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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149화 (149/303)

149화

12부 : 열사의 제국에서 (22)

뭐?

누가 어디에서 왔고, 뭘 어쩌자고?

나를 바라보던 해골 가면이 말했다.

“질문이 너무 많구나. 멀린.”

“내 생각을 읽는 건가요?”

“당연하지.”

“그게 왜 당연하죠? 기분이 좀 나빠지려고 하네요.”

“기분 나빠 할 것 없다. 너도 내 생각을 읽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잠자코 있자, 해골 가면이 말했다.

“이해한 모양이군.”

“생각 읽는 것 맞아요?”

“농담이다.”

……어째 꿈에서 느낀 것과 이미지가 다른데?

해골 가면이 내게 재차 말했다.

“돌아가자, 멀린.”

“저기요, 해골 아저씨.”

“카발리어다. 불멸의 카발리어라고도 하지.”

“그럼, 불카 아저씨.”

“참고로, 카발리어라는 것은 직책의 이름이다. 너도 알겠지만.”

“모르는데요.”

“아무튼, 그래서 너는 나의 이름을 주로 불렀지.”

“아서?”

무심코 말한 뒤, 나는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해골 가면, 카발리어는 가면 뒤로 만족스레 웃었다.

“하하, 그것 봐라. 넌 부정하지만, 사실은 나를 기억하고 있다.”

“실수예요.”

“알려주지도 않은 상대의 이름을 정확히 말하는 실수도 있나?”

“멀린 하면 아서죠.”

“기억을 잃었어도 잘 갖다 붙이는 건 여전하군.”

“아무튼, 아서인지 불카인지 난 당신을 몰라요. 당연히 따라갈 생각도 없고, 그리고 난 멀린이 아닙니다. 이정우죠.”

내 말이 이어질수록, 해골 가면의 기세가 차갑게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이정우.”

해골 가면은 나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정우, 이정우.”

그리고 반복할수록, 점차 기세가 흉험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살벌한 기운은 절정에 이르렀다가 일거에 사라졌다.

해골 가면은 온화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난 너를 꼭 필요로 하고, 너는 여전히 거부하니. 또 너의, 이정우의 세계를 부술 수밖에.”

“뭘 부숴요?”

또, 라고?

나는 해골 가면과 처음 대면한 게 아니란 말인가?

하긴, 저자는 시종일관 나를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

내가 꼭 필요하며 같이 어딘가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런다고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심지어 두려운 느낌까지 드는 자와 함께 갈 수는 없잖아.

무엇보다 여기에는 내 가족과 친구들이 -

생각하던 순간, 해골 가면이 뭘 부수겠다고 한 것인지 깨달았다.

‘내가 속한 세계.’

나의 일상, 가족, 친구와 동료.

그것들을 다 부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그래서 내가 자신을 따라갈 수밖에 없도록.

“자, 봐라.”

가짜 김태훈이 말한 진정한 악몽은 그때부터였다.

우선 내 눈앞에서, 익숙한 우리 동네와 시가지가 무너지고 불탔다.

그리고 담임선생님과 유주연을 비롯한 학교 친구들이 무너지는 건물에 깔려 죽거나 불타서 몸부림치다가 죽었다.

도시에 출몰한 인베이더 떼에게 물리거나 찢겨 죽기도 했다.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울부짖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정우야, 살려줘!”

“나, 죽고 싶지 않아. 정우야, 제발!”

허상인 걸 알면서도, 너무 생생하고 실감 나서 고통스러웠다.

“크, 으윽…….”

이어서, 수경총과 사신 기사단의 기사들이 나타났다.

손태준, 최혜인과 류경재, 정기석, 강은빈 등이었다.

그들은 강대한 인베이더 대군에 맞서 곧잘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점차 지쳐가다가 하나둘 쓰러져 죽음을 맞이했다.

그들의 원망스러운 눈빛이 견디기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에 최혜인이 한 말은 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당신이, 이 세계에…… 파멸을…… 불러왔습니다.”

다음은 윤성이와 설아 그리고 김태훈의 차례였다.

