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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155화 (155/303)

155화

12부 : 열사의 제국에서 (28)

아, 짜증 난다.

나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했고, 그 상황에서는 김태훈의 방법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팔이 잘린 광경을 보자, 알 수 없는 울분과 슬픔 비슷한 감정이 치밀었다.

그게 어떤 팔인데!

미래의 특급 기사가 될 인간의 팔인데, 그걸…….

김태훈, 이 미친놈아!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스키드 로우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그나마 최혜인의 화살을 피하다가 살짝 긁힌 상처마저 순식간에 아물어버렸다.

저 속도에다가 재생 능력까지 있다고? 너무 사기 아니야?

아니, 아직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나는 스키드 로우의 눈을 피해, 몰래 태블릿을 이리저리 조작해 보고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뒤졌다.

뭔가 해결책이 될 만한 게 없나 찾기 위해서다.

‘잘린 신체 부위를 재생하는 수준의 물약은 없다. 절단면을 갖다 댄 상태에서 부으면 될 수도 있는데, 내부가 다 타버렸으니 그조차 안 될 것이고…….’

나는 슬금슬금 올라가는 스트레스 지수를 초조한 심정으로 봤다.

한편, 스키드 로우는 김태훈의 광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흐음, 버그들 중에 이런 녀석이 있다고? 아무리 변이성이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확실히 개성이……. 연기도 계속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처럼 말이야. 그분들이 변이 버그와 놈들의 정체성 확립을 염려할 만해.”

알아듣기 어려운 소리를 지껄인 스키드 로우가 김태훈에게 말했다.

“그래. 그것이 나의 불꽃을 막는 몇 안 되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번지기 전에 잘라내는 것. 불을 다루지 못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지.”

“하하, 내가 맞혔네. 신난다…….”

김태훈은 말하면서 왼손으로 귀혼을 주워 들었다.

“이럴 줄 알았냐, 새끼야!”

뒤이어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스킬을 발동했다.

김태훈 식 섬전 베기!

번쩍!

섬전이라는 단어 그대로, 김태훈의 신형이 일순간 사라지더니 스키드 로우의 코앞에 나타났다. 허를 찌르는 공격이다.

왜 저렇게 스킬에 자기 이름을 넣나 모르겠군. 뭐, 쓰는 사람 마음이긴 하지만.

섬전. 이번 건 먹히려나?

쾅!

그러나 이번 공격도 아쉽게 막혔다. 스키드 로우가 오른팔을 들어 귀혼을 막아낸 것이다.

귀혼은 목검이기는 해도, 이제 완전히 성질 자체가 달라졌다. 일천의 생명체를 죽여 마력을 흡수한 결과 일종의 마검으로 바뀌었다.

콘크리트나 철판도 두부처럼 자른다. 그걸 팔로 가볍게 막다니.

스키드 로우의 오른팔은 뭔지 알 수 없는 재질의 토시 같은 것으로 감싸여 있었다.

보기에는 분명 얇은 가죽 같은데, 평범한 가죽으로 귀혼을 막아낼 리 없다. 그랬다면 토시째 팔이 잘려 버렸으리라.

김태훈의 회심의 일격은, 토시에 가려지지 않은 스키드 로우의 손등 부위에 죽 긁힌 상처를 내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나았다.

“오, 이번 건 제법이네.”

말하는 스키드 로우를 향해, 김태훈이 히죽 웃었다.

“그럼, 다음 건 어떨까?”

“음?”

부웅!

김태훈이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며 무릎을 올려 쳤다.

“이런 공격에 맞을 리가…….”

고개를 젖혀 피하던 스키드 로우가 휘청했다. 뭔가를 밟아 발을 헛디딘 것이다.

그의 발아래에는 김태훈의 잘려 나간 오른쪽 팔뚝이 있었다.

우연히 거기에 놓인 것이 아니다. 김태훈이 섬전 베기를 발동하면서 귀신처럼 정확히 차 넣은 것이다.

그리고 무릎 치기를 하는 척하면서 정면으로 시선을 끌고, 그 위치로 스키드 로우를 몰았다.

“잡았다.”

김태훈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뒤이어 귀혼을 빙글 돌려 거꾸로 잡더니, 균형이 무너진 스키드 로우의 안면을 향해 수직으로 찔러 넣었다. 온 체중을 실어, 반드시 죽이겠다는 듯.

