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162화 (162/200)

[외전] 종말전야. 12. 내가 가진 것은.

12. 내가 가진 것은.

창고 앞 어둠 속에 쓰러져 있는 세 명의 팀원들을 바라보며 윤지희는 식어버린 숨을 삼켰다. 이로서 전체 사상자는 일곱이다. 한건을 추적해온 놈들과의 총격전으로 넷이 사망했고, 여기서 한건에게 셋이 당했다.

‘한건, 당신은……!’

입술을 아프도록 물었던 윤지희는 큰 숨을 내쉬며 냉정을 붙잡았다.

“청담흥신소로 밝혀졌습니다.”

곁으로 다가와 보고하는 팀원에게 시선을 돌린 윤지희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기획실에서 알아낸 바로는 한건을 노린 놈들의 배후가 분명치 않다는 겁니다. 현재 2팀에서 청담흥신소를 수색중이라고 합니다만, 기대할게 없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신분을 밝히는 것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신분증은 가짜고 지문조회도 안됩니다. 내국인이 아니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유려하게 뻗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윤지희는 중얼거렸다.

“내국인이 아닌 자들, 외국인이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다…… 강남한복판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그럴만한 능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한건은 노린 정보다.

청담흥신소라는 이 수상한 놈들에게 누군가 정보를 주고 일을 시켰다.

먼저 일을 시킨 놈이 틀어졌다는 걸 인지하자마자 바로다.

현중그룹의 동태도 감시하고 있었음이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국 사람처럼 보이는 놈들, 이런 놈들을 부릴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진 상대다. 청담흥신소라는 낯짝으로 활동하던 이놈들은 오늘 밤 처리한 여섯 명이 전부일지 모르지만 비슷한 놈들은 더 있을 거다.

지독한 놈들이었다. 한건이 처리한 둘을 빼고 넷을 잡는데 넷이 죽었다.

‘중국 쪽이 거의 확실한데……’

이런 놈들이 저희 힘으로 국내로 들어와 거점을 마련하고 활동한다는 건 무리가 있다. 그렇게 되도록 도움을 받은 거다. 아니 애초에 이런 식으로 활용하기 위해 키운 놈들인지도 모른다. 그게 누구냐가 문제다.

‘중국정부? 제일그룹? 청록원?’

다 가능하다.

어떠하든 이젠 분명해졌다. 운석을 노리는 강적이 있다는 것, 한건은 예상보다 강하고 잡기 어렵겠다는 것, 앞으로 더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다.

한건 때문이 아니라 이젠 모든 곳에서 움직일 터다.

‘북극의 내막을 아는 모든 곳.’

국가이든 조직이든 전쟁이 시작됐다. 한건과 같은 사례가 분명히 더 있다. 택배로 받았든 현지에서 흘러나갔든 분명히 있다. 무엇보다 북극에서는 정확하게 어떤 일이 생긴 건지 아직도 모른다. 왜 다 사라진 건지.

‘운석은 전부 사라졌어.’

피바다의 흔적을 남긴 사람만이 아니라 그것들도 없어졌다.

누군가 가지고 간 건지 어떻게 된 건지 모른다.

사라진 경위와 경로를 알아내고 찾아야 하는 거다.

그 일을 시작한 거다. 각 나라에서 다 움직이고 있다.

“후.”

답답한 가슴을 털어내듯 숨을 크게 내쉰 윤지희는 어둠저편을 응시했다. 한건이 팀원 셋을 쓰러뜨리고 도주한 저편, 왜 그런지 출렁이는 것 같다.

‘어느 곳에 숨든 찾아내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이지만……’

cctv천지인 세상이니 그렇다. 그런데 한건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에겐 특별하고 괴이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정확하게 뭔지도 모를 것, 그것의 힘이 한건의 도주를 도울 것이란 예감, 아니 확신이 든다.

‘운석, 대체 뭐냐……?’

예쁘다고 남자들이 다시 돌아볼 얼굴을 윤지희는 찡그렸다. 정말 생각할수록 황당하고 신비해서다. 아니 괴이하다. 북극의 만년빙이 녹아 드러난 운석, 그것을 가진 사람은 원하는 것이 이뤄지는 행운을 누린다.

‘시작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변질되는 거다.

소지자는 점점 더 폭력적인 의지를 품게 되고 그것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미워하는 상대를 정해 운석의 힘을 사용하는 거다.

그 과정이 해동기지 경비대장의 보고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한건의 사례로 다시 확인한……’

pc에 기록한 한건의 의지는 범죄자를 향한 것이었다. 처음은 집 앞의 천변산책로에서 일어난 사건, 전처와 아들을 살해하고 경찰관들과 대치한 살인자 처리였다. 경관 여섯이 동시에 발포한 사건, 한건이 한 거다.

그다음엔 은혜아파트다. 최근 들어 골칫거리로 부각돼 있던 곳, 막말과 폭력적인 선동으로 재건축조합에서도 배척받은 인물 유인건 대표와 그 세력을 자멸케 했다. 그다음이 연쇄살인마 조영철, 옥중에서 자살케 했다.

