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살인자. 62. 닭장 속의 여우 3.
62. 닭장 속의 여우 3.
무슨 일인지 짐작이 안 된다.
평생을 모셔왔지만 지금 회장의 얼굴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귀신과 조웅에게 당해서가 아니다.
다른 이유가 있다.
‘뒤탈이 날 일은 없겠지만……’
철수하는 과정에서 소방서와 경찰이 출동하는 걸 봤다.
약속대로 시체들을 치울 시간 이후다.
건물에 불이 났으니 혈흔 등이 남는 건 우려할 상황이 아니다.
문제라면 귀신과 조웅의 흔적 역시 남지 않는 단 거다.
‘이렇게 꾸민 놈들이 흔적을 남길 리가 없지만.’
은신처를 아예 없애버릴 생각으로 꾸민 일, 함정이었다. 출발 전에 조치해서 지금 확인이 된 거지만 해당 3층 건물은 소유주가 따로 있다. 귀신과 조웅은 저곳을 임대했다. 당연히 차명의 신분, 추적은 의미 없다.
‘노숙자거나 행불자.’
조웅이란 놈의 전문 분야가 분명하다.
가짜신분으로 도처에 굴을 만들어 놓고 귀신의 수발을 드는 거다.
놈들은 이제 더 깊은 곳으로 숨었다.
‘가평은……’
귀신을 잡기 위해 대응한다는 한대건 회장측의 상황이 궁금하다.
그런데 회장은 뒷자리에 저렇게 눈을 감고만 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저러는가.
‘철수를 명령한 이유가 있어.’
아무리 농락을 당했다고 해도 그냥 돌아설 상황은 아니었다.
조웅이 인근에서 리모컨을 눌렀다는 게 확실한 터, 종적을 잡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물론 놈이 쉽게 꼬릴 보이진 않을 것이었지만, 회장은 철수를 명했다.
‘뭣 때문에?’
뜨거워진 숨을 제어하던 김부장은 회장의 목소릴 들었다.
“전화가 왔다.”
뒷자리로 고갤 돌린 김부장은 눈을 뜬 회장을 응시했다.
속도를 내고 달리는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밤풍경을 담담히 바라보는 고종환, 눈동자에 든 빛이 복잡하다.
저런 눈을 본 기억이 난다.
초희아가씨 때문이다.
‘열네살 때, 중학교 일학년일 때.’
고초희가 학교에서 커터칼을 휘둘렀다.
상담선생님에게다.
비명을 들은 남자 선생님이 상담실로 들어와 제지해서 살인은 막았다.
그 일로 고종환 회장은 힘들어 했다.
수습으로 들어가는 비용과 수고 때문이 아니다.
‘아가씨 때문에.’
사고에 대해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게 없던 고초희, 그녀의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슴 같았고 토끼 같았다. 자신이 한 일은 풀을 뜯어 먹은 것과 같은 거라고 여겼다. 상담선생이 짜증을 일으켰고 잠깐 화냈다는 거다.
‘죽일 수도 있었던 일……’
살인, 피, 죽음.
그 의미와 결과와 행위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고초희의 생각은 보통사람과 전혀 달랐다.
금기와 도덕과 법질서에 대한 가치가 달랐다.
왜 그런지 알았다.
그녀는 세상이 말하는 반사회적 존재였다.
“초희가 전화를 했어.”
이어 나온 회장의 말, 귀를 파고든 고종환의 이야기.
그 의미를 김부장은 한 박자 늦게 인지했다.
고초희, 그녀가 아버지에게 전화했다는 거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그녀는 숨 쉬는 시체다. 저 말이 당황스럽다.
“회장님……!”
제어하던 뜨거움을 목소리로 토한 김부장, 흔들리는 그 눈을 고종환은 똑바로 쳐다봤다. 차창 밖을 보며 흘려내던 눈빛을 갈무리 하고 말한다.
“초희가 살아 있다.”
* * *
적들이 움직인다.
전문가들, 전장에서 살인을 익혀온 사냥꾼들, 저들이 흘려내는 피냄새가 맡아진다.
흥분을 제어하며 뱉는 숨이 느껴진다.
동료 둘이 당한 상황에 반응한다. 분명이 저 움직임은 한곳에 모이려는 거다.
‘할 수 있으면.’
바람의 노랫결에 다시 몸을 실은 장철은 귀신이 돼서 이동했다.
낙엽이 쌓이고 쌓여 부엽토가 된 바위아래 몸을 붙였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그림자, 그 발이 바위를 디뎠다가 떼는 순간 파이팅스틱을 후려쳤다.
콱, 발목이 부러진 상대는 바위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하지만 역시 전장을 누빈 살인전문가, 대응으로 몸을 굴리며 총구를 겨눈다.
섬광을 터트리는 그 총구를 로우킥으로 후린 장철은 팽이처럼 돌며 발을 찍었다.
