑자기 대량으로 돌아다니는 건 알고 있었다. 딱히 안 될 것도 없어서 신경 안 썼다만, 인간계에 뭔가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마침 주파수가 맞는 아이가 있기에 강림한 거야.”

“그럼, 혹시 다른 차원의 존재들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로키가 미간을 찌푸렸다.

“알지. 신을 부정하는 것들. 그걸 넘어서서 자기들이 신이라고 여기는 것들이더구나.”

“현재, 이 세계의 인간은 그들과 종의 종속을 걸고 싸우는 중입니다.”

“흐음, 그런데…….”

갑자기 로키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너도 원래는 그들 중 일부가 아니었나? 왜 변심했지?”

나는 직전까지 로키도 어스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아이템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된 인공지능이라고.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우리 가족과 비슷한 존재라고 여겼다.

한데, 나의 실체를 안다고?

이는 섭리에 어긋난다. 영화나 미디어로 표현하자면 제4의 벽을 깨는 행위와 비슷하다.

즉, 게임 속 캐릭터가 자신을 조작하는 게이머를 ‘아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인지하는 것과 같다.

‘뭔가 이상한데?’

“흥, 역시 그렇군.”

나는 로키의 말에 상념을 멈췄다.

“네? 뭐가…….”

로키가 천천히 일어섰다.

“마침 잘됐어. 오늘은 아직 유지 시간이 좀 남았거든.”

스르르.

동시에, 오른손에 뭔가를 소환했다.

거무스름한 칼날의 단검.

로키의 단검이다.

지금 저걸 왜 꺼내?

“너한테 그럴 자격이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자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로키는 테이블을 뛰어넘어 내 목을 향해 단검을 찔러왔다.

쩡!

그리고 보기 좋게 튕겨 나갔다.

휴, 로키의 단검에는 방어력 무시 옵션이 없었지? 그러니까 나의 금강불괴 스킬도 못 뚫는다는 뜻.

“저, 로키 님. 여기 패밀리 레스토랑입니다만?”

“그게 뭐? 그러니까 더 재미있지! 낄낄.”

……이런 상식적인 말이 먹힐 신이 아니지.

“헉, 뭐, 뭐야?”

“방금 저 여자가 남자한테 칼 휘두른 것 같은데?”

역시나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상 상황을 알아챈 매니저까지 다가오고 있다.

“저기, 고객님들? 여기서 이러시면…….”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로키에게 다가갔다.

“제 몸에 단검이 왜 안 박히는지 궁금하시죠?”

“어? 응, 그렇다.”

“이거 보세요.”

나는 손을 내밀었다.

“흠, 다른 신물인가?”

로키는 무심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동시에 나는 다른 손을 로키의 목덜미에 얹었다.

“블링크.”

“엇?”

팟!

우선, 카운터 앞으로 한 번.

“여기 계산이요.”

“아, 네, 네.”

뒤늦게 정신 차린 로키가 목을 뿌리치려고 발버둥 쳤다.

“이놈, 뭐 하는 짓이냐!”

다음, 레스토랑 문을 열고 대로변으로 두 번.

팟!

마침, 지나가는 차도 없고 행인도 거의 없다. 타워형 던전의 출현 때문에 사람들이 출입을 삼가고 있다.

“자, 하려면 여기서 해 보시죠.”

“이미 했다.”

“……?”

손가락이 쑤신다. 검지 끝이 부어올라 시커멓게 변색해 있다.

‘부패!’

로키의 단검을 레전더리 등급으로 만든 사기적 옵션.

-특수 옵션 : 찌른 대상의 상처에 대상과 같은 레벨의 ‘부패’를 발동합니다.

대상과 같은 레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100레벨의 상대에게는 100레벨짜리 부패를 걸어버리니까. 작은 상처 하나라도 내면 끝인 거다.

“낄낄, 그 손가락에 거스러미를 떼어낸 작은 상처가 있더구나. 네가 이동 스킬을 쓸 때, 거길 찔렀지.”

그 정도인데 검지를 절단해야 할 지경이 되었다. 이래서 무섭다.

하지만 내게는 안 통하지.

나는 최하급 엘릭서를 소환하여 손가락에 부었다.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부패는 일반적인 치료 물약으로는 회복하기 어렵다.

“쳇, 그런 것까지 가지고 있었냐.”

로키가 입맛을 다셨다.

“이쯤 하시죠. 뭘 시험하겠다는 겁니까?”

“네가 이 세계의 신이 될 자격이 있는지.”

“……네?”

“뭘 모른 척하는 거냐. 네가 다른 차원의 동료들을 배신한 것. 이곳을 혼자 차지하고 신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더냐?”

꼭 자기 같은 생각만 하는군.

아니, 따지고 보면 완전히 다른 것만은 아닌가.

신이라는 존재가 하는 일이 뭘까.

자기 세계와 신도를 다스리고 숭배받으며 그 대가로 은총을 내리는 것?

나는 이 세계를 전뇌성의 침략자들로부터 지킬 것이고, 그것이 내가 만든 세계에 내가 내리는 은총이다.

그래도 여기서는 다르게 말해야겠지.

“딱히 신이 될 생각은 없…….”

그러다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저기, 로키 님?”

“음, 뭔가 흉계를 꾸미는 눈이로구나.”

“흉계 아닙니다, 하하. 그냥, 뭘 좀 여쭤보려고요.”

“나와의 대결에서 이겼으니 특별히 들어주마.”

그게 대결이었나, 흠.

뭐, 들어준다니 잘됐네.

“저, 혹시 우리 세계에 로키 님 말고 다른 신들도 내려왔습니까? 그, 아이템을 통해서요.”

로키의 얼굴이 말하기 싫다는 듯 실룩거렸다. 하지만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으니 거절하진 못하겠지.

“흥, 그렇다. 몇몇이 와 있는 것 같더구나.”

“그분들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이 세계와 전뇌성의 주민들에 대한.”

“으음……. 대체로 이곳에 호감을 가진 듯하다. 신물을 사용하면 해당 신의 권위랄까, 그런 게 올라가거든. 요즘 신물을 여기만큼 많이 사용하는 차원도 드무니까.”

이거다.

나는 대폭주에 대응하기 위한, 한 가지 대비책을 더 찾았다.

아마도 이전 생에서는 한 차례도 시도하지 않았기에, 나를 스토킹하던 아서 놈도 모를 대비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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