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78화 (178/200)

[외전] 종말전야. 28. 또 다른 인질극.

28. 또 다른 인질극.

전철역을 나선 한건은 잠시 거리에 서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강남, 그 의미를 새삼 느끼며 숨을 내쉬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거리에 이렇게 발을 디딜 줄은 몰랐다.

이종수씨의 유언을 위해 온 걸음이다.

‘데이트장소로 정해둔 곳인데.’

애인이 생기면, 그 전제가 성립해야 하지만 그렇게 마음먹고 있던 곳이다. 화려한 첨단의 도시, 이곳에서 즐거운 데이트를 하는 상상은 이제 정말 상상이 됐다. 지금 찾아가는 강남경찰서는 절대 그럴 곳이 아니다.

‘내 삶도 이젠 그럴 수 없는 것이고.’

눈동자에 힘을 준 한건은 멈췄던 걸음을 내디뎠다.

이종수씨를 떠올리고 심인구회장을 생각하자 속에서 화산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다스리기 힘든 분노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해치고픈 이 살의는 무섭다.

‘으.’

순간 휘청하며 다시 걸음을 멈춘 한건은 해를 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아직은 따스하게 내리치는 가을볕, 눈부신 그 빛을 응시하며 정신을 잡았다.

그렇지만 제어가 힘들게 너무 강한 감정이다. 그런데 제어가 된다.

또 다른 감정, 분노와 살의가 치밀어 오른다.

그건 한건 자신이 가진 본래의 것이다.

친구 이응삼의 죽음을 눈앞에서 본 분노다. 그것이 화산처럼 터진다.

그것만이 아니다. 함인호가 가진 살의, 그것도 치밀어 오른다.

‘이게……’

세 가지 분노와 살의.

운석 세 개가 일으키는 그 불길이 서로를 휘어 감고 싸운다. 어우러진다.

그렇게 균형을 이룬다. 치우침이 사라진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한건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지하로부터 자신을 뱉어내준 삼성역을 등 뒤로 두고 다시 걸음을 냈다. 강남경찰서사거리 에 다다르니 경찰서건물이 우측에 보인다. 우회전해 들어가니 뭔가 이상하다.

‘어?’

경찰서 정문 쪽에 인파가 몰려 있다. 차도 건너편 건물 창에도 몰려 웅성거린다. 여자들이 소리 지른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상황발생이다.

단거리주자처럼 인도를 전력으로 달려간 한건은 경찰서 앞 사람들 틈에 끼어 봤다. 한 남자가 초로인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소리치고 있다.

“심인구는 죽어야 할 놈이다!”

흠칫하는 충격 속에서 한건은 남자의 목소리를 거듭 들었다.

“씨마운틴리조트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으로 나 박인수가 심인구를 처단한다! 이 행위는 정의의 발로다! 법이 징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보호해주는 극악한 죄인을 심판함이다! 세상은 보아라! 이것이 정의다!”

스스로를 박인수라고 밝힌 남자는 심인구의 관자놀이에 댄 총구를 내려 다리를 쐈다. 쾅 하는 총격음이 강남경찰서를 울리고 강남을 울렸다.

* * *

‘이게 무슨 일이야?’

눈썹을 떨면서 윤지희는 폰을 들여다봤다.

뉴스속보로 나온 상황.

강남경찰서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자마자 sns를 검색하니 떴다. 경찰서 맞은편 건물에서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올리는 영상이다.

‘어!’

움찔하며 유지히는 순간 경직했다.

자신이 박인수라고 소리친 남자가 심인구의 다리를 쐈다.

무릎에서 피가 터진다. 심인구는 비명을 지른다.

그 모든 모습과 소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폰을 통해 퍼져 나왔다.

‘이 남자 누구야?’

폰을 붙잡은 윤지희는 숨을 부들거리면서 그 의문을 삼켰다.

* * *

“누구라고?”

창밖을 노려보며 묻는 현인규의 눈동자는 충혈됐다. 그렇다는 걸 모르는 채 폰을 통해 들려오는 2팀장의 보고를 듣는다. 박인수란 자가 누구인지다. 놀랍고 황당한 충격을 가질 뿐이다. 그 자가 왜 저런단 말인가.

‘강남경찰서 형사과장이라고?’

2팀장이 신속하게 알아낸 바에 의하면, 아니 기왕에 강남경찰서에 관해 가지고 있던 정보를 토대로 찾아난 결과다.

