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26. 귀신이 죽었다.
126. 귀신이 죽었다.
떨리는 손끝을 제어하지 못한 채 최재우는 커피잔을 다시 잡았다. 일회용 컵을 줄이자고 사용하는 머그잔은 뜨거운 감각을 손에 퍼트린다. 그렇지만 지금 뜨거운지 차가운지 느낄 수가 없게 의식이 흔들린다.
-밤사이 일어난 사건은 우리 사회에 다시 한 번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온누리병원 장례식장에 침투한 귀신 장철이 세경개발의 고초희 대표를 살해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현장은 삼엄한 경호 속에 있었지만 살인을 막진 못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귀신이……
죽었다.
장철이 국정원 요원들에게 사살됐다.
그 광경이 뉴스화면을 타고 흘러나온다.
흐릿하게 물칠한 화면이지만 장철이 총격 속에 쓰러지는 모습은 선연하다.
저렇게 결과는 낸 이들이 국정원이라고 뉴스는 말한다.
“하. 정말로 죽었네.”
홍인구의 허탈한 목소리 뒤로 유지건과 송치호의 목소리도 뒤따른다. 하지만 최재우는 그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 강력반 전체의 술렁거림도, 신명서의 아침이 저 뉴스로 인해 소란스러운 것도 모르겠다.
‘죽었어.’
귀신, 장철, 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을 때 본 처음 그 얼굴, 아니 신읍지구 농협마트 앞 교통사고 현장에서의 비통한 모습이 생생하다.
그가 마침내 복수를 이뤘다. 그리고 죽음을 받았다.
‘선택한 거야.’
귀신 장철이 죽음을 선택한 것임을 확신한다.
고초희라는 마지막 목표까지 해치웠다.
그에겐 남은 것이 없다.
오직 복수만이 살아 숨 쉬는 목적이었다.
이루었으니 다 놓은 거다. 딸과 손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거다.
“그런데 이거 정말 황당하잖아요?”
유지건의 제 폰을 홍인구에게 들이민다.
인상 찌푸린 홍인구도 송치호도 쓴 입맛을 다신다.
이미 봤지만 놀랍고 충격적인 진실, 장례식장 안에서 상황이 발생할 당시의 영상이다.
조문객들이 온라인에 올린 거다.
“고초희도 채널러였다는 게 정말 놀랍다.”
“그러게 말이다, 이년은 그냥 싸이코패스가 아니었던 거야.”
고초희가 염동력을 발휘해 주변사물들을 파괴하며 귀신을 공격하는 광경, 영상은 온라인을 달구고 오프라인을 출렁거리게 하고 있다. 벌써 수많은 가설과 이론이 음모론으로 이어지며 퍼지는 중이다. 진실은 덮인 채.
홍인구과 송치호의 말 뒤로 유지건은 의견을 낸다.
“고초희가 밤의 여신이었다는 걸 밝혀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지건의 폰에선 영상이 계속 흐르고 있다. 고초희가 괴성을 질러 염동력을 발휘하는 모습, 귀신이 그길 파훼하며 싸우는 기가 막힐 영상이다.
“밝히긴 뭘 밝혀? 누가 그걸 한 건데? 네가 할 거냐?”
“맞아, 고초희는 이미 뒈졌고 국정원에서 맡아 수습중인데 우리가 뭘해?”
“아 그래도 이년이 한 짓들은……”
안타까운 얼굴로 유지건은 최재우를 돌아봤다.
시선을 받은 최재우는 고갤 저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의미, 세 형사는 시선을 거뒀다.
안 그래도 최재우의 마음은 심란하다. 유인주의 친구 민수경이 죽어서다.
‘귀신이 복수해 줬어.’
그런 결과임을 최재우는 확신했다.
더욱 확신하는 건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다.
민수경을 유혹한 놈은 분명히 고초희의 부하다. 그년 앞으로 끌고 간 거다.
그년은 민수경을 죽이는 시간을 즐겼다. 그 대가를 받았다.
‘귀신에게 대가리가 뽑히는 죽음.’
참혹하고 무시무시한 그 광경도 장례식장 내부의 사람들이 찍었다. 온라인에 올라간 그 영상들을 정부당국에서 나서 삭제하고 퍼지지 않게 단속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이미 퍼진 것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거다.
‘그놈일 거야.’
귀신에게 권총을 난사하던, 귀신과 부딪쳐 벽을 뚫고 나와 뒈진 놈이다.
온몸이 다져버린 고깃덩이처럼 돼 죽었다.
그러기 직전 영상을 보면 허우대가 훌륭한 놈이다.
민수경이 혹할만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그런 스타일을 좋아했다니까.’
어떻든 이제 고초희는 죽었다. 민수경의 복수도 이뤄졌다.
아내 유인주는 비통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 만족한 눈빛을 보였다.
친구를 살해한 범인을 귀신이 죽인 거다.
귀신에게 고맙다고 할 얼굴이었다.
“지난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너무 허무한 죽음이네요, 그렇죠?”
다시 귀를 파고든 유지건의 목소리, 송치호의 홍인구의 반응이 뒤따른다.
