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31화 (31/200)

황혼의 살인자. 31. 내가 너희를 죽일 거다.

31. 내가 너희를 죽일 거다.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꺼낸 문형철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봤다.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켰다.

이젠 아무데서나 피울 수 없는 담배, 그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렸다.

‘동철아……!’

더는 불러도 대답할 수 없는 친구는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등 뒤로 둔 온누리병원 본관의 지하 깊은 곳 냉동고에 들어 있다.

그 누구에게도 당하지 않을 최강군인이 친구 오동철이었다.

그런데 귀신에게 죽었다.

‘혼자만이 아니라 셋이 더 있었는데도 당했어.’

이 결과를 문형철은 곱씹고 곱씹었다.

오동철과 같은 강한 남자가 동료 셋과 같이 당한 거다.

귀신이란 존재는 그런 자인 거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던 세경개발 고회장의 딸 고초희를 찾아내 귀신같이 죽였다.

‘살아 있지만, 죽인 거지.’

한진수와 똑같이 해버렸다. 그래놓고 귀신같이 사라졌다.

정말로 귀신이라고 밖엔 할 말이 없다.

고초희에게 접근한 것부터 사라진 결과까지, 아니 처음 윤완규를 손댄 것부터가 그렇다.

장철 그자는 대체 누구인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그자는 간첩으로 몰린 아부의 아들이었다.

열세 살이던 1980년에 1월에 그 일이 생겼다. 그로인해 집이 풍비박산 났다.

그해여름 어머니가 자살하고 가을엔 할머니가 병사했다.

‘보육원에 수용된 어린애가 어떻게?’

겨울엔 서산 소재의 형제보육원이란 곳에 수용됐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

부랑아감금시설이다. 말만 보육원이지 강제노동과 폭력이 지배하던 곳이다.

그런 곳에서 장철은 사년간 있다 서울로 상경해 사라졌다.

‘보안사 애들이 감시를 소홀이 해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중국집 등을 전전하던 장철은 마지막에 술집 웨이터로 있다가 종적을 감췄다. 장철이 사라지고 난 후에 보안사가 조사한 기록에 의하면 그렇다.

‘이천년대 들어 장철 아버지가 간첩혐의를 벗었지만……’

장철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를 상대로 소송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그때 소송한 이들 전부가 소송기일이 지나서 아무런 보상 같은 걸 받을 수 없었다고 알고 있지만, 어쨌든 그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항의했었다.

‘87년부터.’

장철이 종적을 감춘 그 해, 대한민국이 민주화의 불길로 뜨겁게 타오르던 그해에 장철은 귀신이 된 거다. 그때부터 97년까지 확인된 것만 스물일곱건의 미제살인 사건에 그가 관여했다. 귀신처럼 목표들을 죽였다.

‘그런 자를 깨워냈어.’

귀신은 사라졌었다.

장철이 아닌 귀신이 사라졌던 거다. 97년 서영나이트사건이후로 귀신의 종적은 없었다.

죽었거나 해외로 도주한 거라고 소문이 났었다.

그대로 기억 속에서도 사라질 존재였다.

그런데 불러냈다.

‘윤완규, 한진수, 그리고 고초희.’

세 년 놈이 귀신을 호출했다. 강남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R호텔에서 마약을 처먹고 신명시로 슈퍼카를 질주하다 아이를 친 거다. 귀신의 아이를.

‘뿌린 대로 거둔 거야, 그게 맞긴 한데……’

윤완규와 한진수와 고초희가 당한 일은 그런 거다.

귀신의 손녀를 해쳤으니 귀신의 칼을 받은 건 정해진 일이었다고 할 터다.

그런데 귀신이 복수한 대상들은 다른 자들이다.

나라를 좌우하는 힘을 가진 자들이다.

‘세경과 온누리가 손을 잡았으니…… 귀신은 죽겠지.’

이 또한 정해진 결과다. 아무리 귀신이라고 해도 저들의 힘을 견딜 수는 없다. 대응하기도 전에 벼락처럼 복수를 이뤘지만, 그것만으로도 귀신이라는 감탄을 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저들의 분노를 감당할 차례다.

‘동진이가……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문형철은 걱정을 함께 삼켰다.

형 오동철의 복수를 하려는 오동진, 그는 세경과 온누리에게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복수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동진아.’

폰 잡은 손을 든 문형철은 담배연기를 한숨으로 뿜어내며 폰을 내렸다. 그 순간 윤진건설 윤종대 회장이 병원본관을 나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민 대단히 화가 난 얼굴, 멈춰서 이가는 소리가 들린다.

“씹어 먹을 새끼들이, 내가 아랫사람이야? 그래, 두고 보자……!”

