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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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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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 4부 : 능력을 이해하기 시작하다 (1)
2022.09.21.
내게는 전혀 상처를 못 입히면서 계속 들이대는 놈에게 검을 내리치기란 식은 죽 먹기였다.
다만, 예상과 달리 너무 쉽게 쪼개져서 좀 놀랐다.
수박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마치 토마토 자르듯 갈라졌다.
1레벨부터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에픽 아이템인데, 성능이 좋아서 20레벨이 될 때까지 이 검을 주무기로 쓰는 플레이어도 있다.
옵션이, 사용자를 증오하는 상대일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거였지 아마?
그래서 어그로 끌어 오는 탱커들이 즐겨 썼고.
난 일찌감치 창을 주무기로 삼아서 쓸 일이 많지는 않았다.
스르륵.
머리가 쪼개진 세눈박이 늑대가 공기 중에 녹듯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 다크 스톤 하나와 이빨 두 개가 떨어졌다.
나는 다크 스톤과 이빨을 주우며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했다.
인베이더는 죽으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다른 차원에 거대한 묘지 같은 거라도 있나?
그 순간.
“어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폭죽이 터진 것처럼, 눈앞에 섬광이 번쩍거렸다. 뒤이어 메시지창이 주르르 올라왔다.
메시지의 내용은 모두 같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메시지창은 모두 네 개.
즉, 단숨에 레벨 5가 된 것이다!
레벨업의 이유는 당연히 방금 세눈박이 늑대를 잡아서일 테다.
15~20레벨에나 잡을 수 있는 놈을 1레벨에 잡았으니, 한꺼번에 4레벨이 오를 만도 했다.
이로써 나는 두 가지 사실을 알 게 되었다.
첫 번째. 인베이더를 잡으면 세파시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경험치를 얻어 레벨이 오른다.
두 번째. 내게는 스킬과 인벤토리 등 보상 외에도, 현실에서 레벨 업 같은 게임 시스템이 적용된다.
이건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인베이더를 잡아서 레벨이 오르는 걸 딱히 특전이라고 판단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주체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시스템이든, 어떤 초월적 존재이든 간에.
‘상태창. 특성과 스킬은 변화 없으면 제외.’
[레벨 5 이정우]
-성향 : ???
-직업 : 초월적인 매니저
-획득한 칭호 :
스캐빈저
리스타트 마스터
-스테이터스
힘 : 35
속도 : 45
지능 : 40
행운 : 10
생명력 : 350
방어력 : 160
확실히 모든 능력치가 대폭 올랐다. 그래서인지 머리가 맑아지고 힘이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 레벨도 오른다 이거지?
지능이 높아진다고 해서 그만큼 머리가 좋아지는 건 아닌 듯하다.
대신, 판단력이나 기억력에는 어느 정도 영향을 주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마력의 절대 보유량이 늘어난다.
내가 또 하나 주목한 사실은, 세눈박이 늑대와 제법 오래 드잡이질을 했는데도 어둠의 마력 침식 현상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나는 한 번도 직접 느껴본 적은 없었다. 그런 게 있다고 말로만 들었지.
다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회귀하기 직전, 슬라임과 정체불명의 마공작을 접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 문정호 - 백은의 기사도 의아해했지.
이번에 세눈박이 늑대와 싸우면서 확실해졌다. 내게는 어둠의 마력 침식이 일어나지 않는다.
특수 체질인 걸까?
아니면 이것도 보상의 일부인가?
세눈박이 늑대의 이빨과 다크 스톤을 들고 멍하니 있다가, 문득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내게 모든 현상이 세파시 게임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면.
현실의 물건도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게는 페이지 무한대의 100칸짜리 인벤토리가 있다.
게임에서 그중 맨 마지막 페이지, 그러니까 100칸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늘 비워두었다.
바로 넣어야 하는 아이템을 발견했는데 자리가 없어서 놓치거나, 특정 아이템이 한계 숫자에 도달해서 얻지 못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확인해보니 이 부분도 게임과 마찬가지였다.
나는 늑대 이빨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인벤토리로 이동.’
