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3.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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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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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3.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3)
2022.09.23.
사실, 나는 김태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좀 부끄럽지만 질투가 나서다.
그는 장신에 늘씬한 몸 그리고 우수에 찬 귀공자의 외모였다.
거기다 그 귀하다는 검 계열 스킬에 검성이라 불릴 정도로 특화되어, 2040년에 국제 기사단 협회에서 공식으로 삼황 - ‘the three emperors’의 지위를 내려버렸다.
그로 인해, 월간 기사 2040년 1월호에 신년 특집으로 「검성 김태훈에 대한 모든 것」이라는 꼭지가 실렸다.
화보 포함 장장 25페이지에 달하는 진짜 특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김태훈의 인기가 그야말로 하늘 꼭대기로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인기가 좋았는데, 손태준조차 들어가지 못한 삼황의 일원이 되어 국뽕까지 채워주자 사람들이 그에게 미쳐버렸다.
뭐, 잘나긴 했지.
외모도, 머리도, 거기에 기사의 재능까지 다 가졌으니…….
문제는 그 정도의 인기를 누렸는데도, 기사단에서 곧이곧대로 인베이더 사냥과 구조 활동에만 전념케 했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방송 활동을 조금만 했어도 수백억은 벌었을 텐데.
‘태양 기사단이었지.’
무심결에 주머니 속의 나이트 태그를 어루만졌다. 문정훈, 그도 분명 태양 기사단 소속이었다.
아직 설립되지 않은 태양 기사단은 특정 종교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기사를 일종의 사제처럼 여기는 관행이 있다.
김태훈은 특이하게도 대폭주로부터 10년이나 지나 각성한 케이스다.
그는 어느 날 한 교회 - 개신교나 가톨릭의 교회가 아닌 신흥 종교의 교회를 방문했다가 기사의 힘에 눈 떴다. 그 종교가 바로 태양교다.
그것이 신의 축복이라 주장하는 태양교와, 늘 그렇듯 새로운 기사에 눈독 들이던 수호 경찰 총국 사이에서 어어 하는 동안에 태양 기사단 소속이 되어버렸다.
어쨌든, 시기가 애매하지만 다크 스톤과 융합법 등 인공적으로 각성하지 않았고.
2040년의 각성자까지는 대폭주 때의 이차원 에너지가 각성 요인인 2세대 기사로 분류한다.
물론 태양 기사단에서는 신, 그러니까 햇볕에 의해서라고 믿었지만.
여기에 따라 김태훈도 2세대 기사로 알려졌다.
나는 다음 목표로 그 김태훈을 찾아가 볼 예정이었다.
‘한세대학교, 맞지?’
한세대라면 우리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다.
멀어도 큰 지장은 없지만, 시간 낭비는 줄일수록 좋다.
그나저나, 진지하게 다시 공부해야 하게 생겼다.
부모님 속 안 썩이고 원하는 대학의 괜찮은 경영학과에 가려면 말이지.
이 나이에 다시 고등학교 과정 공부라니. 그것도 고3, 4월에.
<생각한 것만으로 스트레스 수치가 20 증가합니다. 현재 수치 : 50>
이건 인정.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대상을 정했다고 해서 바로 찾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일단, 나한테 시간이 나야 한다.
바쁘면서 평온한 며칠이 흘렀다.
공부하고, 인베이더 잡고, 뭔가 떠오를 때마다 노트에 적고, 윤성이, 설아와 톡도 하는 나날이었다.
그사이 나는 틈날 때마다 두 사람에게 밥을 사거나 기프티콘을 날려서 야금야금 금액을 채웠다.
둘에게 1,000만 원씩을 소비해야 육성 퀘스트 2단계가 클리어되기 때문이다.
둘은 매번 얻어먹는다고 미안해했으나, 기사가 된 뒤에 나를 도와주면 된다는 말로 넘어갔다.
여전히 한 번씩 악몽을 꿨으나 처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다만, 이상한 패턴이 나타났다.
꿈속의 나는 거울을 들여다본다.
