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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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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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 7부 : 내 사람들을 모으다 (4)
2022.10.22.
수화기 너머에서 김태훈이 웃음을 실어 말했다.
-지금 끊고 싶다고 생각했지?
“아닌데요. 무슨 일입니까?”
-뭔가 죽이고 싶어.
……이 사이코가.
“참으세요. 경찰에 신고해버리기 전에.”
-그날 이후 인베이더 보기가 너무 힘들어. 왜지?
“좋은 일 아닌가요?”
-개나 소나 다 인베이더를 잡겠다고 나서잖아. 텔레비전에서 인베이더 사냥을 무슨 5차 산업혁명처럼 표현해서 말이야. 그 바람에 내가 잡을 놈들까지 줄었다고.
“어쩌라고요…….”
-사실은 그래서 할파스한테 하소연을 좀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더군. 곧 죽일 것들이 넘쳐나게 될 거라나.
이제 김태훈은 자신과 계약한 마신의 이름을 알게 됐다.
둘 사이의 연결이 그만큼 더 단단해진 거다.
어쩐지 불길하다.
마신의 살행(殺行) 장담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죠?”
-곧 사육제가 열린다.
“이 시기에 무슨 사육제예요. 날짜도 안 맞는데.”
원래 사육제는 유럽과 남미 등지의 기독교 국가에서, 매년 2월 중하순 즈음에 열리는 대중적 축제다.
나는 그 점을 지적한 것이다. 지금은 6월이니까.
-크큭, 범생이답네. 은유적 표현이라고 해 두자고.
“은유는 무슨……”
-아무튼, 할파스의 말을 빌리자면 곧 있을 대대적인 전쟁을 앞둔 전초전 같은 거라더군. 한동안 인베이더의 기세가 수그러들었지만, 곧 떼거리로 쏟아져나올 거야.
누군가 인위적으로 인베이더를 통제한다는 건가.
곧 있을 대대적인 전쟁이라는 건 대폭주를 가리키는 것일 테고.
흠……. 이전의 전초전 같은 사태는 원래 역사에서는 벌어진 적이 없는데?
나와 차윤성, 조설아의 활동으로 변화가 일어난 걸까.
‘인베이더가 너무 많이 줄어들고, 필드 보스인 펜릴도 소멸해서?’
그간 우리는 세눈박이 늑대의 씨를 말리다시피 사냥했다.
그 결과, 급기야 귀족급 인베이더인 펜릴을 차원문이 아닌 공간 이동으로 소환해내기에 이르렀다.
원래 귀족급 인베이더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때는 대폭주 이후다.
그로 인하여 뭔가가 촉진된 거라면…….
어쨌거나 김태훈은 현시점에서 유일하게 ‘융합’을 이룬 인간이다.
더구나 융합 대상인 마신의 의식이 살아 있는, 극히 희귀한 케이스다.
그 마신의 말이라면 들어볼 가치가 있다. 진명(眞名)을 알려준 사이라면 사기 치는 것도 아닐 테고.
아무 대비도 없이 있다가, 정말 사육제인지 뭔지가 열리면 난감해지니까.
“기사단에 제보하세요.”
-거기서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아? 게다가 그러려면 어떻게 알게 됐는지도 설명해야 하잖아. 할파스의 존재를 들키면 나까지 사냥하려고 들걸?
영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3세대 기사들은 경원시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까지의 기사들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진 동시에, 대폭주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귀족급 인베이더에 맞서기 위해 탄생한 것이 3세대 기사들이다.
그렇다 보니 강력한 인베이더와 융합해야 했고, 종종 통제력을 잃은 사고가 벌어지곤 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윤성이가 대단했지. 융합 기사도 아닌데 광마라는 별칭을 얻었으니.
-그렇게 되면 나 혼자 안 죽는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요?”
-사육제 정보를 알려줄 테니 나와 힘을 합쳐서 죽…… 아니, 싸우자.
“왜 하필 나한테…….”
-너 강하잖아. 아이템도 있고, 네 친구 꼬맹이들도 제법 하고. 기사가 아니면서 나 정도로 싸우는 놈은 너밖에 못 봤다.
“템빨인데요.”