“그러게 말이다. 저렇게 죽을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결국 귀신도 사람인 거지.”
“맞아, 작정하고 쏴대는 기관단총 소나기 속에서 누가 살 수 있겠어? 게다가 귀신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 총탄 세례를 받아들이는 것 같잖아?”
세형사의 한숨 섞인 목소리를 두고 최재우는 일어섰다.
밖으로 나가 하늘을 봤다.
봄이 지나가고 여름을 맞으려는 파란 하늘은 눈부시게 시리다.
* * *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일에도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온누리그룹은 이제 모든 걸 잊고 본래 소임에만 진력할 겁니다. 이걸로 끝입니다.
조중건은 폰을 내렸다.
온누리자동차회장 한경수의 단호한 목소리는 사라졌다.
폰 너머 그의 얼굴이 어떠했을 지 가늠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지만 해 본다.
형 한용수의 죽음을 현실의 냉정함으로 받아들인 얼굴이다.
‘애초에 한용수와는 갈래가 다른 인물.’
한경수는 말했다.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고. 귀신이 죽어버린 결과인데도 그렇게 말했다.
알기 때문이다.
이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아는 거다.
그렇다, 이 판을 만든 이들이 존재한다.
‘귀신이라는 칼이 튀어나와 피를 뿌리는 걸 지켜본.’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떠한 이해득실이 있을지를 보면서 손을 움직인 이들, 그들이 손에 걸고 조종하는 끈에 연결된 인형 중 하나가 자신이다.
‘고종환회장을 제거한 결과.’
과연 그렇게 될지 안 될지를 그들은 지켜봤다.
고종환이 해결할 수 있을지, 못한다면 얼마만한 데미지를 입을지 결과를 기다린 거다.
그런 그들도 놀랐다.
귀신은 고종환에 이어 한용수와 고초희까지 일거에 죽였다.
‘귀신은……’
몸을 돌린 조중건은 유리벽 너머를 응시했다.
해부테이블 위에 누운 귀신 장철, 정말로 죽었다.
전신에 총탄자국이 벌집처럼 나 있다.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라면 내부 폭발이 없던 거다. 총탄들은 그냥 박혀 있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해부를 해야지.’
갑자기 밀려드는 피곤함에 조중건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가슴에 들어찬 기묘한, 설명하기 힘든 감정과 느낌들을 모조리 밀어냈다. 그런데도 왜 그런지 불안한 느낌이 있다. 다 끝났는데 왜 이럴까.
* * *
k-0소총, 아니 기관단총이다.
표기 그대로를 읽어 케이제로가 아닌 케이오라고 부른다.
맞으면 케이오가 돼 황천 간다는 의미다.
내부폭발탄을 발사하는 특수머쉰건이다. 그런데 이것이 귀신에겐 작동하지 않았다.
‘탄에 이상이 있었던 건 아니야.’
미간을 잔뜩 좁힌 좌명균은 가방형태로 된 머쉰건의 파우치를 열었다.
이렇게 들고 다니면 누가 봐도 직장인의 서류가방이나 노트북 가방이다. 하지만 안에는 총이 들었다. 이 총을 팀원들과 발사해 귀신을 잡았다.
‘귀신을 해부하면 답을 알 수 있을까?’
내부폭발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귀신을 해부하려는 진짜 목적은 그가 보인 능력의 가늠이다.
채널러인 그가 어떻게 이단계를 성공한 건지, 그걸 알아낸다면 g6는 성공할 수 있다.
‘온누리의 심안과는 별개로.’
총과 펼쳐놓은 파우치를 응시하던 좌명균은 문득 소름을 털어냈다.
깊은 곳, 붉은 외눈의 존재를 떠올려서다.
그것을 봤다. 하지만 접촉하지 못했다.
그 존재가 좌명균 자신을 하찮게 여겼다. 그건 분명 그런 거였다.
‘맘에 드는 그릇이 아니었던 거지.’
그 경우가 아니면 그릇의 모양이 맘에 안 들었든 지다.
좌명균 자신은 무예자로서 평생을 살아온 자, 그 밑바탕이 부조화를 만든 건지도 모른다.
붉은 외눈의 존재가 원하는 그릇이 뭔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
‘귀신은……’
그가 어떻게 이단계로 들어가 합일을 이룬 건지 모른다.
‘귀신이란 그릇이 어떻게 붉은 외눈의 존재를 담은 건지……’
의문 속에서 좌명균은 귀신 장철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자신과 팀원들의 총격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얼굴, 그의 눈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이제 편히 쉬기를……”
애도를 흘려낸 좌명균은 케이제로를 갈무리 하고 일어섰다. 귀신의 해부를 봐야할 시간이다.
* * *
tv에 눈을 박은 조웅은 석상이 된 것 같다.
숨은 쉬는 건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런데 말을 걸 수도 없다.
친구가 죽었다.
귀신, 그 남자가 죽었다.
그 뉴스만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는 테러범을 잡았다고 떠든다.
