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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8.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10) (58/303)


058.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10)
2022.10.28.


무르무르는 기다렸다는 듯 거절했다.

-불가합니다. 던전의 주인이 저보다 강해서요.

“……솔로몬의 이름에 걸고, 사실이라고 맹세할 수 있나요?”

-맹세합니다.

“으음…….”

저절로 침음성이 나온다.

던전은 던전 보스를 처치해야 닫을 수 있다.

‘당연히 무르무르가 저 던전의 보스일 줄 알았는데 더 강한 존재가 있다니…….’

폐쇄하겠답시고 들어갔다가는 큰 낭패를 볼 뻔했다.

그렇다면 던전이 깨질 확률은 더 높아진다. 클리어하기가 어려우니까.

무슨 명령을 내려야, 무르무르가 이후 나와 김태훈을 해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

“나와 할파스의 빙의자를 영원히 해치지 말 것을 명합니다.”

-킥, 앞으로 두 시간은 그러겠습니다.

이것도 역시 안 되는군.

나의 명령이 무르무르에게 통하는 것은 마신 소환 스킬이 유지되는 동안뿐이다.

고민하던 중,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그래, 이거라면…….

위험 부담이 크기는 한데, 아이템의 힘을 빌리면 어찌 될 것 같기도 하다.

문제는 이 법칙 또한 세파시 게임과 같으냐 하는 것과 무르무르가 넘어가 주느냐는 부분인데.

나는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여 무르무르에게 말했다.

“계약을 변경하기를 원합니다.”

-흐음, 어떤 형태로 변경하느냐에 따라 가부가 달라지니 들어봐야겠군요.

“소환이 아닌, 강림 계약으로의 변경입니다.”

무르무르의 눈이 처음으로 살짝 이채를 발했다.

-……진심입니까?

‘소환’은 마법진이나 제물 등의 매개체를 이용해 뭔가를 불러내는 행위다.

부의 획득, 증오하는 상대의 파멸, 전쟁에서의 승리 등 불러낸 대상을 통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다.

나의 마신 소환은, 내 지능 수치와 시스템 자체가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일 테다.

세파시 게임에서의 ‘강림’은 소환과 다르다. 초월적 존재가 자신의 의지로 인간 세상에 내려오거나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계약자가 마력을 공급해주는 조건으로 강림을 수락한다.

대신, 강림한 존재는 계약자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줘야 한다.

이때는 소환보다 더 크고 강한 소원을 빌 수 있다.

그 소원이 지속성이라면 계약자가 살아 있는 한 유지된다.

‘이걸 이용해서 세파시 게임의 무대인 어스 자체를 파괴해달라고 빌려고 한 미친 유저놈이 있었지.’

다행히 강림이 이뤄지기 직전에 다른 유저들이 척살했다.

그걸 또 이루려고 했다는 게 세파시 게임의 무서운 점이다.

이론적으로는 강림 상태를 무한히 유지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감당해야 하는 마력량이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정해진 시간 내에 소환자의 소망을 들어주어야 하는’ 조건을 활용해 한 가지를 덧붙여 보자.

“소환자의 마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형태로 강림을 유지해주세요.”

-……!

무르무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기에는 속임수를 쓸 여지가 없다. 허술한 부분을 노릴 수는 있어도, 소망의 내용 자체를 바꾸진 못한다.

무르무르는 나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아마 내 마력 수치와 마력 재생력을 확인하려는 거겠지.

어쩌면 생각을 가늠해 보려는 것일 수도 있고.

그래봐야 나올 건 없다. 나는 진심으로 그 소원을 바라고 있다.

강림을 유지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엄청난 마력이 소모된다.

미래에서 태양교의 사제는 한마디 신탁을 들으려고 생명을 바쳤다. 하물며 마신의 현신이야 말할 것도 없다.

세파시 세계관 최고의 마도사라는 솔로몬 왕조차, 평소에는 마신들을 봉인해뒀다가 필요할 때만 불러낼 정도.

‘현재 15레벨인 내 마력 수치는 1,200.’

15레벨 치고 상당히 높은 편이기는 하나, 총 마력 5,600에 달하는 무르무르에게 비할 바는 아니다.

자체 마력 재생력은 보통 마력의 10%이므로 분당 120가량.