-나한테 빚도 있지, 아마? 애먼 사람을 연쇄살인범으로 착각해서 죽일 뻔했잖아?
“아, 치료해 드렸잖아요.”
-병 주고 약 주면 다냐? 내가 겪은 육체적, 심적 고통은?
잠시 실랑이한 끝에, 김태훈과 함께 사육제를 대비하기로 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어차피 해야 할 일이다. 그냥 김태훈이 싫어서 튕겨봤을 뿐.
어느 정도 규모일지는 모르겠으나, 대폭주의 전초전이라면 만만치 않으리라 짐작됐다.
“그 사육제라는 게 언제인데요?”
-10월 31일부터 사흘간.
김태훈이 알려준 날짜는 10월 31일, 핼러윈 데이다. 넉 달 좀 넘게 남은 셈.
윤성이가 딜러, 설아가 딜탱, 김태훈도 딜러.
내가 힐하고 탱한다고 쳐도, 제대로 된 탱커 하나 더 있으면 좋겠는데.
나 혼자 모두 커버하기에는 무리니까. 애초에 진짜 각성자나 기사도 아니고.
역시, 빨리 강현진을 찾아야겠다.
기사가 된 그녀의 메인 포지션이 바로 방어 담당, 탱커였다.
그녀는 그때까지 최고의 탱커로 알려진 손태준에 버금간다는 평을 받았다.
사육제 때 강현진이 합류한 상태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겠어요. 참고할게요.”
-야, 그게 끝이 아니지. 우리 대련이라도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대련? 싸패랑?
“그건 좀……. 어차피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인베이더인데 별 효과도 없을 것 같고.”
-흠, 그럼 파티 만들어서 합동 사냥이라도 하자. 요즘 인베이더가 확 줄어드는 바람에 효율이 개판이야. 서로 포인트를 공유하자고.
말하는 김태훈의 목소리가 정말 폭발할 것 같아서 마지못해 동의했다.
방치했다가 사고 치게 하는 것보다는 같이 사냥이라도 하는 게 낫겠지.
사육제를 빌미로 대폭주 방어에도 참여시킬 수 있을 것 같고.
손발을 맞춰봐야 하는 건 맞다.
“전 주말밖에 시간 안 돼요. 아시다시피 고3이라서.”
-좋아. 그럼 이번 주 일요일. 그러니까, 8일?
어디……. 한 번도 안 빠진다는 가정하에, 주말로 한정하면 합동 사냥을 할 수 있는 날짜는 40일 남짓.
그 사이에 조설아도 각성시켜야 하고, 여왕 강현진도 찾아야 하고, 서번트도 구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하다.
가능한 날은 최대한 참여하는 게 좋겠군.
이사 다음 날이기는 한데, 어차피 그 정도로 피곤하지도 않고 딱히 해야 할 일도 없다.
“좋아요.”
-오케이. 그럼 8일 정오에 명동역에서 만나자.
“웬 명동?”
-내가 아는 사냥 포인트 하나가 그 근처야.
“알겠어요.”
-아까 말했지만 네 친구들도 꼭 데려와라. 실력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그러죠, 뭐.”
김태훈과 약속 잡고 통화를 마쳤다.
명동이라……. 그 근처에 인베이더 출몰 지역이 있었나?
명동은 아직까지 비교적 상권이 살아 있고 사람들의 왕래도 잦은 지역이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지도 앱을 켜서 살펴보다가, 김태훈이 어디로 가려는지 깨달았다.
여기네. 그러고 보니 여기까지 가볼 생각은 안 했군.
A급 위험 지역인 이태원에서도 가깝고…….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내가 예상한 장소는 바로 남산타워다.
예전에 언급했듯, 인베이더는 폐건물과 공원 같은 장소를 좋아한다.
현재 남산타워가 운영을 중단하고 폐쇄된 상태이니, 남산공원과 남산타워 일대는 모든 조건을 충족한다.
애들한테도 미리 말해둬야겠다.
사육제라.
뜻밖의 이벤트가 생겼군.
* * *
다음 날, 우리 가족은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오랫동안 살았던 동네를 떠나 낯선 목동으로 와서인지, 부모님과 정아는 새 집이 좋으면서도 조금 심란하기도 한 기색이다.
