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혼의 살인자-25화 (25/200)

황혼의 살인자. 25. 내가 귀신이다.

25. 내가 귀신이다.

움켜쥔 주먹을 꿈틀거리며 오동진은 긴장을 삼켰다.

단지 중앙의 집, 형 오동철과 삼총사가 공격을 시작한 공간에선 총구화염이 폭죽처럼 연달아 명멸하고 있다.

저 정도로 총을 쏠 상황인 거다.

역시 귀신인 거다.

‘귀신같이 침투했지만……!’

타운하우스단지를 두고 숨어 있는 자신들이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단지로 이어지는 도로를 개방상태로 열어놓은 것은 이렇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지만, 그래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전혀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

‘혹시 아까 본 그 자동차 불빛이?’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백현마을 쪽에서 자동차 불빛이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타운하우스 단지 쪽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라이트를 끄고 온 거라면? 대기 중인 동료가 있다면?’

퍼뜩 솟아나는 예감 아닌 예감에 오동진은 숨을 멈췄다.

그 순간 총구섬광이 그쳤다.

타운하우스단지를 응시했다. 결과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그 결과와 상관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를 움직였다.

라이트를 켜지 않은 채 오동진은 도로를 타고 이동했다.

타운하우스단지를 좌측으로 두고 백현마을 방향으로 향했다.

우측으로는 가파른 산이 시작된다. 귀신이 만일 도주한다면 자신이 있던 방향일 거라 짐작했다.

‘상대적으로 지형이 원활한, 그리고 타운하우스 단지를 벗어난 반대편.’

그러나 이러한 대응 준비가 무용하게 상황은 끝날 것이다. 이제 곧 형 오동철에게서 상황종결이라고 전화가 올 거다. 사격이 멈춘 것이 답이다.

‘응?’

차를 멈춘 오동진은 우측 산비탈의 수풀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뭔가 위화감이 생기는 공간이어서다.

이런 밤에 스쳐 지나가면 모를, 그런데 뭔가 잡혔다. 그게 뭔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오동진은 차문을 열었다.

‘그렇군.’

어둠에 가려 있던 수풀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도로에서 움푹 들어간 산비탈 앞의 공간, 호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차를 대던 곳이다.

그 일이 반복돼 공간이 넓어지고 우묵해졌다. 그 안에 차가 한 대 있다.

‘베르나.’

폐차장으로 가야 할 고물차다. 어둠 속에 있지만 그걸 모를 수가 없다. 문짝은 녹이 슬었고 하부엔 구멍도 있다. 그런 외형답게 블랙박스 같은 건 당연히 없다. 어디선가 훔친 차다. 문을 잡아당기니 그냥 열린다.

‘이런 걸 타고 잘도 왔구나. 그래, 여기니까 우리 눈에 안 띄었지.’

귀신에 대한 적의와 조롱을 동시에 삼키며 오동진은 돌아섰다.

차를 댄 곳은 오동진 자신과 현진 직원들이 대기 중이던 곳과 거리가 있다.

이쪽은 비탈이 너무 험해서 도주로로 선택하지 않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여기 와서 차를 다시 탈 생각이 아니라면 도주할 방향은 내가 있던 쪽뿐이야.’

타운하우스 단지 상황이 발생한 순간 백현마을 쪽의 진입로도 차단했다.

대기 중이던 직원들이 즉각 차를 타고 이동한 거다.

그러니 완전 고립, 포위다.

과연 귀신이 도주해 나온다면 어떻게 움직였을까 궁금하다.

‘여기서 타운하우스로 접근한 루트는……’

귀신이 이동해간 경로를 추정하듯 오동진은 움직였다.

그런데 그 순간 비상벨이 울렸다.

타운하우스단지 안, 중앙의 3층집 옆 관리실에서다.

‘뭐?’

눈을 치뜬 오동진은 타운하우스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갔다.

* * *

날 길이가 이십센티가 넘는 나이프다. 새카만 칼날이 은빛보다 더 위험한 살기를 뿌린다.

환영처럼 그어 나오는 그 공격 속에서 장철은 휘청거렸다.

그 때마다 상대의 칼날은 살갗과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간다.

위태로운 모습으로 공격을 피하던 장철은 한순간 쿠크리를 그어 올렸다.

상대의 나이프가 번개처럼 찔러 들어오는 순간이다.

칼날끼리 부딪쳐 불꽃이 피어난다.

그 순간 왼발을 앞으로 내며 왼주먹을 뻗어냈다.

상대의 옆구리를 노린 벼락같은 일격, 그러나 상대는 팔을 내려 받아낸다.

근육질의 팔이 충격을 흡수한다. 그렇지만 놀라 균형이 흐트러진다.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장철은 휘돌며 가라앉아 오른발을 후렸다.

바닥을 훑어 도는 소용돌이가 된 장철의 공격, 오른 발은 상대의 다리를 강타했다.

훌렁 떠오른 상대는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번개처럼 굴러 일어난다.