내 소원이 명확했기에 무르무르는 거기에 맞춰 형상을 변화하겠지만, 그래도 소환을 유지하는 데 드는 마력은 십중팔구 120을 훨씬 넘으리라.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마력을 모조리 소모하는 순간, 나는 미라처럼 말라 죽고 무르무르는 인간계에 강림한 상태에서 자유가 된다.

던전이 깨지기 전에 구속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솔깃하겠지.’

그 점을 이용, 나는 무르무르에게 속임수를 걸었다.

이 속임수의 첫 번째 포인트는, 보통 인간은 자신의 마력 재생력을 절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임 시스템이 적용되는 내게만 가능한 일이다.

-왜 굳이 강림을 유지하려는 거죠? 당신에게 득 될 게 없을 텐데?

눈빛에 의문이 떠오른 마신을 향해, 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해야 당신이 나와 김태훈을 최대한 오래 해치지 못할 테니까요.”

-으음?

“두 시간 동안 우리를 추격해오지 말라는 소원을 빌고 달아날 수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당신이 나온 저 출구는 오래 못 가요.”

-…….

“그럼 자유로워지자마자 바로 우리를 찾아오겠죠. 그전에 이 일대의 죽은 자들이 모조리 일어날 테고요.”

턱을 긁적이던 무르무르가 히죽 웃었다.

-혹시 마력 재생 아이템 같은 걸 소지해서, 그걸 믿고 이러는 겁니까? 강림 시간을 최대한 끌어서 나와의 계약 관계를 유지하려고?

과연 무르무르. 바로 간파당했다.

“……부인하진 않을게요.”

마신은 모두 저마다의 특기와 개성이 있다.

특기는 말 그대로 잘하는 것, 개성은 독특한 성격 같은 것이다. 그중에는 비슷한 것도 있고 유일무이한 것도 있다.

무르무르의 특기는 죽은 이를 불러오는 강령술이다. 그 영혼을 시신에 깃들게 하여 일으킬 수도 있다. 그의 특기에 영향을 받아 해골 전사 같은 인베이더가 출몰했다.

무르무르의 개성은 철학에 조예가 깊으며 두뇌 싸움을 즐긴다는 것이다.

힘으로 인간을 해치는 것보다 속임수로 파멸시키기를 좋아한다. 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방식을 즐긴다. 힘으로 단숨에 짓누르는 건 따분하다고 여긴다.

내가 아는 무르무르라면 분명 마력 재생 아이템까지 염두에 두고 계산해 보리라.

내가 최고의 마력 재생 아이템을 소지했다는 가정하에, 자신의 강림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마력을 다 소모하여 자신의 발밑에서 말라 죽어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겠지. 그런 것도 다 머리싸움의 일부이기에.

무르무르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 소원을 거부하고 두 시간 뒤 우리를 죽일 수 있게 되는 것.

단, 이 경우 그때가 언제 올지는 모른다.

우리는 당장 타워에서 나갈 것이고, 무르무르는 던전이 깨지기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 소망대로 강림하여, 곧바로 죽이지는 못하는 대신 내가 천천히 죽어가는 꼴을 보고, 덤으로 던전에서 바로 나가는 것.

김태훈은 내가 죽은 뒤에 처리하면 되고.

-흐음, 흠.

무르무르의 빨간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인다. 어느 쪽이 재미있을지 재어보는 것이리라.

곧, 계산을 마친 듯한 무르무르가 말했다.

-크큭, 과연. 강림을 택하면 두 시간보다는 길어지겠지만…… 그래 봐야 결국 또 시간을 연장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난 할파스 님이 한낱 인간과 융합한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거든요.

“최대한 시간 끌면 그사이에 또 뭔가 방도가 생기겠죠.”

-딱 인간다운 생각이군요. 어렵지 않은 소원이니 들어드리지요. 약속대로 마력 소모가 가장 적은 형태로 변해드리겠습니다.

소원은 접수되었다.

이제 피차 돌이킬 수 없다.

무르무르의 몸이 검은 연기에 감싸이더니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연기가 걷힌 뒤 드러난 것을 보고, 조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꺄악!”

그것은 주먹 두 개를 합친 것만 한 크기의 검은색 고양이였다.

머리에는 작은 은색 왕관이 얹혀 있고, 동공은 불타는 듯 빨갛다.

“귀여워!”

조설아는 차윤성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었다면 달려가 안아 들었을 기세다.

그래도 끝까지 임무는 잊지 않는 게 기특하다.

-어떻습니까? 크큭.

