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7화 (167/200)

[외전] 종말전야. 17. 괴이(怪異).

17. 괴이(怪異).

“하아.”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윤지희는 태블릿을 응시했다. 한건이 도주한 이동경로를 추정할 유일한 단서, cctv의 먹통은 녹양역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찾을 수 없다. 현재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통행자를 찾아 추적이다.

‘자전거 도로를 이동한……’

중랑천 자전거도로를 타고 남으로 북으로 달리는 라이딩 족은 무수히 많다. 북쪽으로는 소요산에까지 이르고 반대로는 한강하구에까지 달릴 수 있다.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은 자전거를 달리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새벽이라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숫자도 문제지만 영상의 해상도는 더욱 문제다. 싸구려 장비를 사용해서 화질의 구리기가 혀를 차게 한다. 이게 다 중간에서 착복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이런 짓들은 바뀌지를 않고 있다.

‘한건, 그냥 도주하진 않을 텐데……’

영상을 노려보며 윤지희는 생각하고 생각했다.

오피스텔을 벗어난 한건이 원래의 복장으로 이동하는 바보가 아닐 거라는 생각, 그리고 그의 돈이다.

살던 집에서 돈을 찾지 못했다.

4억, 그것을 가지고 나간 거다.

‘이응삼과 송미진이 살해된 현장에 남은 6억은……’

그걸 가지고 갈 상황은 아니었지만 4억은 처음부터 가지고 나섰다.

삼화파이낸스에서 탈취한 돈.

이응삼에게 준 6억을 제외한 4억은 본래 자신의 돈이라고 여기는 거다.

전장에서 목숨을 건 대가로 받은 돈인 거다.

‘그 돈을 지니고 이동한다면……’

집에서 나갈 때 포착된 모습은 배낭을 멘 모습이었다. 군용전술배낭이다. 그런 걸 지닌 인물을 찾으면 되는 거다. 그런데 포착이 안 되고 있다.

‘배낭을 눈에 안 띄게 할 방법은……’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던 윤지희는 조수석의 팀원이 돌아보는 걸 인지했다. 자신처럼 확보한 중랑천자전거도로 영상을 확인하던 답이 나온다.

“한건으로 의심되는 인물을 찾았습니다.”

눈을 크게 뜨며 반응한 윤지희는 팀원의 태블릿을 넘겨받았다.

흐릿한 영상 속의 남자는 네이비컬러의 우비 같은 걸 걸쳤다. 그런데 등이 불룩하다. 배낭 같은 걸 안에 멘 게 확실한 모습이다. 한건으로 의심된다.

“노원 쪽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이후의 이동경로 파악 중입니다.”

팀원과 눈을 맞춘 윤지희는 뜨거운 숨으로 지시를 내렸다.

“노원으로 이동해.”

정차해 있던 차가 다시 숨을 토하며 움직일 때였다. 폰에 메시지가 왔다.

‘응?’

그룹 전략기획실에서 온 메시지다. 그런데 내용이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양지리 한성병원?’

윤지희는 태블릿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해당 사건 영상이 실시간으로 나온다.

-보이는 것과 같이 한성병원은 전소상태로 불타고 있습니다.

화재현장을 배경으로 둔 기자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거점병원 중 한곳인 이곳 남양주 양지리의 한성병원은 의료혜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주민들에게 사랑받던 큰 병원으로서…… 화재로 사망한 환자들과 병원관계자들의 숫자는 무려 서른일곱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내과과장 함인호는 경찰과 격투 끝에……

윤지희는 눈썹을 확 곤두세웠다.

‘총탄을 맞고 도주했다고?’

내과과장 함인호, 화재를 저지른 범인으로 확인된 그가 그렇다는 거다.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다 격투를 벌였고 그 과정에서 총탄을 세발이나 맞았지만 경찰들을 때려눕히고 도주한 거다. 해당경찰들은 현재 위독하다.

-함인호과장이 화재를 저지른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의도된 방화입니다. 병원에 기름통을 들고 들어와 뿌린 그가 소리친 내용이 그렇습니다. 전부 태워죽이겠다고 고함치며……

꿈틀거리던 눈매를 다스린 윤지희는 기획실의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괴이사건. 3팀이 확인 중.]

괴이사건, 괴이사례.

기획실이 정한 운석과 관련한 용어다.

현재 해외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다.

운석으로 인한, 그 관련성의 추적이다.

‘국내에서……’

한건의 사례 외에 운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일어난 거다. 3팀이 붙었으니 함인호란 인물에 대한 모든 걸 털어내겠지만, 현재 드러난 현상으로만 보면 괴이사건이 맞다. 총을 맞고 도주한 비상식이다.