“가시죠.”

귀를 파고든 팀원의 목소리에 윤지희는 흠칫하며 상념을 털어냈다.

정말로 가야 한다는 팀원의 눈동자를 보고 현실을 삼켰다.

자정이 넘은 시간, 이곳에서 유혈극이 벌어진 건 감춰질 테지만, 피흘림은 이제 시작이다.

“가자.”

명령하며 윤지희는 차를 향해 몸을 돌렸다.

* * *

이젠 정말로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어둠을 헤치고 미친 듯이 달린 결과다. 얼마나 거리를 벌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도 뒤쫓아 오는 기색은 없다. 하지만 안심할 순 없다. 어느 쪽이 이겼든 반드시 쫓아올 거다.

‘서로 총질을 해댔으니 사상자가 꽤 나왔을 텐데.’

결과가 어떤지 모르겠다.

고속도로에서 퍼져 나온 자동차들의 불빛이 배경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현중그룹 행동팀은 최소 열 명이 넘는 것 같았다.

그중 셋이 한건 자신을 쫓아왔고 나머지가 그놈들을 공격했다.

‘다 뒈졌으면 좋겠는데.’

막 솟구친 마음속의 생각에 한건은 흠칫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헉헉거리는 몸을 가눌 생각도 못하고 눈썹만 꿈틀거렸다.

지금 한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은 살상을 해 본 군인이었다. 그러나 그건 전장이었다.

‘또 이러네……!’

잔혹한 생각과 마음, 이렇게 불시로 튀어 오른다. 아주 강렬하다.

전에 없던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살아오는 동안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불구가 된 절망도 털어냈고 친구 이응삼에게 돈을 날린 것도 그랬다.

‘운석 때문인 거야.’

확신을 숨과 삼키며 한건은 고개를 들었다.

차가운 가을밤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며 속에 것을 밀어냈다.

한건 자신을 잠식하는 것 같은 무엇이다.

그 근원이 운석이라는 걸 알기에 토해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라면에 녹아 버린……’

새삼 운석을 떠올린 한건은 정체를 더듬었다. 이것이 대체 뭐길래 이런 일이 생긴 건지다. 하지만 역시 알 수 없다. 이건 그냥 허황된 일이다.

‘우선은 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게 먼저야.’

주변을 빠르게 살핀 한건은 다시 움직였다. 정말로 넓은 농지들이 펼쳐져 있고 농가들이 군데군데 있다. 나아가는 저편으로는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짐작이 맞다면 여긴 고양시고 저 불빛은 고양동이 분명하다.

‘걸어서는 힘들고 이동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한건은 암담함을 삼켰다.

차량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지만 난감하다.

어디선가 자동차를 훔쳐야 하는 상황, 그런데 그건 바로 종적이 드러난다.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지금은 자정이 넘어 버스도 없다.

‘운석의 힘으로 cctv에 포착되지 않게……’

삼화파이낸스를 털고 나올 때 처럼이다. 지금 한건 자신이 움직이는 이 근방의 cctv들이 원인 모를 먹통이 되게 하면 문제는 사라진다. 그런데 될지 안 될지 모른다. 망각을 녹음했던 게 안 된 것처럼 안 될 수 있다.

‘운석이 제 의지로 선택한다면.’

처음은 분명히 됐다. 삼화파이낸스를 손대고 난후 경찰이 움직이지 않은 걸로 봐선 확실하다. 현중그룹이 거기 놈들을 난도질해서 사건은 커졌다.

‘당연히 사무실내 영상과 주변영상을 토대로 용의자 색출에 나섰을 텐데 나라는 인물을 특정해내고 찾아오지 않았어. 주변 영상이 없다는 방증.’

한건 자신이 살인을 한 것은 아니기에 최악의 경우도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 대신 온건 현중그룹이었다.

이동 중에 버린 옷과 신발까지 가지고 왔다.

그들은 한건 자신도 모르게 처음부터 감시하던 자들이었다.

‘현중그룹……!’

주저 없이 한건 자신을 죽이려한 그들의 행동, 결정을 행각하며 한건은 분노를 삼켰다.

그런데 분노가 확 커진다. 참을 수 없도록 호흡이 거칠어진다.

눈앞에 누군가 있다면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 정말 참기 힘들다.

‘이……!’

두 손으로 머릴 움켜잡은 한건은 겨우 분노를 밀어냈다. 뜨겁고 거칠게 나오는 숨을 다스렸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몸의 열기를 밀어냈다.

“후우……”

길고 깊은 숨으로 다시 냉정을 찾은 한건은 중얼거렸다.

“나한테 있는 건 뭐냐……”

바람결에 중얼거림을 흘려보낸 한건은 걸음을 내려다 단호하게 말했다.

“네가 뭐든 너한테 먹히진 않는다.”