그들은 기사답게 재난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하지만 결국, 앞선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파괴되는 세계에서 버티지 못하고 차례로 쓰러져 갔다.

“정우야, 미안…….”

“너라도 도망쳐.”

“하하, 나도 여기까지인가 보네.”

그러다 결국 두려워하던 일이 벌어졌다.

“젠장.”

허상의 대상이 친구들에서 가족으로 바뀐 것이다.

단, 부모님과 정아가 죽는 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해골 가면이 직접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였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고통에 몸부림치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으며 죽어 갔다.

허상이자 악몽이라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광경이었다.

그 증거로, 스트레스 수치가 연이어 빠르게 치솟았다.

<주의! 스트레스 수치가 20 올랐습니다.>

<주의! 스트레스 수치가 24 올랐습니다.>

<주의! 스트레스 수치가 16 올랐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정말 미쳐버릴지 모르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뭔가가 떠올랐다.

잠깐, 스트레스 수치?

나는 눈앞에 나타난 익숙한 메시지 창을 물끄러미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하하하!”

해골 가면이 의구심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우습지, 멀린?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아니면 벌써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 갑자기 몰입이 확 깨져서요.”

“뭐?”

“하마터면 걸려들 뻔했는데, 그냥 악몽이라는 걸 확실히 알았다고. 이 개자식아!”

스트레스 수치는 내가 받고 있는 정신적 충격의 정도를 보여준다.

그런데, 눈앞에서 가족이 죽임당하는 상황인데도 고작 20, 24 하는 식으로 오른다?

그럴 리가 없지.

즉, 시스템은 내가 받는 고통을 딱 그 정도라고 해석한 것이다.

‘가짜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괴로움과 마음의 동요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해골 가면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으음, 이럴 수가.”

“이럴 수가는 무슨. 그런데…….”

나는 신창 롱기누스를 소환했다.

꿈인데도 아이템 소환은 멀쩡히 잘 됐다.

아니, 자각몽이라서 더 잘되는 건가?

이곳은 나의 꿈속.

주도권만 찾아오면 내 세상이라는 뜻이니까.

“아무리 꿈이라도, 넌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스킬 발동, 천상의 창!

나는 쏟아지는 창의 비를 맞는 해골 가면을 향해 내뱉듯 말했다.

“네가 누구인지는 정말 모르겠고, 어차피 지금의 너도 악몽 속의 가짜겠지. 하지만 끝내 나의 세계를 파괴하려고 한다면, 네가 어디에 있든, 언제 나타나든 반드시 없애줄게. 지금처럼.”

투콰콰콰콰콰쾅!

신창 롱기누스로 발동한 천상의 창의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천상의 창 스킬의 위력은, 구현되는 창의 개수에 비례한다.

하늘에서 그야말로 창의 비가 쏟아지다시피 했다. 창공이 찢어지고 대지가 쪼개졌다.

“흐흐.”

천상의 창에 난자당하던 해골 가면이 나직이 웃었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소리는 내 귓가에 똑똑히 전해졌다.

뭐야, 왜 웃어. 찜찜하게.

“좋아, 멀린. 나를 증오해라. 그걸로 되었다.”

저게 끝까지 멀린이라네.

“그렇게라도 네가 나를 기억해낼 수 있다면…….”

해골 가면, 카발리어가 천상의 창에 맞아 소멸된 직후.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겨우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그런 내 눈가에는, 어째서인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왜 슬프고 답답한 걸까?

분명, 그 카발리어라는 놈을 우주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죽이고 싶었고, 꿈에서는 죽였는데?

“어, 우와, 시발!”

나는 갑자기 들려온, 생소한 목소리의 욕설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맞아, 그러고 보니 하나도 해결된 게 없었지.

이런 식으로 기습해 온 상대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했…….

“너냐?”

나는 욕을 한 낯선 청년의 목을 틀어쥐었다.

갈색 피부에, 눈썹이 짙고 코가 오뚝한 아랍풍의 미남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일행 중에는 이런 자가 없다는 것. 또한, 나는 이런 자를 내 객실에 들여놓은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고로, 이자는 적이다.

“컥, 케켁!”