거기에는 회귀해오기 전, 50대 중반의 늙고 지친 내가 보인다.
설마, 이게 다 꿈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건가 하고 좌절할 때.
내 모습은 서서히, 투구를 쓴 갑옷 차림의 기사로 변해간다.
투구 정면에는 해골 문양이 큼직하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해골의 안와를 통해 밖을 보고, 상악과 하악 사이로 입이 보인다.
나는 해골의 입을 움직여 말한다.
뜻대로 행하라.
그러다 잠에서 깬다.
무섭거나 괴롭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공허하다. 마치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것처럼.
나는 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마 적응해 가는 과정일 것이다.
이미 한 번 겪었으나, 완전히 다르기도 한 세계로 온 것에.
* * *
“와, 그래서 주식을 하라고?”
하인영의 물음에, 나는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아 먹으며 대꾸했다.
“응. 그게 답이야.”
하인영은 얼마 전, 나와 조설아가 들렀던 편의점의 직원이다.
편의점이 내 생활반경에 있어서 그 후에도 자주 들르다 보니 자연스레 친해졌다.
나는 하인영이 예쁘고 상냥하면서도, 지난 일에서도 알 수 있듯 배려심 있는 사람이라 좋았고.
그녀도 나를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어 해서 빠르게 가까워졌다.
얼마 전부터는 말을 놓고 누나 동생 하는 사이가 됐다. 하인영은 22살의 휴학생이라고 했다.
“학비 때문에 휴학하고 아르바이트하는 중인데 졸업하면 또 어떻게 할지 걱정이네. 아르바이트 하느라 스펙 쌓고 공부할 시간 모자라니까 취업 경쟁에서도 밀리고……. 그렇다고 돈이 많은 집도 아니고. 완전히 악순환이야.”
인영의 푸념을 듣다가 주식 얘기가 나왔다.
원래 친인척 간에도 보증 서는 거 아니고, 함부로 주식 종목 추천하는 거 아니라고 한다.
잘되어 봐야 보답은커녕 고맙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는 사람 없으며, 잘못되면 원망을 고스란히 받아 관계가 파탄 나기 일쑤이기 때문.
하지만 내게는 미래의 지식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있다.
“부동산을 살 자금도 없고, 저축이나 적금으로는 까마득하잖아.”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주식이 답이지. 확실한 정보만 있다면.”
하인영은 흥미가 생긴 듯했다.
“어디 주식을 사면 되는데?”
나는 미래 폭등주 가운데 딱 하나만 알려주었다. 다름 아닌 용화 상사다.
지금 규모는 그야말로 구멍가게 수준이나, 내게 억 단위의 판매금을 줄 자금력이 있고.
미래에는 그룹 수준의 대기업으로 올라선다. 불과 30년 사이에.
내가 다크 스톤을 꾸준히 공급할 예정이니 성공 확률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무엇보다 내후년 예정인 상장가가 낮다. 대략 15,000원 정도?
그랬다가 2060년에는 무려 200만 원 어림까지 상승한다.
인영 누나가 100만 원어치만 매수해도 1억 3천만 원 이상의 가치가 된다.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현시점에 한국의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대한 전자의 현재 주가는 300만 원에 육박하나, 30년 전에는 30,000원대에 불과했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
용화 상사의 비전과 수익 모델이 확실하며 경영자 리스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김용화의 인성이 확 바뀐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게 기업 가치에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다.
무엇보다 김용화는 도중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개발에 집중했으니까.
인영 누나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는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사람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또, 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말고는 누나 몫이었다. 반드시 투자한다는 법도 없다.
“용화 상사라……. 기억해둘게.”
“내후년에 상장하니까 그때 사. 지금은 주식 앱 찾아봐도 없어.”
“응, 알았어. 그런데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 그게…….”
살짝 말문이 막힌 직후였다.
쨍그랑! 철컹!
출입문에 매단 종이 격렬히 흔들리면서, 누군가 편의점 유리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들어섰다.
“어쭈, X발. 이건 무슨 시츄에이션?”
편의점 안으로 들이닥친 자가 대뜸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하인영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덩달아 내 기분도 더러워졌다.
