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12부 : 열사의 제국에서 (29)
저 스키드 로우라는 크래커의 전투 기술에 대해서 알아낸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타격점의 내부에 불을 일으키는 발차기를 쓴다는 것.
속도가 빠르고 궤도도 기이해서 피하기도 매우 어렵다.
이건 내부에 공간이 없으며 기본적으로 잘 타지 않는 물건, 예컨대 검 같은 것을 갖다 대어 급한 대로 해결했다.
김태훈은 몰라도 윤성이는 속도가 좀 떨어진다. 태블릿이 타격점을 경고해 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광전사의 검이 점점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보이지만, 설마 명색이 나이트 기어에 전설급 아이템인데. 그랬다고 녹아내리진 않겠지.
두 번째는 위급할 때마다 갑자기 주변이 느려진 것처럼 멈추면서 빠져나오는 기묘한 움직임이다.
내가 스키드 로우가 빨라진 게 아니라 주변이 느려졌다고 여기는 이유는, 스키드 로우의 그런 움직임이 빤히 보이는 까닭이다.
‘그런데 회복 능력이 발동하는 속도가 달라졌단 말이지.’
그 현상에서 나는 한 가지 의심을 했다.
애초에 차원문 이후의 세계나 던전 내부가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의심이다.
그걸 확인해 보기 위해, 거의 쓸 일 없던 잡템인 흡혈 곤충의 알을 꺼내 던졌다.
흡혈 곤충이라고 하니까 거창하지만, 그냥 모기 같은 존재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모기와 조금 다를 뿐.
우선 몸집이 훨씬 크고, 그렇다 보니 알도 크다. 그래 봐야 5밀리 정도지만 평범한 모기 알과 비교하면 거대한 수준이다.
또 흡혈 곤충의 알은, 공기에 노출되고 대략 10초 이내에 부화하는 성질이 있다.
나는 전투를 지켜보다가, 스키드 로우가 또 그 기이한 움직임을 보일 타이밍 - 그러니까 윤성이와 김태훈, 최혜인의 공격이 절묘하게 합을 이뤄, 그가 벗어나지 못하게 된 순간에 알을 튕겨 보냈다.
설령 마신이라고 해도, 흡혈 곤충의 알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흡혈 곤충의 알이 날아가, 표면의 점액과 미세한 갈고리에 의해 스키드 로우의 왼쪽 엉덩이 즈음에 붙었다.
역시나, 스키드 로우는 흡혈 곤충의 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예의 그 기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흡혈 곤충의 알은 부화하지 않았다. 부화 과정이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는 뜻이다.
‘역시, 저놈은…….’
참, 이럴 때가 아니다. 흡혈 곤충의 상태를 살피느라 대응이 살짝 늦었다.
저 뒤에는 반드시 반격이 온다!
나는 서둘러 태블릿을 확인했다.
김태훈, 차윤성 둘 다 위험 신호가 없다. 그렇다면 -
“혜인 기사님, 피하세요!”
내가 외친 것과.
“저놈이 안 된다면 너부터 없애야겠어. 아까부터 멀리서 쏴대니까 점점 성가셔진다고.”
스키드 로우가 최혜인에게 돌진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최혜인도 반응 속도가 느린 기사가 아니기에, 달려오는 스키드 로우를 보고 피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놈이 문제의 능력을 발동했다. 내가 흡혈 곤충으로 확인한 대로라면, ‘주위의 시간이 느려지게 하는 스킬!’
그게 스키드 로우의 능력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최혜인의 움직임이 덜컥 멎었다.
자세히 보면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는 있으나, 거의 정지해 있는 수준이다.
‘위험해.’
저대로면 최혜인이 영락없이 당한다.
내가 막 블링크를 발동하여 막아서려는 찰나.
내 가정을 확신케 해주는 일이 벌어졌다.
“안 된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외눈의 검사 악투샤가 검을 세우고 스키드 로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그가 처음 달려오던 속도는 스키드 로우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급격히 느려졌다. 마치, 우뚝 멈춰 선 것처럼.
나는 그 지점을, 주변의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파악해 두었다.
