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105. 고초희.
105. 고초희.
호텔 로비를 나서는 여자, 고초희를 뒤따라가며 황철현은 숨을 거칠게 들이 내쉬었다.
그럴 일이 없건만 호흡이 거칠어졌다.
저 여자, 고초희 때문이다.
피와 죽음의 현장을 관람하고 돌아서는 저 아가씨는 무섭다.
‘흡혈귀 고종환의 피를 이어받은.’
그래서 라고 하기엔 무섭다는 이 감정의 원인을 명확히 모르겠다. 참혹한 살상의 현장에서 흥미로 눈동자를 반짝이고 소리 없이 웃음을 짓는 존재, 미모의 저 이십대 아가씨는 눈에 보이는 모습이 진짜가 아니다.
‘저를 낳아준 아버지가 살해된 현장에서 웃는……!’
고초희는 그렇다.
귀신이 부친 고종환을 죽였다. 그렇게 된 원인이 고초희 자신에게 있다.
장철의 손녀를 해쳐서 시작된 일, 관련자들은 다 죽었다.
귀신이 하나하나 찾아가 복수했다.
남아 있는 건 고초희 하나다.
‘귀신은 절대 포기 안 해.’
그런데도 웃는다.
저 심리상태가, 정신 상태가 정확히 뭔지 모른다. 위험하단 건 알겠다.
그래서 무섭다. 확연한 두려움이 등골에 피어 조인다.
보통사람과 다른, 짐작하기 어려운, 고초희라는 여자가 호텔을 나간다.
‘취재진들이 있는 곳으로 일부러.’
회전문 앞에서 멈춰선 황철현은 상황을 지켜봤다. 경찰의 통제선 밖에서 취재진들이 반응하며 카메라셔텨를 마구 눌러댄다. 소리쳐 묻는다.
“누구십니까!”
“호텔에 어떻게 출입할 수 있습니까?”
“사건 관계자십니까!”
고초희가 호텔에 택시를 타고 나타났을 때부터 기자들은 망원렌즈로 사진을 찍었다. 경찰의 엄중한 통제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호텔 앞에까지 접근한 상태, 의문의 여자에 대해 질문공세다.
“신분이 어떻게 되는지 밝혀주십시오!”
대기 중인 차에 오르려던 고초희가 멈춰 선다.
마스크를 벗고 취재진을 바라본다.
비탄에 빠진 얼굴로 눈물을 흘린다.
떨리는 목소리로 답한다.
“저는 고초희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살해당하셨어요, 흑.”
오열을 참지 못하는 모습으로 휘청거리는 고초희를 민승환변호사가 부축해 차에 태운다. 민승환은 취재진을 향해 허릴 펴고 서서 뒤를 잇는다.
“세경그룹의 이름으로 발표가 있을 겁니다. 현재 처한 상황과 미래에 관한 입장이 되겠습니다. 지금은 비통을 이해하고 위로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수석에 민승환변호사가 오르자 차는 호텔 앞을 떠나갔다.
취재진은 짧은 웅성거림 끝에 뒤를 쫓아갔다.
고초희, 그녀가 드디어 나타난 거다.
게다가 짐작은 하고 있지만 확인 못하던 호텔 안 상황을 말해줬다.
‘고초희.’
시야에서 사라진 젊은 여자의 영상을 더듬으며 황철현은 거듭 두려움을 삼켰다. 취재진 앞에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연기가 소름을 돋게 했다. 부친 고종환회장의 피살을 알리며 고통과 슬픔에 겨워하는 연기였다.
‘흥미로워 하고 소리 없이 웃던 얼굴을 감추고.’
흡 하며 숨을 멈췄다 내 뱉은 황철현은 이후를 더듬었다. 이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지고 흘러갈 지다. 고초희는 자신을 언론 앞에 보였다.
‘귀신에게 보인 거야.’
귀신은 당연히 반응할 것이다.