‘한건은 오피스텔에서……!’

피부에 돋는 소름을 밀어내며 윤지희는 한건을 떠올렸다.

그는 현장에 자신의 몸에 박혔던 총탄을 두고 사라졌다.

경찰이 아니라 그룹연구소에서 분석하겠지만, 총탄들이 잘못된 게 아니라 한건의 몸이 잘못된 거다.

‘9층에서 뛰어내리는……!’

운석이 한건을 어떻게 만드는 걸까 란 생각에 윤지희는 다시 소름을 물었다. 하지만 현실에 집중하며 잡념을 밀어냈다. 해야 할 일이 있음이다.

“해킹 팀에 서두르라고 해.”

지시를 던진 윤지희는 차창 밖을 봤다. 저녁으로 스러져 가는 거리가 보인다. 어느새 지나는 길은 노원구의 대형백화점 앞이다. 저곳을 안다.

‘할머니.’

청소원으로 일하던 할머니, 학교가 끝나고 찾아가면 간식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쥐어주시던 할머니, 그 웃음과 따듯한 품이 사무치게 그립다.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는 윤지희의 눈에선 투명한 것이 흘러내렸다.

* * *

‘안 좋아.’

깊게 골을 그리며 좁힌 미간으로 한건은 한성병원 화재사건 영상을 봤다.

내과과장 함인호라는 자가 불을 질러 서른일곱 명이나 사망한 대 참사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핵심은 함인호가 총을 맞고 도주했다는 거다.

‘발포한 경찰들을 위중한 상태로 만들어 버리고……’

격투영상이 짧게 나오고 있다. 흉기를 든 함인호에게 경찰관 셋이 둘러싸고 소리치는 장면, 함인호가 맹수처럼 공격하는 광경, 공격당한 경관이 총을 쐈지만 끄떡없는 함인호, 그렇게 경찰들을 해치고 도주했다.

‘비정상적인 사건.’

사건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피어오른다. 함인호라는 인물이 만든 엄청난 대참사, 이건 한건 자신에게 일어난 일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총을 맞고 아무렇지도 않은 결과다.

‘양지리면 지척인데……’

오남리와 양지리는 붙어 있다. 숲이 우거졌고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라 보이지 않지만 산 아래로 내려가면 연기가 보일 거다. 함인호가 도주했다는 데 어디로 간 건지 모르지만 이 근방이다. 여파가 생길 수 있다.

‘이 지역을 수색한다든지 하면……’

천마산은 크고 골이 깊으니 도주하기엔 제격이다. 그래서 선택하지 않을 곳이기도 하겠지만, 경찰로서는 어디든 뒤지려고 할 것이다. 힘들게 찾은 안식처가 위험하다. 하루 이틀 있을 곳이지만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지금 이동해야……’

결심을 이사이에 물던 한건은 눈썹을 확 곤두세웠다.

귀를 파고드는 미약한 소리, 분명히 숲에서 나는 자연적인 소리가 아니다.

전장에서 체득한 생존본능이 소리치고 있다.

위험한 것이 접근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나뭇가지 밟는 소리였어.’

확신을 삼키며 한건은 천천히 일어섰다. 폐건물 입구를 응시하면서 소리 없이 움직였다. 벽에 붙어 숨을 멈추고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그런데 확실히 누군가 접근하고 있다. 조심하고 있지만 대담하게 다가온다.

‘혼자.’

다가오는 자가 한사람이란 것을 한건은 확인했다.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가 그렇다.

거칠고 가파른 숨, 그걸 제어하는 호흡이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라 더 있다.

포악하고 흉악한 느낌,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다.

‘누구냐.’

전신에 전투를 향한 긴장을 불어넣으며 한건은 기다렸다. 다가오는 자가 폐건물의 입구로 들어서기를. 그런데 입구 바로 앞에서 멈췄다. 뭘 살피는 건지 아무 움직임도 없이 있다. 하지만 다시 걸음을 내 디딘다.

그림자가 들어서는 순간 한건은 깨달았다.

자신의 존재를 파악하고 공격한다는 거다.

옆으로 몸을 돌리면서 은빛 흉기를 휘두른다. 정글도 만한 쿠크리다.

이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의 의문은 이 순간 품을 것이 아니다.

목을 치러 들어오는 칼날을 피해 한건은 자세를 낮추며 튀어나갔다.

용수철처럼 튕겨나가는 몸의 힘을 모아 왼손스트레이트를 뻗었다.