그 즉시 손바닥에 있던 이빨이 사라지고.
‘인벤토리 오픈.’
대신, 인벤토리에 새로 한 칸을 차지했다. 된다!
왜 진즉 이 생각을 안 해봤을까.
우선, 내가 처한 상황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이고 신경 쓰이는 다른 일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는 암기력과 기억력이 좋아서 공부를 잘하기는 했지만, 상상력이나 응용력이 좀 부족한 편이다. 단순 반복적인 편의점 일을 오래 하면서 더 심해졌다.
게임에서도 숨겨진 퀘스트 같은 걸 찾을 때 제일 애를 먹었지…….
씁쓸하다.
뭐, 대신 조심성이 있어서 함정에는 잘 안 걸렸으니까.
그나마 지능 수치가 올라가면서 개선된 모양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앞으로 인베이더를 적극적으로 사냥해야겠군. 레벨을 올리려면.
원래는 미래의 정보를 활용하여, 뛰어난 기사들에게 돈과 아이템을 주고 인베이더 대폭주를 막도록 하려고 했다.
나는 뒤에서 가족들만 보호하고.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지원하고.
하지만 나도 강해질 방법을 찾았으니 활용해야지.
아이템과 스킬만으로도 충분히 강한데, 레벨까지 세파시 게임에서만큼 오르면?
어떤 일이 닥쳐도 버텨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게 다 세파시에서 천 번이나 죽어가면서도 포기 안 하고 꾸역꾸역 캐릭터를 키운 덕이다.
물론, 그 와중에 출석 체크를 한 번도 빼먹지 않았던 것도 크고.
끈기와 신중함. 정보의 활용.
이게 내 진짜 무기임을 새삼 깨닫는다.
* * *
일요일에는 종일 집에서 공부했다.
정확히는 공부하는 척하면서, 준비 노트에 이런저런 것들을 정리했다.
제법 고민해야 할 일이 많아서다.
1. 자금 확보는 어떻게 하는가?
당분간 다크 스톤을 팔아서 마련.
다만, 고등학생이라는 신분 탓에 한계가 있다.
다행히 좋은 거래처를 찾았으니 그쪽에 올인하고, 종잣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주식에 투자한다.
차원문과 인베이더 탓에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지만, 그 안에도 오르는 종목은 있다. 나는 그 종목을 어느 정도 알고.
미래에 어떤 종목이 떡상하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직접 주식을 산 적은 없어도, 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면서 뉴스를 계속 본 덕이다.
다크 스톤이 공식 유통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판매하자.
그러면서 인베이더 사냥도 병행할 생각.
레벨을 올려 강해지는 동시에, 다크 스톤과 아이템의 출처를 의심받지 않기 위해서다.
어차피 내가 파는 것들은 다 최상급 품질의 진품이긴 하나, 거래량이 너무 많으면 기사단이나 국세청에서 의심할 수도 있다.
2. 동료는 어떻게 모으고 관리하나?
일단 미래에서 명성을 떨치는 기사들에게, 여건만 되면 접촉한다.
되도록 그들이 기사로 각성하기 전에.
그래야 내가 돈과 아이템으로 은혜를 입힐 수 있고, 접근하기에도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미 연을 튼 차윤성과 조설아는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둘 다 훗날 팔왕에 속하는 최상위 기사일 뿐만 아니라, 지금의 나와 동갑이어서 친교를 다지기에 좋다.
여기까지 정리하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해서 기사들을 모집했다고 치자.
성인이 되고 나면 분명히 수경총이나 사신 기사단에서 접근해올 텐데……. 그들의 회유와 압박을 막을 명분이 있을까?
아무리 내게 은혜를 입었어도, 더 강한 힘을 가진 자들이나 공권력의 강요 앞에서는 버티기 힘들다.
내 곁에 머물게 하려면 강력한 명분이 필요하다.
다른 곳에 속하지 않아도 될 방법. 그러자면 이미 내게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
동아리 같은 집단이 아닌, 힘과 공신력, 자금을 가진 단체에.
기사단을 만들어야 하나?