이걸 지켜보라는 위에선 또 어떤 지시를 할까.
‘고종환의 부재, 그 공백은……’
또 다른 부분은 그것이다.
민승환 변호사가 취재진에게 한 말 속에 답의 일부가 들어 있긴 하다.
세경의 미래에 대해서, 란 말이다.
당연히 고초희를 말함이다.
고종환의 부재 시에 대비한 플랜이 이미 있었음이다.
‘그걸 고종환이 만들었든 고초희가 만들었든 간에.’
고종환이 생전에 기초를 만들어 뒀던 것에 고초희가 뼈대를 세운 것이라고 추측된다. 세경법무실의 보스인 민승환 변호사를 측근으로 둔 것으로 답이 된다. 고초희는 부친도 모르게 제 영역을 차근차근 만든 거다.
‘짐작일 뿐이지만.’
쓴 맛이 도는 입 안의 침을 삼키며 황철현은 돌아섰다. 이제 보고를 할 시간이다.
* * *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긴 최재우는 허탈한 숨을 내쉬며 호텔을 바라봤다.
광주시 퇴촌면에서 부리나케 차를 달려왔지만 역시 늦고 말았다. 고초희는 돌아갔다. 그녀가 세경개발로 갔는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상태다.
“취재진까지 따돌렸어.”
귀를 파고든 박인수의 목소리, 분노와 허탈이 배어 있다.
최재우 자신과 같은 감정상태인 거다.
꼭 봐야할 드라마의 명장면을 놓친 것 같은 기분, 아니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악녀의 본모습을 놓치고 만 자책이다.
‘악녀.’
심중에 떠오른 그 단어를 최재우는 새삼스럽게 곱씹었다.
고초희, 그녀가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를 알고 있다.
그녀는 밤의 여신, 남규덕을 살해하고 문형철을 죽였으며 이복오빠 부부를 잔혹하게 유린한 살인자다.
‘증거는 하나도 없지만.’
물증, 법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게 정황증거뿐이다. 살인사건 현장에 여자가 있었다는 정황, 정확한 모습도 포착하지 못한 단편적인 영상들뿐이다. 그렇지만 확신한다.
고초희가 범인이다.
“우리나라 기자들도 수완이 대단한데……”
그런데도 고초희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박인수의 허탈한 숨소리.
‘호텔에서 세경개발로 돌아가는 길까진 뻔하니까 뒤를 쫓아간 건데 사라졌다……’
강남중심가에서 서초동까지, 기자들은 맹렬히 추적했다. 그런데 고초희가 타고 있던 차에서 고초희는 안 내렸다. 중간에 선 곳도 없었다 한다.
그러니 귀신이 곡할 노릇, 고초희를 찾아 기자들은 이리저리 뛰고 있다.
“민승환변호사가 고초희의 오른팔인 모양인데, 이거 아주 복잡하면서 재밌는 그림이야. 그렇지? 고초희는 그동안 민승환변호사를 통해 보고 듣고 있었던 걸로 보여. 제 아버지 곁에 이목을 두고 중요 정보를 취한 거지.”
그렇다, 박인수의 추론이 맞을 거다.
애초부터 고초희와 민승환변호사가 밀착한 관계라는 가정 하에서, 고종환회장도 그런 상황을 몰랐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런 점을 본다면 고초희는 역시 평범한 여자가 아니다.
“제 아버지의 왕국을 물려받게 된 건데……”
좁힌 미간으로 박인수는 다시 목소릴 냈다.
“이게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이 안 되네. 세경개발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덩어리가 어마어마한 곳이란 말이지. 고종환의 부재로 그 덩어리들이 꿈틀거릴 텐데 그걸 제어할 수 있을지 우선 궁금하고, 저렇게 전면에 나서면서 귀신에게 인사하는 건 어떤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모르겠고.”