앞으로 다가온 대형승용차에 올라탄 윤종대 회장은 이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문형철은 온누리 병원 본관 최상층을 올려다봤다. 저기 어딘가에 있을 세경 고회장과 온누리 한회장, 내려다보는 것 같다.

* * *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 거지?

걱정 가득한 아내 유인주의 목소리에 최재우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입에 물었다.

“걱정 마. 배고프면 일 못하는 거 알잖아. 방금 전 휴게소에 먹었어.”

-그랬구나. 이젠 취식이 가능해서 좋긴 한데, 그동안 여파인지 음식은 별로라고들 하던데. 괜찮았어? 먹을 만해? 그래도 내가 해준 밥이 최고지?

“당근이쥐.”

-우헤헤, 어서 와, 맛있는 된장찌개 해 줄게. 싸랑해.

“나도 마님을 사랑합니다요.”

한껏 웃는 얼굴로 통화를 끝낸 최재우는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좁은 차안에 있다는 것, 운전석의 유지건과 조수석의 송치호 얼굴이 어떤지.

“와 닭살 캡이네.”

“어쩐지 킹 받는 느낌인건 나만은 아니지?”

“그럼요, 아니 당근이죠.”

“야, 우린 결혼해도 바보 되진 말자.”

둘의 수작에 바로 반응하려던 최재우는 쩝하고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그 반응에 유지건과 송치호는 시들해진다. 최재우의 표정이 말해줘서다.

‘귀신을 찾기 위해서 움직이고 있을 텐데.’

귀신에게 당한 자들, 윤진과 온누리가 가만있을 리 없다.

그래서 불안하다. 최재우 자신이 서울을 벗어나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겼을 것만 같다.

물론 지나친 염려와 기우일 테지만, 그러길 바라지만, 예감이 선다.

“뭔 일 생겼을 까봐 그러십니까?”

돌아본 송치호가 최재우의 표정을 살핀다. 사건 생각으로 가득한 얼굴이기 때문이다. 별 소득도 없이 올라가는 터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거다.

“사건 터졌으면 벌써 연락 왔겠죠.”

룸미러로 시선을 맞춘 유지건은 걱정 말라는 얼굴이다. 그런데 그 순간 연락이 왔다. 이왕길 과장의 전화, 최재우는 예감을 삼키며 폰을 들었다.

“예, 과장님.”

-올라오는 중이냐? 수고들 했다.

거두절미하고 용건을 이어 내는 과장의 숨소리가 긴장으로 팽배해 있다.

-상황발생이다. 귀신이 세경개발 고종환 회장의 딸 고초희를 손댔다.

최재우는 물론 유지건과 송치호는 눈썹을 있는 대로 세웠다.

-의왕시 소재의 타운하우스에서 지난밤 상황이 발생했다. 고회장의 딸 고초희가 거기 숨어 있었고 귀신이 침투공격했다. 한진수처럼 해버렸어.

놀라서 채 반응하지 못하는 최재우의 귀에 과장의 목소리는 계속 들어왔다. 아니 스피커폰으로 해놨기에 운전하는 유지건과 송치호에게도다.

-언론사에 해당 내용 제보가 들어갔다. 안 그랬으면 아무도 몰랐을 일이야. 세경 고회장과 온누리 한회장은 지금 온누리병원에 함께 있는 걸로 파악됐다. 타운하우스 단지에선 총격전이 벌어진 정황이 있다는 거야.

당황과 충격을 삼키며 최재우는 핵심을 물었다.

“귀신이 고초희를 왜 공격한 겁니까?”

-그게, 음, 고초희가 그날 차에 함께 타고 있었다고 한다. 3월 24일, 장철의 손녀를 치어버린 그 차에, 윤완규 한진수 외에 고초희가 있었던 거지.

최재우는 멍한 얼굴로 허공을 더듬었다.

* * *

왼손에 권총을, 오른손에 나이프를 쥐고 오동진은 옥상으로 올라갔다.

방수작업이 돼 있어 녹색아스콘이 깔린 옥상엔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한눈에 옥상의 모든 곳이 눈에 들어온다. 정면에 옥탑방이 보인다.

이글거리는 눈동자에 냉정을 품은 오동진은 옥탑방으로 다가갔다.

알미늄섀시로 만들어진 문을 잡고 가만히 열었다.

좁은 신발장 공간 너머 방안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흔적을 살폈다.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이다.

‘여기에……’

귀신의 흔적일지 모른다는 생각, 예감으로 오동진은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옷장이 열려 있다. 그 안에 국방색의 미군박스도 열려 있다.

뭐가 들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용물은 없다. 역시 한발 늦은 게 확실하다.