-국가질서를 흔들고 온 국민을 불안해 떨게 한 테러범 귀신 장철을 마침내 사살했습니다. 국민여러분은 더 이상 불안해하지 마시고 생업에 전념……
정부대변인의 자랑스러워하는 얼굴, tv속 모습을 보며 이영숙은 침을 삼켰다.
뱉어주고 싶은 욕구를 함께 삼켰다. 그런데 불안이 곤두선다.
귀신이 저렇게 됐으니 이곳이 안전할까 염려된다. 그걸 말할 수도 없다.
“불안 해 하지 마.”
마침내 나온 조웅의 목소리에 이영숙은 흠칫하며 고갤 돌렸다.
여전히 tv에 시선을 박은 얼굴로 조웅은 이어 말한다.
“여길 찾을 단서 같은 건 없어. 귀신은 그렇게 하지 않아.”
그렇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조웅이 폰을 쥐고 있다.
귀신이 사용하던 폰이다.
그는 마지막 일을 하러 가면서 저걸 두고 간 거다.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조웅도 이런 결과가 생길 줄 전혀 몰랐던 거다.
“그래도 여기 있는 건 아니지.”
소파를 밀고 일어선 조웅은 이영숙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짐 싸.”
돌아서는 조웅의 눈동자에 어린 것이 뭔지 이영숙은 봤다.
비통, 슬픔, 외로움.
친구를 잃은 남자의 찢어지는 가슴이다. 형용하기조차 힘든.
* * *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며 황철현은 기묘한 감정을 삼켰다. 이제 시체가 된 존재, 귀신을 보는 지금의 심정은 뭐라고 말하기 어렵게 미묘하다.
‘시원섭섭함.’
아니다,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뭔가?
모르겠다.
‘복수는 이뤘지만, 개구리처럼 해부되는……’
귀신을 바라보며 황철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시작인 거다.
귀신을 해부하기 위해 들어갔다. 수술복으로 전신을 가린 의료인원들이 메스를 잡는다. 곁에 있는 조국장을 바라본다. 국장은 고갤 끄덕여 승낙한다.
‘시작.’
황철현이 마음속으로 스타트를 뱉은 순간 해부가 시작됐다.
메스를 잡은 자가 귀신의 가슴을 갈랐다.
총탄이 박힌 피부와 근육이 갈라졌다.
핀셋으로 총탄을 꺼낸다.
내부폭발이 됐어야 할 총탄, 피만 떨궈 낸다.
핀셋으로 총탄을 잡은 자가 조국장을 향해 들어 보인다.
조국장 옆의 좌명균이 눈에 힘을 주고 본다.
저 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종 무거운 눈이었다. 지금도 그건 여전하다.
“어떻게 생각하나?”
조국장이 묻는다. 황철현 자신에게가 아니라 반대편 좌명균에게다.
“모르겠습니다.”
알기 위해서 지금 해부하는 거 아니냐는 뉘앙스.
“음.”
된 숨소리로 다시 입을 다무는 조국장을 힐긋 봤던 황철현은 수술실 안 카메라를 응시했다. 삼각대를 높게 세워 해부를 촬영 중이다. 귀신은 여태 귀신같이 카메라를 피했는데 라고 생각하니 기묘한 감정이 또 생긴다.
‘결국 죽음 앞에선 다를 게 없는 건가……’
복잡한 감회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던 황철현은 확 날아가 뒹굴었다.
거대한 철벽이 닥쳐와 전신을 친 것 같다.
원인은 등 뒤에서 닥쳐온 불 바람 이다.
한순간 모든 걸 때려 부수는 엄청난 충격, 이건 분명 폭탄폭발이다.
‘뭐!’
유리벽 아래, 콘크리트벽에 부딪쳐 멈춘 황철현은 직감했다.
공격을 받은 거라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적이 폭탄을 터트린 거라고, 내부에 숨어 있던 적일 공산이 크다고, 충격 속에서도 진실의 파편을 움켜잡았다.
“국장님……!”
피투성이 몰골로 황철현은 몸을 일으켰다. 자신처럼 유리벽 아래로 구른 조중건 국장의 처참한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 팔 하박이 떨어져 나갔다.
“크으……!”
고통으로 진저리 치면서도 일어서는 국장, 그가 돌아보는 곳에 좌명균이 있다.
폭발로 사라진 벽, 화염이 뒤덮은 그곳으로 달려 나간다.
적을 쫓아가는 거다. 누군지 모르지만, 이 상황이 어떠한지 모르지만 간다.
때맞춰 스프링클러가 작동한다. 그런데 폭발음이 연속해서 들린다.
g6기지 여기저기, 모든 곳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거다.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적은 내부에 스며들어 있었고 오늘 공격했다.
“뭐, 뭐야?”
조중건 국장의 부릅뜬 눈을 따라 황철현은 뒤를 봤다.
본래 보고 있던 곳.
산산조각 나 사라진 유리벽 안, 해부테이블 위의 귀신이 움직인다. 폭발에 휩쓸리고 파편들에 맞아 쓰러진 수술자들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
“귀신……!”
신음 같은 외마디를 흘려내며 황철현은 부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