강력한 감각과 쾌감을 느끼며 백스핀블로우의 오른 손을 연속으로 후려쳤다.

쿠크리를 휘두른 침입자는 쓰러져 굴렀다. 바닥에 피를 뿌리면서다. 안면이 박살났다. 왼손 오른손 연속 강타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현재 한건 자신의 육체능력은 이전과 다르다. 그 힘을 받았으니 죽을 지도 모른다.

‘날 먼저 죽이려한 놈!’

상대한 대한 강렬한 적개심과 살심으로 한건은 뜨겁게 숨을 뱉어냈다.

그런데 상대의 변화가 눈을 치뜨게 한다.

안면이 박살나 쓰러진 자가 일어선다.

오뚜기가 일어서듯 벌떡 일어나는 데 안면이 복구되고 있다.

‘뭐!’

경악한 숨을 멈춘 한건은 깨달았다.

상대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거다. 정확하게는 한건 자신과 같다는 거다.

부서진 육체가 삽시간에 원래대로 돌아오는 저 모습은 한건 자신이 총탄을 맞고 살아난 것과 같다.

‘운석!’

이 순간 그렇다는 판단이 든다.

저 남자는 운석의 소지자가 분명하다.

이건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숨결로도 알겠다.

“이리로 오고 싶더라니까……”

중얼거림을 흘려낸 남자는 사이한 미소를 입가에 피워냈다. 암적색으로 느껴지는 눈동자는 잔인하게 번득인다. 저 얼굴이 누군지 한건은 알았다.

“함인호……!”

그다, 한성병원에 화재를 내 서른일곱 명을 죽게 한 자다. 출동한 경찰관들의 총격을 받았지만 해치고 도주한 자다. 저 얼굴이 뉴스에 나왔었다.

“벌써 유명해졌나? 그래, 내가 함인호다.”

쿠크리를 가볍게 흔들며 다시 걸음을 내는 자, 함인호를 한건은 무섭게 노려봤다. 그 눈길에 두려움을 느낀 건 아니지만, 함인호는 멈춰 섰다.

“너는 몇이나 죽였냐?”

잔인한 미소를 피워내며 묻는 함인호, 저 눈동자가 정상이 아니란 걸 한건은 확실히 깨달았다. 마치 광견병에 걸린, 그런 느낌의 눈빛이다.

“왜 그래? 너는 다른 것 같아?”

섬뜩한 비웃음을 풀어내며 함인호는 목소릴 이어냈다.

“너도 운석을 가졌지? 그래, 나도 그걸 가졌다. 딱 보면 서로 알잖아?”

가볍게 돌리던 쿠크리를 어깨에 척 올린 함인호는 갑자기 눈을 가늘게 떴다.

“이리로 운석이 끌어당겼어. 너하고 만나기 위해서 그런 거야. 왜 그랬을까? 서로 보니까 알겠지? 죽이고 차지하라는 거야. 너도 날 죽이고 싶지?”

한건은 어깨를 움찔했다. 함인호의 말처럼 속에서 살의가 들끓고 있다. 이렇게 마주서니 참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뭐? 운석을 차지하라고?

‘이리로, 내게로 운석이 오게 했다고?’

이해하기 힘든 말, 이해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결과가 그렇다.

하필이면 한건 자신이 이곳으로 왔고, 함인호도 이곳으로 도주해 왔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공교롭다고 할 우연, 무엇보다 운석의 소지자다.

“나 말고 운석을 가진 자가 더 있을 거라고 확신했지.”

다시 이어지는 함인호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건은 계속 어깨를 움찔거렸다.

“처음엔 바라는 것이 이뤄지도록 해주다가 나중엔 살인을 하게 만드는 운석, 난 이걸 자살한 선배의 사물함에서 찾았거든? 일지하고 같이 말이야? 그 선배는 북극 다산가지에서 근무하고 돌아온 사람인데 말이지……”

거기까지 말한 함인호는 핫, 하고 자조의 웃음을 터트렸다.

“주절거려서 뭐하자는 거야? 그지?”

우리가 이렇게 서로 마주선 건 죽이려는 건데, 라는 눈을 함인호는 빛냈다.

“그냥 죽이고 싶어 미치겠더란 말이지…… 코로나인지 지랄인지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들, 싹 다 죽이고 싶었다 이거야, 그래서 죽였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 함인호는 쿠크리를 한건에게 겨눴다.

“둘 중에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거다.”

암적색 눈동자를 강렬하게 빛낸 함인호는 맹수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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