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65화 (65/200)

황혼의 살인자. 65. 이것이 나의 복수다.

65. 이것이 나의 복수다.

까무룩 들었던 잠을 깨워내는 폰의 울음에 최재우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피곤에 절은 몸, 겨우 잠이든 상황에서 일어나야 하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새삼 절감한다. 천근같은 눈꺼풀을 밀고 몸을 겨우 일으켰다.

‘씨발, 이 시간에……’

한시가 넘어 두시가 돼 가고 있다.

생각보다 뒤척인 시간이 길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떻든 지금은 곤히 자야 할 시간이다. 그래야 내일 움직이는 거다.

아침까지 불과 몇 시간 남았으니 이미 내일이 오늘이지만.

‘과장.’

신명서의 이왕길 과장이 아니라 강남서의 박인수다.

합수부의 전화다.

무슨 전화인지 알겠다. 이 시간에 잠을 깨우는 전화는 사건밖에 없다.

‘귀신.’

장철의 얼굴을 떠올리며 최재우는 통화를 터치했다.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흥분과 긴장이 뭉쳐진 숨소리가 목소리 보다 먼저 건너왔다.

-후, 터졌다. 귀신이 가평에 나타났다.

예상했지만 최재우는 눈썹을 거칠게 곤두세우며 숨을 멈췄다.

‘가평.’

온누리그룹의 한대건 회장이 있는 곳이다.

한진수가 산 시체로 누워 있는 장소다.

그들이 그곳으로 간 건 함정을 파기 위해서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귀신은 그들의 바람대로 움직이지 않다가 오늘 방문한 거다.

-상황 발생은 자정 전인 것 같은데 나도 조금 전에 알았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무슨 말이냐면…… 합수부 수뇌진에서 나를 제척하려는 것 같단 말이지.

“예?”

이해할 수 없는 소리에 최재우는 반응했고 박인수는 제 짐작을 말했다.

-보고체계를 바꾸려는 것 같아, 아니 중간관리진을 갈아치우려는 거지. 아무래도 현장에서 올라가는 보고에 대해 불신이 생긴 것 같다. 그게 합수부 자체의 것인지 외부의 의중인지를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거야.

무슨 소린지 이해하는 최재우에게 박인수의 목소리가 다시 넘어왔다.

-어떻든 지금 중요한건 상황발생이야. 합수부에서 이미 조치에 들어갔다. 가평서 인원들을 우선 움직였고 강력하게 대응할 거야. 경특도 출동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래, 이미 도착해서 액션에 들어갔을 거다.

“그럼……”

-최팀장 너는 최일선이니까 상관없어. 당연히 현장에 가봐야지. 가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란 말이다. 현재 상황이 제압체포가 우선이라 경특을 비롯한 무장인원들이 우선 출동했지만 다 호출이 갈 거다.

무슨 상황인지 최재우는 인지했다.

합수부가 귀신의 출몰을 인지하고 대응에 나섰지만 기왕의 수사인력들 전부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 거다.

현재에 맞고 필요한 대응을 하는 중이고 후속대응으로 호출할 것이다.

-내가 합수부에서 털려나갈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움직일 때다.

박인수의 마지막 말은 멀어지며 넘어왔다.

-깨워서 미안하다.

폰을 귀에서 뗀 최재우는 복잡한 숨을 내쉬었다. 그러며 돌아보니 아내 유인주는 여전히 꿈나라다. 처남과 웃으며 마신 술이 제법이었던 거다.

몸을 기울여 아내의 뺨에 입술을 맞춘 최재우는 침대를 벗어났다.

거실로 나가 냉장고의 찬물을 꺼내 마시고 남은 잠의 잔재를 털어냈다. 옷을 갈아입고 나갈 준비를 하면서 유지건과 송치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잔소리 말고 나와.”

유지건의 투덜거림을 잘라버리고 통화를 마친 최재우는 집을 나섰다.

* * *

-분명히 무슨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흥분한 유튜버의 얼굴은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조명이 환하게 켜진 리조트 건물이 화면을 채웠다. 온누리그룹 회장 한대건이 아들 한진수를 데리고 들어간 곳, 저곳에 무슨 일이 생겼다. 귀신이 갔으니 당연하다.

‘제대로 하고 있군.’

친구 장철의 얼굴을 떠올리며 조웅은 피식 웃었다.

그렇지만 긴장은 그대로다.

장철은 목숨을 걸고 저 일을 하고 있는 거다.

조웅 자신도 이 밤에 목숨을 걸고 움직였다.

애꿎은 사람이라면 미쓰리, 이영숙뿐이다.

승합차에 아직 앉아 있는 이영숙을 돌아봤던 조웅은 폰의 소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아 저기 보십시오! 경찰들이 몰려왔습니다! 워, 저건 경찰특공대가 분명합니다!

