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 대폭주 대비 시작 (10)
차윤성 / 신뢰하는 이
1) 같이 식사하기 (○)
보상 : 영구적 호감도 20% 획득
2) 1,000만 원 이상 투자하기. 단, 현금 증여와 다크 스톤, 아이템 시세는 제외합니다. (○) 보상 : 모든 스탯 +10
3) 기사로 각성시키기 (○)
보상 : 영혼의 각인
4) 차윤성에게 평생의 은혜 입히기 (○)
보상 : 긍정적인 무작위 특성 두 개, 차윤성의 호감도 20% 증가
5) 설정 중
육성 퀘스트 4단계를 클리어했으며 보상이 주어졌다는 상태창이 떠올랐다.
그러나 내 눈에는 내용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진심으로 감사해하는 윤성의 모습만이 보일 뿐.
이때만은 보상이 뭐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윤성의 어머니가 눈을 떴다.
충혈되고 흐릿하던 아까와 달리, 맑은 눈동자에 생기가 어려 있다.
“아들. 그 물 도대체 뭐야? 엄마 이제 다 나은 것 같아. 몸 상태가 정말 좋아.”
“엄마…….”
“어머, 왜 울어? 에고, 엄마가 걱정 많이 시켰구나. 이리 와.”
윤성은 젊고 건강해진 엄마에게 안겨서 펑펑 울었다.
나는 둘만 있을 수 있도록 살며시 병실을 나와, 윤성에게 톡을 남겼다.
빈 엘릭서 병은 미리 챙겨서 아예 인벤토리에 넣었다. 괜히 눈에 띄어 의심을 사지 않도록.
-축하한다, 윤성. 난 이제 시간이 너무 늦어서 집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 새벽에 의사쌤 오면 그냥 너도 영문을 모르겠다고 해.
턱. 어깨에 익숙한 무게가 느껴졌다. 어느새 위에 올라온 무르다.
-잘 끝났느냐?
‘네, 뭐.’
차윤성 모자의 모습을 보니, 나도 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오늘 아침에도 보고 나왔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평생 그리워하던 엄마다. 장장 35년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것이, 몇 달 새 회귀에 적응해서 슬슬 집에 늦게 들어가고 엄마한테 소홀하려는 마음이 생겼다.
인간이란 왜 이렇게 간사하고 빨리 적응하는 걸까.
‘택시 타고 가면서 엄마한테 전화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윤성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이.”
-어이는 무슨! 너 왜 갔어?
“가야지, 그럼. 나도 병실에서 잘 수는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좀 더 있다가 가지. 우리 엄마도 아쉬워하던데.
“너, 어머니께는 뭐라고 설명했어?”
-어차피 내가 기사로 각성한 일도 계속 숨길 수는 없어서……. 네가 나보다 훨씬 실력 좋고 먼저 기사가 된 친구인데, 던전에서 얻은 아이템을 엄마한테 썼다고 했어.
“음……. 뭐, 잘했네. 어머니께서 어린애도 아니고, 물만 마시고 갑자기 나았다는 말로는 안 통하겠지. 기적 이런 것도 안 믿으실 테고.”
-응. 그랬더니 엄마가 너 꼭 다시 보고 싶대.
“퇴원하시면 집으로 한번 인사드리러 간다고 해줘.”
-그럴게. 진짜 고맙다. 아까, 빈말 아니야. 나 이제 널 위해서라면 내 목숨도 바칠 수 있다.
“됐어, 인마. 누가 그런 거 필요하대? 내년에 내 회사에 취직이나 해.”
-당연하지.
여기까지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윤성의 말은 완벽한 진심이리라.
현재 나를 향한 그의 호감도 수치는, 영구적 기본 호감도 20 + 초월적인 매니저 직업 특성 30 + 윤성이 자신의 호감도 70 + 퀘스트 보상 호감도 20.
해서 무려 140%에 달했으니까.
세파시 기준으로 100이 최고 수치지만,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 한계를 돌파하면 225까지 증가한다.
100만 되어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 수준이다.
그런데 140%라니, 윤성이가 날 어느 정도로 경애하는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그 녀석, 집착 특성까지 있잖아?’
갑자기 김태훈이 떠오르면서 조금 걱정되었다.
흐음, 뭐. 윤성이랑 김태훈은 인종이 다르니까.
