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3화 (193/200)

[외전] 종말전야. 43. 드러나기 시작한.

43. 드러나기 시작한.

-어제 일어난 사건 사고로 인해 아침부터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부천시 원미공원의 초운공방에서 총격전을 벌인 간첩단사건이 충격을 주는 가운데, 속칭 괴변이라고 부르는 사건들이 전국에서 일어난 하루였습니다.

여인숙 방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유한기는 폰으로 시사뉴스를 봤다.

어제 원주에 도착하자마자 구한 대포폰이다.

중고폰을 파는 매장에서 현금을 내자 바로 내줬다. 그 폰 속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는 바로 그것이다.

‘운석.’

그 힘이 사용된 사건들이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저 발화사건, 상봉역사건과 똑같다.

누군지 모를 운석소지자가 발화자를 상대로 한 범행이다.

-제천시장 한복판에서 원인 모르게 발화해 사망한 피해자는 상봉역전철 안 발화사건과 유사합니다. 경찰은 시장 내의 cctv를 분석중입니다만……

‘폰이 시작이겠지.’

발화의 원인이 그렇다는 걸 유한기는 알고 있다.

이젠 운석소지자로서 확신한다.

운석의 힘은 전자기기를 통해서 발현할 수 있다.

발화사건들은 그렇게 한 거다. 살해자가 희생자에게 전화를 걸어 불을 낸 거다.

-똑같다고 할 사건이 원주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유한기는 눈썹을 칼날처럼 세웠다.

‘원주.’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이다. 이곳에 운석소지자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기 시작한 존재들, 운석소지자들은 이번 로또담청자들과 겹칠 것이다.

‘그들 중의 누구이거나 또 다른 누구이거나.’

청록원에서는 이미 로또당첨자들의 명단을 입수해 대응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밀이란 건 없다.

원하면 무엇이든 볼 수 있는 게 그들이다.

현중그룹도 마찬가지다. 해킹을 하든 어떻게든 원하면 얻는다.

-상주에서는 단위농협지점에 강도가 들었습니다. 제지하는 청원경찰을 살해한 강도는 현금 3억을 강탈해 도주했습니다만, 경찰의 추적 끝에 제압됐습니다. 그런데 무려 이십여 발의 총탄을 맞고도 죽지 않은 괴변……

곤두세운 눈썹을 꿈틀거리며 유한기는 뉴스내용을 곱씹었다.

‘함인호처럼, 한건처럼.’

단위농협을 턴 저 자는 운석으로 인해 저런 짓을 했고 운석으로 인해 총을 맞아도 죽지 않은 거다. 그런데 저런 식의 행동을 이해 못하겠다.

운석의 힘을 이용하면 보다 정교하고 현명하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다.

‘시동은 걸렸지만 기어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거야.’

그런 케이스란 걸 유한기는 직감했다.

농협을 턴 강도는 운석의 충동을 이기지 못해 일을 저질렀다.

유한기 자신의 내부에서 치솟아 나오는 그런 감정과 생각들일 거다.

그걸 어떻게 제어하느냐가 관건인 거다.

‘함인호 같은 놈은 그걸 못한 거고, 한건은 해낸 거야.’

그런 구분이 있다는 걸 이젠 확신한다.

유한기 자신에게 들어온 운석도 그런 거다.

박인수에게서 현중그룹놈에게로, 다시 자신에게 들어온 결과다.

이 이동이 운석의 상태를 맞춘 거다.

최적화, 그런 것일 거다.

-회삿돈 육백억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의 수배가 내려진 A은행의 재무팀장 C씨는 도주처인 태안의 펜션에서 경찰에게 적발됐습니다만, 영상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펜션지붕을 뛰어넘어 도주하는 괴변을 일으키고……

역시 운석 사건,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광경을 유한기는 심유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 끝에 일어섰다. 이곳 원주의 운석소지자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 * *

pc방에서 밤을 보낸 한건은 아침을 먹기 위해 나섰다. 가을의 깊음을 넘어 초겨울의 스산함을 풀어내는 평내의 아침거리엔 전철의 울음이 길다. 그 속을 어젯밤에 바꾼 새로운 신분의 얼굴로 태연하게 걸어갔다.

‘이길호.’

새로운 신분은 역시 34세의 남자다.

이번에도 역시 황당함을 만끽했다.

정말 이건 가면을 쓰고 벗듯이 되고 있는 거다.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운석은 힘은 전기나 전파 같은 걸 타고 발현돼.’

이젠 그 원리를 확신한다. 그렇다는 걸 놓고 따져보면 이런 생각이 가능하다. 인간의 몸에도 전류가 흐르니까 그걸 제어 변환하는 게 아닐까 하는.

‘피부근육조직을 움직여서 만드는 결과, 외모를 변화시키는 건 그런 걸 거야.’

물론 기록상의 신분을 바꾸는 건 역시 전기나 전파를 타고 들어가서다.