검정색 밴 차량에서 기민하게 내리는 검은 특수전복 차림의 존재들, 정말로 경찰특공대다. 경찰특공대들의 능력을 겨루는 국제시합에서, 처음 참가한 시합에서, 다른 참가국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능력자들이다.

-이제 확실합니다! 온누리리조트에서 들려온 건 총성이 맞습니다! 산 쪽에서 번쩍거린 섬광은 총구화염이 맞는 겁니다! 귀신이 찾아온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흠칫한 조웅은 어깨를 경직했다.

-여기 남아서 진을 친 게 잘한 겁니다! 솔까 돌아갈까 말까 갈등했었는데 드디어 잭팟을 터트렸습니다! 먼저 가버린 놈들은 땅을 칠겁니다!

“뭘 보고 있는 거야?”

다가오며 묻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며 조웅은 폰을 껐다.

“별거 아녜요. 문제는 없는 거죠?”

내가 뭘 보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이 해줘야 할 게 중요하단 조웅의 눈.

“문제 될게 뭐가 있어?”

심드렁하게 대답한 남자는 깊은 주름이 진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습관적인 행동, 기름때가 밴 장갑의 위쪽으로 문지르는 게 오래된 거다.

‘당신도 많이 늙었군.’

조웅은 새삼 상대를 바라봤다. 이렇게 외진 곳에서 폐차장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초로의 남자, 아마 나이가 육십이 넘었을 거다. 윤철진이란 이름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 확실한건 돈 받은 만큼 한다는 거다.

“문제를 달고 오진 않았겠지?”

되묻는 윤철진의 눈이 승합차로 향한다. 너야말로 라는 눈빛으로.

“중간에 번호판 바꿔 달고 랩핑도 벗겨내서 걱정할건 없을 겁니다. 도로카메라도 최대한 피하면서 왔으니까요, 그래선지 가까운데 제법 걸렸어요.”

그렇다, 이곳 윤철진의 평화폐차장은 동두천외곽, 신명시와는 지척이다. 그런데도 새벽 2시가 다 된 시간에 도착한건 언급한 일들 때문이다.

“그렇군.”

어련히 알아서 했겠냐는 반응으로 시선을 거둔 윤철진은 턱짓을 했다.

“저 차야.”

낡은 올란도가 서 있다. 색깔은 평범한 은회색이다.

“쓸만큼 쓰고 버리면 돼. 물론 기능상의 하자는 전혀 없어.”

차로 다가간 조웅은 내외관을 살폈다. 시동을 걸어 소리도 들어봤다.

윤철진의 말대로 쓸만큼 쓰고 버리면 된다.

그때쯤 윤철진에게 전화하면 도난신고가 될 것이다.

누군가의 명의로 된 것이겠지만 피해는 없는 거다.

“저 차는 깔끔하게 처리할 거야.”

이영숙이 타고 있는 승합차, 이곳 평화폐차장에서 장기를 떼어내고 죽음을 맞을 것이다. 나름 정이 들었지만 이젠 정말 보내줘야 할 때가 됐다.

“세 보세요.”

현금이 든 봉투를 조웅은 윤철진에게 건넸다.

받아들고 눈과 손으로 가늠한 윤철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대로 돌아선 조웅은 올란도에 올랐다.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여 승합차 옆에 댔다.

이영숙이 서둘러 탔다.

누군지 모를 여자와 같이 올란도를 타고 폐차장을 나가는 조웅을 윤철진은 말없이 바라봤다. 시야에서 사라지자 돌아서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여자를 태웠으니 거기가 끝이야.”

끝, 인생 종쳤다는 소린지 더는 이전처럼 살아선 안 되고 그럴 수 없다는 건지, 밤바람에 흥얼거림을 흘려보내며 윤철진은 사무실로 사라졌다.

* * *

등에 진 빈배낭의 무게를 가늠하며 장철은 산을 달렸다. 한대건과 한진수를 끝장내고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 로프를 타고 산자락으로 나왔다.

바람의 노래 속, 피 끓는 흥분과 전율을 발산하며 장철은 산속을 헤치고 달렸다.

“이게 내 복수다.”

산바람 속에 목소리를 뱉은 장철은 그들의 최후를 더듬었다. 자신이 죽인 자들의 죽음을 음미했다. 손녀와 딸이 죽은 순간부터 꿈꿔왔던 결말이다.

‘아직 더 가야 해.’

남은 자들을 상기하며 장철은 기억을 더듬었다.

97년 한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갔을 때부터, 그곳의 정글과 산을 누비며 반군과 살던 시절이다.

그 흐름을 타고 필리핀마저 벗어나 메콩강일대를 누비며 다녔었다.

‘피뻡.’

태국과 미얀마 일대에서 활동할 때 얻은 별명이 그것이다.

내장을 파먹는 요괴라는 의미인데, 뱀파이어처럼 밤에 활동하며 늙은이의 모습이라고 한다.