‘남은 단서는 저년뿐인 건데……’

아래층 사무실에 있는 여직원, 그 입에서 뭔가 나올게 있을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세경과 온누리가 오기 전에 마무리하고 가야 한다.

‘그년은 대체 누구지?’

이곳에 이르도록 알려준 묘령의 여자, 오동진 자신이 권총을 겨눴는데도 하등 두려움이 없던, 아니 냉담한 조소와 즐기는 눈빛을 흘려냈었다.

‘음?’

아래서 들려오는 소리, 옥상문을 통해 올라오는 건 현진 직원들의 것이다. 죽이라는 고함, 둔탁한 타격음, 인지한 순간 오동진은 튀어나갔다.

* * *

배관을 타고 내려오는 장철은 그야말로 귀신같다. 삽시간에 옥상에서 내려와 건물 현관으로 달려간다. 그 뒤를 조웅은 쫓아갔다. 미쓰리 때문이다. 뭐한다고 다시 온 건지 모르겠다. 그 덕분에 이러고 있는 거다.

‘제길!’

조웅은 자신에게 욕을 했다. 지켜보겠다는 장철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이렇게 뛰어든 결과를 욕하고, 미쓰리가 위험해진 걸 알면서도 망설인 걸 거듭 욕했다. 그런데 예전에 일 할 때는 이런 망설임조차도 없었다.

“헛!”

자신에게 쓰러지는 현진 놈을 피한 조웅은 계단 위 상황을 봤다.

귀신 장철이 뚫고 올라가고 있다.

양손에 잡은 몽둥이, 장철이 파이팅스틱이라고 말한 것에 개박살 나고 있다.

정글도를 가진 현진 놈들이 터진다.

쓰러지는 놈들을 건너뛰며 조웅은 계단을 차고 올라갔다.

일층부터 삼층에 입주한 업체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나왔다가 기겁하며 들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4층에 다다른 조웅은 사무실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미쓰리!’

의자에 묶인 미쓰리가 보인다. 놈들 곁에 있던 현진 놈들이 장철에게 달려든다. 두놈 사이를 장철이 휘돌며 지나갔고, 두놈은 머리가 터졌다.

“내려가.”

장철의 목소리, 낮지만 선명한 그 음성이 귀에 때려 박힌다.

조웅은 주술에 걸린 것처럼 움직였다.

미쓰리를 풀고 부축해 계단을 내려갔다.

차 있는 곳으로 이르러 미쓰리를 태우고 건물을 돌아봤다. 미쓰리가 부른다.

“사장님……”

휘뜩 돌아선 조웅은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 * *

계단을 박차고 달려 내려간 오동진은 상대를 봤다.

직업소개소 사무실 문을 막 나오는 남자, 눈이 마주친 순간 권총을 발사했다.

소음기의 둔탁한 소리보다 먼저 터진 총구화염, 그것의 앞에서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새끼!”

사무실 안으로 달려 들어간 오동진은 미친 듯이 연사했다.

귀신을 향해, 소파를 건너뛰고 책상을 굴러 넘는 장철에게 총탄을 퍼부었다.

열여덟 발을 쏘고 탄창을 떨어뜨림과 동시에 새탄창을 번개처럼 삽입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귀신이 벽을 차고 튀어나왔다.

그 형상으로부터 뭔가 이탈해 나온다.

본능으로 피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그럴 수 없단 걸 알고 팔로 막았다.

엄청난 충격과 고통, 권총이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

휘청거리며 물러난 오동진은 바닥에 떨어진 것의 정체를 알았다.

오십센티 정도 길이의 몽둥이다.

옛날 방범대원들이 사용하던 방범봉 같다.

저것에 맞은 왼팔이 부러졌다.

귀신에게는 아직 몽둥이 하나가 더 있다.

“날 죽이러 왔나?”

마주 선 상대, 귀신의 물음을 받은 오동진은 혀를 물었다.

첨예한 그 고통으로 이순간의 냉정을 되찾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상대를 응시했다.

형을 죽인 원수 귀신 장철과 마주섰다.

떨어뜨린 권총을 중간에 두고서다.

“네가 우리 형을 죽였다.”

가라앉은 오동진의 목소리에 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초희의 옆에 있던 놈, 내가 죽였지.”

오동진은 오른 손에 잡고 있는 나이프에 힘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널 내손으로 죽일 거다.”

오동진은 나이프를 던졌다. 허리벨트를 풀어서 부러진 왼팔을 감았다. 그 모습을 보던 귀신은 잡고 있던 짧은 곤봉, 파이팅 스틱을 던졌다.

“내가 너희를 죽일 거다.”

맨손으로 걸음을 내는 귀신 장철을 향해 오동진은 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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