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90화 (190/200)

[외전] 종말전야. 40. 민초희.

40. 민초희.

원미공원에는 부천시립도서관과 체육공원이 잘 조성 돼 있다.

이웃한 원미중학교의 풍광과도 잘 어울린다.

주공아파트와 유명브랜드아파트들 사이엔 빌라와 다세대들이 밀집해 있다.

저 속에 그곳이 존재한다.

‘초운공방.’

이면도로에 접한 허름한 단층상가건물이다.

공방이라고 하지만 열평이나 될까 싶다.

유리문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안에는 수공예품들이 있다.

가장 안쪽에 중년여인이 작업 중이다.

여자를 향해 한건은 들어갔다.

땡, 하는 종소리가 청아하게 울리며 문이 열리자 중년여자가 돌아본다.

한건은 얼른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

여자는 손님으로 여기며 미소 짓는다.

“어서 오세요.”

털실로 짠 가디건을 걸친 여자는 마른 모습이다. 젊을 때는 한 미모 했을 얼굴이다. 우묵하게 들어간 눈은 미소 짓고 있지만 왠지 슬퍼 보인다.

“선물사시게요? 골라보세요, 전부 수공예픔이랍니다.”

여자친구에게 줄 선물을 사러온 사람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아예, 사실은 뭘 사러 온 게 아닙니다.”

어색한 미소로 한건은 여자의 눈을 응시했고 여자는 미간을 옅게 좁혔다.

“방금 전에 유족협회 대표님을 만나 뵙고 오는 길입니다.”

유족협회대표라는 게 누굴 말하는 건지 여자는 대번에 아는 얼굴을 했다. 당연히 그럴 거라는 예감을 품었었기에 한건은 목소리에 힘을 줬다.

“이 팔찌를 여기서 구했다고 들었습니다.”

폰을 내밀어 사진을 보인 한건, 여자는 주춤 뒤로 물러난다.

“누구신가요?”

경계와 긴장을 품은 모습, 한건은 다시 미소품은 얼굴로 정중하게 용건을 밝혔다.

“이름 없는 글쟁이입니다. 씨마운틴화재사건의 명확한 진실을 글로서 알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취재중입니다. 도와주시면……”

여자는 적의를 드러내 축객령을 뱉는다.

“나가세요!”

당황한 한건이 다시 말하려는 데 여자가 폰을 잡는다.

“안 나가면 경찰을 부르겠어요!”

112 단축번호를 터치하려는 여자, 두려움과 분노가 뒤섞인 그 얼굴을 보고 한건은 확신했다. 이 여자는 운석에 대해 알고 있다고, 오래전부터.

“운석을 왜 아이들에게 줬습니까?”

흠칫한 여자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진다.

폰을 잡은 손을 부들거린다.

서 있기 힘든지 휘청거리는 뒷걸음으로 의자에 앉는다.

숨을 헉헉거린다.

“다, 당신……!”

눈동자마저 떨림을 보이는 여자에게 한건은 다가갔다.

“어째서 그 위험한 물건을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손에 쥐어준 겁니까?”

유족대표에게서 들었다. 팔찌의 출처가 바로 이 공방이라는 것을.

학부모 중 한사람과 인연이 된 이 공방에 아이들은 현장학습도 나왔었고, 그때 세 아이가 팔찌를 샀다는 거다.

이종수씨와 한만식씨와 대표의 아이다.

“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나, 나는 아는 게 없어요!”

운석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 창백해졌던 안색에 여자는 붉은 흥분을 끌어 올렸다. 부정하기로 마음먹은 모습, 거친 목소리로 모른다 한다.

“나는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그러나 모른다고 소리치는 이 상황이 안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

“아이들이 죽고 그 비통함에 허우적대던 부모들도 죽었습니다.”

나직하고 묵직하게 나간 한건의 목소리, 여자는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춘다. 한건을 보던 눈을 스르르 내려 바닥을 응시하며 어깨를 가늘게 떤다.

“이종수씨가 죽던 현장에 있었습니다.”

벌컥, 하고 뚜껑이 열리는 것처럼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한건을 응시하며 입술을 악문다.

그렇게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 남자가 누군지 모르지만 다 알고 있다는 것, 해치려고 찾아온 자가 아니란 거다.

* * *

거실 바닥에 흘러내린 피를 피해 발을 옮기며 백곰은 지켜봤다.

현중그룹에서 손을 대고 간 자, 유족협회대표에게서 팀원들이 다시 이야기를 듣는 광경, 아니 뽑아내는 과정이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역시 있다.

‘초운공방.’

운석의 출처는 그곳이다.

수공예픔을 만드는 작은 공방이라 한다. 그곳에서 세 아이가 팔찌를 구했다.

그러한 내용을 정체모를 젊은 놈이 찾아와서 알아갔고, 그다음에 현중이 들이쳐 또 캐갔다. 저자의 팔찌와 같이.