“고초희가 그리던 그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인수는 획 고개를 돌려 최재우는 봤다. 자신의 말끝에 튀어나온 최재우의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고, 이내 의미를 파악한 반응이다.
“그려? 고초희가?”
잔뜩 찌푸린 미간을 꿈틀대는 박인수, 그 눈을 응시했다 호텔로 시선을 돌린 최재우는 말했다.
“고초희와 대면한 적 없지만 어떤 인간인지 짐작이 됩니다.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어떤 유형이든 간에 위험하고 냉혹한 살인자죠. 남규덕과 문형철, 이복오빠 고재춘 부부를 살해한 수법을 보면 명확합니다.”
고초희가 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그 말을 내려다 박인수는 뜨거운 침만 삼켰다. 증거 따위가 없어도 명백하다. 고초희가 저지른 살인들이다.
“이복오빠부부의 부재, 아버지 고종환의 사망, 어쩌면 이게 고초희가 바라고 계획한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친 소리 같지만 그렇습니다.”
박인수는 반박하지 못하고, 아니 공감하는 숨으로 입술을 물었다.
‘제 죽음까지 꾸며낸……’
고초희는 그런 여자다. 연은수라는 다른 여자를 제 인형으로 만들어 귀신에게 당하게 했다. 물론 이것도 증거가 없는 추론이지만, 온라인에서 떠들어댄 뇌피셜들이었지만, 이제 나타난 결과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그것까지 꾸몄어.’
밤의 여신으로, 고초희는 한발 물러선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며 툭툭 던졌다. 진실과 거짓을 양 발에 밟고 서서, 어지럽게 돌아가는 판을 관전하면서, 그러며 즐기고 웃은 거다. 제 아버지의 죽음 앞에선 어떠했을까.
‘웃었을 것 같아……’
왜 그런지 힘겨워진 숨, 뱉어내던 박인수는 폰을 들었다.
‘응?’
국정원 황철현 팀장, 그가 또 전화를 걸어왔다.
“이러다 정들겠습니다.”
전화 받는 박인수를 최재우가 돌아봤다. 박인수는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철수 하려는데 여기서 또 보입니다. 얼굴 한번 보시죠.
박인수와 최재우는 서로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 * *
깊은 곳으로의 걸음은 이제 거침이 없다. 붉은 외눈의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나서인지, 그곳까지 찰나에 도달해 심연의 암흑 속에서 치유 받았다. 호텔에서 격전 중에 입은 부상들, 출혈도 완전히 멎고 아물고 있다.
‘그건 뭐였을까?’
스르르 눈을 떠 현실로 돌아온 장철은 뒤늦은 의문을 더듬었다.
자신과 같은 존재들, 경일우란 놈의 말의 의하면 깊은 곳으로 내려간 접촉자들, 채널러 들이다.
여자 하나 남자 둘, 그들에게 특별한 게 있었다.
‘관자놀이의 돌기 같은 것.’
셋 모두 그런 게 있었다.
밴드로 가려놓아서 처음엔 구분하지 못했다.
아니 그게 뭔지 의식하지 못했다.
목숨을 건 싸움만이 그때의 전부였다.
‘셋 모두 같았어. 그게 우연일 리가 없지.’
오른쪽 관자놀이에 밴드가 공통적으로 붙어 있었다.
돌기 같은걸 덮은 거다.
셋 다 그곳에 사마귀 같은 게 났거나 상처가 생겨서가 아닐 거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런데 그게 뭔지에 대해선 못 물었다.
‘시간여유가 조금 더 있었더라면.’
그랬더라도 그건 놓쳤을 거다. 경일우가 마지막 숨을 내쉴 때까지 그걸 의식 못했기 때문이다. 깊은 곳으로의 침잠 속에서 짚어낸 부분이다.
‘온누리정신연구소.’
그곳은 장철 자신과 같은 존재들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곳이다. 접촉자들은 생산하는 일, 그것이 채널링이다. 추호도 생각지 못한 진실이다.
