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80화 (180/200)

[외전] 종말전야. 30. 출현, 그 의미.

30. 출현, 그 의미.

아수라장이 된 상봉역 환승구역을 벗어난 한건은 경춘선에 몸을 싣고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서 목격한 사건의 충격이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한다.

‘남자가 불덩이가 돼서 여자까지…… 아니 여자가 목적인 듯이 움직였어.’

좌석에서 불타오른 남자는 분명히 그랬다.

놀라서 멀어지려는 여자에게 불덩이가 돼 다가갔다.

여자를 끌어안고 같이 타올랐다.

그건 마치 우린 같이 가야 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할 이유가 분명 있는 거다.

‘운석의 힘, 운석 소지자의 의지.’

누군가 그들을 그렇게 죽인 거다. 그들, 남녀를 아는 누군가가 벌인 범행이다.

‘복수?’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그런 것일 거다.

남녀에게 악감정을 가진 누군가 그렇게 만든 거다.

그렇다면 범인은 사건 현장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운석의 힘이 미치는 범위가 좁을수록 결과는 강력하고 확실하다.

‘복수의 결과를 눈으로 보고자 했다면……’

그런 것이라는 확신인데, 남자가 불타오른 원인이 뭔지는 짐작이 안 된다. 인화물질 같은 게 있었다면 모를까 삽시간에 그렇게 전신이 탈 수 있나?

‘인체발화?’

불가사의한 사건들에서 취급되는 사례다. 불덩이가 된 그 남자처럼 사람이 갑자기 발화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 되지만 실제 케이스들이 있다. 그런 맥락 같은데, 운석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삼십대 전후로 보인 젊은 남녀…… 그들과 원한관계라면…… 치정으로 인한 거라면…… 전화번호를 안다……? 전화를 걸어서 불타오르게 했다?’

눈썹에 들어간 힘이 꿈틀거리는 것도 모르는 채 한건은 생각을 거듭했다.

‘이종수씨는 전화를 걸어서 복수했어.’

운석은 한건 자신이 한 것처럼 pc에 기록하거나 폰으로 녹음하는 것만으로 능력을 발현하는 게 아니다. 소지자가 대상자에게 전화를 걸어서도 한다.

그 수단, 폰이다. 아니 전자기기들이다. 운석의 힘이 타고 간다.

‘수첩에 기록했을 때는 나라는 존재의 주변, 직접적인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렇기 때문에 발현능력이 제한적이고 나라는 존재가 이동하는 범위에서만 작용하는 거야. 주변 카메라들을 먹통 만든 것처럼.’

하지만 목적대상자에게 전화를 걸면 확실한 결과가 이뤄지는 거다. 대상자가 소지한 폰을 통해서다. 그렇게 한 이종수씨의 기억을 확인했다.

‘각인시켜 행동하게 만드는 거지.’

운석에 대한 더 확실한 짐작과 결론을 삼키며 한건은 이결과를 곱씹었다.

‘다른 운석들이 나타나고 있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힘을 발현하고 있다.

부랴부랴 현장을 벗어난 강남경찰서의 박인수경정 사건은 분명 운석이다.

전철 안의 발화도 틀림없다.

예측하지 못할 도처에서 튀어 나오고 있는 거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폭력과 살인……!’

운석의 힘은 그렇게 작용한다. 소지자가 제어하기 힘든 살의를 일으킨다. 본래 가지고 있던 기억과 감정과 경험, 폭력으로 풀어내고 싶은 것을 찾아내 극대화 시키는 거다. 아니, 타인의 감정과 기억도 마찬가지다.

‘운석소지자가 바뀐다면.’

그 부분에서 한건은 반짝하고 뇌리를 스치는 걸 잡았다.

박인수경정이 갑자기 심인구회장을 처단한 이유에 관한 부분이다.

운석의 본래소지자가 육경감이 아니고 다른 이였다면, 그가 이종수씨와 같은 유족이었다면.