박인수 경정, 그 자는 경찰이다.

책상 위 태블릿에 뜬 sns영상 속 저 놈은 지금 여기선 안 보인다.

‘강남경찰서가, 아니 강남이 발칵 뒤집힐 일.’

박인수가 왜 심인구 회장을 잡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가 외치는 소리를 들어 안다.

실시간 영상 직전 영상에 분명히 나온다.

씨마운틴리조트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으로 심인구를 단죄한다는 주장이다.

‘왜?’

어째서 박인수경장이 저런 짓을 하냐가 의문이다.

답은 하나다.

운석이다.

* * *

‘운석이야!’

흥분한 숨을 삼키며 한건은 예감을 확신했다. 심인구 회장의 무릎에 총알을 박아 넣은 저 남자는 운석의 의지에 의해 저러고 있음이다. 그렇다는 다른 징후는 없지만, 운석이 찾아왔을 때와 같은 느낌은 없지만 안다.

‘경찰……!’

박인수라는 저 남자는 경찰이다. 바로 이곳 강남경찰서 소속이다. 주변에서 동료들이 소리치고 있다. 총을 버리라고, 도대체 왜 이려냐고 한다.

“박과장 뭐하는 짓이야! 어서 총 내려놔!”

무궁화가 네 개 달린 제복의 중년인이 소리친다. 강남경찰서장이 분명하다. 그러지만 박인수란 이름의 경찰은, 경정 계급의 사내는 소리친다.

“심인구는 천 번을 죽여도 죄 값을 다하지 못할 죄인이다! 이런 자를 우리는 법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줬다! 있을 수 없고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뜨거워진 총구를 심인구의 관자놀이에 다시 댄 박인수는 계속 외친다.

“세상이 정의롭다면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거다! 이 일은 바로 그 일이다!”

박인수가 소리침과 거의 동시에 경철서장도 소리쳤다.

“야 박과장! 정신 차려!”

그 소리가 터질 때 박인수는 권총을 발사했다. 강남경찰서를 울리는 그 소리는 심인구의 어깨에서 솟구치는 핏줄기로 모두의 시야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된 걸까?’

사람들 사이에서 한건은 상황의 전후를 더듬었다.

강남경찰서 경찰들이 뛰어나온 황당한 일, 박인수에게 총을 겨누고 소리쳐야 하는 이 일은 원인이 있음이다.

경찰이던 저 남자를 저렇게 만든 원인, 운석이다.

‘이종수씨도 그렇지만 저 경찰은 어떻게 운석과 연결된 거지?’

기자들이 카메라를 터트리는 가운데 박인수는 총구를 심인구회장의 머리에 다시 댔다. 또 한 번의 발사로 뜨거워진 총구는 심회장의 머리카락과 살갗을 지졌다. 심회장은 무릎과 어깨의 고통에 이은 고통에 떤다.

* * *

또 한발 늦은 느낌이 드는 건 그저 느낌일까?

아니다, 지금 저기 강남경찰서 정문 안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일은 이미 손쓰기에 늦은 거다.

‘빌어먹을……!’

귀가 울릴 정도로 이를 갈아부친 유한기는 새삼 주변을 돌아봤다.

자신들 청록원처럼 현중놈들도 여기 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틀림없다, 놈들도 당황하고 있을 거다.

박인수란 저놈은 네번째 운석 소지자다.

‘강력계팀장 놈이 저런 짓을 벌일 이유가 없어.’

지금 떠드는 말과 저 행동은 저자의 의지가 아니다. 운석의 힘이 작용해 나오는 폭력과 살인의 반응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저런 식이면 그냥 자살미션 같은 게 아닌가?

은밀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왜 저렇게 하나?

‘박인수가 씨마운틴리조트 화재와 관련이 있나?’

그것도 의문이다.

심인구회장을 향한 분노의 살의를 품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박인수경정이란 저 인물은 여태 드러나지 않았었다.

‘유족들 명단에도 없었던 자, 피해자가 경찰이면 언론에서 가만뒀을 리가 없는데?’

내천자를 그린 미간으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유한기는 눈썹을 경직했다.

‘한건?’

그놈의 작품일수 있다.

운석소지자인 그놈이, 이종수의 운석으로 그의 분노의지를 품은 그자가 조종하는 일인 거다.

물론 이종수로부터의 원한이 한건에게 넘어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추측이지만, 그걸 쫓아 여기에 와서 저 일을 보고 있는 거다.

