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78화 (78/200)

황혼의 살인자. 78. 죽은 자를 위한.

78. 죽은 자를 위한.

한용수는 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장례식 준비가 진행되고 있지만, 그래서 정신이 없는 상황이지만, 오늘 오전에 터진 이 기사는 간단치 않다.

‘겨우 이런 생각을 한 건가?’

흡혈귀영감, 고종환이 전국의 깡패두목들을 불러 모았다. 방배동에서 회동을 가졌다.

이런 배경이야 두말할 것 없이 귀신에의 대응이다.

그런데 정말 무슨 생각을 한 걸까 궁금하다.

조폭들로 귀신을 잡겠다는 건가?

‘노망이 든 건가?’

어처구니가 없다. 최길준이 미국에서 들여온 전문 용병들도 당했다.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가졌고 어떻게 죽었는지 바로 옆에서 보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이건 어이없다. 고회장을 알기에 더 이해불가다.

‘악마 같은 늙은이가 정말로 노망이 난 건 아닐 텐데……’

뭔가 있다.

겨우 조폭들로 귀신을 잡겠다는 건 아닐 거다.

분명히 겉으로 봐선 모를 것이 안에 있다.

조폭들에게 무엇이 있길래 이러는 걸까.

‘수단이 그것밖에 없어서?’

고종환회장에게 귀신을 상대할 다른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일면 수긍이 간다. 중무장한 병력이 경호하는 요새 같은 곳에 있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은 이미 당한 자들과 같은 거다.

‘알면서도 당하는.’

그래서일까? 조폭들로 인의 방벽을 쌓으려는 걸까? 그래놓고 한편으로 미친 듯이 뒷거리를 뒤지겠다는 걸까? 경찰과 검찰의 힘을 이용하면서?

‘아니야, 고회장이라면 그런 정도 말고 뭔가 더 있어야 해.’

미간을 꿈틀거리며 한영수는 기사를 다시 정독했다.

[서울에 모인 전국의 보스들.]

기사제목부터가 위험한 냄새를 확 풍긴다. 내용은 확실히 그렇다.

[방배동 모처에서 회동을 한 전국의 조직보스들은 한사람의 호출에 의해 얼굴을 마주했다. s개발의 k회장이다, 구순 나이의 k회장은 재계는 물론 정관계에 막강한 인맥과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십대의 딸이 귀신 장철에게 공격당했다는 루머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부인해 왔다.]

세경의 고종환이라고 명확히 말 안했지만 한 거나 같다.

[저간의 사정은 언론에서 이미 수차례 다루었고 온라인에선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내용이다, 그렇기에 더는 언급을 하지 않고 현황에 대한 분석을 하고자 한다. k회장이 전국의 조직보스들을 한자리에 모은 배경이다.]

자신도 모르게 된숨을 내쉰 한영수는 뒷내용을 읽었다.

[귀신 장철을 향한 대응이다. 온누리그룹 한대건 회장이 가평 리조트에서 막내아들 한진수와 같이 유명을 달리한 직후의 반응이다. 누구라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귀신의 다음 타깃이 k회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k회장 측에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한, 딸의 복수를 위해 당연한……]

고초희는 정말로 죽은 거야?

머리에 떠오른 의문으로 한용수는 미간을 찡그렸다.

기사에서도 그 부분을 언급하고 있다.

밤의 여신이 출처인 정보, 고초희가 살아 있으며 연은수란 여자와 얽힌 내막이 있다는 거다.

“여기서 뭐해?”

다가오며 못마땅한 얼굴을 하는 중년남자, 온누리자동차회장 한경수의 얼굴을 한용수는 확실히 봤다. 장례식을 준비 중인데 상주가 안 보여서다.

“무슨 일인지 감 잡으려고 애쓰는 얼굴이네.”

꿰뚫어보고 나오는 한경수의 말.

“그래, 흡혈귀영감이 무슨 수작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서 이런다.”

“수작은 무슨 수작, 그 늙은이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 있어? 발악하는 거지.”

“발악?”

“가진 게 그런 거잖아?”

가진 게 그런 거, 암흑가를 호령하고 움직이는 거다.

그렇게 하고 있다. 동생 한경수의 말처럼 그것밖에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그건 어닐 거다.”

확신한다, 고종환이란 인물이 여태 살아남아 저런 위치에 오른 건 그래서가 아니다.

남들과는 다른, 그 존재만이 가진 능력과 의지가 있어서다.

그건 평범한 것도 특별하게 만든다. 그 영감은 뭔가 준비하고 있다.

“생전에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있지.”

막 반응하려던 한경수는 이어 나온 형 한용수의 목소리에 미간 좁혔다.

“아버지가 하신 말씀……”

생각이 난다, 형은 그 말을 한다.

