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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게이머는 파멸을 거부한다-73화 (73/303)

8부 : 던전을 공략하다 (13)

나는 눈으로 차윤성과 조설아를 좇으며 정기석 경위에게 말했다.

“정기석 경위님은 저와 함께 강은빈 경위님 경호하면서 상황 보다가, 파티원 중에 누가 밀린다 싶으면 그쪽으로 붙죠.”

“좋습니다.”

정기석은 이 던전의 전리품은 모두 내 것이 된다는 계약 조건을 알고 있다. 어차피 기사로 각성해서 기여도도 필요 없고.

이래저래 굳이 욕심부릴 필요 없는 처지여서 편한 자세로 전황을 살폈다.

다행히 차윤성과 조설아는 아주 잘 싸우고 있다.

혹시 인베이더의 수준이 낮은가?

‘오크라…….’

[레벨 25 오크]

-성향 : 혼돈 중립

-직업 : 투사

-등급 : C

-획득한 칭호 : 중갑 보병

-스테이터스

힘 : 175

속도 : 125

지능 : 75

행운 : 2

생명력 : 1750(+500)

마력 : 750

지구력 : 600(+400)

-스킬

둔기 숙련

몸통 박치기

하급 포효

등급은 낮은 편인데 상당히 강하다. 단언컨대 같은 C등급이라도 오크가 세눈박이 늑대를 무조건 이길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태훈도 혼자서 열둘이나 되는 오크는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남은 오크는 모두 투구와 갑옷으로 중무장한 상태다.

퍽!

심지어 김태훈이 소울 블레이드로 목에 찌르기를 날리자, 몸을 틀어 어깨로 받아내기도 했다.

근접전과 급소의 개념을 안다는 뜻.

고블린보다 지능 계수는 낮지만, 일반적인 야수형 인베이더보다는 훨씬 영리하다.

“큭, 이 새끼들…….”

험한 말을 내뱉는 김태훈의 등 뒤에서 오크 하나가 곤봉을 내리쳤다.

제대로 맞는다면 뼈가 부러지고도 남을, 강맹한 일격이다. 좀 떨어진 데서 보고 있는 내 귀에도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엇, 저거!”

정기석 경위가 놀라 외쳤다. 한발 늦게 알아챈 김태훈은 낭패한 기색이었다.

“쳇.”

휘익, 쿵!

순간, 오크의 육중한 몸이 곤봉을 내리치던 방향으로 붕 떠서 반 바퀴 돈 다음 머리부터 추락했다.

제 몸무게에다 갑옷의 무게, 떨어지는 충격까지 더해진 오크는 목이 부러져 축 늘어졌다.

투구는 머리에 가해지는 타격은 막아주지만 목뼈까지 보호하지는 못했다.

“오빠, 괜찮아요?”

김태훈은 묻는 조설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뭐였지?”

“내 스킬. 한 팔 업어치기.”

“저기, 오크가 죽었는데?”

“실전 유도는 원래 살인 기술이에요, 오빠. 그리고 몽둥이를 내리치는 힘까지 더해져서 위력이 강해진 거고.”

“일종의 카운터 던지기인가……. 굉장하네, 네 스킬.”

“헤헤, 그렇지도 않아요. 제대로 들어가면 상대의 공격력까지 더해지지만, 실패하면 나도 타격이 두 배라서.”

그사이 차윤성도 전혀 힐러답지 않은 모습으로 싸우고 있었다.

힘과 속도 250 추가에, 전설급 재생까지 붙은 효과는 굉장했다.

차윤성은 오크의 공격을 아예 무시하고 한가운데 뛰어들어 대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러댔다.

“괴물 놈들, 다 죽어라!”

후우웅! 서걱! 촤악!

차윤성의 순수한 힘 수치만 해도 오크의 두 배 가까이 되는데, 광전사의 검과 내가 준 아테나의 손목 보호대(힘 15% 증가, 속도 15% 증가)는 힘과 속도를 무시무시하게 올렸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거 엄청나게 날뛰는데……. 아!’

나는 차윤성의 움직임을 따라 그의 눈어림에 일렁이는 붉은 선을 보고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광전사의 검에 붙은 고유 스킬이 ‘광란’이었나.

아무래도 차윤성은…… 광란의 힐러가 된 듯하다.

나중에는 심지어 -

“킬킬, 야. 아직 죽지 말라고. 누구 마음대로 죽어?”

“크욱?”

스킬 발동, 외상 치료!

