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50. 가을이 온다. {완결}
150. 가을이 온다.
-괴변사건, 괴이 사건으로 명명되어진 현상들에 대한 정보를 CIA가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은 새로운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CIA는 해당 내용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한, 아니 처음부터 배경을 알고 대응해온……
미간에 깊은 내천자를 그린 채 뉴스를 보던 한경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속의 일들,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해야만 살아남는 혹독한 경영환경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뭔지 안다.
‘채널링 전쟁.’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 그 전쟁 안에 깊숙이 발을 디뎠다.
정부는 모르쇠고 국정원은 고개를 젓고 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 총을 쏘고 있다.
‘귀신.’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부른 한경수는 진저리 치듯 소름을 털었다.
부친 한대건회장과 형님 한용수, 배다른 형제 한진수를 살해한 존재다.
그자는 끝내 죽었다.
공식적으론 그렇다.
그자가 죽는 광경을 똑똑히 봤다.
‘살아 있어.’
진실은 그것이다.
귀신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이다.
그렇다는 어떠한 증거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확신한다.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벌어졌던 사건들, 대림동과 판교, 보광동과 이태원사건들은 분명 귀신의 작품이다.
‘그자, 미국채널러들을 해치운 남자가 귀신이야.’
새삼 확신을 삼키며 한경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지금의 현실을 절감했다. 형님 한용수가 키워 올린 채널링, 그것은 이제 전쟁이 됐다.
이미 시작했던 타국들과의 전쟁, 장막 뒤 수면아래의 무서운 전쟁이다.
“아버지.”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반응 하면 눈을 뜬 한경수는 돌아봤다. 서재로 들어오는 아들 한유건, 밝은 미소를 입가에 물고 다가와 뭔가를 내민다.
“이번 모의고사 성적표예요.”
멋쩍은 미소로 뒷머리를 긁는 아들놈, 자애가득한 눈으로 그 모습을 보던 문득 아들의 관자놀이를 응시했다. 조금 불룩한 그곳에서 얼른 시선을 떼고 성적표를 봤다. 전국석차가 최상위다. 아들은 갈수록 더 잘한다.
“잘했구나, 정말 자랑스럽다.”
진심으로 기뻐하며 한경수는 아들 한유건을 안았다. 등을 토닥이며 뺨에 닿는 아들의 관자놀이 부분 감각을 무시했다. 아들은 소원을 말한다.
“고3되면 차 사주는 거 잊지 않으셨죠?”
“그럼, 운전면허만 따면 바로 사준다. 이렇게 성적표로 압박하는데 아빠가 어떻게 오리발 내밀겠냐?”
“헤헤, 감사합니다. 가서 공부할게요.”
다시 한 번 아들을 안았다가 놓아준 한경수는 서재에서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기억이 떠올라 겹쳐진다. 처음 저 아이가 발달장애라는 걸 알았을 때의 기억,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다.
‘형이 아니었으면……’
형님 한용수가 아들 한유건을 지금 저 모습으로 만들어줬다.
하나뿐인 조카를 이렇게 놔둘 수는 없다면서,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안 되는 현실을 바꿨다.
아들의 머릿속에 채널링증폭장치, 심안을 심어 넣은 거다.
‘심안이란 걸 나중에야 알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 명석해지고 있어.’
아들 한유건은 그런 상태다.
모의고사 전국 일등 정도가 아니라 더 엄청난 결과를 만들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게 심안으로 인해서라는 걸 생각하면 두렵고 꺼려진다.
하지만 아들의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잊게 된다.
‘다른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닐지 철저하게 지켜봐야 해.’
그래야 한다.
어떠하든 아들은 정상은 아닌 거다. 저 모습을 지켜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들만은 보호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초래한 각종재해들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현실입니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고 영구동토층이 해빙 돼 드러나게 된 신종 바이러스로 인한 새로운 질환들이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힘을 얻는 가운데……
등 뒤에서 TV가 뉴스를 흘려내고 있지만 한경수는 듣지 못하고 정원만 내다봤다.
-괴이사건, 괴변사건으로 명명되어진 사건들도 그러한 배경으로 추정……
한경수가 내다보는 서재 밖 정원엔 가을이 들이치고 있었다.
* * *
천국의 동산, 무지개가 걸린 것처럼 입구에 반원형으로 자리한 간판을 이백진은 흡족하게 바라봤다. 정말로 천국이 따로 없게 꾸민 동산이 싱그러운 숨결을 풀어내고 있다. 지독했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다.
‘형님, 그냥 계속 이 상태로 갑시다.’
교주였던 형님 이백희는 죽었다.
이곳을 벗어났던 음혜군이란 놈이 찾아와 죽였다.
그렇다는 걸 알고 그놈을 찾으려 했지만 포기했다.