아무튼, 이 정도면 타국에서 백지 수표 묶음을 내밀어도 윤성이가 날 배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완전한 내 편이 생겼다는 기분은 제법 괜찮았다.
-왜 혼자 히죽거리냐?
‘윤성이 엄마가 다 나았거든요. 좋은 일이죠.’
-흐음……. 네 녀석이 뭔가 한 게로구나. 가만히 보면 참 신기한 녀석이란 말이야. 하긴, 시간을 거슬러 온다는 것만으로도 평범하지는 않지.
무르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엎드려 졸았다.
윤성이와 통화를 마친 다음에는 엄마에게 전화했다.
시간이 늦어져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엄마는 금방 받았다.
“엄마.”
-그래, 어떻게 됐어?
“잘됐어. 응급실에 빨리 가서, 별 탈 없이 금방 회복하실 거 같아.”
긴장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아이고, 참. 정말 다행이다. 윤성이 많이 놀랐겠다.
“응, 좀 그랬는데 이제 괜찮아. 나 지금 무르랑 집에 가는 중.”
-그래, 고생했어.
“뭐 사 갈 거 없어?”
-없어, 없어. 얼른 오기나 해.
“알았어.”
전화를 끊자, 택시 기사님이 슬쩍 말을 건네왔다.
“고양이가 참 얌전하고 귀엽네요.”
“감사합니다, 하하. 태워주신 것도 감사해요.”
“아이고, 나도 집에 고양이 있어요. 우리 집 녀석은 치즈냥인데.”
어쩐지 무르를 보고도 인상 한 번 안 찌푸리고 선선히 태우시더라니. 집사이셨군.
우리 대화를 알아들은 무르가 말했다.
-치즈냥이 뭐냐?
‘노란 줄무늬 고양이요.’
-흥, 별 이름을 다 붙이는구나. 그럼 나 같은 고양이는 뭐라고 하느냐?
‘까망이죠, 뭐.’
무르가 작게 옹알대는데, 기사님이 다시 말을 붙였다.
“착한 아들이네요. 늦게 들어간다고 집에 전화도 하고. 우리 애도 반만 닮았으면 좋겠네.”
나는 윤성이의 어머니를 구하고 그의 마음도 얻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평소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사님의 말을 받아주었다.
“제가 예전에 부모님께 너무 못했는데, 하마터면 다 잃을 뻔하다가 다시 찾았거든요. 이제부터라도 잘하려고요.”
“그런 생각 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효자구먼요. 너무 늦지 않게 관계 회복해서 다행이에요.”
아마 기사님은 다 잃을 뻔했다는 내 말을, 부모님과 불화했었다는 뜻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뭐, 상관없나.
이제 주말에 김태훈을 각성시키고, 미리 약속한 대로 유주와 우리 집에서 공부하면 된다.
원래 카페나 독서실에서 했는데, 서로 모르는 부분 물어봐 가면서 하기도 어렵고, 무엇보다 유주연이 힘들어했다. 자기는 한 번씩 누워서 쉬어줘야 한다나.
그래서 우물 파는 쪽인 내가 장소를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집으로 불렀더니, 유주연은 불편해하기는커녕 손뼉을 쳤다.
“와, 잘됐다! 나 너네 이사한 집 꼭 구경 가보고 싶었는데. 목동 아파트로 갔다며? 거기 완전 좋잖아!”
“아니, 뭐……. 그냥 평범한 아파트인데?”
“요즘 같을 때 안전 구역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좋은 거야. 그럼 이번 주 일요일 점심때 갈게. 밥 줘!”
“그러자.”
이상한 녀석.
나는 유주연과의 대화를 회상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느긋해진 기분이 되어, 육성 퀘스트 보상으로 새로 얻은 긍정적 특성 두 가지를 확인했다.
-용맹함 : 소심함 특성을 완화해주며 전투에서 투지가 증가합니다. 당신이 전투를 시작하면 파티원 전원이 자동으로 분기 상태가 됩니다.
-아름다움 : 빼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몸매가 늘씬합니다. 피부에서 윤기가 나는 듯하고 부스럼이나 점 따위는 아예 없습니다.
……뭐지, 이거.
용맹함은 필드 보스와 여러 차례 싸우기도 하고 던전도 들어갔다가 나왔으니까 그렇다 치고.