사실, 나도 기분이 좀 싱숭생숭했다. 낯설어서가 아니라 기억 때문이다.
회귀 전에는 가족들이 살았던 합정 근처를 떠나기 싫었다.
멀리 가는 순간 그나마 남은 추억마저 사라질 것 같아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근처를 맴돌았다.
그 시절의 기억이 자꾸 떠올라서 저절로 울적해졌다.
하지만 이제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가족이 모두 무사히, 가까이에 함께 있으니까.
역시 중요한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짐 정리를 거의 마치고 한숨 돌리자 오후 다섯 시가 다 됐다.
“여기는 다 아파트뿐이네.”
창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리는 정아에게 조설아가 말했다.
“이 근처가 대단지라서 그런 거야. 그냥 주택가도 많아.”
“그래요?”
“난 부러운데. 우리 동네보다 여기가 훨씬 깨끗하고 안전하잖아.”
“그러면 언니도 이리로 이사 와요!”
“그럴까?”
반나절 사이, 정아와 설아는 부쩍 친해졌다.
부모님은 싹싹한 정아와 묵묵하게 열심히 일하는 윤성이, 둘 다 마음에 든 눈치다.
무엇보다 아들이 처음으로 친구를 데려왔다는 사실 자체가 기쁜 듯했다.
“아버지, 전 이제 애들이랑 저녁 좀 먹고 올게요.”
“왜, 뭐 시켜서 같이 먹지.”
아버지의 말에 엄마가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애들끼리 어울리게 놔둬요. 점심도 같이 짜장면 먹었는데 친구 부모님하고 뭔 하루에 두 끼나 먹어.”
“아, 그런가?”
“하하, 우리끼리 할 얘기도 좀 있어서요.”
원래는 정아도 따라오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알아서 빠져주었다.
나는 차윤성, 조설아와 함께 근처의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실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 * *
차윤성은 이사를 도우러 왔을 때부터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였다.
내가 산만한 고깃집이 아니라 패밀리 레스토랑을 택한 이유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걸까.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했을 수도 있고.
아무튼,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려는 눈치다.
내가 어릴 때, 한창 패밀리 레스토랑 붐이 일어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주말 저녁 시간대였음에도 손님이 우리 셋뿐이다. 인베이더 침공으로 인한 불경기를 고려해도 사정이 나빠 보인다.
“어서 오세요, 손님.”
직원이 상당히 친절했으므로 매상을 많이 올려주기로 마음먹었다. 종일 일해서 그런지 배도 고팠고.
“너희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헐, 진짜? 그럼, 우리 여기에서 제일 큰 세트 시키자.”
“다 먹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
난 편의점 폐기 도시락 먹으면서 어렵게 버틴 시절이 길었다. 그래서 음식 버리는 게 질색이다.
“아싸!”
조설아는 신나서 4인 세트를 주문하고 음료까지 추가했다.
이제 이렇게 같이 밥 먹는 것도 익숙하구만.
잠시 후, 서로인 스테이크니 비프 화이타니 하는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다.
한동안 배를 채운 뒤.
접시가 반쯤 비었을 때, 차윤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저기, 정우야. 그리고 조설아. 나 너희한테 말할 게 있는데.”
“안 그래도 아까부터 뭐 마려운 강아지 같더라. 무슨 일인데?”
“나, 아무래도 스킬이 생긴 거 같아.”
설아가 씹던 파스타를 입에서 뿜었다.
“헐, 대박.”
“아, 더럽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오, 그래? 잘됐네!”
스킬은 기사가 되는 동시에 자동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순차적으로 생겨나며 그 속도는 기사마다 다르다.
어떤 기사는 끝까지 열 개의 스킬이 생기지 않아서 주력 스킬 서너 개만 쓰기도 하고, 처음부터 열 개를 다 갖기도 한다.
“몇 개나?”
“다섯 개.”
“아주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부터 다섯 개면 극히 양호하다.
역시 S등급 기사답다고 할까.
하지만 그 후 이어진 윤성의 설명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스킬이 치유 계통이야.”
“…….”
“정우야?”
나는 잠깐 나갔던 정신을 붙잡았다.
“응? 아, 뭐라고 했지?”
“스킬이 치유 계통이라고…….”
“아.”
이럴 수가.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