그 별명이 뭍은 이유는 늙은이처럼 변장하고 타깃을 죽여서다.

‘내장을 파먹은 건 짐승들이지만.’

군소마약조직들과 군사조직들에겐 공포의 이름이 됐다.

피뻡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누군가는 죽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곳에서도 결국 귀신이었다.

밀림과 산을 누비는 귀신, 그 경험과 기억으로 지금 산을 달린다.

‘화악산을 넘어가면 화천.’

목적지를 머리에 그리고 이미 인지한 지도를 떠올리며 장철은 산짐승처럼 달렸다.

* * *

“이……!”

부들거리는 분노의 숨을 뱉어내며 최길준은 고개를 떨궜다.

귀신을 잡을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리조트를 중심으로 주변을 뒤져 나가고 있지만, 예상되는 주요루트마다 차단에 들어갔지만, 소득이 없다.

‘이미 벗어난 거야.’

그렇다는 걸 확신한다.

귀신은 정말 귀신이다.

산으로 도망쳤지만 이 울창한 산속으로 들어간 것 자체가 막다른 길, 그런데 귀신에겐 그게 아닌 거다.

그는 이전에도 산을 타고 도망쳤다. 그는 산귀신이기도 한 거다.

‘치고 들어오기 위해서라도 이미 벗어날 계획을 세운거지.’

귀신에게 가장 적합하고 유리한, 그런 준비를 하고 그는 온 거다.

끝내 목적을 달성하고 사라졌다.

합수부도 경특도 가평서 인원들도 무용하다.

‘그나마 피터윤과 동료들 사체를 치운 게 잘한 건가……’

비탈을 올려다보며 최길준은 그 눈을 떠올렸다.

경찰특공대 보스, 계급이 정확히 뭔지 모를 그자의 눈이 아무 매서웠다.

당연한 일, 귀신과 피터윤등이 싸운 곳엔 온통 총알자국인 거다.

그런데 피만 있고 시체는 없다.

‘청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최길준 자신의 처지가 아주 곤란했을 것이다. 그러니 한용수에게 전화한건 잘한 거다. 한대건과 비슷한 비중의 그가 청장에게 연락한 거다.

‘온누리전자 회장.’

자동차의 한경수회장과 더불어 현역 최고의 기업인이다. 실질적으로 온누리그룹의 보스라고 해야 할 인물, 그의 말 한마디는 거부할 수 없는 거다.

‘어?’

리조트 안으로 막 들어온 대형 세단을 보고 최길준은 순간 경직했다.

‘한용수회장.’

그가 왔다. 아버지 한대건 회장의 주검을 보기 위해서다.

* * *

“후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최재우는 차문을 열고 나갔다.

어수선하게 분주한 가운데 긴장이 가득 들어찬 공기, 리조트 안팎의 현실을 느꼈다.

그렇게 이미 인지한 내용을 상기했다.

경특도 누구도 귀신을 못 잡는.

‘이미 추적범위를 벗어났어.’

확신을 삼키며 최재우는 현장으로 향했다.

세 동의 리조트 건물 중 중앙의 건물이다.

7층 높이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짜임새 있는 환경이다.

‘옥상에서 침투.’

그러기 전에 산자락에서 이미 전투가 있었다.

경특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총격전과 격투의 흔적이다.

그 일 후에 귀신은 이곳으로 들어온 거다.

‘한대건, 한진수.’

그들이 죽었다.

이건 덮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귀신의 등장으로 당황한 건지 대응하려던 건지 온누리에선 합수부에 바로 전화를 넣었다.

‘가평서가 출동했고 경특까지 출동, 죽음을 확인.’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으로 이동한 최재우는 달리 듯이 올라갔다.

7층 복도에 멈춰 흔적을 봤다.

핏자국으로만 남은 격투, 귀신이 남긴 자취다.

‘저 방.’

한진수와 한대건이 살해된 방으로 최재우는 걸음을 옮겼다. 뒤따르는 유지건과 송치호의 침목 속에 든 감정을 헤아리며 그들의 죽음 앞에 섰다.

하얀 시트로 덮어 놓은 죽음.

최재우는 시트를 들춰 확인했다.

목이 갈라진 한진수의 최후와, 턱이 쪼개지고 정수리에 칼이 박힌 한대건의 죽음.

“물러서.”

뒤에서 들려온 시린 목소리에 최재우는 돌아봤다.

중년남자가 바라보고 있다.

누군지 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알았다. 한대건의 큰아들이 왔다.

‘온누리전자 회장 한용수.’

그가 다가온다.

최재우는 시트를 내리고 물러섰다. 그리고 지켜봤다.

제 아버지와 이복동생의 죽음 앞에 선 자의 얼굴을.

그런데 모르겠다.

저 얼굴과 눈에 슬픔과 비통이 찬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