아름다움? 이건 왜 생긴 거지.
무작위 특성이라고 하더니 정말 완전 랜덤인 모양이다.
확실히 긍정적인 특성이긴 하다.
‘……뭐, 못생긴 것보다는 낫지.’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의 내 외모를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회귀한 뒤의 나는 원래 외모도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큰 위화감을 느끼지는 못할 거다.
아마도……?
이것으로 내 특성은 모두 8개가 되었다.
총명함, 소심함, 지나친 신중함, 가족애, 타고난 끈기, 타고난 행운, 용맹함, 아름다움이 그것이다.
‘특성 개수만으로 따지면 특급 기사구만.’
그때, 백미러로 눈이 마주친 기사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학생, 지금 보니까 얼굴도 참 잘생겼네요. 혹시 연예인인가? 아이돌 뭐 그런 거?”
“하, 하. 감사합니다. 연예인 아니에요.”
좋은 거 맞겠지?
집에 들어가자, 엄마가 후다닥 뛰어나왔다.
“무르야!”
응?
지금, 나보다 무르를 먼저 부른 건가?
“애옹, 애오오오옹.”
무르는 짐짓 애교라도 부리듯 울어댔다.
엄마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그런 무르를 안아 들었다.
“아이고, 무르야. 밖에서 고생했어.”
곧, 정아도 덩달아 뛰어나와 무르를 둘러싸고 야단이다.
아, 뭔가 소외감 느껴진다.
당신들 모두 속고 있다고!
“……다녀왔습니다.”
나는 엄마와 정아에게, 있었던 일을 대충 설명하면서 거실로 향했다.
“갑자기 쓰러지셨다니, 네 친구 진짜 놀랐겠다. 왜 그러셨다니?”
MHRS에 걸렸다가 완쾌한 전례가 없기에, 대충 다른 병으로 답했다.
“심한 빈혈 같은 건가 봐. 다행히 병원으로 빨리 옮겨서, 후유증 거의 없이 나으실 것 같아.”
“다행이네. 언제 우리 집에 또 한번 오라고 해. 밥 먹으러.”
“그러지 뭐.”
후후, 이제 거짓말을 해도 스트레스 수치가 거의 올라가지 않는다. 착한 거짓말이라서 그런가.
그때, 얘기하던 엄마가 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이상하네.”
“응? 뭐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잘생겨 보이지? 내 아들이라서 그런가?”
그 말에 정아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역시, 아름다움 특성조차 혈육에게는 통하지 않는군.
“아버지는?”
“약주 한잔하시고 먼저 주무셔.”
“그럼 엄마도 주무세요.”
“그래, 잘 자렴. 너무 늦게까지 컴퓨터나 스마트폰 하지 말고.”
어머니 아들은 이제 잠 따위 안 자도 지치지 않는 초인이 되었습니다만.
그러고 보니 기사로 각성한 걸 말씀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것도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또 짜야 하나.
그때, 윤성이에게서 톡이 왔다.
‘뭐야? 설마 뒤늦게 부작용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
나는 살짝 긴장해서 차윤성이 보낸 톡을 확인했다.
-전투 힐러 : 정우야. 엄마가 이제 완전히 괜찮다고 내일 퇴원하신다는데?
아아, 난 또.
아마 정신이 들고 나니, 너무 비싸 보이는 병실에 있는 게 부담스러워진 거겠지.
-나 : 어차피 사흘치 입원비 먼저 냈고, 내일 주말이라서 퇴원 수속 안 될 수도 있는데.
-전투 힐러 : 나도 그렇게 얘기했는데 자꾸 고집부리심.
-나 : 아마 입원비 너무 많이 나올 것 같아서 그러실 거야. 너 기사 됐다고 말씀드리고, 회사에서 미리 내줬다고 해. 복지 차원에서.
-전투 힐러 : 응, 그럴게.
일반인들은 기사는 알아도 그와 연관된 조직 - 즉, 수호 경찰 총국이나 기사단 등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른다.
현재 한국을 통틀어 20명 남짓밖에 안 되는 기사 자체를 워낙 대단한 존재로 인식하는 까닭에, 대충 그런 복지도 있다고 하면 믿을 것이다.
‘이제 육성퀘스트도 마지막 하나 남았네. 그러고 보니 설정 중이라고 했었는데, 이제 떴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