‘저기쯤부터로군. 범위는 대략 1.5미터. 안전빵으로 2미터라고 하자.’
지켜본 바로 스키드 로우는 좀 유연할 뿐, 특출하게 빠르지는 않다.
스키드 로우가 해당 스킬을 발동한 순간, 놈의 반경 2미터 안은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다. 스키드 로우 자신만 제외하고.
그게 놈이 혼자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 같은, 기이한 움직임을 보인 비밀이다.
파삭.
순간, 스키드 로우의 엉덩이에 붙어 있던 흡혈 곤충의 알이 드디어 부화했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은 3분가량.
중간에 제 속도로 움직인 구간도 있어서 정확하진 않지만, 대략 900% 정도 느려지는 것 같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9분의 1이 되는 것이다.
‘미쳤네.’
이러면 무적이다. 적어도 2미터 안에서는 무엇도 스키드 로우를 건드릴 수 없다.
‘2미터 안에서라면 말이지.’
지금의 악투샤처럼, 2미터 밖에서는 반경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 제 속도를 낼 수 있다.
“뭐야, 이건 또?”
퍽!
스키드 로우는 최혜인에게 날리려던 발차기를, 허리를 회전하여 그대로 악투샤의 관자놀이에 꽂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스키드 로우가 한 박자 물러났다.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흘렀다.
‘연이어 최혜인을 공격하지 않고 굳이 물러선 것은 저 상태에 제한 시간이 있거나, 저 상태에서의 공격 기회에 제한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고 보니 아까 차윤성, 김태훈 등을 상대할 때도 반격은 대상 하나에 그쳤다.
“악투샤 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리고 안타깝게 외치는 최혜인을 향해.
악투샤가 천천히 돌아섰다.
“혜인 씨. 꼭…….”
말하는 그의 입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왔다. 하나만 남은 눈이 지글지글 끓었다.
“꼭 뜻을 이루시길…….”
화르륵!
그 말을 마치자마자 악투샤의 눈, 코, 귀, 입에서 불길이 뿜어져 나와 머리가 횃불처럼 타올랐다.
잠시 팔을 허우적대던 악투샤가 털썩 쓰러졌다. 맹렬하게 타오르던 불길은 그만큼 빠르게 사그라졌다.
“악투샤 님…….”
그에게 다가간 최혜인이 떨리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부가 다 타고 두개골만 남은 대상을 치료하기는 불가능했다.
최혜인은 검게 그을린 악투샤의 두개골에 손을 얹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그 끔찍한 광경에, 김태훈조차 저도 모르게 어깨를 살짝 떨었다.
“지독하네.”
악투샤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던전 안에 기생하는 좀 특이한 인베이더가, 부여받은 공식대로 반응했을 뿐이다.
아무리 그렇게 상기하려 해도, 우선 나부터가 냉정해지기 쉽지 않았다.
눈앞에서 동물이 죽어도 태연하기 어려운 게 사람이다.
하물며 악투샤는 엄연히 우리와 의사소통하고 뜻을 함께했으며 요긴한 도움을 주기도 했다. 더구나 겉보기에는 완벽한 인간의 형상이다.
그런 그가, 마지막까지 최혜인을 구하려다가 머리가 안에서부터 불타 죽은 것이다.
과연, 그것까지 계산되어 있는 반응일까?
하나 확실한 점은, 스키드 로우를 향한 내 감정이 더욱 나빠졌다는 것이다.
“이상한 게 끼어들어서는…….”
투덜대는 스키드 로우를 보며.
나는 내가 알아낸 것들과 이후의 공략법을, 파티챗으로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니까 놈의 반경 2미터 내로 들어가는 직후, 순간적으로 평소의 아홉 배 속도를 내야 해요. 그래야 놈에게 공격이 닿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아홉 배가 된 속도는 놈이 도저히 피하기 어려운 정도여야 하고요. 최혜인 기사님의 화살조차 가볍게 피하는 거 다들 봤죠?
내 마음은 분노로 들끓는 대신, 차게 식었다. 오직 스키드 로우를 쓰러뜨리는 데만 신경을 집중했다.