‘이름 없는 작가라, 그놈이 김철기를 죽이고 운석을 강탈해간 놈인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그놈이 한발 빠르다.

그런데 놀라운 건 운석의 출처다.

초운공방이란 곳에서 기념품 팔찌로 만든 거고 그걸 아이들이 가졌다.

그걸 만든 존재를 찾아가야 한다.

“죽었습니다.”

팀원의 보고가 아니래도 백곰은 지켜봐서 안다.

유족협회 대표는 현중이 손을 댄 걸로 어차피 살지 못할 자였다.

이 현장도 간첩단사건으로 꾸미면 문제없다.

이종수와 마찬가지로 체제전복테러분자들이 되는 거다.

‘현정부의 원한을 품고 북한에게 포섭된, 그러나 결국 토사구팽당한.’

내일이면 신문에 실릴 기사내용을 그리며 백곰은 몸을 돌렸다.

“초운공방으로 간다.”

* * *

민초희, 자신의 이름을 밝힌 중년여자는 차를 내주며 차분해졌다. 이젠 모든 걸 털어내려는 얼굴, 그렇게 홀가분해지고 싶은 눈이다. 오랫동안 홀로 간직해온 비밀의 무게를 이젠 감당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말한다.

“그 운석들은 죽었다고 생각했어요. 정확히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았어요. 운석에 대해 아시니까 그 표현이 맞다고 생각하실 거예요. 네, 그래서 팔찌로 만들었죠. 아이들이 그걸 가져갈 때 이런 일은 생각 못했어요.”

찻잔을 잡은 중년 여인, 민초희의 손이 가늘게 떨림을 보인다.

“씨마운틴화재사건이 났을 때도 몰랐어요. 운석과는 연관 지을 수가 없었죠. 그냥 안타깝고 슬펐죠. 그런데 최근 이종수씨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깨달았어요. 심인구회장사건과 윤기훈사건, 운석 때문이란 걸요.”

민트차를 한 모금 넘긴 한건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운석의 출처가 어딥니까? 죽어 있었다는 건 정확히 뭔가요? 그렇게 구분할만한 기준이 있었습니까? 그렇다는 건 산 운석을 경험했다는 소립니까?”

고요한 힘이 응축한 한건의 눈을 응시하던 민초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게 운석이 있었어요, 살아 있는 운석이었죠. 네, 그걸 나는 겪었어요. 그것이 어떤 일을 만들어내는지, 날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경험했어요.”

* * *

인접한 곳인 원미공원으로 이동하며 백곰은 보고를 들었다.

-김철기 살해자의 이동경로를 파악했습니다. 김철기의 집 인근에 위치한 양로원에 사건이 발생하던 시간 젊은 남자가 찾아왔었습니다. 양로원 내부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그걸 토대로 남춘천역에서 하차한 영상을 찾아 그 역순으로 추적했습니다. 마석역에서 열차를 탄 걸로 확인됐습니다. 현재 이동중입니다. 그 지역의 cctv를 뒤져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알았다.”

폰을 내린 백곰은 빠르게 지나치는 차창 밖 광경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김철기를 죽이고 운석을 가져간 놈의 종적을 드디어 한 조각이나마 찾은 건데 전혀 감흥이 없다. 지금 일어나는 가슴속의 것은 회의와 짜증이다.

‘이렇게 개처럼 충성을 바치고 얻는 게 뭐지?’

유한기의 결과, 그게 아닐까라고 생각된다.

물어온 뼈다귀를 바치고 나면,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지면 폐기되거나 잡아먹히거나, 그런 생각이 든다.

여태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오면서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생각이다.

‘국장은 무슨 생각일까……’

시험, 검증이란 것의 확신은 정말로 확고해진다.

운석을 가진 백곰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본다는 거다.

유한기의 경우와 같을지 아닐 지다.

그런 정도의 위험은 감수할 수 있고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다는 거다.

‘청록원이니까.’

청록원, 그 이름의 진짜 모습을 알기에 백곰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직은 절대로 배신해선 안 되는 곳이다.

대한민국 정부에 뿌리를 둔 정보기관이어서가 아니다.

그런 겉을 이루는 속 때문이다.

‘진정한 힘을 가진 곳.’

그러한 곳을 유한기는 배신하고 도주했다.

물론 토사구팽 당할 것을 깨달았기에 한 행동이다. 그러나 청록원의 진정한 모습을 몰랐기에 그런 거다.

유한기가 진실의 실체를 반이라도 알았다면 그러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도 순종해?’

확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살의에 백곰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사이 차는 원미공원에 다다르고 있었다.