무르무르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게 내 마력 소모를 최소화하는 형태라는 거죠?”

-계약자의 소원과 관련해서는 거짓을 말할 수 없습니다.

과연.

유럽 문화권에서 검은 고양이는 마녀의 친구라 일컬어진다.

사실은 마녀의 마력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악마가 곁에 머무르기 위한 형태였나.

진실의 눈으로 내 상태를 확인했다. 분당 150 정도의 마력이 소모되고 있다.

작은 고양이 형상이 되었는데도 그 정도라니.

내 재생력 120을 차감해도 분당 30씩 줄어드는 중이다.

이대로라면 소환 계약에 따른 두 시간은커녕 40분밖에 못 버티게 생겼다.

그나마도 마력이 풀 차지 상태일 때 얘기고, 지금은 큰 스킬을 쓴 뒤라 10분 남짓밖에 안 남았다.

이것 또한, 무르무르 같은 성향의 마신들이 흔히 쓰는 속임수다.

계약자가 더 불리한 조건을 선택해도 알려주지 않는 것.

혹은, 더 불리한 쪽으로 택하도록 유도하는 것.

내가 당황하는 기색을 읽었는지, 무르무르는 신나서 떠들어댔다.

-크화화화, 이거 어쩌죠? 우리를 소환할 수 있게 되니까 솔로몬처럼 대단한 마도사라도 된 양 착각한 모양인데……. 인간들의 시간으로 대략 10분 뒤면 그 빈약한 마력이 모두 고갈되겠네요.

“으음…….”

-그럼 당신은 미라가 되어서 죽겠죠? 자, 어서 절망하여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혹시 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르니까 애걸해도 좋고.

생존 시간을 더 연장할 수 있으리라 믿고 소원을 빌었는데, 그 시간이 오히려 10분으로 줄어든다면 절망하는 게 당연하다.

놈이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게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왔다.

내 절망을 전염시키려는 것인지, 아니면 별생각 없이 한 행동인지는 몰라도.

무르무르는 나뿐만 아니라 차윤성과 조설아에게까지 자신의 사념을 전달하고 있는 듯했다.

조설아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내게 울먹였다.

“어떡해, 정우야! 너 진짜 미라 되는 거야? 지금이라도 취소하면 안 돼?”

“응, 취소 못 해.”

무르무르가 거기에 얄밉게 덧붙였다.

-한번 실현된 소원은, 계약자가 죽기 전까지 취소되지 않아요.

“그, 그럼 이거라도 줄게. 여기에 재생력 증가 옵션이 있다고, 비싸고 좋은 거라고 네가…….”

조설아는 내가 준 아이템인 ‘이둔의 생명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주려 했다. 착한 녀석.

나는 그녀를 만류했다.

“괜찮아, 설아야. 그리고 그 재생력 증가는 생명력이야.”

“아, 새, 생명력? 그러면 마력은 안 되는 거야?”

“응. 안 돼.”

무르무르는 흥분한 듯 검고 긴 꼬리를 휘저어댔다.

겉으로는 그저, 깨물어주고 싶도록 귀여운 검은색 새끼 고양이가 꼬리를 파닥거리는 거로밖에 안 보인다.

-후후화화. 이제 9분 남았습니다. 걱정 말아요. 당신은 어차피 마력 고갈로 죽어서, 친구들이 찢기는 꼴은 안 봐도 될 테니까!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고, 반지형 아이템 하나를 소환해서 왼손 새끼손가락에 착용했다.

반지는 내 새끼손가락 굵기에 맞게 저절로 줄어들었다.

<멀린의 반지 (no.6)>

위대한 마법사 멀린이 부족한 마력을 보충하고 마법의 위력을 강화하려고 만든 반지입니다.
-타입 : 액세서리
-기능 : 마력 500 증가, 마력 회복 분당 20증가.
-내구도 : 500
-소유주 : 이정우
-가치 : 레전더리 등급, 넘버링 아이템.
-고유 스킬 : 하루 2회, 절대 방어 마법을 발동 가능.

아이템의 기운을 감지한 무르무르가 멈칫했다.

-으음,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군요. 인간 주제에 제법 귀한 보물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래봐야 40분이던 수명이 원래대로 두 시간 정도로 늘어난 것뿐. 조금 더 절망을 즐…….

나는 말없이 멀린의 반지를 하나 더 소환하여 이번에는 오른쪽 새끼손가락에 끼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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