그나마 화살이었기에, 스키드 로우의 범위 안에 들어가서도 놈이 신경 쓰며 피할 정도가 된 것이다.
날아간 화살의 속도가 평균적으로 초당 50미터쯤 된다면, 900%로 느려져도 초당 5미터니까. 시속 18킬로미터는 되는 셈이다.
‘100미터를 20초에 주파하는 정도의 속도인가? 그래도 그 속도로, 치명적인 뭔가가 뒤나 옆에서 계속 따라온다면 마냥 무시하기 어렵긴 하지.’
게다가 화살은 파훼법도 드러나 버렸다. 바로 화살 자체를 파괴하는 것이다.
-태훈 형이 해요. 초당 100미터로 공격하면, 범위 안에서도 체감 시속 36킬로미터로 놈을 압박할 수 있어요.
단, 초당 100미터는 ‘느려지는 시간의 흐름’ 범위 밖에서는 무려 시속 360킬로미터가 된다.
말 그대로 쏘아진 화살보다 빠르게, KTX의 최고 속도보다 더 빠르게 공격하라는 주문이다.
말이 쉽지, 최혜인의 화살보다 두 배 빠른 검격을 범위 밖에서부터 날려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다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잠깐 숨 고르는 분위기가 되자, 스키드 로우가 말했다.
“뭐야, 뭔가 꾸미는 거? 뭘 하든 소용없을 텐데.”
뒤이어, 그가 주머니에서 양손을 뺐다.
“그러면 내가 먼저 갈 거거든.”
지이잉!
뭔가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후비고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악투샤의 시신 앞에 멍하니 주저앉아 있던 최혜인이, 별안간 내게 활을 겨눴다.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피하십시오, 이정우 기사!”
팟!
최혜인이 활을 내 쪽으로 향할 때, 난 이미 블링크 발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이 어쩐지 심상치 않아서였다.
직후, 내가 서 있던 자리로 최혜인의 화살이 바람을 가르고 지나갔다.
“뭐야, 왜 정우한테 활을 쏘고 난리야? 아줌마, 미쳤어?”
나는 버럭하는 김태훈을 달랬다.
“저거, 최혜인 기사님의 의사가 아니야. 저놈이 모종의 방법으로 조종한 거야. 나보고 피하라고 경고했잖아.”
“뭐? 또 그 최면 같은 건가?”
코덱스에게 당한 일을 떠올린 김태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그거하고는 좀 다른 것 같아. 지금, 최혜인 기사님의 정신은 말짱해 보이거든.”
최혜인이 다급히 대꾸했다.
“맞습니다. 지금 제 정신은 지극히 멀쩡합니다. 뭔가 보이지 않는 것에 의해, 몸이 멋대로 움직이……. 윽!”
퍽!
최혜인은 말끝에 나직한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둔탁한 타격음이 울렸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자기 주먹으로 후려친 것이다.
김태훈이 어이없다는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뭐야, 갑자기 웬 자해?”
“그러니까, 이건 제 뜻이 아니……. 아악!”
이번에는 좀 더 심각했다.
최혜인이 화살통의 화살 하나를 뽑아, 다짜고짜 제 명치를 찌른 것이다.
다행히 방어구를 착용하고 있어서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화살 또한 보통 물건이 아닌 데다 그녀가 찌르는 힘이 무지막지하게 셌다.
화살촉 반 정도가 방어구를 뚫고 최혜인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이 자식, 당장 멈추지 못해!”
스키드 로우는 헤드폰 표면을 리듬 맞춰 톡톡 두드리며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외침에 비웃듯 말했다.
“참 웃기지. 버그들은 곧잘 저러더라. 멈추라고 한다고 멈추겠냐?”
나는 발로 바닥을 굴러대면서 미친 듯 화를 냈다.
“왜 자꾸 멀쩡한 사람더러 변이종이니 버그니 어쩌고 하는 거야? 내가 버그면 너는 무슨 살충제냐?”
“뭐? 푸하하!”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스키드 로우가 답했다.
“그거, 고대의 개그 맞지? 넌 좀 웃겼으니까 조금만 말해준다. 버그란 그 벌레가 아니야. 오류를 가리키는 거지.”
……오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