“됐다. 이제 더 처맞자!”

오크를 치료해준 다음 다시 패는 미친 짓까지 하고 있다.

대검의 무게는 상당해서, 검면으로 내리쳐도 오크가 죽는 소리를 냈다.

‘아마, 그 와중에도 김태훈에게 기여도를 몰아주라는 말은 기억해서 저러는 것 같은데…….’

위기를 모면한 김태훈과 그를 도와준 조설아도 가세해서, 오크들을 무서운 기세로 쓰러뜨려 갔다.

세 사람을 상대하는데 열둘의 무장한 오크가 맥을 못 춘다.

뭐, 저 정도면 걱정할 일 없겠군.

강은빈 경위와 정기석 경위도 입을 살짝 벌린 채 구경하고 있다.

저럴 게 아니라 이 시간을 활용해야지. 시간도 자원이라고.

“정기석 경위님. 괜찮으시면 혹시 그 나이트 기어 좀 저한테 보여주실래요?”

응, 엔지니어 못 잃어…….

정기석 경위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럼요!”

그리고 조금 찔리는 듯 덧붙였다.

“사실, 강은빈 경위가 좀 부러웠습니다. 음하핫!”

“민폐야, 정기석.”

“나도 더 강해지고 싶다, 강은빈.”

하여간, 질서 선 계열들이란.

겉 다르고 속 다른 짓을 못 하지.

걱정 마쇼. 강 경위한테는 일단 재화로부터의 자유를 줬을 뿐이지만, 당신은 근본을 바꿔줄 터이니.

우선, 그가 땅에 세운 채 내 쪽으로 내민 브론즈 스패너를 진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브론즈 스패너>

-타입 : 둔기

-기능 : 지능 100 증가, 모든 저항력 60% 증가, 생명력 600 증가.

-내구도 : 500

-소유주 : 정기석

-가치 : 레전더리 등급

-특수 옵션 : 파괴 불가

-고유 스킬 : 머신 핵 생성

-아공간 수납이 가능합니다.

‘머신 핵이라. 이게 뭐지?’

라인을 보고 생각했더니 상당히 긴 설명창이 떴다.

<머신 핵은 모든 마도 메카닉의 중추가 되는 심장이자 엔진과 같습니다.> -엔지니어의 크리에이트 스킬은 모두 이 머신 핵에서 파생됩니다.

-머신 핵은 다크 스톤과 아이템을 재료로 생성되며 메카닉으로 성장합니다. 머신 핵이 파괴되기 전까지 메카닉은 자가 수복하여 완전히 파괴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세파시 게임에 등장하는 골렘의 핵 비슷하다.

바위나 흙으로 만들어진 인형에 마력이 담긴 핵을 심어서 골렘을 만드는 것처럼.

다크 스톤과 아이템을 융합하여 머신 핵을 만들면 마도 메카닉이라는 게 생겨나는 것 같다.

이거, 스킬을 아는 척해도 되나?

내가 알기로 기사 가운데 같은 기사나 인베이더의 스킬을 볼 수 있는 이는 없었다.

‘파괴 불가 옵션이 있어서 스패너를 둔기로 쓴 모양이네.’

그럴 수는 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등급이나 옵션으로 보아, 브론즈 스패너는 드랍 아이템이 분명하다.

특히 파괴 불가 옵션이 결정적이다.

그렇다면 정기석 경위도 각인 과정을 거쳐 브론즈 스패너의 성능을 봤을 텐데.

어째서 머신 핵을 만들어 볼 시도는 안 하고, 자신이 투사라고 믿는 걸까?

나는 새삼스레 그를 훑어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으음…….”

딱 벌어진 가슴과 어깨, 방어구 위로도 드러나는 잘 발달한 상관근과 대퇴근, 부츠가 터질 듯한 비복근(종아리 근육)까지.

이거 혹시 헬…….

“운동 좋아하세요?”

정기석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넵. 매일 꾸준히 단련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강은빈이 거들었다.

“이 인간, 3대 1,000 칩니다.”

“그게 뭐죠?”

“아, 근력 운동 중에 스쿼트,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라는 종목이 있는데 셋 다 무거운 걸 드는 중량 운동이거든요. 그 세 가지의 무게를 합쳐서 1,000킬로그램이라는 뜻입니다.”

“헐.”

1톤이잖아? 괴물인가?

그러고 보니 저 인간, 힘 스텟이 375였지. 윤성이보다 높다.

말하자면 힘 찍은 법사인 셈이다.