아니다. 내가 기사단에 속박되고 싶지 않아서 능력을 감추고 있는데, 나의 기사단에 다른 기사들을 얽맨다는 건 자가당착이다.
강제성이 없으면서도 다른 기사단이나 국가 기관에 내 사람들을 빼앗기지 않을 방법.
이 부분은 좀 더 고민해 봐야겠다.
그때,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새로운 퀘스트가 떴다.
기사 육성 퀘스트의 다음 단계다.
<기사 육성 퀘스트>
-당신은 S급 기사 조설아, 차윤성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친분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래와 같은 목표를 달성하십시오.
1. 조설아 / 낯선 이
1) 같이 식사하기 (○)
보상 : 영구적 호감도 20% 획득
2) 1,000만 원 이상 투자하기. 단, 현금 증여와 다크 스톤, 아이템 시세는 제외합니다.
3) ???
4) ???
5) ???
2. 차윤성 / 낯선 이
1) 같이 식사하기 (○)
보상 : 영구적 호감도 20% 획득
2) 1,000만 원 이상 투자하기. 단, 현금 증여와 다크 스톤, 아이템 시세는 제외합니다.
3) ???
4) ???
5) ???
-5단계까지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때 호감도 수치와 무관하게 해당 기사의 호감도가 100%가 됩니다.
-단계별로 소정의 보상이 주어지며 5단계를 충족하면 새로운 관계로 진입합니다.
1,000만 원 이상 투자하기라.
실제 성의를 보이라는 건가.
둘을 합하면 2,000만 원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내게는 수억 정도는 티끌로 여겨질 만큼 막대한 자산이 있으니까.
단, 현금과 다크 스톤 그리고 아이템으로는 안 된다는 게 문제다.
1,000만 원어치의 물건을 사주거나, 두 사람이 만족할 방식으로 그 액수를 채워야 하는 듯하다.
이건, 자금력을 갖추라는 암시를 주는 게 아닐까?
메시지 알림음이 울려 상념에서 깨어났다.
차윤성이나 조설아일 거라 짐작하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전혀 다른 이였다.
유주 : 준비 잘하고 있농?
유주? 이건 누구야?
떠오를 듯 말 듯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내게는 36년 전의 지인인 까닭이다.
말투도 그렇고, 친구 저장이 되어 있는 걸 보니 분명 아는 사람이긴 한데.
일단 답해봤다. 설마, 저런 어투로 선생님은 아니겠지.
나 : 무슨 준비?
유주 : 헐, 역시 이쩡. 모의고사 정도는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다는 건가? 평소 실력이면 된다농?
이쩡이라는 호칭을 보는 순간 기억났다. 나를 저렇게 부른 사람은 하나뿐이었으니까.
유주연.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소위 여사친이다.
이성적인 감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정말 친구라고 기억한다. 일본 애니 같은 걸 좋아했고.
늘 혼자 공부만 하던 내게 유주연 녀석이 먼저 친한 척 굴었다.
난 먼저 다가가지는 않았으나 딱히 밀어내지도 않는 편이어서, 3학년 올라갈 무렵에는 반이 나뉘었어도 그럭저럭 친해졌다.
친구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가?
우리 학교는 대학에 가려는 녀석이 전교생의 3분의 1 정도여서, 공부하는 애들은 공부하는 애들끼리 뭉쳤다.
난 그 안에서도 아싸였고.
유주연 정도가 유일하게 대화하는 친구였다.
일단 유주연을 기억해내자, 그녀와 관련된 일들이 연쇄적으로 우후죽순 떠올랐다.
자발적 아싸의 길을 택하여, 냉랭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면서 외톨이로 지내던 내게.
유주연만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며 조금씩 가까워졌던 것 같다.
내가 받아준 이유도, 그녀가 내 뒤를 이은 전교 2등이었으며 대개 공부와 관련된 질문만 해서 성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꿈꿨던 대학 생활을 한 달 정도밖에 누리지 못했다.
대폭주 때 캠퍼스 안에서 사망한 것이다.
나, 친구 있었네…….
그 친구가 아직 살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