콰직, 목이 부러진 적은 경련한다.
다시 한 번 밟아 움직임을 멈춰줬다.
그러나 그 순간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장철은 반응했다.
바람의 숨결이 알려주는 경고.
주저앉듯이 돌아서며 카바나이프를 던졌다.
드르르륵,
mp5를 숲으로 발사하며 쓰러지는 네 번째 적의 미간에 나이프 자루만 남아 있다.
머릿속으로 파고 들어간 그 칼날을 장철은 뽑아냈다.
그리고 뛰었다.
다가오는 다른 적들의 숨소리를 느끼며 흘러갔다.
* * *
총성은 산발적으로 들리고 있다. 소음기를 장착한 경찰특공대의 개인화기, 피터윤과 그 동료들이 귀신을 상대하며 내는 섬광이 숲을 흔든다.
그런데 그게 말 그대로 산발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란 게 불안하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
불안한 의구심으로 한대건은 창 앞에서 서성거렸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는가 생각하면서도, 당연히 그래야 하고 그런 결과일거라고 여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나는 이 초조한 의구심은 커져만 간다.
‘만일……!’
미간을 구기며 고개 숙인 한대건은 움켜쥔 주먹을 가늘게 떨며 부정했다.
“만일은 없어!”
그렇다, 그런 일은 없는 거다, 절대로 생겨나지 않는다.
오늘 밤 귀신을 잡는 거다.
피터윤과 동료들이 그 일을 해낼 것이다.
그런 일로 돈을 버는 자들이다.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했다.
이젠 수확뿐이다.
‘고회장은?’
문득 고갤 드는 생각에 한대건은 폰을 잡았다. 어떻게 돼 가는지 결과를 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다. 하지만 전화를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다.
화가 나 있을 흡혈귀영감이 얼굴이 보인다.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상황 자체가 그렇다는 걸 이해하겠지.’
귀신이 이곳에 출몰한 상황, 고종환은 화내면서도 받아들일 것이다.
귀신을 잡으면 끝나는 거다.
목적을 이룬 마당에 구차한 저간은 필요 없다.
“잡기만 해라, 제발.”
간절한 목소리를 창밖으로 던지며 한대건은 위스키 병을 잡았다.
* * *
“이제 어디로 가나요?”
해쓱해진 것 같은 미쓰리, 이영숙의 얼굴을 힐긋 돌아본 조웅은 대답했다.
“멀리 안가.”
신명시 안에서 움직이는 거다.
그럴 준비를 이미 해 놨다. 지금 그곳으로 가는 중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도중에 차를 처리하는 것과 귀신의 귀환이다.
그것도 문제 될 건 없을 거다. 찜찜한 건 놈들이 그냥 간 거다.
‘그렇게 서둘러서 철수한 이유가 뭐야?’
호수공원에서 지켜본 상황은 이상했다.
경찰과 소방이 출동하기 전에 도망치듯 놈들은 떠났다.
아무리 조웅 자신이 신고를 했지만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세경개발에게 그 정도야 껌씹기보다 쉬운 일인 거다.
‘다른 심각한 일이 생긴 건가?’
그럴 일이라고 해 봐야 가평에 간 장철이다.
그 상황을 인지한 대응이라면 처음부터가 안 맞는다.
온누리측과 세경, 양측이 서로의 상황과 행동에 대해 인지했다면 개별행사가 맞다.
각자의 상황에 액션을 취한 거다.
‘그랬는데 저렇게 서둘러서 돌아간다?’
분명히 조웅 자신이 인근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 텐데, 리모컨을 눌러 사제폭탄을 터트렸다는 걸 아는데, 당한 놈들만 챙겨 떠났다.
‘날 잡을 생각 자체를 포기하고.’
그런 결과다. 그게 이상하다. 물론 그들이 잡기 위해 움직인다고 해도 잡힐 일은 없었지만, 그런 움직임 자체가 없었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친구분은 무사하실까요?”
다시 귀를 파고든 이영숙의 목소리에 조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야. 귀신이니까.”
* * *
“헉,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낸 도용조는 뒤를 돌아봤다.
호수공원을 지나 체육공원이 저편으로 보인다.
바로 옆엔 개발이 진행 중인 현장의 펜스가 서 있다.
신도시의 확장은 아직 진행 중, 그 공간 안의 어둠 속으로 탈출했다.
‘날 살려준 건가.’
조웅, 그가 살려줬다. 세경개발 놈들이 철수하자마자 전화로 알려줬다. 세경이 폰을 안 뺏고 쥐어준 덕분, 조웅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리로 넘어가면 포천방향이란 말이지?’
조웅이 알려준 대로라면 그렇다. 공사현장에서도 카메라가 없는 길을 알려줬다. 그렇지만 이제 대로로 나가면 달라진다. 우선은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안심해도 될 정도가 되면 택시를 잡아타는 거다.