그렇다면 한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주변에 한건이 있을 수 있다. 놈을 찾아라.”

빠르고 단호하게 지시를 내린 유한기는 인파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 * *

카페 창을 통해 경찰서 앞마당을 바라보는 최강호는 예감을 붙잡았다.

‘박인수가 한건의 조종을 받는 거야, 운석의 힘으로 저렇게 하는 거야……!’

역시 한건은 이곳으로 왔다.

심인구를 처단하기 위해 박인수란 인물을 이용하고 있는 거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진 건지는 의문이지만 의심의 여지없다.

물론 결과는 확인해 봐야 할 일이지만 틀림없을 거다.

“한건이 현장에 주변이 있다. 찾아라.”

팀원들에게 지시를 내린 최강호는 돌아서 카페 밖으로 달려 나갔다.

* * *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고통 속에서 애원하는 심인구회장을 박인수는 차갑게 노려봤다. 지져버린 관자놀이에 쑤셔 박을 듯이 총구를 밀면서 으르렁댄다.

“개자식아, 네가 지금 받는 고통은 아이들이 받은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너는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죽이고 또 죽여야 할 놈이야.”

맹수의 가라앉은 숨결처럼 낮게 속삭인 박인수는 기자들에게 소리쳤다.

“기자들은 기사를 제대로 써라! 심인구는 죽을죄를 지었기에 죽는 거다! 그렇다! 나 박인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심인구를 처단할 것이다! 이 자는 부패한 사업가다! 더럽게 번 돈으로 더러운 놈들에게 돈을 처발라 더 큰 돈을 벌어들이는 악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아이들을 죽였다!”

기자들 중 한 명이 용기를 내 물음을 던졌다.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렸는데, 사법부의 결정을 무시한다는 말입니까?”

박인수는 기자에게 총구를 바로 겨눴다.

워어 하는 소리로 기자들은 썰물처럼 물러났고, 질문 던진 기자 하나만 경직해 서 있었다.

그 순간 경찰서장이 소리친다.

투항하지 않으면 사살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박과장! 더 이상은 보고 있지 않겠다! 총 버려!”

“죽여!”

즉각 반응하며 소리친 박인수는 다시 심인구의 머리에 총을 대고 외친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심인구! 이 악마를 죽이고 죽을 거다!”

경찰서장도 바로 소리쳤다.

“박인수 이 미친 새끼야! 총을 버리고 물러서라! 마지막 경고다!”

소총을 겨눈 경찰들의 포위 속에서 박인수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죽여! 죽이라고!”

웃음 속에 소리친 박인수는 심인구를 확 밀었다. 동시에 권총을 발사했다.

총성이 커다랗게 터지는 가운데 심인구의 눈알이 터졌다.

그렇게 터져 나온 핏물은 가슴에서도 뿜어졌다.

총탄이 찢은 심장의 비명이다.

“이!”

경찰서장이 반사적으로 발포 명령을 내리려는 그 순간 박인수는 제 머리에 총을 발사했다.

* * *

타앙, 하늘을 울리며 퍼져나간 총소리 속에서 한건은 숨을 멈췄다.

‘박인수 경정……!’

저 남자는 심인구회장을 처단했다. 자신이 선포한 대로 했다.

저 사람이 왜 저랬는지 모르겠지만, 운석의 작용에 의한 결과란 걸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방식과 저 결과를 모르겠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결국 자살을……’

심인구회장의 처단이 목적이라면 경찰이니 은밀하게 할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이렇게 했다. 목숨을 끊었다.

사살 될 수 있었던 상황, 이런 한계 상황을 연출했다.

그렇다, 이건 처음부터 계획한 시나리오인 거다.

‘왜?’

원천의 의문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한 것인지를 모르겠다.

박인수는 스스로를 포기했다.

그렇다면 운석이 그를 포기한 것인가?

그렇게 봐야 한다. 한건 자신이 대면한 운석소지자들의 마지막 말과 행동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다른 적합자를 찾기 위해서란 건데?’

의문을 곱씹으며 생각하던 한건은 그들을 봤다.

청록원, 그리고 현중이다.

놈들이 인파속을 뒤지고 있다. 한건 자신을 찾으려는 게 분명하다.

‘찾아봐라.’

차가운 숨을 내쉬며 한건은 다른 사람들처럼 놀란 얼굴로 서성거렸다. 손에는 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처럼 했다. 놈들은 주변을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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