그렇다면 운석을 이용해서 영화에서처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국가기밀시스템에 침투해 정보를 탈취하거나 혼란을 조성하는 일 같은 거.

‘정말 영화처럼 전쟁을 일으킨다든지……’

생각 끝에 한건은 피식 웃었다. 나가도 너무 나가서다.

경험으로 아는 운석의 힘은 황당한 정도의 것과 허무맹랑한 것의 차이가 분명이 있다.

그러니 이런 생각은 공상이다. 하지만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도 든다.

‘운석의 힘이 강해지면.’

그런 방법이 있다. 그건 다른 운석을 더 가지는 거다.

정말 그렇게 되면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다, 현중그룹과 청록원에서 운석을 확보하려는 이유다.

그들이 처음부터 알았는지 모르지만 이젠 알 거다.

‘간첩단.’

그렇게 몰아가는 청록원의 공작은 먹히고 있다.

어제 사건으로 청와대에서 대국민 담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동요하는 민심을 안심시키려는 거다.

그런데 모두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 진실은 전혀 다르다.

‘청와대 내부에선 누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간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걸음을 옮기던 한건은 해장국집을 발견하고 들어갔다. 안심콜을 하고 테이블에 앉아 해장국을 주문했다. 외모를 바꾼 터라 긴장하지 않았다. 돈이 든 배낭도 어젯밤 지구대에 해결했다.

‘홀가분하긴 한데……’

다시 미간을 좁힌 한건은 아침 뉴스를 내보내는 tv를 응시했다.

pc방에서 이미 인지한 사건들, 운석으로 확신되는 사건들이 다뤄지고 있다.

이름 하여 괴변사건이다.

그런데 저런 사건들은 한국의 경우만이 아니다.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

북극기지운용국가들 전부에서 저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상식적인 사건들, 대표적인 것이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것이라든지 초인적인 운동능력을 보인 사례들이다.

그에 따른 온라인의 반향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음모론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하는 목소리도 있기는 한데……’

미국에선 북극기지종사자가족협회가 구성됐다는 소리가 들린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 그들이 단체행동에 나서는 거다. 한국도 그럴 것이다.

일이 이렇게 커져 가는데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을까.

‘내가 진실을 말해야……’

어금니를 물던 한건은 tv에 시선을 고정했다.

-방금 들어온 속보입니다. 해양수산부에서 긴급발표를 한다고 합니다.

화면은 해양수산부기자회견장으로 바뀌었다. 장관이 긴장한 얼굴을 든다.

-북극 기지 폐쇄와 관련한 정부의 입장과 조사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병실 벽에 고정된 tv를 보며 윤지희는 큰 눈에 힘을 줬다.

-다산기지와 해동기지는 물론 북극 팔개국을 비롯해 극지 기지를 운영하던 국가들의 기지 전체가 폐쇄됐습니다. 원인모를 오염으로 인한 조치입니다. 현재 더 자세한 내용을 조사 중에 있습니다만, 현재까지의 조사로 판단하는 것은 바이러스에 의한 급변사태입니다. 영구동토 밑의……

드디어 자물쇠를 풀었다. 그러나 문을 활짝 연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겠지.’

정부의 선택, 아니 정확하게는 청록원의 저 결정이 무슨 의미인지 윤지희는 곱씹었다.

더는 봉쇄하고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인 거다.

바이러스에 의한 오염으로 손쓸 사이도 없이 북극이 오염됐다는 대본을 만들었다.

‘협의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국가들과 공동조사를 벌인다고 했으니까, 그런 모양새를 취했으니까 아마 협의가 되긴 했을 거다. 이제부턴 사후처리에 들어가는 거다.

-북극기지 종사자들은 전원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바이러스확산차단을 위해 사체들은 전부 소각됐으며, 소지품을 비롯한 기지내의 모든 물품을 소각 중에 있습니다. 이결과는 각국 간의 공통된 합의로서……

저렇게 사후처리에 들어가고 있다.

‘진실은 뒤집힌 동전의 뒷면에 있는 데……’

눈을 무겁게 감았다 뜬 윤지희는 운석이 뭔지에 대한 원천의 의문을 삼켰다.

사건사고를 전하는 뉴스를 통해 운석의 발현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걸 알았다.

전국각지에서 괴이사건이 아우성치듯 일어나고 있다.

‘괴변사태.’

온라인에서 생겨난 그 말을 이젠 언론에서도 사용한다. 현중 자신들은 괴이사건이라고 말하는 것, 본질은 운석으로 인한 비상직적 상황발생이다.

‘뭐라고 부르든 그런 일이 이제 봇물 터지듯 생겨나고 있어.’

2팀장의 전화에 의하면 그룹에서도 운석을 확보했다.

씨마운틴사건 유족협회 대표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아이의 유품팔찌다.