“세경하고는, 고종환하고는 절대로 척을 지지 마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일 그렇게 되면 목숨 걸고 죽여라.”

목숨 걸고, 죽이지 않으면 죽는 다는 생각으로.

‘분명히 그러셨지.’

한경수는 생생히 기억했다. 그 말씀을 할 때면 언제나 목숨을 건 사람 같았던 부친 한대건의 얼굴, 기억속의 눈동자는 각인처럼 뇌리에 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 존재가 흡혈귀영감이다. 우리가 어떻게 당했는지 잘 아는 늙은이야. 그런데 그저 발악? 조폭들로 그러는 거 같으냐?”

“그럼 형 생각은 뭔데?”

그게 뭔지 몰라서 이러고 있지 라는 얼굴이던 한용수는 최실장을 돌아봤다. 다급한 걸음으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온 최길준, 그가 보고한다.

“세경에서 오동철과 오동진의 사체를 내달라고 왔습니다.”

한용수는 눈썹을 곤두세웠고 한경수는 당황한 표정을 만들었다.

맞다, 그들의 시체가 지금 이곳, 온누리병원에 있다.

그걸 달라고 한다는 거다.

“왜?”

한용수의 물음에 최길준은 시선 내리며 대답했다.

“애초에 계획한대로 하겠다는 이야깁니다.”

애초의 계획, 오동철과 오동진을 사고사 같은 걸로 꾸미는 거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인 두 사람을 언제까지 냉동고에 보관할 수는 없으니까.

“왜 지금?”

그렇다, 왜 지금이냐다.

“문형철이 살해당한 걸 숨기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오씨 형제와 문형철을 한데 엮어서 모양을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가령 현진써큐리티가 갈등관계에 있던 조직과의 분쟁으로, 공격을 받아서 죽게 된……”

“그래서 불러 모았군.”

툭 끼어든 한경수가 깨달음의 탄식 같은 숨소리를 이어냈다.

“허이, 조직보스들을 한데 모아서 그런 작당을 한 거야.”

한용수도 이해했다. 그럴듯한 그림이다. 현진써큐리티가 외형상 경비용역회사지만 실체는 폭력조직과 다를 바 없는 거다. 그걸 이용하는 그림이다.

“그건 그렇고……”

한용수는 최길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의문을 냈다.

“고회장이 귀신을 상대하려는 방법이 뭐가 있을 것 같아?”

최길준은 강렬하게 번득이는 한용수의 눈을 보고 헤아렸다.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참고 있는지.

“짐작뿐입니다만……”

“짐작이든 뭐든 말해 봐.”

시선을 내리고 침을 삼킨 최길준의 두 사람의 시선 속에서 입을 열었다.

“조직들이 키우는, 관리하는 살인자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용수는 거칠게 눈썹을 뒤틀었고 한경수는 황망한 눈을 했다.

“그냥 살인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로 지독하고 끔찍한 살인자들이라는 정보였습니다.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결과로 생기는 사건정보를 인지하면서 수긍하게 됐습니다. 대부분 실종으로 처리된 살인사건들입니다.”

“그러니까, 조폭들 간에 죽고 죽이는 사건들이 그렇다? 혹은 대상이 된 피살자가? 그런 일을 하는 특별한 살인자들이 있다? 드러나지 않은?”

한경수가 입을 열자 바로 한용수가 반응했다.

“실종으로 처리됐다는 건 사체도 안 남겼다는 건데?”

그렇게 흉악한 살인자들이 있는 걸, 그런 결과라는 걸 어떻게 아냐는 거다. 또 그런 놈들이 있다고 해도 귀신 장철을 상대하겠냐는 의문이다.

“정확한 걸 아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만, 어떻든 그런 수단인 걸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예, 정말로 치떨리게 흉악한 살인자들이죠. 세상이 변하듯이 살인자들의 양상도 변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놈들이 출현하는 세상입니다. 조직들은 그런 놈들을 품어 두고 있는 겁니다.”

한용수가 반발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 놈들이 있다고 해도 용병들보다 낫다고? 전장에서 살인을 밥먹듯이 하던 놈들보다? 총으로 무장한 전문가들인데도 귀신에게 당했잖아?”

소리 없이 무거운 숨을 내쉰 최길준은 대답했다.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비교로 인한 예측도 쉽지 않습니다. 예, 단순한 비교만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더구나 국내에서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들여올 겁니다. 그런 놈들이 만든 사건들은 정말로 흉악합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표현하기 힘든 것이라는 최길준의 얼굴.

“흡혈귀 영감, 그래봐야 뭐가 다르겠어? 살인자들로 살인자를 잡겠다는 거잖아? 의지는 인정해주지. 아주 난리부르스를 추겠다는 의지, 인정해.”