“뉴스 좀 봐라!”
문을 벌컥 연 조웅의 외침 같은 목소리, 장철은 일어서 거실로 나갔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봤다. 기자가 새경개발 앞에서 말하고 있다.
-고초희씨는 현재 소재파악이 안 되고 있는 상탭니다. R호텔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가 정지하거나 수상한 모습은 없었습니다. 이곳 서초동 세경개발로 곧장 왔습니다. 부친 고종환회장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은……
눈썹을 치뜬 얼굴로 장철은 이어 나오는 영상을 봤다.
고초희가 R호텔 앞에서, 취재진 앞에서 휘청거리는 모습이다.
아버지 고종환회장의 피살이란 현실 앞에서 보이는 딸의 모습이다.
저게 연기임을 알고 있다.
‘고초희……!’
전신을 경직한 가운데 장철은 고초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 * *
바디백에 들어 있는 사체들을 응시하던 한용수는 입술을 벌렸다. 머금었던 숨이 비집고 나온, 뜨거워진 감정을 허공에 흘려내며 물음을 던졌다.
“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나?”
한용수의 시선이 돌아오자 길한수는 눈길을 바닥으로 내렸다.
정말이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동자를 흔들었다.
천미와 백경과 경일우 셋이면 될 줄 알았는데, 결과를 의심치 않았는데, 모두 시체가 됐다.
“아무래도 귀신에 대한 평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핵심을 축약해 뱉은 한용수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고개를 꺾은 길한수를 노려보던 한용수는 다시 시체들로 눈길을 돌렸다. 비교적 온전하지만 잘려나간 머리, 천미의 관자놀이에 붙은 밴드를 벗겼다.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돌기가 보인다. 손으로 잡아 뽑아냈다.
“이걸로는 안 되는 거야.”
천미의 피와 조직들이 붙은 것, 심안을 들어 보이며 한용수는 이어 말했다.
“이 단계를 시작해.”
결론을 뱉은 한용수는 돌아섰다. 심안을 던지면서다. 바닥에 떨어진 그것으로부터 천미의 육체 조직들이 떨어져 나갔다. 뇌를 파고든 전극에 달라붙어 있던, 이젠 죽은 조직이다. 그것에 길한수는 느릿하게 다가갔다.
“이 단계……”
중얼거리는 길한수의 눈에 든 것, 복잡하고 뜨거운 감정과 의지를 최길준은 봤다. 말없이 한용수회장과 길한수의 옆에서 처음부터 봤듯이.
* * *
-생각보다 귀찮긴 하네.
폰을 통해 넘어오는 고초희의 목소리를 들으며 민승환은 긴장과 흥분을 삼켰다. 승용차 뒷좌석에서 트렁크로 넘어간 고초희는 민승환 자신만 차에서 내려 기자들의 이목을 끌 때, 그러고 난후에 차를 벗어났다.
-집에 잠깐 들렀다가 갈 생각이야. 미리 연락 해 둬.
집, 고종환회장이 살던 과천이다. 물론 고초희도 이 모든 일이 있기 전에 살던 곳이다. 거길 들러 가겠다는 곳, 한용수회장을 만나려는 거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짐작이 안 된다. 어루만져지기는 하지만 모르겠다.
“예. 조치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고초희는 밝은 목소리를 던지고 전화를 끊었다. 지금 들은 목소리대로라면 명랑하고 아름다운 아가씨다. 그런데 그런 여자가 아니란 걸 안다.
상대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 놓는 여자다.
악귀 같은, 무시무시한 여자다.
“후.”
가슴에 들어찬 것들을 긴 숨으로 풀어낸 민승환은 폰을 다시 들었다. 이제 한용수회장에게 전화를 걸 때다. 고초희가 무슨 생각을 하든 하는 거다.
번호를 터치하며 민승환은 다시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