불시의 일격을 당한 청년이 놀라 날뛰었다. 팔을 휘저으며 다리를 버둥거렸다.

나도 조금 놀랐다. 내가 누군가를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공격하는 일은 드물다.

방금 겪은 일에 상당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청년의 목을 움켜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벽까지 밀어붙여 더욱 세게 목을 눌렀다.

“커흑! 이익……. 최면, 적대 금지!”

청년의 눈이 기이한 빛을 발했다.

그 빛을 본 순간, 손의 힘이 빠지면서 놈을 놓치고 말았다.

청년은 진저리치면서 내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어우, 콜록! 시발, 주, 죽을 뻔했네.”

“…….”

나는 이상한 현상을 겪고 있었다.

주위의 상황은 인지가 되는데, 몸이 조금도 말을 듣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방금까지 불붙듯 타오르던, 아랍풍 청년에 대한 적개심이 사라졌다.

설마, 아직도 꿈꾸는 중인가?

그러다, 방금 얼핏 들은 말이 생각났다.

‘최면, 이라고 했던가. 적대 금지라고도…….’

그렇다면 이것도 이놈의 기술인 거다.

내게 최면을 걸어 움직임을 봉쇄한 듯했다. 자신에게 적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시험 삼아 천상의 창 스킬을 사용해봤다. 아예 발동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무기 소환도 안 된다.

이런 것들을 모두 청년에게의 적대 행위로 판단한 듯했다. 섭리, 혹은 던전의 시스템이.

‘그렇다면…… 정보라도 파악하자.’

다행히, 최면 상태에서도 진실의 눈 스킬은 발동할 수 있었다.

‘진실의 눈!’

[레벨 ?? 코덱스]

-성향 : 혼돈 악

-클래스 : 크래커

-등급 : ??

-칭호 : 나이트메어

-스테이터스

???

-스킬

애착 복제술

파멸의 악몽

착란 발동

최면

무기력 전파

역시나 이놈도 크래커라는 클래스였다.

타워 던전에서 처음 맞닥뜨린, 정체불명의 강력한 적.

‘코덱스……. 이게 놈의 이름인가.’

이 코덱스라는 자는, 주로 정신계 공격을 특기로 하는 듯했다.

처음에 내게 보여줬던 가짜 김태훈과 여자들도 그렇고, 이후의 악몽과 최면까지도.

또, 진실의 눈으로 확인한 스킬들도 그렇다.

‘정신 공격 계열들은 대체로 물리적인 힘이나 무력은 약한데.’

그러고 보니, 내 목조르기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내가 최면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끝장낼 수도 있었을 거다.

나는 그 사실을 마음속으로 기억해뒀다.

여기까지 생각했는데도, 코덱스를 공격할 마음은 전혀 안 들었다.

무섭구나, 최면!

물리 공격도, 마법 공격도 아니어서, 금강불괴와 만독불침 스킬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아니, 도움 되긴 하겠지.

“아오, 이놈. 이럴 때 죽여버려야 하는데…….”

저 구시렁대는 코덱스라는 놈이, 지금 같은 상태에서도 나를 죽이기가 몹시 어려워질 테니까.

코덱스는 품에서 단도를 꺼냈다.

“확, 쑤셔버려? 망할 놈의 새끼.”

정신 공격이 특기라는 점과 더불어, 아무래도 말이 좀 굼뜨고 입이 더러운 게 저놈의 특징인 듯하다.

같은 크래커라도 레이저는 끝까지 극존칭 어투였는데 말이지. 나머지 하나는 아예 인간도 아니었고.

코덱스는 당장이라도 나를 단도로 찌르고 싶은 눈치였다.

보통 단도는 아닌 게 분명했으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스킬이면 몰라도 아이템으로는 금강불괴 스킬을 깨기 어렵다. 더구나 저놈 정도의 약한 완력으로는.

코덱스는 단도를 휘두르는 한편, 나를 노려보면서 내 주위를 돌아다녔다. 놈은 뭔가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답해라. 벼, 변이성 버그 주제에, 어째서 네놈한테서 그분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거지?”

그분들?

드디어, 이 크래커라는 것들을 보낸 자들의 실마리를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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