“아예 나을 틈도 없게 해주지.”

“어?”

스키드 로우의 눈이 커졌다.

상체가 한껏 젖혀진 상태라 더 피할 각도가 안 나온다.

발을 헛디딘 직후여서 몸을 옆으로 비틀기도 어렵다.

와, 김태훈 저 찐 광기. 자기 잘린 팔을 함정 카드로 쓰다니.

보는 나도 무서운데, 당하는 당사자는 얼마나 무서울까?

‘이건 들어갔다. 자세도 타이밍도, 절대 못 피해.’

그 직후.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스키드 로우가 무너진 자세에서 흐느적대듯 몸을 기묘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핀치에서 태연히 빠져나와 김태훈의 뒤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어째서인지 김태훈은 찌르기를 멈췄다.

그걸 피해낸 스키드 로우도, 그 동작에서 급브레이크라도 걸듯 허공에 멈춘 김태훈도.

둘 다 정상적인 동작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일단, 나의 블링크 같은 스킬과는 다르다.

공간을 건너뛰어 이동한 게 아니다. 그러기에는 둘 사이의 거리도 너무 가까웠다.

그보다는 스키드 로우가 있는 곳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느낌과 비슷했다.

초고속 이동인가?

스피드라면 김태훈도 뒤처지지 않을 텐데…….

그런 단순한 능력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뭔가가 있다.

보고 있자니 스키드 로우의 움직임에서 아까부터 이상한 위화감이 느껴지는데, 그게 정확히 뭔지 파악하기가 어렵다.

“이번에는 먹혔다 싶었지?”

조롱하듯 말한 스키드 로우는 훤히 드러난 김태훈의 등을 향해 다리를 들었다.

“얍.”

도끼 같은 뒤꿈치가 등에 떨어지려는 찰나.

차윤성이 온몸을 날리다시피 하여, 필사적으로 숄더 태클을 걸었다.

“넌 느리다니까.”

여유롭게 피하려던 스키드 로우가 멈칫했다.

정확히 그가 움직이려던 경로로, 최혜인의 화살이 날아온 까닭이다.

“예측 사격? 아, 성가시네.”

또다.

그 순간, 다시 스키드 로우를 제외한 주변의 모든 것이 느려졌다.

차윤성과 김태훈은 물론, 날아오던 화살까지.

나는 눈이 빠질 지경으로 부릅뜨고, 모든 것을 시야에 담으려고 애썼다. 뭔가 힌트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진실의 눈을 써봐도 딱히 표시되는 건 없다.

능력치가 나타나지 않는 까닭에, 스키드 로우의 속도가 빨라진 게 맞는지 아닌지 더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뭐지? 놈의 저 움직임의 비밀은?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공격에 가담하지 않아서인지 약해 보여서인지는 몰라도, 스키드 로우가 나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를 직접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전투 중간에 윤성이에게 소리 질러 위험을 알리는 등 시선을 끌었다.

그럴 때도 나를 힐끗 쳐다볼 뿐, 의도적으로 전투에서 배제했다.

나야 좋지만, 무슨 생각이야?

아무튼, 날 방치한 걸 후회하게 될 거다.

*

스키드 로우는 뒤편으로 빠져 있는, 곱상한 외모의 남성형 변이성 버그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거 놔두면 성가셔질 것 같은데…….”

그는 확신했다.

몇백 년 전에나 쓰던 터치식 컨트롤 판넬을 들고, 연신 이쪽을 흘끔거리는 저놈이 전력의 중추이자 핵심이라고.

얼핏 보기에는 전투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 겁쟁이인 듯하나, 수백 년을 싸워온 스키드 로우의 감은 정확했다.

무엇보다 조금 전.

크랙 투 스킬에 재미 삼아 브라질리언 킥을 응용했을 때다.

놈이 타격점을 정확히 경고했고, 그 덕에 대검을 쓰던 변이성 버그는 목숨을 건졌다.

솔직히 그때는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제까지 그 킥의 궤도를 미리 읽어낸 자는 단언컨대 하나도 없었다.

거기에 맞았다면 백 퍼센트 사망이었다. 자기 팔을 잘라낸 저 미친놈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상, 목을 잘라내고 살아 있다는 건 섭리에 어긋나니까.

‘제일 먼저 저놈부터 죽였겠지. 원래의 나라면.’