‘본래 소지자의 원한, 폭력과 피를 갈구하는 의지가 박인수에게 전이됐다?’

그렇게 벌어진 일일 수 있다. 상당한 가능성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선 운석이라는 매개체가 옮겨간 사실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럼 과연 운석은 어떻게 나타나서 어떻게 옮겨간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있나?

‘이종수씨의 운석은……’

그날 밤, 이종수씨의 피 묻은 운석은 한건 자신의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런데 운석은 크기도 이전 것과 비교해 작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결정 안에 있었다. 장신구로 가공해 놓은 것이었다.

‘장신구, 목걸이나 팔찌 같은……’

미간에 선명한 내천자를 그리고 생각을 집중하던 한건은 폰을 꺼내 검색했다. 씨마운틴사건과 관련한 지난 기사들을 모조리 읽었다. 그렇게 찾았다. 화재 현장에서 오열하는 유족들, 그 손에 쥔 아이들의 물건이다.

‘팔찌!’

불속에서 찾아낸 아이들의 모발 속에서 나왔다는 거다.

붉은 수실을 꼬아 만든 거다.

한건 자신이 보고 만진 것과 같은 형태, 분명히 이것이다.

사진 속 유족은 팔찌를 움켜쥐고 잿더미 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다.

‘이거구나……!’

아이들이 가졌던 거다. 기념품 같은 걸로 산 게 분명하다.

운석이 기념품팔찌가 되어 아이들의 손에까지 들어간 경로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만, 어떻게 박인수결정의 손에 들어간 건지는 알겠다.

범죄현장 증거품이다.

‘한만식.’

또 다른 희생자 아이의 아버지다. 반년 전에 자살했다.

‘이 사람도……’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연이 기사로 나왔다. 아이를 잃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던 부부는 결국 이혼했고, 아파트에서 홀로 고독사했다.

‘박인수경정은 한만식의 자살사건과 관련이 있어, 분명히.’

확신한 한건은 박인수결정에 대해 검색했다.

바로 증거가 나왔다.

박경정은 부천경찰서에 근무했다. 한만식씨가 자살하던 육개월 전에 분명히 그랬다. 마약조직과 조직폭력배 소탕에 공을 세워 강남서로 옮겨 왔다.

‘표창을 받았구나.’

강남서에서 일종의 스카웃을 해 온 거다. 강남에 만연한 마약범죄와 조직폭력을 위한 대응인 거다. 그런 자가 박인수경정, 운석을 가진 자였다.

‘여기서 또 막히는데……’

찌푸린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건은 운석을 소지했던 이들의 결과를 더듬었다.

우선 한만식이다. 그는 자살했다.

운석을 가졌는데 왜 그런 결과인 걸까?

그다음 박인수다, 그 역시도 자살했다. 함인호도 마찬가지다.

‘버려진 자들?’

이종수씨와 한건 자신만이 다르다.

현재까지 경험한 운석 관련한 결과가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이종수씨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한건 자신만이 다른 거다.

가장 다른 점은 운석이 체내로 스며든 거다.

‘다른 이들은 운석 그대로 소지했는데 나만…… 시작이 먹어서인가?’

라면과 같이 먹어버려서 라고 하기엔 이상하지만 그럴 수도 있을 거다. 뭐가 됐든 운석이란 것에 대해서 추측하고 짐작하는 자체가 어렵다.

‘한만식씨는 행운을 전혀 누리지 못한 건가? 비참하게 자살한 결과만 보면 그런 건데…… 박인수는 운석을 소지해서 행운을 누린 게 확실하고……’

범죄조직을 소탕한 공으로 표창을 받았다. 강남경찰서로 진급영전도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은 자살이다. 그런데 한만식은 행운을 전혀 누리지 못한 걸로 보인다. 이혼하고 홀로 지내다가 목숨을 끊었다. 왜 다를까.

‘버려야 할 대상이기에 그랬다?’