냉소로 반응하는 한경수, 하지만 한용수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될까?’

고종환의 방법, 가늠이 안 된다.

최길준의 말대로 결과를 보기 전에 예단하기 어렵다.

그런데 안 된다는 마음이 커진다.

귀신은 그렇게 못 잡는 다는 확신이다.

왜냐하면 그는 귀신, 총알을 피하는 놈이기 때문이다.

‘그 영상 속의 그놈은, 그런 놈을 잡을 방법은……’

있다. 한용수 자신에게 있다.

한경수와 최길준이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한영수는 큰 숨을 뱉어냈다.

“내줘.”

오동철과 오동진의 시체를 내 주라는 결론, 최길준은 고개 숙이고 돌아섰다. 그를 보던 한경수는 형 한용수의 얼굴을 응시하며 걱정을 보였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말해 봐. 보고 있기가 조마조마 하다고.”

한용수는 대답 없이 걸음을 옮겼다.

“귀빈들이 오실 거라고.”

뒤따라오며 거듭 경고를 던지는 한경수, 한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종환 그 늙은이도 오겠지.’

부친 한대건의 장례식, 안 올수 없을 거다. 그 늙은이와 마주보게 된다. 적으로 만들지 말라고, 그렇게 되면 죽을 각오로 죽이라고 한 대상이다.

‘뭐가 되나 보자.’

등 뒤의 한경수가 거듭 던지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한영수는 장례식장으로 들어갔다.

* * *

기사는 생각보다도 잘 나왔다. 최기자의 수완을 알기에 제보한 거지만 제대로 해줬다. 현재 언론사의 취재진들이 세경개발 서초동 본사를 둘러싸고 있다고 한다. 동시에 역삼동 R호텔의 보스들도 감시하는 중이다.

‘일단 손발을 묶은 것 같긴 한데.’

미간을 강하게 좁힌 최재우는 모니터를 응시하며 불안을 삼켰다. 이렇게 하는 걸로는 고종환회장의 걸음을 막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에 그렇다. 그래도 안 하는 것 보단 낫기에 했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될지……’

찡그린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러 펴던 최재우는 소란스런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유지건이다. 신왕지구에 새로 생긴 별다당 오픈기념 커피라면서 떠들며 들어온다. 송치호와 홍인구는 욕하면서도 손 내민다.

‘태평하구나.’

바람이다. 저런 태평한 모습이 매일 같았으면.

* * *

최재우가 기대한 대로 했다. 조폭들의 상황을 기사로 터트렸다.

그렇게 될 거라는 전화를 받고 나서 두 시간 만이다.

최재진들이 방배동으로 몰려들자 깡패새끼들은 서둘러 호텔로 돌아왔다. 세 조직의 보스 놈들만이 아니라 다른 조직 보스놈들도 모조리 R호텔이다. 아마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받은 모양, 그리곤 두문불출이다.

‘저기 하룻밤 숙박료가 얼마나 되나?’

문득 그게 궁금하다. 깡패새끼들이야 돈 낼 일은 없을 거다. 호텔 주인이 흡혈귀 영감 고종환이다. 제가 불러놓고 설마 돈을 받진 않을 거다.

‘이제 뭘 할 거냐?’

심유한 눈길을 망원렌즈에 던지던 박인수는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갤 돌렸다. 부하형사가 든 태블릿에서 나오는 뉴스소리, 장례식현장이다.

-온누리병원에 빈소를 마련한 온누리그룹은 침통한 슬픔 속에서 조문객들을 맞고 있습니다.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문상객으로 속속 당도하고 있는 가운데 조금 전 세경개발의 고종환회장이 도착했습니다. 고회장은……

뉴스에 정신을 뺏긴 박인수는 자신이 장례식장에 있는 것처럼 몰입했다.

* * *

tv뉴스 화면에 잡혔다.

고종환, 세경개발회장, 구순의 늙은이 흡혈귀영감.

카메라 셔터가 정신없이 터지는 가운데 빈소를 향해 간다.

기자들이 던지는 질문엔 반응하지 않는다.

빈소 안으로 들어가며 미소 짓는다.

‘웃어?’

장철은 순간 숨을 멈췄다.

잘못 본 게 아니다, 고종환은 분명이 웃었다.

저건 메시지다.

장철 자신에게 보내는 거다. 의미는 너무나 명확하다.

‘그래, 찾아 가마.’

소파에서 일어선 장철은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뒷문으로 소리 없이, 다른 집들의 시야에 들지 않는 움직임으로 이동했다. 그 뒷모습을 조웅이 바라봤다. 그러다 우연히 눈이 마주친 이웃집과 미소로 목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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