한데 어째서인지, 스키드 로우의 주인이자 그가 숭배하는 유일무이한 무사 - 센시가 리더격인 변이성 버그를 죽이지 말 것을 지시했다.

스키드 로우는 주인의 어떠한 지시에도 의문을 품지 않는 편이다.

하나 이번만은 좀 달랐다.

‘설마, 그 유희라는 것 때문인가?’

센시는 지고의 사천왕 가운데서도 가장 유희에 집착했다. 폭급하고 종잡기 어려운 성품에다, 포지션 자체가 선봉이어서 그런지도.

원래는 센시의 그런 면조차 좋아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번 유희는 위험 요소가 너무 뚜렷하고 많았다.

특히, 저 컨트롤 판넬을 든 놈을 놔두면 분명 화근이 된다.

‘저 눈, 뽑아내 버리고 싶네. 불쾌해.’

스키드 로우는 주인의 이번 놀이가, 여느 때와는 달리 위험해지리라는 거의 확실한 예감에 초조해졌다. 그 바람에 실수를 저질렀다.

센시가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실수였다.

-알겠냐, 스키드 로우. 너는 전투에서 최대한 다쳐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칫 적에게 네 능력의 비밀을 들키게 될 거야.

-주인님. 송구하오나, 알아봐야 뾰족한 대응책이 없지 않을까요?

-흥, 잘난 척 마라. 차원은 무궁무진하고, 아무리 복제 차원이라 해도 그 단서만으로 널 위험하게 만들 존재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숭배하는 존재의 말이라 듣는 시늉이라도 했지, 그 말을 들었을 때도 내심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그것은 실수라고 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0.1초도 눈을 떼지 않고 그를 주시하던 이정우에게는 달랐다.

*

‘확실히 늦게 아물었어.’

나는 분명히 보았다.

김태훈과 차윤성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필사적인 공격을 퍼부은 결과.

최혜인의 화살을 의식하던 스키드 로우의 어깨에 상처를 냈다.

윤성이가 들고 있는 광전사의 검에, 검신의 날카로운 부위가 지나가면서 긁힌 것이다.

검날로 벤 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겨우 핏방울이 맺히는 수준의 가벼운 상처였다.

하지만 스키드 로우는 몹시 화를 냈다.

“이 새끼들, 다 죽여주지.”

뒤이어, 또 그 현상이 벌어졌다.

김태훈과 차윤성은 벼락이라도 맞은 양 굳어버리고, 그 사이를 스키드 로우만 유유히 움직이는.

그 순간.

이제까지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던 스키드 로우였는데, 어째서인지 방금 생긴 어깨의 상처만 회복이 느렸다.

쾅! 콰쾅!

“컥!”

“커흑!”

김태훈과 차윤성이 무거운 신음을 뱉으며 나가떨어졌다. 직후, 둘은 혼비백산해서 검을 몸에서 멀찍이 떨어뜨렸다.

“앗, 뜨거워!”

내부를 태우는 스키드 로우의 발차기를 검으로 막아낸 까닭이다.

한 방 맞으면 끝장이니, 피할 수 없다면 검으로라도 막아야 한다.

이에 둘은 본능적으로 타격 지점에 검을 갖다 댔다.

덕분에 내부 발화 사태만은 모면했으나 검이 엄청나게 뜨거워진 것이다.

나이트 기어, 광전사의 검에는 전설급 재생 특수 옵션이 있다. 생명력 분당 회복에 자동 치유까지 포함이다.

윤성이가 악착같이 달려들 수 있는 원동력도 그것이다.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가도, 스키드 로우의 회복 속도만은 못하지만 비교적 빠르게 치료되었다.

셋 중에서 제일 떨어지긴 하나, 김태훈도 어느 정도 회복 능력이 있다. 아마 할파스의 권능이리라.

그래서 더 뚜렷하게 보였다.

그 ‘주위를 느리게 만드는 순간’ 동안만은, 윤성이도, 김태훈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단순히 움직임이 느려지거나 빨라진 것만으로는, 상처의 회복 속도에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그런 일이 생기는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이 미친 세계와 던전 안에서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확인을 위해, 인벤토리의 잡템 중에서 흡혈 곤충의 알 하나를 꺼내 타이밍 맞춰 던졌다.

흡혈 곤충의 알은 껍데기가 공기에 닿으면 저절로 부화한다.

이후 빠르게 성장해서 근처 생명체의 피를 빨아먹는 하급 몬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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