당황한 눈동자, 나이프를 내밀며 장철을 향해 자세를 잡는다.

그 순간 장철은 쿠크리를 던졌다.

회전하는 사신이 된 쿠크리가 상대의 안면으로 꽂혀 들어간 순간, 상대가 나이프로 받아치는 찰나, 거리를 좁히며 쇄도했다.

상대의 아래로 도루주자처럼 미끄러져 들어갔다.

상대의 오른다리, 이미 강타한 데미지가 있는 그 다리를 강타했다.

뻑 소리로 부러진다.

그 순간 엎어지는 상대의 눈과 얼굴을 봤다.

경악을 품은 눈, 자신이 이렇게 당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노가 나온다.

상대는 엎어지는 움직임을 공격으로 전환한다.

그야말로 찰나의 반응, 나이프를 돌려 역으로 찍어 내린다.

그 칼날을 향해 장철은 손을 냈다.

장철의 손이 찍어 내려오는 오동철의 나이프에 닿았고 둘은 그대로 겹쳤다.

“컥.”

오동철은 장철의 위에 엎어진 상태에서 피를 토했다. 위를 보고 있는 장철의 얼굴 옆에 붉은 선혈을 쏟아낸다. 그러며 전신을 경련하고 있다.

부들거리는 오동철을 옆으로 밀어낸 장철은 일어섰다.

위를 보고 누운 상대의 함몰된 가슴과 바닥에 박힌 나이프를 응시했다.

칼날을 밀어냄과 일격.

제대로 하지 못했으면 누워있는 건 장철 자신이었을 것이다.

“크어……”

피가 부글거리는 입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상대, 충권으로 부숴버린 그의 심장부위를 응시하던 장철은 돌아섰다. 그 순간 오동철은 늘어졌다.

“그 사람 이름이 오동철이에요. 현진써큐리티 보스죠.”

고초희가 배시시 웃는 얼굴로 말한다. 손에는 산탄총을 들고 있다.

“당신을 왜 귀신이라고 부르는지 알겠어요.”

고초희의 미소품은 시선은 장철의 어깨와 옆구리를 훑는다. 흘러나온 피로 옷이 젖었다.

“대단해요. 총을 맞고도 그렇게 싸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죠. 더구나 저런 남자들을 상대로요, 저들이 누군지 알죠? 맞아요. 전문가들이죠. 군에서 살인과 전투를 익힌 자들이에요. 그런 남자들을 다 죽였네요.”

훌치기 식 산탄총, 레밍턴이 맞을 거다. 그 총구를 가볍게 흔들며 고초희는 계속 말한다.

“결국 이렇게 서로 얼굴을 보네요. 한진수가 그렇게 됐다는 걸 알고 직감했어요. 당신이 찾아오겠구나, 이건 정해진 일이다, 그럼 쉽게 가자.”

장철은 무표정 속에 의문을 잡았다. 쉽게 가자는 고초희의 말 때문이다.

“내가 정말 숨기로 마음먹었으면 찾는 데 고생했을 거예요.”

배시시 웃는 고초희, 저 얼굴로 장철은 깨달았다.

지금 이 상황은 고초희가 기획한 거다.

세경개발의 여식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 일부러 흘렸다.

도우미와 청소용역자들,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노출한 거다.

“솔직히 어떤 결과가 언제 올지는 예측하기 힘들었어요. 그냥 직감대로 했다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당신은 귀신, 윤완규를 바로 죽이고 하루 만에 한진수를 찾아 망가뜨린 자, 그 능력에 기대를 걸었는데 됐네요.”

장철의 무표정을 응시하며 고초희는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죽여 버린 저 남자, 현진 보스도 때가 언제가 될지의 확신은 없는 상태에서 움직인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당신이 언제 올지 누가 알겠어요? 감으로 짐작하는 거죠. 윤완규와 한진수를 떡쳐버린 결과로요.”

말없이 시선만 던지던 장철은 물었다.

“왜 그랬냐?”

웃음기 머금은 얼굴의 미간을 옅게 좁혔던 고초희는 이내 눈 사이를 폈다.

“그때요?”

고초희는 그 순간 떠올리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죠.”

장철은 숨을 멈췄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잊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라고 했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이, 손녀 장영을 해친 이유가 저런 것이다.

“그 애가 횡단보도에서 튀어나오는 순간 짜릿했어요. 한진수가 악셀을 풀로 밟고 있었거든요.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런데 한진수 그 병신이 운전대를 돌리려는 반응도 알았어요. 그래서 그걸 붙잡았죠.”

고초희는 산탄총의 총구가 크게 움직이도록 어깨를 으쓱했다.

“난 이런 게 좋아요.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요.”

고초희의 발이 움찔하는 순간 비상벨이 울었다.

동시에 고초희의 산탄총이 장철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총구가 불을 뿜는 찰나 장철은 움직였다.

산탄의 궤적을 피해 구른 장철은 플라잉 나이프를 던졌다.