* * *

“민유한 박사, 그분을 운석의 아버지, 운석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죠. 그래요, 내 아버지 민유한 박사는 운석에 미친 사람이 맞아요. 운석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다니느라 가정조차 돌보지 않았어요. 그런 아버지가 준 게 운석이었죠. 조약돌만한 운석, 그것이 나를 죽게 만들었어요.”

이어지는 민초희의 이야기를 한건은 고요한 눈으로 들었다.

“운석이 주는 행운에 흥분해서 나를 잃고 살게 됐죠. 아버지의 죽음 같은 건 바로 잊었어요. 돈과 향락에 빠졌죠. 그러다 남자를 만났어요. 거리에 쓰러져 있던 나를 파출소로 데려간 순경이었는데, 그가 황윤성이에요.”

한건은 놀라 눈썹을 세웠고 민초희는 차가운 미소를 피워냈다.

“맞아요,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사망한 남자, 그 황윤성이에요. 그게 진실이 아니라는 건 우리 둘 다 알고 있죠. 왜냐면 황윤성 그에게 운석이 있었으니까요. 내가 가졌던 운석, 사랑했던 그 남자가 가지게 뒀어요.”

그랬다는 거다.

황윤성이 운석의 힘에 취해 있을 때, 승진을 거듭할 때, 민초희는 비로소 운석의 의지에서 한 발 벗어나 도망쳤다는 거다.

남해의 해안도로에서 차와 함께 추락사한 최후로서다.

그런데 끝이 아니었다.

“결국 운석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거예요. 남아 있던 죽은 운석들로 기념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걸 아이들이 가져가게 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난 거죠. 그것들이 죽은 게 아니라 죽은 척했다는 걸 몰라서요, 아니 그건 핑계겠죠. 뭐가 어쨌든 운석을 가지고 있었던 거니까요.”

회한의 슬픔에 잠기는 민초희, 그 얼굴을 보던 한건은 말했다.

“이렇게 될 일 일이었다면 다른 손을 통해서라도 이렇게 됐을 겁니다.”

함의가 있음을 깨달은 민초희는 한건의 눈을 응시했다.

“북극이 이상하다는 뉴스를 보신 적 있을 겁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거나 북극놈들이 먹을 게 없어서 죽어가고 있다는 뉴스 말고, 북극기지들이 폐쇄된 뉴스 말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운석입니다. 운석이 무더기로 발견돼서 각나라의 기지들에서 채취해 갔습니다.”

그로인해서 일어난 결과를 한건은 이야기했고 민초희는 몸을 떨었다.

“그, 그럴 수가……!”

한건은 무겁게 가라앉은 숨을 먼저 흘려내고 다시 목소릴 냈다.

“일련의 진실들을 알고 난 지금 가지게 된 생각은 하납니다. 죽어 있다고 여기던 운석들마저 깨어나게 한 계기가 있다는 겁니다. 북극사태가 그것이라고 판단합니다. 묻혀 있던 운석들이 대거 드러나면서 시작된 거죠.”

“그, 그게, 기후변화로 인해 얼음이 녹고 운석이 드러나서……”

“정화한건 모릅니다, 북극에서부터가 아니어도 운석은 이미 있었으니까요. 황윤성이 가졌던 것이 그렇고, 지난주 로또당첨자는 백 명이 넘습니다.”

“네에?”

“아직 모르시는 군요.”

“그럼 그게 다 운석 때문이란 건가요?”

물어 놓고 민초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구보다 운석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다.

그걸 생각하니 운석의 특성, 행운이 어떠했는지 떠오른다.

“행운은 계속되지 않아요. 처음 몇 번 뿐이죠. 그다음부터는 운석의 의지에 이끌려 만들어내는 결과들이에요, 황윤성도 그랬죠. 운석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공을 만들었으니까요. 운석의 행운은 내가 이미 썼던 거죠.”

한건은 미간을 깊게 좁혔다.

“그렇다는 건…… 운석은 처음 소지자에게만 행운을 준다는 건가요?”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래요.”

민초희는 곧바로 다시 말을 이어냈다.

“그걸 알고 제대로 누리는 사람이라면 행운이 되겠지만, 이종수씨나 한만식씨 같은 경우는 모르겠네요. 워낙 비통에 빠져 있던 사람들이라선지……”

그렇다, 그들은 행운이랄 것을 누린 게 아닌 거다.

그렇다면 민초희 말대로일까?

자식을 잃은 비극적인 슬픔에 먹힌 존재여서 그러했던 걸까?

“아버님이, 민유한 박사님이 운석을 민초희씨에게만 주신건가요?”

생각의 갈래를 돌려 한건은 물었고 민초희는 대답했다.

“아니요, 이곳저곳 박물관에 기증하셨죠. 모교인 춘천고등학교에도 기증하셨고요.”

춘천이란 말에서 한건은 눈썹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등을 강타했다.

놀라서 눈을 부릅뜨는 민초희 앞으로 한건은 고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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