그걸 만든 곳이 초운공방, 간첩단총격사건으로 뉴스를 탄 그곳이다.

그곳이 출처였다.

‘다른 두 개의 운석도.’

이종수씨의 것, 박인수에게서 최강호를 통해 청록원 이탈자에게로 옮겨 간 것, 그리고 실장 현인규가 가지고 있는 것, 모두 초운공방의 민초희가 출처다, 아니 그의 선친 민유한 박사다. 그리고 그것도 알아냈다.

‘김철기의 운석.’

그것도 민유한 박사로부터가 맞다. 그가 모교인 춘천고등학교에 기증했던 운석이다.

과학실에 있던 그것이 김철기의 손에 들어간 거다.

육개월 전 춘천고등학교 과학실은 리모델링 공사를 했고 김철기가 있었다.

‘공사 중 일어난 폭발사고와 화재……’

가스통이 폭발한 그 사고현장에서 김철기는 무사했다. 그렇지만 과학실은 완파됐고 상당한 손실이 있었다. 그 와중에 운석도 사라진 거다.

‘실장은 다른 운석 확보에 총력전을 벌이려는 건데……’

그룹으로 생각을 옮긴 윤지희는 4팀장에게 전화를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폰을 잡았다.

운석과 관련한 정보들을 파헤치는 곳이 4팀이다.

백 명이 넘게 나온 로또 당첨자들을 추적중일 거다. 그건 청록원도 필연이다.

‘아니, 내가 지금 이 처지에……’

폰을 다시 내려놓은 윤지희는 한숨을 무겁게 내쉬었다. 아파트에 있다가 다시 병원에 있는 신세, 이젠 정말로 다 사용된 배터리와 다를 바 없다.

-괴변사태는 국내에서만아 아니라 해외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윤지희는 다시 tv를 응시했다. 스튜디오로 바뀐 뉴스는 앵커의 목소리를 흘러내고 있다.

-이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공통의 원인이 있는 것인지 규명하려는……

* * *

“후우.”

차가워진 아침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며 백곰은 뒤를 돌아봤다. 수도권본부, 농축산연구소로 위장한 청록원의 저 건물은 편안한 잠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잠을 자야할 곳이기에 기어들어와 잠을 자야했다.

‘해양수산부의 발표 뒤로 청와대도 담화를 낸다는 건데……’

방금 전 뉴스로 본 장관의 발표를 떠올리며 백곰은 어제 일을 되새겼다.

간첩단사건으로 몰아가는 일련의 사건들, 그 속에서 운석을 손에 쥐었다.

형용 못할 감흥과 감각은 속에 들어 있다.

지금도 꿈틀거린다.

‘이걸 내가 가지면……’

손목에 차고 있던 운석팔찌를 백곰은 어루만졌다. 그런데 짜릿한 감각이 피어난다. 얼른 팔찌를 빼서 들여다보니 무지개빛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이거?’

눈썹을 세운 백곰은 그 순간의 변화를 막지 못했다. 운석을 둘러싼 투명한 플라스틱재질이 녹아 없어지는 것, 운석이 손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을.

“그렇게 됐구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백곰은 몸을 홱 돌렸다.

감색 코트차림의 국장이 서 있다. 백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본다.

운석이 스며든 손이다.

“국장님………”

“긴장하지 마라.”

담담한 목소리와 눈빛을 던지며 국장 최인수는 백곰에게 다가갔다. 작달막한 키로 만들어내는 당당한 걸음걸이는 늘 그렇듯 거침이 없다.

“그런 사례가 있다. 미국 쪽의 정보로 알게 됐지.”

청록원 수도권본부가 바라보는 앞산의 단풍을 향해 말하듯, 국장은 태연하고 무덤덤하게 목소릴 이어냈다.

“운석이 체내로 스며들어가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 운석에게 정말로 최적의 적합자라면 그런 일이 생긴다는 추정인데, 백곰 네가 그런가 보다.”

긴장과 당황을 품은 눈으로 백곰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국장님 저는……”

“괜찮아. 위에 보고 하지 않았다.”

운석을 확보한 일을 보고 안했다는 거다.

이게 무슨 소린가 백곰은 미간을 확 좁혔다.

“운석이 너처럼 체내로 스며들었다면 그건 곧 죽음이다.”

그렇다. 체내로 들어간 운석을 다시 빼내야 하는 거다.

내부에서 어떻게 돼있을지 모른다.

조직은 운석이 중요하지 백곰자신 같은 자는 차후다.

“유한기 그놈도 이런 경우가 맞을 거다.”

산을 바라보며 국장 최인수는 무거운 시선과 목소리를 이어냈다.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확신했던 건 아니지만 예감이 들었었다. 그래서 보고하지 않았다. 뭐가 중요한지는 내 판단이야. 널 죽게 할 순 없지.”

이어 나온 국장 최인수의 말에 경직했던 백곰은 뜨거운 숨을 느리게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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