‘다행히 씻겨주고 마스크까지 줘서.’
세경은 조웅을 만나게 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 지금으로선 땡큐다.
‘가자, 우선 살고 보자.’
겪었던 일, 모든 감정과 기억을 털어내고 도용조는 열심히 걸어갔다.
* * *
이젠 피할 수 없는 상황.
마주 달려오는 적들을 향해 장철은 맹렬한 스피드로 달려갔다.
좌측에서 두 명 우측에서 한명이 산비탈을 차고 오며 사격한다.
드르르륵, 속을 긁는 소리와 더불어 날아온 총탄들이 무섭다.
‘바람처럼.’
장철은 공기파동에 반응하는 홀씨처럼 움직였다.
왼쪽으로 한발, 오른쪽으로 두발.
쓰러지듯 숙였다가 점프하며 휘돌아내려 달렸다.
아니 바람처럼 흘러갔다.
그렇게 내는 손에서 벨트가 뻗어나갔다.
카람빗을 달고.
허리에서 나와 장철의 손이 늘어지는 것처럼 터져나간 벨트, 그 끝이 좌측놈의 목을 훑었다. 총탄을 터트리는 총신을 스치고 들어간 결과다.
장철은 환영처럼 휘돌았고 총탄이 허공을 헤집는 가운데 피가 터졌다.
‘다섯.’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장철은 격류로 흘렀다.
좌우로 갈라지는 두 놈의 사이로 휘돌아 들어가며 벨트를 휘둘렀다.
소용돌이처럼 돌아가는 장철의 형상처럼 벨트는 회오리를 일으켰다.
동시에 속사포처럼 나왔다.
피터 윤은 눈을 부릅떴다.
동료들과 얽힌 타깃, 귀신은 보고도 믿지 못할 싸움을 하고 있다.
벨트를 휘두른다, 채찍처럼 사용하는 건데 저건 그것과 다르다.
마치 한 몸인 것 같다. 귀신의 의지대로 나가는 손이다.
‘말도 안 돼!’
부정을 부르짖으며 피터윤은 경직했다.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귀신, 그를 중앙에 두고 갈라선 동료 둘의 형상이 피투성이로 변한다.
그렇게 만드는 건 벨트, 회오리처럼 돌며 창처럼 튀어나와 저들을 가르고 있다.
결과는 그야말로 순식간에 났다.
처음 당한 동료를 따라 남은 둘도 쓰러졌다.
방탄조끼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얼굴과 팔다리가 피걸레가 돼서다.
숨통을 끊은 최후일격이 뭐로 인해선지 알았다.
카람빗이 달려 있다.
“이 새끼!”
격노로 깨어나며 피터윤은 총을 발사했다.
탄창이 다 비도록 mp5를 쐈다.
그런데 총탄이 날아가는 궤적 안에 귀신이 살아 있다.
놈이 움직여서가 분명한데, 이결과는 피터윤 자신이 일부러 안 맞추려고 한 것만 같다.
‘무슨!’
p7권총을 뽑아든 피터윤은 귀신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분명치 않은 카메라 초점 속의 피사체처럼 보이는, 그렇게 움직이는 귀신의 다가옴을 보며 깨달았다.
상대는 정말로 귀신이라는 것을, 이제 죽는 다는 것을.
철컥.
탄창이 비는 소리를 내는 그 순간 피터윤은 손을 휘감겼다.
귀신이 휘두르던 벨트다. 그것이 목까지 감았다.
귀신을 몸을 타고 넘어갔다.
바닥에 처박힌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귀신의 벨트가 목을 조여온다.
“케에……”
하얗게 탈색된 얼굴로 피터윤은 귀신의 눈을 봤다. 파랗게 빛나는 눈을.
* * *
쥐고 있던 잔을 놓친 한대건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떨어져 산산조각 난 위스키잔의 비명 때문이다.
그건 마치 창밖의 저 어둠 속 소리인 것 같다.
갑자기 강해져 창문을 흔드는 바람,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 같다.
‘귀신을……’
잡아야 한다는, 그렇게 될 것이란 일념으로 넘긴 술이 과했던 것일까.
‘술은 더 이상 안 돼.’
크게 숨을 들이마신 한대건은 그 순간 들리는 소리에 반응해 돌아섰다.
아들 한진수가 거친 숨을 쉰다.
호흡기가 들썩거리도록 안 좋은 숨이다.
“진수야!”
놀라 침대로 다가간 한대건은 폰을 들다가 멈췄다.
아들의 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고요하다.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진짜로 고요한 건 창밖이다. 이제 총구화염도 더는 안 보인다.
시선을 창밖으로 돌린 한대건은 문득 목덜미에 돋는 소름을 느꼈다. 귀신의 혓바닥이 훑어 내리는 것 같은 느낌, 섬뜩한 예감에 진저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