어디서 이런 끔찍한 혼종이…….

그때, ‘투사 힐러’인 윤성이의 광소와.

“으하하하하!”

‘톤파 쓰는 유도가’ 조설아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윤성아, 갑옷 때문에 검날이 잘 안 들어가. 내가 뚝배기를 두드려서 깰게!”

뚝배기…….

수줍고 착하던 설아가 어쩌다가.

나는 씁쓸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내가 정기석 경위를 평가할 처지가 아니구나.

나야말로 혼종을 키웠어.

두 번째 전투는 곧 끝났다.

12기의 오크 가운데 차윤성이 셋, 설아가 둘, 김태훈이 일곱을 잡았다.

강은빈이 저격으로 잡은 오크 13기도 드랍 아이템만 남기고 사라졌다.

다 합쳐서 다크 스톤 30개, 노멀 장비 15개, 언커먼 장비 8개, 레어 장비 2개가 나왔다.

장비는 중장보병의 투구와 갑옷, 낡은 해머와 곤봉 같은 것들이다.

김태훈이 잡은 일곱 오크의 다크 스톤은 늘 그랬듯 바로 흡수됐다.

그는 그걸로는 부족한지, 차윤성과 조설아가 쓰러뜨린 오크에게서 드랍된 다크 스톤을 탐욕스레 바라보았다.

“갖고 싶어?”

내 물음에, 김태훈은 짐짓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지만 눈은 신비로운 빛을 뿜어내는 다크 스톤에 멈춰 있다. 재화로 탐낸다기보다 그가 취해야 할 생명력으로써 끌리는 것이리라.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김태훈은 의외로 돈에는 초연하다.

어릴 때부터 부유하게 자란 이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어쩌다 저런 싸패가 됐담.

천성적인 건가, 아니면 뭔가 사연이 있나.

“제물은 몇이나 남은 거야?”

난 그의 천살 특성을 언급하지 않고 일부러 제물이라고 표현했다.

“으-음……. 898?”

좀 남았네.

그래도 열심히는 했군.

100마리 정도의 생명력을 흡수했는데 저 정도로 강하다면, 1,000마리를 채웠을 때는 진짜 검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정기석 경위님, 잠깐만 이리로 와 보시죠.”

“네?”

“스패너를 제대로 쓰는 법을 알려드릴게요.”

정기석은 반색하며 다가왔다.

나는 바닥에 늘어놓은 장비 아이템 25개와 다크 스톤 30개를 가리켰다.

“이것들을 재료 삼아서 고유 스킬을 써보세요. 이제까지는 재료가 없어서 못 썼죠? 그렇다고 기사가 되어서 안 싸울 수는 없으니, 수리할 필요 없는 스패너를 휘두른 거죠.”

정기석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걸, 어떻게……?”

“제 기사 클래스와 관련된 겁니다. 자, 얼른 해보세요.”

“이걸 다요?”

“네. 어차피 이 던전에서 떨어진 건데요, 뭐.”

“큭!”

……울어?

내가 잘못 봤나?

“왜 울고 난리냐, 정기석.”

강은빈이 말하는 걸 보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닌 모양이다.

정기석이 벌게진 눈으로 말했다.

“더,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트 기어로 이 스패너가 나왔는데, 스킬 특성이 비싼 다크 스톤과 아이템이 필요해서…….”

다크 스톤은 개당 300, 아이템은 레어만 되어도 수천만 원 이상.

늘 예산에 쪼들리는 수경총 사정을 잘 아는 터라, 스킬 한 번 쓰겠다고 몇천만 원에서 억 단위까지 가는 비용 청구를 시도하지 못했으리라. 정기석도, 강은빈도.

그 금액은 경찰 동료들의 연봉과 맞먹으니까.

그렇다고 기사단에 들어가자니, C급, B급인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을 테고.

수경총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지금의 구조로는 저들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써먹어 주지.

스나이퍼도, 엔지니어도 모두 귀한 클래스다. 잘 키워서 S급까지 올려 버릴 거다.

“그럼, 감사히…….”

격정을 가라앉힌 정기석은, 한 차례 심호흡하고 스킬을 발동했다.

다크 스톤과 아이템이 하나씩 차례로 허공에 떠올랐다. 게임에서 보던, 재료를 투입하는 광경 같다.

이윽고 다크 스톤들과 아이템이 하나로 뭉쳐 빛을 뿜어냈다.

몇 초 후,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금속으로 된 작은 공 같은 게 나타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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