처음부터 한만식씨는 그런 대상이었다면, 운석이 원한 적합자가 아니었다면 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짐작일 뿐이고 진실은 모른다.

풀 수 없는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학생처럼 한건은 답답한 숨만 내쉬었다.

‘분명한 건 운석이 역시 소지자를 구분한다는 거.’

원하는 숙주가 아니라면 다른 적합자를 찾아 이동한다.

계속 그럴 수 있다.

한건 자신도 지금은 아닐지 몰라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운석이 더 이상 숙주로서의 필요성을 못 느끼면, 버려져 죽음을 맞는 거다.

‘세 개나 날 적합자로 선택했는데…… 네 번째를 거부한 건……’

더 이상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아 한건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바로 앞 좌석의 젊은 할머니가 작게 혀를 찬다. 뭐가 못마땅해서 저럴까. 그렇거나 말거나 한건은 다시 운석을 생각했다. 또 다른 운석이다.

‘전철 안에서 남녀를 불태워 죽인……’

누구인지 모른다, 주변에 있었겠지만 전혀 느낌을 갖지 못했다.

운석이 드러내지 않고 숨으려는 의지였기에 그런 걸로 생각된다.

소지자는 운석으로 인한 다른 범행을, 폭력과 죽음을 만들어 내는 일을 또 할 거다.

‘운석이 필요로 하는 한, 버려지지 않고 적합자로 있는 동안은.’

전철 밖을 노려보며 한건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전철은 어느새 사릉을 지나고 있었다.

* * *

피에 젖은 몸을 일으킨 최강호는 동료를 살피던 놈의 시선을 받았다.

청소부 복장의 청록원 요원 놈, 부릅뜬 눈으로 총구를 돌린다.

그 순간 튀어나갔다. 섬광을 토하는 총구 아래로 들어가 왼손을 심장에 쑤셔 박았다.

‘느껴진다!’

뜨겁고 거칠게 요동치는 심장.

청록원요원 놈의 심장을 움켜쥔 최강호는 그 주인의 몸을 들어올렸다.

심장이 으스러진 청록원 요원은 경련한다.

그 순간 다른 놈들이 들어왔다. 놈들의 총격을 향해 최강호는 달려갔다.

* * *

어처구니없는 충격 속에서 유한기는 시체실 안의 죽음을 응시했다.

요원 다섯이 죽었다.

현중그릅놈들 죽이 죽어 있으니 시체는 일곱이다.

아니 지퍼백 안의 심인구와 박인수까지 하면 아홉이다.

바닥은 피바다다.

‘그놈이……!’

대성리에서 본 그놈이다. 부하 두 놈과 그놈이 이곳에 들어왔다.

별관 cctv를 확보해 놈을 분명히 확인했다.

한발 늦었다는 걸 알고 서두르는데 부장의 전화가 왔다.

현황을 보고하느라 부하들을 먼저 들여보냈다.

‘소총으로 무장했는데……!’

가장 유능한 부하 둘이었다.

상대가 권총무장뿐이란 걸 확인했기에 걱정하지 않았다.

세 놈이 경찰인 척하는 모양새의 빈손으로 시체실에 들어간 거다.

이렇게 될 일이 아니었다.

신속하고 강력하게 끝내고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됐다. 그놈이 다 죽이고 도주했다.

“시체실 내부 영상입니다.”

경직한 목소리로 태블릿을 내미는 팀원에게서 유한기는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지금 받을 딛고 있는 이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보인다.

황당한 일, 현중그룹의 놈은 소총세례를 맞고 일어섰다.

이건 그거다.

‘운석……!’

그게 뭔지, 어디에서 나타나 놈의 손에 들어간 건지도 보인다.

역시 박인수의 몸에 있었다. 붉은 수실의 팔찌 같은 거다.

그걸 놈이 가졌다. 그래서 이렇게 됐다. 총에 맞았지만 죽지 않고 일어나 부하들을 죽였다.