그놈을 부산지역최대폭력조직인 오성파가 품은 것도 그렇지만, 이게 나아서다.
‘형님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 기도중인 걸로, 나는 형님을 대신 하는 걸로.’
천국의 동산은 온전히 이백진 자신의 것이 됐다. 수많은 신도들의 찬양과 추앙, 그들이 바치는 재물의 산에 파묻혀 있다. 이젠 해외로 나간다.
좁아터진 한국 땅에서만 이럴 일이 아니다. 진즉 해외로 나갔어야 한다.
‘만만한 아프리카, 남미, 얼마나 좋아?’
흐뭇한 미소를 피워내던 이백진은 총무장로가 다가오는 걸 알고 몸을 돌렸다. 공들여 꾸민 소나무 숲을 돌아온 총무장로는 진중하게 보고한다.
“기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근엄하게 고개를 끄덕인 이백진은 앞서 걸어갔다.
본관과 별관과 영빈관과 찬양관을 지난 천국의 동산 뒤쪽, 기도관의 출입구로 들어갔다.
거침없는 걸음으로 지하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철문 앞에 집사들이 서 있다.
“여세요.”
정중한 경어지만 단호하고 위압적인 명령, 집사들은 바로 철문을 열었다. 흐린 조명이 들어차 있는 실내, 중앙의 침대에 누군가 결박돼 있다.
“흠, 정말로 그렇군요.”
침대위의 남자, 열일고여덟으로 보이는 청소년 남자, 청년이 버르적거리고 있다. 강력한 가죽벨트로 결박된 손과 발을, 몸통을 움직이려 몸부림친다. 입에선 거품을 흘려내고 있다. 눈동자는 허공을 보는데 붉다.
“음혜군이 보였던 증상과 같습니다.”
곁에서 속삭이듯 말하는 총무장로를 무시하고 이백진은 침대로 다가갔다. 결박된 청년은 격렬하게 꿈틀거린다. 눈동자의 붉은 빛이 강렬해지며.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무심하게 말하며 이백진은 옆으로 손을 내밀었다.
문 앞을 지키던 집사 한명이 그 손에 목검을 넘겨줬다.
검붉은 자국들이 말라붙은, 배어 있는 목검이다.
기도를 드릴 때 사용하는 물건, 이제 기도할 시간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목검을 머리 위로 든 이백진은 침대 위 청년에게 내리쳤다.
뻑하고 오른쪽 어깨를 강타당한 청년은 경련처럼 버르적거리던 움직임을 멈췄다.
온전한 상태였다면 쇄골이 부러진 고통에 입을 쩍 벌렸을 상황이다.
“마귀와 사탄은 물러가고 성령으로 주님의 은총을 받을지어다.”
이백진의 움직임은 빠르고 강해졌다.
쉬지 않고 내려치는 목검은 청년의 전신에 격렬하게 꽂혔다.
그러는 가운데 청년의 눈동자는 피처럼 변해갔다.
그런데 그 변화를 이백진은 몰랐다. 기도하는 다른 자들도 몰랐다.
“주님의 대리자인 내가 명하노니!”
격렬한 외침과 함께 목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이백진, 다시 내리치려던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치떴다. 결박돼 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다.
“어?”
황당한 눈을 한 이백진은 눈앞의 상황을 깨달았다.
청년의 결박이 끊어진 거다. 손과 발, 몸통을 고정했던 두꺼운 가죽벨트가 종이끈처럼 끊겼다.
그렇게 만든 것이 청년이다. 한순간에 몸을 움직이며 일어섰다.
‘뭐야!’
뭔가 잘못됐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이 엄습하는 찰나에 이백진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머리위로 들어 올렸던 목검을 청년의 정수리에 내리쳤다.
턱, 너무나 쉽게 청년은 목검을 손으로 잡았다. 이백진 자신을 바라본다. 그 눈이 피처럼 불다. 끓어오르는 것 같고 폭발하는 것처럼 빛난다.
“뭐해!”
이백진이 소리차자 총무장로와 집사 둘은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를 보고 이백진은 얼어붙었다. 총무장로가 벽으로 날아가 박혔다. 집사 둘은 각기 천정과 바닥에 충돌했다. 박살난 수박처럼 핏덩어리가 됐다.
“허억!”
쉬어지지 않는 숨을 뱉으며 이백진은 뒷걸음질했다. 그런데 청년이 귀신처럼 다가왔다. 잡았다 놓았던 목검을 분지른다. 그 손으로 목을 잡는다.
“컥!”
허공으로 뜬 이백진은 두발을 버둥거리며 몸부림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다. 재활용품 수집차량에 달린 집개 손처럼 목을 잡은 청년의 손은 떨칠 수가 없다. 버둥거리는 발로 몸통을 차지만 강철 벽을 찬 것 같다.