결연한 눈빛으로 한건은 다시 움직였다. 속보에서 구보로 바꾸며 농로를 이동하다 차 하나를 발견했다. 구형그랜져다. 농가 앞 공터에 있다.

‘저걸……’

구형이라 문을 따기도 시동을 걸기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저걸 훔치고 나면 이동경로를 추적당한다.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빨리 벗어나야 한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해보는 수밖에.’

차를 향해 다가가며 한건은 폰을 잡았다. 하지만 전원을 켤 수 없기에 다시 집어넣었다. 차를 바라보며 가는 동안 생각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낸 결론은 수첩과 볼펜이다. 배낭 헤드에서 꺼내 원하는 의지를 적었다.

‘차문이 열리고 시동이 걸린다. 고양시를 벗어나는 동안 교통카메라들이 먹통이 된다.’

수첩과 불펜을 포켓에 넣고 한건은 차문을 잡아 당겼다.

덜컥 하고 운전석 문이 열렸다. 빙고를 속으로 외치며 뒷자리에 배낭을 던졌다.

운전석에 앉자마자 연료게이지를 봤다. 연료는 다행히 충분하지만 키가 없다.

‘시동은……’

키박스에 손을 대는 순간 트르릉하고 차가 깨어났다.

그 순간 한건은 분명히 봤다.

손끝에서 무지개빛이 번득였다. 차문을 열 때도 그랬다.

‘오로라 같은……!’

그렇다는 걸 한건은 분명히 인지했다.

그냥 무지개빛이 아니라 극광 같은 빛이다.

이걸 처음 본 게 아니다.

이빛은 분명히 운석과 관련이 있다.

‘가자!’

깨달음과 의문은 뒤로 밀어 두고 한건은 차를 움직였다.

* * *

고양동의 불빛을 바라보며 윤지희는 열패감을 씹었다. 주변으로 농촌을 두른 이 작은 도시엔 한건의 흔적이 없다. 관제카메라들을 뒤졌지만 한건이 포착된 게 없다. 역시 운석의 괴이하고 신비한 힘이 작용한 거다.

‘삼화파이낸스를 치고 나와 이동할 때처럼.’

한건과 이응삼이 탄 차가 교통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응삼의 차가 이동하는 도로마다 카메라가 먹통이 됐다. 과전류가 흘러 그렇게 됐다는 결론인데, 그건 분명히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운석이 스스로의 의지로 그렇게 했거나 한건이 이용했거나.’

한건이 그런 식으로 이동한다면 잡기 힘들다, 종적을 잡을 방법이 없다.

그런데 그렇게 한 방법이 의문이다.

한건이 pc에 남긴 흔적을 보면 기록해야 하는 걸로 보인다. 아니라면 그런 문장을 남길 이유가 없다.

‘북극기지의 일도 그 부분은 경비대장이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어.’

운석의 힘이 소지자의 의지로서 발현되고 이뤄지는 결과.

그 과정에 절차가 있는 거다.

한건이 pc에 기록한 것처럼이다.

삼화파이낸스를 치러갈 땐 폰에 한 걸로 판단된다.

그런데 지금은 폰을 못 켠다. 그렇다면?

‘수첩 같은 걸로……’

짐작을 삼키던 윤지희는 다른 의문을 잡았다. 삼화파이낸스에 있던 어깨들이 설사와 복통으로 구르던 결과다. 그것도 한건이 기록해서인가?

‘그 순간에? 아니 그건 아닐 거고, 들어가기 직전에?’

미간에 깊은 골을 그리고 생각하던 윤지희는 팀원의 보고를 받았다.

“차량도난 신고가 있습니다. 한건이 도주하던 방향과 일치합니다. 해당 차량을 추적중입니다만, 현재까지 이동경로가 전혀 드러나질 않습니다.”

“도로 카메라들이 먹통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똑같네.”

눈썹을 세우고 고양동의 어둠을 노려보던 윤지희는 결론을 내렸다.

“이응삼을 확보한다.”

윤지희는 차에 올랐고 현중그룹 행동1팀은 의정부를 향해 차를 달렸다.

* * *

녹양역 도로변에 차를 세운 한건은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2시다.

‘응삼이한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초조와 긴장을 밀어내며 한건은 차에서 내렸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 없이 역으로 달려갔다.

공중전화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친구 이응삼에게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바라면서, 모르는 번호지만 받기를 바라면서.

‘현증그룹 놈들, 삼화파이낸스 일을 알고 있으니까……!’

한건 자신을 잡기 위해 이응삼을 노릴 수 있다고 뒤늦게 판단했다.

‘어서 받아!’

신호가 열 번이나 울리는 데도 이응삼은 안 받고 있다. 그래서 불안이 커진다.

‘응삼아!’

마음속으로 친구의 이름을 소리치던 한건은 흠칫했다.

-여보세요, 한건씨?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얼음물처럼 등골을 옥죈다. 한건은 숨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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