“아직 병원을 못 빠져나갔다! 찾아!”

격하게 명령하며 유한기는 시체실을 나갔다.

뒤처리는 처리반이 와서 할 것이다.

경찰까지 죽었으니 어떻게 구성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그들의 일이다.

유한기 자신이 할 일은 놈을 찾아 운석을 확보하는 거다.

‘숨통을 끊어주마……!’

치 떨리는 분노를 삼키며 유한기는 복도를 달리듯 이동했다.

* * *

손을 대자 차문은 열렸다. 분명 락이 걸려있고 경보장치도 있는데 됐다.

그럴 거라는 예감이 들었지만 정말로 될 줄은 몰랐다.

왜 이렇게 된 건지 안다.

운석이다. 운석이 최강호 자신을 살린 것과 같은 능력이다.

‘시동.’

키박스에 손을 대자 부릉 하고 차가 깨어났다. 최신형 제네시스suv다. 부드럽게 차가 움직인다. 절로 피어나는 입가의 미소를 흘려내며 최강호는 출구를 향해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우측에서 누군가 뛰어온다.

‘저놈!’

누군지 안다. 대성리에서 본 그놈이다. 미친 듯이 달려와 소총을 겨눈다. 눈부신 총구화염을 토해낸다. 그 탄자들이 날아와 차 옆을 두들긴다.

콰콰콰콰콰콱.

차체를 뚫고 들어온 총탄들이 옆구리 어깨를 강타하는 속에서 최강호는 벽을 받았다.

보닛이 우그러진 차를 버리고 나오는데 놈이 총을 쏘며 다가온다.

두 팔을 들어 막았지만 전신에 충격이 온다.

“크흑!”

최강호는 벽에 밀려가 주저앉았다. 여전히 두 팔을 들어 총탄을 막는 자세로 놈을 봤다. 빈탄창을 떨어뜨리고 번개처럼 새 탄창을 삽입한다.

그 순간 내부에서 분노가 폭발했다. 그 힘으로 스프링처럼 일어섰다.

“우와아!”

괴성을 지르며 탄환처럼 튀어나간 최강호는 상대에게 몸을 날리며 주먹을 뻗었다.

놈의 머리를 강타했다. 고양이처럼 바닥을 굴러 일어나 돌아봤다.

머리통이 부서진 게 아니라 소총이 박살났다. 놈은 권총을 겨눈다.

‘죽인다!’

형용할 수 없는 격노와 살의로 최강호는 움직였다.

상대가 발사하는 권총탄의 아래로, 옆으로, 간발의 차이로 스쳐가며 다가갔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도 모르는 채 총격을 피하면서 나갔다. 그리고 주먹을 질렀다.

퍽.

가슴을 뚫고 들어간 주먹이 심장을 박살낸 감각에 최강호는 전율했다.

직전에 죽여 버린 놈과 같은 희열, 이건 태어나 처음 느끼는 거다.

“쿠웩.”

입으로 선혈을 뿜어낸 놈, 청록원요원들의 리더놈에게 최강호는 속삭였다.

“난 운석을 가졌다.”

등 뒤로 달려오는 청록원 놈들을 느끼며 웃음을 흘려낸 최강호, 그런데 갑자기 휘청거린다. 고통에 겨운 얼굴로 부들거린다. 가슴에 주먹을 박고 있는 청록원 팀장, 유한기의 경련과 같다. 그런데 그것이 반전된다.

“으어어……!”

최강호는 전신으로 선혈을 뿜어냈다. 여태 총알들이 파고 들어간 구멍으로다.

버티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그 바람에 주먹이 빠졌다.

그런데 피구멍이 난 가슴의 주인 유한기는 서 있다. 가슴의 피구멍이 메워진다.

“이게…… 뭐……”

마지막 경련을 눈동자로 흘려낸 최강호는 절명했다. 그 앞에선 유한기는 긴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청록원 요원들이 놀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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