편의점 유리문을 깨버릴 듯한 기세로 들어온 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양아치였다.
올백으로 빗어넘긴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 키도 덩치도 컸다.
“아, 졸라 열받네?”
사내는 보란 듯이 재킷을 벗어 진열대에 팽개쳤다.
그러자 묵직한 금목걸이와 양쪽 상완에 새긴, 화려하지만 조잡한 문신이 드러났다.
아직도 이런 놈이 있었네.
나는 짜증스러운 한편 신기했다.
하긴, 이런 무리는 어떤 때라도 바퀴벌레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큰 목소리와 폭력으로 얻는 법밖에 모르는 자들.
사내가 하인영을 을러대듯 위협적으로 턱짓하며 말했다.
“인영 씨. 남자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먹고 살기에 바빠서 날 받아줄 여유가 없다며? 그런데 이 어린놈의 새끼는 뭐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그냥 손님이세요.”
“그럼 나는?”
“그쪽도 그냥 손님이시죠.”
사내의 얼굴이 확 구겨졌다.
“이런 X발, 잣 같네, 진짜.”
인영은 최대한 공손하면서도 정확하게 선을 그었다.
“손님 맞으시잖아요.”
“하아, 내가 인영 씨한테 갖다 바친 시간이 얼만데. 이러면 안 되지요.”
나는 둘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인영이 꾹꾹 눌러 참는 게 보였다.
대충 상황은 짐작 갔다.
하인영의 외모에 혹한 양아치 하나가 붙은 모양이다.
친해지면서 떠오른 기억인데, 그녀는 회귀하기 전의 과거에도 일대에 미모로 유명했던 것 같다.
근처에 사는 회사원이나 남고생들뿐만 아니라 멀리에서도 구경하러 찾아올 정도였다.
그 외모 때문에 팬페이지가 생기고 유튜브 채널이 개설되었을 정도니까.
그런 만큼 성가신 일도 많았으리라. 지금처럼.
<스트레스 수치가 15 증가했습니다. 현재 수치 : 30>
나까지 덩달아 화나니까 스트레스가 오른다. 일단 놈의 정보창을 확인하기로 했다.
혹시나 안 알려진 기사이기라도 하면 대처 방식을 다르게 해야 할 테니.
<지나친 신중함 특성이 발동했습니다.>
안다, 알아. 조심해서 나쁜 것 없잖아.
‘진실의 눈.’
어디, 어떤 놈인지 보자고.
[레벨 4 송형근]
성향 : 중립 악
클래스 : 깡패
등급 : D
칭호 : 없음.
스테이터스
-힘 : 12
-속도 : 10
-지능 : 5
-행운 : 5
-생명력 : 25
-지구력 : 44
특성
-우둔함, 대담함, 호탕함, 비열함
호감도 : 10%
당신에게 적대감을 가졌습니다.
주의! 당신을 공격해올 수 있습니다.
와, 능력치도 성향도 쓰레기네?
중립 악에 깡패 클래스라면 전형적인 기회주의적 악당이다.
나는 혼쭐을 내서 쫓아버릴지, 아니면 인영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해명하고 떠날지 잠깐 고민했다.
굳이 전자를 염두에 둔 이유는, 이놈을 팼다가 고구마 뽑혀 나오듯 줄줄이 다른 놈들까지 나와서 귀찮아질까 우려해서다.
전혀 무섭진 않지만, 또 시간이 낭비되잖아. 가뜩이나 예상에 없던 공부 하랴, 인베이더 사냥하랴 바쁜데.
모든 일에 내가 나설 순 없다.
그래.
그냥 집에 가는 길에 자주 들러서 낯이 익은 정도로 하고.
인영 누나한테는 경찰에 신고하라고 시키자. 공권력 뒀다 뭐하냐.
나는 이렇게 마음먹고 송형근이라는 이름의 깡패에게 입을 열었다.
“저기, 누나랑 저는…….”
퍽!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말문이 막혔다. 놈의 주먹이 내 입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누나? 이 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