다시 산탄총을 쏘는 고초희의 가슴에 격중했다. 그런데 나이프가 떨어진다.

고초희는 휘청하며 허공으로 총을 쐈다.

거실 천장의 전등이 박살나며 흩어진다.

‘방검복.’

고초희가 그런 걸 착용하고 있다는 걸 장철은 알았다.

곧바로 두 개의 플라잉 나이프를 뽑아 동시에 던졌다.

양손으로 던진 그 공격이 고초희의 무릎을 강타했다. 악 소리를 내며 주저앉는다.

그 순간 굴러 나갔다.

고초희가 겨눈 산탄총이 터지려는 순간 장철은 발로 걷어찼다.

벽을 향해 산탄이 폭발해 나가는 찰나 일어서는 힘으로 무릎을 내질렀다.

고초희의 안면을 찍었다.

수박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로 고초희는 넘어갔다.

입과 코의 원래 형상이 어땠는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안면이 부서진 고초희, 플라잉나이프가 박혀 무릎을 꿇었던 모습으로 누워 부들거린다.

“이런 걸 좋아한다니까 즐기게 해주마.”

구석에 떨어진 쿠크리를 잡은 장철은 고초희의 왼팔을 잡았다.

손목부터 날을 박아 그어 내려갔다. 팔꿈치에 이르러 칼날을 돌렸다.

도축당하는 짐승의 그것처럼 고초희의 팔이 떨어져 나왔다.

다음엔 오른 다리다.

장철은 가차 없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쿠크리의 날이 에탄올불빛이 흔들리는 속에서 흔들렸고, 고초희의 두 다리가 무릎 아래로 떨어져 나왔다.

“내 딸과 손녀가 네게 돌려주는 거다.”

고초희의 머리를 옆으로 돌린 장철은 쿠크리를 내리찍으려다 던졌다.

띠에 남은 플라잉 나이프를 뽑았다.

날 폭이 좁은 그것을 찍었다.

한진수의 머리에 가위날을 박아 넣은 것처럼, 칼날을 고초희의 머리에 박았다.

그 순간 계단을 통해 경호원들이 달려 올라왔다. 관리실에 있다 비상벨에 반응한 놈들, 그들 앞에서 일어선 장철은 거실 창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타운하우스 단지의 비상벨에 홀린 사람처럼 오동진은 미친 듯이 뛰었다. 그러던 한 순간 그림자를 봤다. 타운하우스 단지에서 질주해 나온다.

‘설마?’

오동진은 부정했다. 저 그림자가 귀신일거라는 지금의 판단이다.

‘형이 실패했다고?’

형 혼자가 아니다, 삼총사가 함께였다. 그런데 단지 경호실의 비상벨이 울렸다. 정체모를 그림자가 뛰어나오고 있다. 형에게 전화를 해봐야 한다.

‘그럴 때가 아니야!’

오동진은 본능적으로 그림자를 향해 뛰었다.

안에서 형이 실패했다면 그럴 경우를 대비해 자신이 준비하고 있었던 거다.

귀신을 잡는 게 먼저다. 형도 쫓아 나올 거다.

지금은 귀신의 도주를 차단하는 게 급하다.

‘어?’

그림자, 귀신이 확실한 자가 달려가는 방향을 보고 오동진은 눈썹을 세웠다. 비탈이 가팔라 도주로로 여기지 않은 곳이다.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이쪽이다!”

고함치며 오동진은 비탈 숲을 향해 달려갔다. 은신상태로 대기 중이던 현진직원들이 반응하며 달려온다. 그들 보다 먼저 비탈 숲으로 들어갔다.

‘제길!’

귀신은 비탈을 차고 올라갔다. 그런데 바닥을 헤친 흔적이 있다. 나뭇잎 속에 숨겨뒀던 뭔가를 꺼내 건 거다. 환복할 옷 등이 담긴 배낭일거다.

“올라가! 쫓아!”

소리치며 오동진은 비탈을 올라갔다. 그런데 폰이 몸부림친다.

형의 전화다. 달려 올라가며 받았다.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안에 있던 사람들 전부 죽었어! 이게 무슨 일이야!

형의 목소리가 아니다. 고초희의 경호책임자다. 형 오동철과 삼총사를 안에 들이는 내막을 전혀 모르던 자, 고초희가 초대한 손님이란 말로 물러나 있던 반응이다. 현진이란 걸 알고는 심각한 눈빛을 던지던 자다.

-여기서 무슨 일을 꾸민 거야!

경호책임자의 외침 같은 목소리 뒤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

-아가씨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앰뷸런스 불러!

경호책임자는 전화기를 던진 모양이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린다.

‘형이……!’

눈가를 부들거리며 오동진은 폰을 내렸다. 그런 오동진을 보고 현진 직원들은 멈춰 서 있다. 고개 숙이고 부드득 소리는 낸 오동진은 명령했다.

“잡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잡아 죽인다!”

비탈을 뛰어 올라가는 오동진의 뒤로 현진 직원들은 달려 올라갔다.

0