“케에……!”
파랗게 질린 얼굴이 된 이백진은 다시 바닥을 발로 밟았다. 청년이 들어 올렸던 손을 내린 거다. 한순간 괴물같이 변한 존재, 청년이 말했다.
“구해달라고 해 봐라.”
누구에게?
답을 찾은 이백진은 청년의 다른 손이 왼팔을 잡는 걸 느꼈다.
그렇다고 깨달은 순간 팔이 뽑혀나갔다.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오른 팔도 뽑혔다.
패닉 속에 휘청거리다 주저앉는데 머리통이 잡혔다.
부드득.
자신의 목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며 이백진은 몸을 봤다.
볼 수가 없는데 보이는 몸, 머리가 뽑혀 쓰러지는 몸은 고깃덩이 같다.
‘주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불러본 존재를 그리며 이백진은 벽에 부딪쳤다. 산산조각으로 터졌다. 그 최후를 두고 청년은 걸어 나갔다. 천국의 동산으로.
* * *
평화폐차장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 조웅은 적당한 자리에 주차하고 히죽 웃었다. 이영숙을 생각하니 절로 나오는 미소다.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그녀와 남은 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 행복하다.
‘내가 행복이라는 걸 느끼고 살게 될 줄은.’
정말로 1도 몰랐다. 그런데 그러고 있다. 요즘은 정말 새로 태어나 사는 기분이다. 여직원으로 보고 부딪칠 때와는 전혀 다른 존재, 배우자다.
‘철이 네 덕분이다만.’
귀신 장철, 그 친구가 남긴 선물이다.
그런데 그 귀한 친구가 죽었다.
복수의 마지막 대상인 고초희를 죽이고 사살됐다.
그 결과를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건 표면이다.
귀신은 죽지 않았다.
그는 싸우고 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널 막을 것들은 없겠지.’
새삼스러운 감회로 뜨거워진 숨을 뱉어내며 조웅은 차문을 열고 나갔다.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서 사장 황철웅이 나온다. 무심히 손을 든다.
‘늙어 가니까 안하던 짓을 하네.’
피식 웃으며 걸음을 내던 조웅은 발을 멈췄다.
폐차장 사방에서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눈에 봐도 보통인간들이 아닌 자들, 국정원이다.
“이런 씨발!”
조웅은 거친 욕을 터트리며 반응했다.
평화폐차장 주인 황철웅이 자신을 팔아넘긴 것이다.
죽어도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봤는데 잘못된 판단이었다.
“이봐, 흥분하지 말고 들어 봐.”
황철현이 찡그린 얼굴로 말한다. 팔아넘겨 놓고 뭘 들어보란 건가.
‘총이라도 가지고 오는 건데!’
뒤늦은 후회를 삼킨 조웅은 약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았다.
뚫고 나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거리를 좁혀오는 국정원 요원들 중 그럴만한 자는 없다.
하나 같이 매서운 눈에 강철인간 같은 기세를 흘려내는 자들이다.
“조웅씨.”
이름을 부르는 자를 조웅은 반사적으로 응시했다. 오른 팔이 없는 자다.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소개를 하죠. 국정원 그림자 조직 g6의 국장 조중건이라고 합니다. 귀신 장철씨의 부탁으로 찾아왔습니다.”
조웅은 움찍거리던 몸을 경직했다.
‘귀신 장철의 부탁?’
지금 들은 말이 뭔지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분명 장철의 부탁으로 왔다고 했다. 그렇게 알아지는 느낌과 생각들이 경직한 숨을 떨게 한다.
‘철이가?’
눈 밑을 가늘게 떠는 조웅에게 오른팔이 없는 자, 조중건이 다시 말했다.
“조웅씨와 이영숙씨를 사면해 달라는, 모든 범죄혐의를 지우고 정상인이 되게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귀신의 요구조건이었지요.”
이제 확실히 알았다.
귀신 장철은, 친구는 조웅 자신과 이영숙을 위해 저들과 거래한 거다.
어디 있는지도 모를 친구, 장철이 너무 보고 싶다.
“철이는, 귀신은 잘 있는 겁니까?”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조웅은 물었고, 조중건은 고갤 끄덕였다.
“잘 있습니다. 저 파랗고 높은 가을하늘처럼, 누구도 손대지 못할 존재로서요.”
하늘로 시선을 돌린 조웅은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바라봤다. 그 속에 든 친구 장철의 얼굴도 봤다. 그러노라는데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린다.
“새끼.”
눈물 흐르는 얼굴로 작게 한마디를 뱉은 조웅은 하늘을 향해 웃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시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가을하늘도 웃는다.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